여름부터 블랙요원 신상 유출 등 악재 연발…방첩사·국방부 수사 불구 사령관 유임 ‘계엄 위해?’
비상계엄 때 국민들의 시선은 국회로 집중됐다. 707특임단이 침투하면서 충격에 빠졌고, 국회 계엄철회요구안 의결이 빠르게 진행되면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계엄군은 스포트라이트 밖에서 ‘성동격서(동쪽에서 소리를 내고 서쪽을 친다)’를 감행했다. 군 정보기관 ‘창과 방패’가 계엄 정국에서 손을 잡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국군 방첩사령부와 국군 정보사령부가 중앙선거관리위원회로 침투했다. 선봉은 정보사였다. 서열이 명확한 두 조직의 동맹은 예견돼 있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당초 비상계엄 사태 심장부로 거론됐던 조직은 방첩사였다. 정보사는 각종 사건 여파로 국방부와 방첩사로부터 수사를 받고 있는 상황이다. 2024년 여름 정보사는 블랙요원 신상유출 사건으로 방첩사로부터 4주 넘는 기간 동안 대대적인 수사를 받았다. 정보사 전 직원에 대한 압수수색은 물론이고 일부 관계자들에겐 거짓말 탐지기 수사까지 진행한 것으로 전해졌다(관련기사 [단독] “벼룩 잡으려 초가삼간 태운 꼴” 방첩사 ‘블랙요원 신상유출’ 수사에 정보사 초토화).
정보사 수장인 정보사령관은 직무배제되지 않은 상태로 국방부 조사본부 수사를 받고 있다. 국방부와 방첩사는 정보사 손발을 묶어 놨다. 그 뒤로 정보사는 ‘선관위 상륙작전’에 전격 동원됐다. 전직 정보사 관계자는 “사령관까지도 충암파에 목줄이 단단히 잡혀 있는 상태에서 말을 안 듣긴 힘들다”면서 “정보사는 여름 이후 상부 컨트롤을 완전히 따를 수밖에 없는 입장”이라고 했다.
정보사의 악재는 이게 끝이 아니었다. 문상호 정보사령관과 전 정보사 여단장 A 준장 사이 갈등이 표면화한 까닭이다. 영외 안가를 일부 단체가 활용하는 것을 두고 정보사 수장과 공작파트 수장이 내홍을 겪었다. 전현직 정보사 관계자들 사이에선 정보사령관이 대북공작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진다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방첩사로부터 극심한 압박을 받던 시기 수뇌부 간 갈등으로 정보사 내 중심을 잡아줄 리더의 부재가 현실화됐다. 수뇌부 간 갈등에 대한 수사는 국방부 조사본부가 맡았다. 수사 과정에선 편파 수사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2024년 9월 5일 일요신문은 ‘[단독] 조사도 계급순? 정보사령관 vs 여단장 맞고소전 편파수사 의혹’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보도했다. 보도 당일 기준 전직 정보사 여단장은 4차례 소환조사를 받았고, 정보사령관은 한 차례도 소환되지 않았다. 편파 수사 의혹 보도 다음 날인 9월 6일 국방부 조사는 처음으로 정보사령관을 소환한 것으로 파악됐다.
인사 조치도 불공정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A 준장은 정보사 수뇌부 갈등 이후 즉각 직무배제됐다. 정보사 업무에 일절 관여하지 못하던 A 준장은 평생을 몸담았던 정보사를 떠났다. 그는 야전 부대로 전출된 상태다.
A 준장은 류경식당 종업원 탈북 사건을 진두지휘한, 대표적인 공작통이다. 문재인 정부 당시 이 사건과 관련한 수사를 받기도 했다. A 준장은 무죄를 받은 뒤 여단장으로 취임했지만, ‘광개토 사업’을 둘러싼 정보사 수뇌부 갈등 여파로 직무배제됐다(관련기사 [단독] “차라리 울릉도라고 했다면…” 정보사 갈등 진원지 ‘광개토 사업’ 대체 뭐길래).
정보사 내부 취재에 따르면 직무배제 당시 A 준장은 나라를 위해 임무를 열심히 수행했을 뿐이라는 취지의 억울함을 호소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는 정보사의 ‘휴민트 기능’이 독립되지 않은 상황에서 공작 경험 없는 지휘관 통제를 받는다면, 실질적 대북공작 추진이 불가능하다는 점에 대해서도 상당한 우려를 표한 것으로 알려졌다.
A 준장과 갈등을 빚었던 문상호 정보사령관 행방은 이번 계엄사태가 불거지기 전까지 묘연했다. 문 사령관이 직무배제됐다는 언론 보도와 설이 난무했다. 그러나 문 사령관이 직무배제됐다는 국방부 측 공식 발표는 일절 없었다. 문 사령관 근황도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다.
‘잊혀진 이슈’ 핵심 인물이었던 문 사령관은 훨씬 뜨거운 이슈가 휘몰아친 뒤 나타났다. 계엄군의 ‘선관위 상륙작전’에 정보사가 개입한 것으로 확인되면서, 문상호 정보사령관도 비상계엄 사태 진상규명에 중요한 퍼즐조각으로 떠올랐다. 생김새 자체가 국가 보안 사항인 정보사령관이 국회에 출석해 얼굴을 드러냈다.
12월 10일 문 사령관은 국회 국방위원회 긴급 현안질의에 출석해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비상계엄 선포 전 과천 정부청사 인근에서 대기하라고 지시했다”면서 “선관위에 영관급 요원 10명을 파견했다”고 밝혔다.
문 사령관은 “(비상계엄 선포) 당일 오전 10~11시쯤 지시를 받았던 것으로 기억한다”면서 “첫 지시는 ‘해당 주에 야간 임무를 부여할 수 있으니 1개 팀 정도 편성해서 대기시키라’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문 사령관은 “저희(정보사)가 받은 임무는 선관위에 가서 전산실 위치를 확인하고 그곳을 지키고 있다가 다른 팀이 오면 인계하라는 것”이라면서 “선관위에 출동한 정보사 출동팀에 전산실 사진을 찍어 보내라는 지시는 내가 내렸다”고 했다. HID(특수임무대) 대기설과 관련해 문 사령관은 사실무근이라고 답했다.
군 관계자 등에 따르면 정보사 요원들이 선관위에 먼저 침투했고, 현장에서 서버를 촬영한 장교 역시 정보사 소속 대령인 것으로 알려졌다. 시간이 얼마 정도 흐른 뒤 방첩사 요원들이 도착했다. 정보당국의 한 인사는 “방첩사 요원들은 선관위에 들어가지도 않았다”면서 “실질적으로 선관위 침투 작전에서 정보사가 차지하는 비중이 더 높았을 수 있다”고 했다.
전직 군 관계자는 “가장 책임이 큰 임무를 정보사에 배정했을 가능성이 존재한다”면서 “이번 계엄 상황을 전반적으로 살펴보면 가장 핵심적인 작전 중 하나가 선관위 서버 탈취 후 분석이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일이 잘못될 경우 책임이 가장 큰 사안이라는 내부 판단이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선관위 서버에 접근하려 했던 건 선거와 관련해 북한 쪽 개입이 있는지 여부를 확인하려 했던 것이란 추정만 있을 뿐 아직 정확하게 밝혀진 부분이 없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국회에선 정보사 100여단이 계엄 상황 당시 대기한 정황에 대한 질의도 나왔다. ‘100여단은 누가 대기시켰느냐’는 박선원 민주당 의원 질의에 문 사령관은 “제가 장관님께 임무를 받고 지시했다”고 했다. 100여단 임무와 관련한 질문에 군 고위 관계자는 “군사보안상 답변이 제한된다”고 했다.
100여단은 A 준장이 여단장으로 있던 부대다. 이 부대는 정보사 공작을 총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A 준장이 야전으로 전출 간 뒤 100여단장으로는 ‘공작통’ 대신 ‘정보통’이 내정돼 있었다. 이를 두고 전현직 정보사 관계자들 사이에선 많은 우려가 나왔다고 한다. 계엄 상황을 대비해 A 준장을 찍어냈다는 의혹까지 제기되는 상황이다.
12·3 비상계엄 사태 당시 신임 100여단장은 취임하지 않았던 것으로 파악됐다. 여단장이 공석 상태였기 때문에 여단 병력은 사실상 사령관 통제 아래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 정보사령관을 장악하고 있는 것은 ‘충암파’였다. 김용현 국방부 장관, 여인형 방첩사령관 등 충암파 핵심 인사들은 정보사 관련 이슈 2건에 대한 수사를 진두지휘하는 위치에 있다. 여기다 또 다른 충암파인 박종선 777사령관은 문상호 정보사령관과 국방정보본부장 자리를 두고 경쟁하는 사이다.
또 다른 전직 군 관계자는 “박종선 사령관은 임기제로 진급했고, 문 사령관은 정상 진급을 했다”면서 “문 사령관이 군 정보 수장인 국방정보본부장 진급에 훨씬 유리한 위치에 있었다”고 전했다. 그러나 블랙요원 신상유출 사건과 정보사 수뇌부 갈등이 터지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이 관계자는 “충암파가 치고 나오는 상황에서 문 사령관은 난국을 수습해야 했고, 그게 오히려 충암파를 향한 과잉 충성으로 이어졌을 가능성이 있다”면서 “이런 부분을 염두에 두고 김용현 전 장관이 정보사 관련 사건 지휘책임자인 정보사령관에 대해 강력한 그립감을 가져가려는 차원에서 그를 유임했다는 분석도 나온다”고 주장했다.
비상계엄 선포 상황에서 선관위 상륙작전은 윤석열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준비한 비장의 카드였다. 부정선거 의혹을 규명할 핵심 증거가 선관위 서버에 있다고 봤을 것이란 추정이 나온다. 이 은밀한 작전에 가장 먼저 투입된 건 문 사령관이 이끄는 정보사였다. 그동안 국방부와 방첩사가 정보사를 쑥대밭으로 만들어놓은 대대적인 수사가 비상계엄 준비 일환이었다는 해석이 나온다.
한 전직 군 정보당국 관계자는 “블랙요원 신상유출 사건 이후로 방첩사가 정보사 내부 정보를 대부분 손에 넣으면서 장악 절차를 완전히 끝냈다”면서 “국방부 조사본부에서 수사를 받고 있는 정보사령관에 대한 인사조치도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정보사령관은 자신과 대립각을 세우던 여단장을 결과적으로 밀어냈다”면서 “사령관이 정보사를 완전히 장악하게 됐고, 국방부와 방첩사가 그 사령관을 완전히 통제권 안에 넣은 그림이 됐다”고 했다.
그는 “이미 방첩사와 정보사 사이 서열정리가 끝난 상태였다”면서 “정보사가 ‘선관위 상륙작전’ 선봉으로 나선 정황으로 봤을 때 일련의 과정은 충암파를 중심으로 한 계엄을 염두에 뒀던 계획적인 수순이었다”고 복기했다.
비상계엄 사태에 대한 진상조사 국면이 장기화될 전망인 가운데, 비상계엄 상황 당시 계엄군으로 활동했던 부대에 대한 수사도 불가피할 전망이다. 정보사 출신 한 인사는 “지난번 악재에 이어 다시 한번 최고 등급 보안을 요하는 정보사가 폭풍에 휩싸일 것”이라면서 “사령관 한 명이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정보사를 쑥대밭으로 만들었다”고 비판했다.
그는 “흑색과 백색을 오가며 첩보전 일선에서 엄청난 성과를 내왔던 정보사가 비상계엄 상황에서 잡부처럼 부려졌다”면서 “전현직 정보사 출신 인사들이 모멸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일요신문은 정보사가 비상계엄 사태 당시 동원된 배경과 관련해 질의했다. 국방부 측은 “이번 비상계엄 상황과 관련해 수사기관 3곳에서 수사를 하고 있는 상황”이라면서 “사실관계 확인과 관련한 답변은 제한된다”고 밝혔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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