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월 7일 국회에서 윤석열 대통령 탄핵안이 투표 불성립 된 후 국민의힘이 내놓은 정국 안정 로드맵을 속보로 보도한 외신들은 하나같이 이런 질문을 던졌다. 사실상 ‘식물 대통령’이 된 윤 대통령의 공백을 메울 묘수가 있긴 하냐는 의문이었다. 거기다 대통령 출국금지라는 사상 초유의 일까지 벌어지자 ‘뉴욕타임스’는 “한국에서 현직 대통령에게 출국금지 조치가 내려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라면서 “이로써 한국의 정치적 기능장애가 심화했다”라고 보도했다. 이런 가운데 두 번째 탄핵 표결을 앞두고 발표된 윤 대통령의 4차 대국민 담화에 대해서는 속보를 통해 “저항하는 연설을 통해 계엄령 선포를 옹호했다”라고 소식을 전했다. 격랑에 휩싸인 우리나라 정치권 소식을 속속 전하고 있는 외신들의 면면을 살펴본다.
‘뉴욕타임스’는 ‘계엄 실패 후, 한국인들은 ‘누가 책임자인가?’라고 묻고 있다’라는 기사를 통해 “윤 대통령의 실패한 계엄령 선포 시도로 인해 정부 내 권력 공백이 생겼다”라면서 “전문가들이 ‘헌법 위기’라고 부르는 상황이 더욱 심화되고 있다”라고 보도했다. 그러면서 비록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대통령을 대신해 정부를 이끌겠다고 나섰지만, “문제는 대한민국 헌법이 대통령이 사임하거나 탄핵되지 않는 한, 그 누구도 대통령을 대신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뉴욕타임스’는 “정치적 불확실성이 심화된 가운데 한국은 여러 외교적 도전 과제에 직면했다. 특히 북한의 핵 위협 증가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이 다가오면서 미국과의 동맹과 관련된 섬세한 외교 문제를 다뤄야 할 중요한 시기다”라고 꼬집었다.
또한 법무부의 출국금지 요청이 신속하게 이뤄진 점으로 보아 윤 대통령의 정부 통제력이 흔들리고 있다고 보도한 ‘뉴욕타임스’는 “검사 출신인 윤 대통령은 그동안 검찰과 법무부를 핵심 통치 도구로 삼아 충성파를 주요 보직에 임명하는 등 각별한 노력을 기울여왔다”고 지적했다.
‘워싱턴포스트’는 ‘불법 계엄령 후 탄핵을 피한 한국 대통령’이라는 제하의 기사를 통해 “탄핵안 무산은 정치적 혼란을 더하고, 윤 대통령의 사퇴를 요구하는 여론을 더욱 확산시킬 것으로 보인다”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집단 퇴장으로 탄핵안 표결에 불참한 국민의힘 의원들을 가리켜 “그들은 여전히 충성을 다하면서 대통령을 보호했다”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시카고 글로벌 문제 협의회의 아시아 연구 전문가인 칼 프리드호프는 “전 세계적으로 보수 정당이 국가보다 당을 우선시하는 사례를 여러 차례 목격했다. 이제 한국의 보수당도 그 명단에 추가할 수 있게 됐다”라고 비난했다. 이어서 프리드호프는 “윤 대통령의 임기가 어떻게 끝날지는 한국인들이 얼마나 강하게 저항을 지속할 의지가 있느냐에 따라 크게 달라질 것이다”라고 분석했다.
영국의 BBC는 '한국 대통령의 계엄령 도박은 역효과를 냈다: 그는 무슨 생각이었을까?’라는 기사를 통해 “지난 대선 기간 동안 윤 대통령은 권위적인 군사 정권을 이끌었던 전두환을 칭찬하며 민주화 운동가들을 탄압한 것을 제외하고는 그가 정부를 잘 운영했다고 주장했다”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뒤늦게 ‘전두환 정부를 옹호하거나 칭찬할 생각은 없었다’라고 해명했지만, 이는 윤 대통령이 권력을 어떻게 정의하고 있는지에 대한 그의 견해를 잘 드러내는 사례였다”라고 지적했다.
한편 BBC는 윤 대통령이 비상 계엄령을 내린 배경에 대해 “어쩌면 더 큰 이유, 즉 기소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움직였을 가능성이 있다”라면서 박근혜와 이명박 두 전임 대통령의 사례를 예로 들었다.
“한국의 첫 여성 지도자였던 박근혜는 권력 남용과 부패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고 수감됐다. 그리고 전임자인 이명박은 주가 조작에 연루되었다는 혐의로 조사를 받았고, 2020년에는 부패 및 뇌물 수수 혐의로 17년형을 선고받았다”라고 말한 BBC는 “한국에서는 기소가 거의 정치적 도구처럼 사용되어 왔으며, 종종 야당에 대한 위협으로 활용돼 왔다”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윤 대통령이 극단적인 조치를 취한 이유가 부분적으로 여기에 있다”라고 덧붙였다.
“그의 동기가 무엇이든 윤 대통령의 정치 경력은 이번 사태를 극복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라고 내다본 BBC는 “한국은 안정적이지만, 시끄러운 민주주의 국가이기도 하다. 이번에 한국인들은 또 다른 권위주의적 독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윤 대통령은 1980년대 이후 국가 민주주의에 대한 가장 심각한 도전이었던 이번 사태에 대한 책임으로 이제 국회와 국민의 심판을 받게 될 처지에 놓였다”라고 보도했다.
‘미국의 소리(VOA)’는 한국 전문가이자 미 해군 전쟁 대학의 국가 안보 교수인 테렌스 로릭의 말을 빌려 “윤 대통령이 탄핵이나 사임으로 자리에서 물러난다면, 다음 선거에서는 의심할 여지 없이 민주당에서 대통령이 선출될 것이다”라고 내다봤다. 이어서 그는 “그렇게 된다면 한국의 대중국 정책과 일본 및 미국과의 3국 관계에 변화가 있을 가능성이 높다. 지난 2년 동안 3국 관계를 제도화하기 위해 많은 노력이 이루어졌지만, 이러한 노력은 차기 트럼프 행정부, 그리고 윤 대통령의 퇴임과 함께 시험대에 오를 것이다”라고 예상했다.
‘브루킹스 연구소’의 한국학 SK-한국 재단 이사장인 앤드류 여는 “민주당은 문재인 정부 때처럼 중국과의 협력에 더 개방적이기 때문에 아마 중국의 경우에는 민주당이 다시 집권하기를 바라고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여 이사장은 또한 트럼프 정부의 주요 내각 인사인 마이크 월츠 국가안보보좌관과 마르코 루비오 국무장관을 언급하면서 이들이 모두 대중 강경파로 평가받고 있다는 점을 상기시켰다. 그는 “아마도 트럼프 정부는 중국을 견제하는 데 초점을 맞춰 정책을 펼 것”이라고 전망하면서 “트럼프가 동맹보다는 양자 간 거래를 선호하기 때문에 한미일 3국 관계의 미래가 다소 불확실해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영국의 ‘더선’은 “그간 북한에 대한 강경한 입장을 보여온 윤 대통령은 한때 영국의 전쟁 영웅인 윈스턴 처칠과 비교되기도 했다”면서 “하지만 4월 총선에서 민주당이 압승을 거두고, 각종 스캔들과 정치적 난항에 휘말리면서 이제는 더 이상 그렇게 불리지 않게 됐다”라고 전했다.
“양극화된 한국 정치의 감정 대립” 이재명과 윤석열 비교한 ‘뉴욕타임스’
'뉴욕타임스'는 이재명 민주당 대표와 가진 단독 인터뷰를 통해 “그는 한국의 차기 대통령이 될 수 있다. 차기 대선 후보로서 가장 유력하다”라고 보도했다. 이어서 “이 대표는 정치적 동기가 있다고 주장하는 법적 혐의에 맞서 싸우고 있지만, 이제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한 정치적 입지를 확보하게 됐다”라고 말하면서 “그가 이끄는 야당은 국회에서 과반수를 차지하고 있으며, 대부분의 한국인이 원하는 것을 대변하고 있다. 여론조사에 따르면 만일 지금 당장 대선이 치러지면 그가 당선될 가능성이 가장 높다”라고 덧붙였다.
또한 ‘뉴욕타임스’는 “45년 만에 처음으로 국가를 군사 통치하에 두고자 한 윤석열 대통령의 갑작스럽고 당혹스러운 결정은 어떻게 보면 점점 더 양극화되는 정치 지형에 따른 것이었다”면서 “윤 대통령은 임기 내내 의회를 장악해 온 이 대표와 진보적 야당을 적대시하고 두려워했다”라고 전했다. 또한 “윤 대통령의 계엄령 선포는 현재 양극화된 한국 정치가 얼마나 감정적으로 치닫고 있고 위험한지를 보여주는 사례다”라면서 “재임 기간 동안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거듭된 만남 제안에 거의 응답하지 않았고, 야당은 다수당 지위를 이용해 윤 대통령의 정책에 반대해 왔다”라고 지적했다.
한편 이 대표와 윤 대통령의 개인적인 면면을 비교한 ‘뉴욕타임스’는 “한국 정치는 오랫동안 분열되어 왔지만, 이 대표와 윤 대통령 간의 권력 다툼으로 인해 그 차이는 더욱 커졌다”라고 분석했다. 가령 이 대표에 관해서는 “그의 부모님은 공중화장실 청소를 하면서 생계를 유지했으며, 이 대표는 10대 시절 노동자로 일하다가 훗날 인권 변호사, 시민운동가, 정치인이 되어 가난한 사람들을 대변하는 일을 맡았다”라고 소개했다. 반면, 윤 대통령에 대해서는 “대학교수인 아버지를 두었고, 그 자신도 명문대학교를 나왔으며, 전직 대통령 두 명을 수감하는 데 일조하면서 스타 검사로 주목 받았다”라고 소개했다.
또한 이 대표는 포퓰리스트라는 비난을, 그리고 윤 대통령은 평범한 사람들과 너무 동떨어져 있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는 점도 지적했다.
연설 스타일에 대해서도 둘 사이에 차이가 있다고 소개한 ‘뉴욕타임스’는 “이 대표의 연설은 준비가 되어 있고 체계적이지만, 윤 대통령의 연설은 산만하고 자화자찬하는 경향이 있다”라고 꼬집었다.
김민주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