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12월 11일 열린 2011그랑프리에서 ‘터프윈(왼쪽에서 세 번째)’이 우승을 차지했다. 연합뉴스 |
▲ 지난 7월 22일 부산광역시장배에서 우승을 한 ‘당대불패’. 사진제공=부산경남경마공원 |
이번 그랑프리 대회의 최대 관심사는 역시 서울경마장(서울)을 대표하는 ‘터프윈’과 부산경남경마장(부경)을 대표하는 ‘당대불패’ 중 누가 유종의 미를 거둘 것인가다. 팬들의 인기투표에선 부경의 당대불패가 850표를 얻어 749표를 얻은 서울의 터프윈을 101표 차이로 제치고 1위에 올랐다. 3위를 차지한 부경의 ‘감동의바다’가 537표에 그친 점에 비춰 보면 두 마필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팬들의 인기가 몰린 만큼 두 마필의 경주능력도 다른 마필들에 비해 우세하다는 평가를 하고 있다.
특히 그랑프리 대상경주는 마필능력이나 수득상금에 상관없이 성별과 연령, 산지를 감안해 부담중량을 결정하는 별정 Ⅵ형(1071호 일요신문 참고)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인기마들도 동일한 조건에서 겨룰 수 있다는 점에서 이 두 마필의 능력 우세가 실전에서도 그대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그렇다면 둘 중에서 우승의 영광은 과연 누구에게 돌아갈까. 객관적인 전력면에선 거의 비슷하다는 평가가 대체적이지만 일부 전문가들이나 서울의 경마팬들은 터프윈의 근소한 우세를 점치기도 한다. 마치 1989년 미국의 삼관마 경주에서 ‘선데이사일런스’에게 두 차례나 진 ‘이지고어’를 미국의 경마팬들이 ‘이번에는 이길 것이다’라고 응원하는 것과 비슷한 분위기다. 당시 삼관마에 등극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았던 이지고어가 첫 관문인 켄터키 더비에 이어 두 번째 관문인 프리크니스 스테이크스에서마저 선데이사일런스에 패배했지만 내용면에선 지지 않았다는 평가를 받고 팬들의 지지를 다시 받은 바 있다. 터프윈도 이미 당대불패에 지고 또 최근 비교적 약체들한테마저 진 바 있지만 능력은 의심하지 않는 분위기다. 과연 터프윈은 이지고어처럼 마지막 대결에서 당대불패에게 설욕을 할 수 있을 것인가.
먼저 두 마필의 최근 경주성적을 살펴보자. 당대불패는 이제 마령 5세로 최전성기에 돌입한 말로 27전 18승 2위2회를 기록하고 있다. 3세마 시절부터 대상경주를 석권하며 잘 뛰어왔지만 그동안 간간이 어이없는 패배를 당하곤 했는데 5세에 접어들면서부터는 힘이 차고 걸음이 탄탄해졌음인지 무적질주를 하고 있다. 지난 3월에 비운의 명마 ‘미스터파크’에 밀려 2위를 한 것이 유일한 패배일 뿐 그 후로는 대상경주 3연승을 포함해 최근까지 5연승을 구가하고 있다. 게다가 이번 대회는 국산마에게 감량이점까지 있기 때문에 부담중량에서도 유리한 입장이다.
당대불패의 가장 큰 장점은 뛰어난 순발력과 주폭으로 가속을 수월하게 붙인다는 것이다. 이번에 같이 뛰는 말들도 당대불패보다 순발력이 뛰어난 말은 없어 보인다. 때문에 이번 경주에서도 당대불패의 선행은 유력시된다. 그러나 선행을 견제할 마필이 전혀 없지는 않다. 이제 막 3세에 접어들면서 만개하기 시작한 ‘시드니주얼리’는 객관적인 능력은 뒤지지만 순발력이 갈수록 좋아지고 있고, 이미 직전 특별경주에서 기습선행으로 우승을 거둔 적이 있어 이번 대상경주에서도 강력한 선행작전을 펼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이 경우도 당대불패로선 선행 맞불을 던지지 않고 따라가도 되기 때문에 지나치게 의식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아무튼 이번 경주에서 당대불패는 부담중량과 경주전개라는 두 가지 이점이 있어 그만큼 유리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호랑이가 날개까지 달고 출전하는 셈이다.
하지만 필자의 의견은 다르다. 경주내용을 자세히 분석해보면 부산광역시장배에서는 당대불패의 작전에 말려 중반에 오버페이스를 한 것이 패인이었고, 직전 경주에서는 느린 페이스에 말려 이 마필이 갖고 있는 경주능력을 경주로에서 다 쏟아내지 못했던 게 패인이었다.
먼저 당대불패와 맞붙었던 부산광역시장배 경주를 살펴보자. 이 경주에서 터프윈에 기승한 조경호 기수는 추입작전을 폈다. 초반은 후미에서 따라갔다. 그러다 흐름이 생각보다 너무 느리게 전개되자 늦추입의 우려를 직감하고 페이스를 올리면서 따라붙기를 시도했다. 그런데 이때 공교롭게도 앞선과 중간그룹이 모두 페이스를 함께 올리는 바람에 경주 중반 흐름이 너무 빨라졌다. 이 바람에 터프윈은 앞선을 따라붙는 데 예상보다 많은 힘을 소모했다. 페이스가 한동안 비정상적으로 빨라지자 영리한 조경호 기수가 중간에 호흡조절을 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너무 긴 거리를 무리한 속도로 달렸던 상태라 체력소모가 컸고, 이후 직선주로에선 밋밋한 걸음을 보이며 4착을 차지했다. 한마디로 앞선에서 느릿하게 경주전개하다 뒷직선에서 스피드를 올리는 당대불패의 작전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게 패인이었다고 할 수 있다.
기수가 경주 흐름을 잘 읽고 대처도 무난하게 했지만 결과적으로 무리수가 됐던 것인데, 이런 흐름은 이번에도 이어질 가능성이 없지 않다. 앞선 경주마들의 능력이 비슷하면 뒷선이 유리하지만 능력 차이가 클수록 추입마들은 끌려다니게 될 위험이 그만큼 커지는 것이다.
이런 경주 흐름은 지난 10월 21일 경주에서도 나타났다. 상황은 부산광역시장배와는 정반대로 전개됐다. 비교적 약체들을 만난 이 경주에서 터프윈은 압도적인 인기를 끌었지만 경주결과는 3위에 그쳤다.
당시 경주는 에이스갤러퍼가 선행을 나섰다. 하지만 레이스가 너무 느렸고 경주마들이 줄을 서는 바람에 후미에 있던 터프윈은 결승선 직선주로에서 최선을 다했지만 ‘힘이 남는 늦추입’이 되고 말았다. 레이스가 너무 느렸기 때문에 거의 모든 경주마들이 힘이 남아있던 상황이라 마지막에 더 힘을 냈고 라스트화롱을 12초대로 뛰었다. 이런 상황에서는 천하의 터프윈이라 할지라도 앞선을 모조리 따라잡기는 불가능했던 것이다. 당시 터프윈의 마지막 200미터 주파기록은 11.6초였다. 그만큼 힘이 남았던 경주였다.
아무튼 두 차례의 패배는 모두 이유가 있었고, 경주력 자체는 크게 저하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터프윈에 대한 하향평가는 너무 이르다는 게 필자의 판단이다.
그렇다면 이번 그랑프리 대상경주에서 터프윈은 당대불패를 이길 수 있을까. 전문가들은 부담중량을 감안하면 경주능력에선 큰 차이가 없는 만큼 이번에도 경주전개에서 승패가 갈릴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당대불패가 선두권에서 비교적 편하게 레이스를 할 가능성이 높아, 터프윈이 예전처럼 ‘바닥 추입 작전’(맨 후미에서 따라오다 따라잡는 전략)을 고수하면 늦추입이 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출주마들이 한국을 대표하는 명마들이긴 하지만 개개 마필들의 능력 차이가 크기 때문에 앞선이 뭉치기보다는 길게 늘어설 가능성이 높고 이 경우 터프윈이 일시에 앞선까지 모조리 따라잡으려면 힘 소모가 너무 많다는 분석인 것이다.
따라서 터프윈으로선 스타트를 잘 끊어서 당대불패를 사정권에 두고 중간쯤에 따라가다 추격하는 작전이 좀더 안전해 보인다. 실제로 터프윈은 3~4세마 시절엔 선행이나 선입으로 레이스를 주도하고 연전연승을 했을 만큼 순발력도 뛰어난 말이기 때문에 이런 작전을 소화해낼 능력은 충분하다.
결론적으로 당대불패는 앞선에서 능동적인 작전을 펼칠 수 있는 반면 터프윈은 상대의 작전이나 경주 흐름에 맞추는 수동적인 입장이라 당대불패가 조금이라도 유리하다는 게 대체적인 예상이다. 하지만 경마는 알 수 없는 것. 초반에 당대불패를 괴롭히는 말이 나올 수도 있고, 터프윈이 게이트를 잘 뽑아서 기습선행을 구사하는 작전을 펼 수도 있는 것이다.
김시용 프리랜서
큰 경기 강한 ‘감동의바다’ 주목
복병권에서 가장 관심을 모으는 마필은 부경의 ‘감동의바다’다. 이 말은 올들어 국제신문배와 경상남도지사배(GⅢ) 등 대상경주에서 두 번이나 우승한 신예 기대주다. 3세마라 한참 발전하는 단계에 있고, 국내산 암말이라 부담중량에서 큰 이점이 있어 무시할 수 없다는 평가다. 앞선을 따라갈 수 있는 순발력을 갖춘 말이라 안쪽 게이트를 뽑는다면 강력한 다크호스가 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다음으로 관심을 모으는 마필은 최근 전성기를 맞은 마령 4세의 싱싱캣이다. 직전경주에선 전통의 강호 터프윈과 주몽을 꺾고 우승을 차지한 바 있다. 비록 당시 경주 결과가 터프윈, 주몽의 작전실패에 힘입은 바가 있지만 그동안의 약점이었던 순간 폭발력은 대폭 보강됐다는 평가를 받았다.
또 하나의 신진세력 ‘시드니주얼리’도 무시할 수 없는 복병마다. 9전 6승 2위1회를 거둔 마필로 이제 막 3세에 접어든 어린 말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빠른 페이스에 말리면 실수를 하곤 했지만 최근엔 힘이 차면서 초반에 무리해도 끝까지 끈기를 발휘하고 있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다.
최근 두 경주는 그런 측면에서 의미가 있었다. 먼저 지난 9월 23일 경주는 ‘노피아맨’이라는 경주마가 초중반 폭주하면서 레이스가 빨라져 오버페이스에 가까운 속도로 따라갔지만 끝까지 끈기를 보이면서 6마신 차이로 우승을 차지했다. 그 다음 경주인 지난 11월 4일 특별경주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였다. 이날은 문세영 기수가 기승했는데, 초반부터 몰아붙이며 선행을 나선 뒤 2코너까지 상당히 빠른 페이스로 이끌었고 나머지 구간도 평균 이상의 스피드로 달렸다. 1군 첫 무대에서, 그것도 특별경주에서 기존의 강호인 제왕탄생과 셀러브렛투나잇 등을 제치는 기염을 토했던 것이다. 아직 경주경험이 많지 않고, 이번 그랑프리가 2300미터 경주이기 때문에 선행을 나서더라도 끝까지 버티긴 어렵다는 게 중론이지만, 거꾸로 보면 장거리 경주라 강하게 견제를 받지 않을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3위 이변은 가능하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이밖에 컨디션이 조금 떨어져 있지만 이번 대회를 벼르고 있는 ‘주몽’과 최근 들어서 지구력과 부담능력이 부쩍 좋아진 ‘탐라황제’의 도전도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