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치권 등에선 한상대 총장이 물러난 만큼 최 부장도 사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연합뉴스 |
최 부장은 한 전 총장이 자신에 대한 감찰을 지시하자 이에 반박하는 보도 자료를 배포하며 사실상 쿠데타를 일으켰고, 상당수 검사들이 최 부장에게 동조하면서 거사를 성공으로 이끌었다. 이를 놓고 검찰 내부에선 “신중하지만 한 번 마음먹으면 과감하게 밀어붙이는 최 부장 스타일이 통했다”는 평이 나오고 있다.
‘중수부의 산증인’으로 꼽히는 최 부장의 어제와 오늘을 짚어봤다.
지난해 8월 한상대 전 총장이 모든 검사들의 ‘로망’인 중수부장(검사장급) 자리에 최재경 당시 사법연수원 부원장을 발탁하기 직전 검찰 안팎에서는 “적임자이긴 하지만 조금 빠르지 않느냐”는 여론이 적지 않았다고 한다. 사법연수원 17기인 최 부장이 16기 선배들을 제치고 고속 승진하는 것에 대한 부정적 반응이 돌았던 것이다.
그러나 한 전 총장은 최 부장 임명을 강행했다. 이를 두고 대검의 한 관계자는 “한 총장은 자신의 임기 동안 직할부대 역할을 할 중수부 책임자로 진작부터 최 부장을 점찍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총장에 취임하기 전부터 최 부장의 특수수사 능력을 여러 차례 높이 사곤 했다”고 전했다.
그 전까지만 해도 한 전 총장과 최 부장은 별다른 ‘인연’이 없었다. 한 전 총장이 기획·공안파트에서 주로 몸담아 왔다면 최 부장은 특수통으로 이름을 떨쳤다. 이는 한 전 총장이 전적으로 최 부장의 탁월한 수사 능력만을 보고 특수수사 전권을 맡겼다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물론 검찰과 정치권 일각에선 최 부장의 출신 고등학교(대구고)가 TK(대구경북) 지역에 있다는 점을 들어 지역적 요소가 고려된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또한 최 부장이 2007년 대선 때 이명박 대통령이 연루된 BBK 의혹 수사를 맡아 승진 혜택을 입었다는 얘기도 나돌았다. 이 때문에 일부 야당 의원들은 최 부장 임명을 두고 ‘대표적인 보은인사’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상당수 검찰 인사들은 최 부장이 정치색과는 거리가 멀다는 데 입을 모은다. 최 부장과 한 때 같이 근무했던 전직 검찰 관계자는 “최 부장은 수사를 할 때 정치적인 것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그랬다면 ‘수사의 달인’이라는 닉네임이 붙었겠느냐”면서 “그 어떤 정권이 들어서던 최 부장은 그 자리에 올라갔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이 때문에 최 부장이 임명되자 한 전 총장과의 관계가 원만하게 유지될지 여부에 관심이 쏠렸다.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건을 주도 담당하는 중수부 특성상 최 부장과 한 전 총장이 불협화음을 낼 가능성이 대두됐던 것이다. 이에 대해 서초동 주변에선 “두 사람은 이명박 정권의 적자들이다. 고려대 출신 총장과 TK 지역 중수부장 간에 호흡이 잘 맞을 것”이라는 의견과 “한 총장이 최 부장을 자기 사람으로 생각하면 오산이다. 차후 수사나 조직운영 등을 놓고 갈등이 벌어질 것”이라는 반론이 맞붙었었다.
▲ 한상대 총장이 최재경 중수부장(왼쪽)에 대해 감찰을 지시하면서 촉발됐던 검찰 내분 사태는 한 총장의 사의 표명으로 일단 진정 국면에 들어갔다. 연합뉴스 |
▲ 한상대 총장이 11월 30일 사퇴의 변을 밝힌 후 대검청사를 떠나고 있다. 임준선 기자 |
둘 사이는 한 전 총장이 대검 감찰본부에 최 부장 감찰을 지시하면서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넜다. 조직 정점에 서 있는 검찰총장과 특수수사의 야전사령관 격인 현직 중수부장의 정면 대결이 시작된 셈이었다. 최 부장은 비리에 연루돼 구속 기소된 김광준 서울고검 부장검사에게 언론 대응 요령 등을 문자 메시지로 보낸 부분이 감찰 대상에 오르자 ‘총장의 보복성 조치’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중수부 소속 한 검사는 “문제가 있다면 감찰을 해서 밝혀내면 되는데, 시작도 전에 이를 언론에 알렸다는 것 자체가 명백한 흠집내기 아니냐”면서 “감찰본부 역시 이 부분에 대해선 총장에게 불만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한 전 총장을 상대로 반격에 나선 최 부장 모습을 지켜본 검찰 관계자들은 ‘특수통답게 치밀하고 과감하다’는 평을 내놓고 있다. 한 전 총장이 ‘기습적으로’ 감찰 사실과 문자메시지 내용 등을 공개하며 게릴라식 전법을 사용했다면, 최 부장은 한 총장 사퇴 요구와 같은 ‘정공법’을 택했다.
조직에 대한 최 부장의 남다른 ‘로열티’가 현 상황을 초래했다는 관측도 있다. 최 부장과 가까운 한 법조인은 “검찰이 최대 위기를 맞았다. 그렇다면 당연히 총장이 책임을 지고 물러나는 게 최 부장을 비롯한 대다수 검사들의 정서”라면서 “총장이 중수부를 폐지하면서까지 자신의 자리를 지키려하는 것이 최 부장 입장에선 못마땅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최 부장은 검사 성추문 사건으로 동부지검장이 물러나자 “총장님도 책임을 질 필요가 있다”는 취지로 사실상 사퇴를 건의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때부터 둘 사이의 파열음이 생겼다는 게 검찰 안팎의 중론이다.
최 부장이 검찰 내에서 걸어온 길을 살펴보면 이러한 얘기들이 나오는 이유를 쉽게 알 수 있다. 경남 산청에서 태어난 최 부장은 대구고와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1988년 사법연수원을 나온 이후 대부분을 특수수사 분야에서 일했다. 또한 검찰 내 엘리트 코스를 차근차근 밟아 왔다. 대구지검 김천지청 검사로 첫발을 내디딘 최 부장은 서울지검 부부장, 법무부 검찰2과장, 대검 중수 1과장, 서울지검 특수1부장, 서울중앙지검 3차장, 대검 중수부 수사기획관 등 검찰 내 요직을 두루 거쳤다.
최 부장은 수사 전반을 읽는 시야와 치밀함, 빠른 판단 능력, 과감성 등 특수부 검사의 모든 것을 갖췄다는 찬사를 받았다. ‘독종’ ‘검찰 소방수’ ‘칼잡이’ 등 최 부장에게 따라 다니는 닉네임들이 이를 반영한다. 1994년 부광약품 주가조작 수사에 참여하면서 이름을 알린 최 부장은 이듬해 홍콩 금괴 밀수 사건을 깔끔하게 처리해 특수통으로서 인정받기 시작했다. 이어 1998년 병무비리 의혹, 1999년 옷로비 사건 수사팀에서맹활약하면서 검찰 내 입지를 확고히 다졌다.
특히 지난 2005년 불거진 현대차 비자금 사건에서 최 부장은 특수수사 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하며 국민들에게도 선명한 인상을 남겼다. 당시 대검 중수 1과장이던 최 부장은 끈질긴 추적 끝에 정몽구 회장을 구속시키는 성과를 일궈냈다. 당시 수사팀이었던 한 검찰 수사관은 “(정 회장 구속 여부에 대해) 논란이 있었다. 그러나 최 부장은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윗선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실무진에게는 수사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해 줬다”고 떠올리면서 “무에서 유를 만들어야 하는 특수수사 만큼은 검찰에서 최고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 후 최 부장은 론스타 외환은행 헐값 매각 사건 때 변양호 전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장, 이강원 전 외환은행장 등 거물급 금융 인사들을 기소하며 스포트라이트를 받기도 했다. 중수1과장이던 2007년엔 이명박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대선 후보의 도곡동 땅 실소유주 의혹 및 BBK 주가조작 의혹사건 수사를 지휘했다. 최 부장은 당시 이 후보에게 유리한 수사 결과를 발표해 정치 편향 논란에 시달리기도 했다. ‘BBK 검사’라는 다소 불명예스러운 별명이 붙은 것도 이 무렵이다.
대검 수사기획관 시절엔 세종증권 매각 비리를 수사해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형 건평 씨와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 등을 구속했다. 그러나 특수부를 관할하는 서울중앙지검 3차장으로 근무하고 있을 당시에는 이 대통령 사돈기업인 효성그룹 비자금 사건을 무혐의 처분해 ‘봐주기’ 수사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최 부장 스스로도 2007년 BBK 수사 와 2009년 효성 비자금 사건 이후 자신을 따라다니던 ‘정치 검사’ 타이틀에 대해 “그렇게 비춰질 수도 있겠다”며 괴로워했다는 후문이다.
최 부장의 특수 수사 ‘본능’은 지난해 8월 다시 되살아났다. 그는 특수 수사의 타워컨트롤 역할을 하는 중수부장에 임명되면서 굵직굵직한 사건들을 다시 수사하기 시작했다. 특히 여권 실세들을 잇달아 구속시키면서 그동안 자신에게 덧씌워져 있던 정치색을 희석시켰다. 저축은행비리 수사 과정에선 이 대통령의 형 이상득 전 의원을, 파이시티 인허가 로비 사건과 관련해선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과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 등을 구속시켰다. 현 정부에서 내로라하는 인사들이 모두 최 부장에 의해 사법처리된 것이다.
이처럼 최 부장이 정치적인 시비에 휘말리며 곱지 않은 시선을 받았던 것도 사실이지만 적어도 조직 내에서만큼은 여전히 신망이 두텁다고 한다. 중수부 관계자는 “최 부장은 정치적으로 민감한 수사를 자주 맡았다. 고위층에서는 수사 잘하는 최 부장에게 그런 것을 배당해 논란을 최대한 줄이고자 할 것 아니겠느냐”면서 “후배 검사들 중에선 최 부장을 무조건 따르는 이들이 적지 않다. 재벌 총수와 현직 대통령 형님을 구속시켰던 최 부장에게 정치적 잣대를 들이대는 건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최 부장이 한 전 총장을 상대로 반기를 들 수 있었던 것도 자신을 향한 조직 구성원들의 무한한 신뢰가 밑바탕에 깔려있다. 현재 대검과 서울중앙지검 주요 간부들 및 검사들은 최 부장을 전폭적으로 지지하고 나선 상태다. 반면, 한 전 총장은 ‘고립무원’ 신세나 다름없다. 총장의 ‘입’ 역할을 하는 대변인실을 제외하고는 한 전 총장의 ‘입김’이 전혀 먹히지 않고 있다. 지난 11월 30일 한 전 총장의 사퇴 기자회견장에 대검 대변인과 기획과장, 운영지원과장만 배석했을 뿐 검사장급 대검 간부들이 참석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이런 분위기를 방증하고 있다. 한 전 총장은 이날 오전 10시 대검청사 15층 회의실에서 사퇴발표 기자회견을 하고 약 1분간 짧은 사퇴의 변을 밝힌 후 곧바로 퇴청했다.
검·경 수사권 조정 파문으로 중도 퇴임한 전임 김준규 총장의 뒤를 이어 검찰수장직에 오른지 477일 만에 불명예스럽게 퇴진한 셈이다.
한 전 총장의 퇴진으로 지금까진 최 부장의 쿠데타가 성공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하지만 최 부장 역시 이번 사태로 인해 그동안 쌓아 왔던 화려한 커리어에 타격을 입을 것이란 관측에 힘이 실리고 있다. 특히 한 전 총장이 물러난 만큼 최 부장도 사퇴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도 조심스럽게 흘러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홍만표 전 대검 기조부장, 김경수 전주지검장과 함께 ‘17기 특수통 트로이카’로 불리며 일찌감치 ‘검찰총장감’으로 꼽혔던 최 부장이 중도에 물러날 수도 있는 것이다.
정치권과 기업에 이어 이번엔 직속 상관인 한 전 총장을 겨냥해 매서운 칼을 휘두른 최 부장의 향후 행보가 사뭇 궁금해진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
부인 황경희 씨와 사이에 1남 1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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