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40억에 거래, 본인 부채 상환 추정…900억대 남은 전두환 추징금 납부엔 사용 안 해
부동산등기부에 따르면 전재국 씨는 지난 7월 본인 소유의 파주시 문발동 건물을 동양섬유에 매각했다. 매각가는 40억 원이었다. 해당 건물은 4층 규모로 연면적은 3033.01㎡(약 917평)다. 문발동 건물은 현재 리모델링 공사를 진행하고 있다. 동양섬유 관계자는 “공사를 마친 후 사옥으로 활용할 예정”이라며 “건물 매도인이 전재국 씨인지는 몰랐다”고 밝혔다.
전재국 씨는 1998년 해당 문발동 토지를 한국토지개발공사(현 한국토지주택공사·LH)로부터 매입했다. 전 씨는 2007년 이곳에 건물을 준공했다. 이후 전 씨 일가가 최대주주인 회사 음악세계, 북플러스, 실버밸리 등은 이 건물에 본사를 뒀다. 출판사 시공사도 2007년 7월부터 올해 1월까지 문발동 건물에 지점을 뒀다. 전 씨는 2018년 시공사를 바이오스마트에 매각했다. 시공사는 매각 후에도 한동안 전 씨와 인연을 이어갔던 셈이다.
건물 매각 후 전재국 씨 소유 회사들은 모두 본사를 이전한 것으로 확인됐다. 법인등기부에 따르면 음악세계와 실버밸리는 지난 9월 바로 옆 건물로 본사를 옮겼고, 비슷한 시기 북플러스도 파주시 다른 건물로 본사를 이전했다. 이들 회사들이 이전한 본사 건물은 전 씨 일가와는 무관한 곳이다. 음악세계 관계자는 건물 매각과 관련해 “답변할 수 있는 내용이 없다”고 말했다.
전재국 씨는 앞서 2019년 파주시 탄현면에 있는 3층 규모 건물도 38억 5000만 원에 매각한 바 있다. 전 씨는 두 차례 건물 매각을 통해 78억 5000만 원의 현금을 손에 쥔 셈이다. 일각에서는 전재국 씨가 건물 매각 대금으로 본인의 부채를 상환했다는 추측을 내놓고 있다. 전 씨는 시중은행에서 문발동 건물을 담보로 몇 차례 대출을 받았다. 부동산등기부에 따르면 문발동 건물에는 2020년 A 은행이 채권최고액 37억 2000만 원의 근저당권을, B 은행이 채권최고액 18억 원의 근저당권을 설정했다. 이어 2023년 A 은행이 채권최고액 6억 원의 근저당권을 추가했다.
근저당권은 채무자가 채무를 이행하지 못할 때를 대비해 담보물을 저당 잡은 채권자가 그 담보에 대해 다른 채권자보다 우선해서 변제받을 수 있는 권리를 뜻한다. 채권자는 손해를 볼 경우를 대비해 실제 대출금 이상의 한도액인 채권최고액을 설정한다. 채권최고액은 통상 대출액의 120%로 설정된다. 전재국 씨는 2020~2023년 문발동 건물을 담보로 약 50억 원을 대출받은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전 씨가 건물을 매각한 후 해당 근저당권은 모두 해제됐다. 전 씨가 매각 대금을 부채 상환에 사용한 것으로 풀이되는 이유다.
전재국 씨는 본인 소유의 서울시 종로구 평창동 자택을 담보로도 수차례 대출을 받았다. 현재 평창동 자택에 설정된 근저당권 채권최고액은 총 64억 4040만 원이다. 전 씨가 평창동 자택을 담보로도 50억 원 이상의 대출을 받았음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해당 채권최고액 중 41억 7600만 원은 문발동 건물 매각 후인 지난 9월 설정됐다.
전재국 씨 일가는 최근 몇 년간 다양한 사업을 시도했다. 전 씨의 채무도 사업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발생했다는 뒷말이 나오고 있다. 전 씨는 2019년 평창동에 북카페를 오픈해 현재도 운영 중이다. 또 실버밸리는 2016년 프랜차이즈 고깃집 ‘나르는돼지’를, 2021년에는 과일 판매 업체 ‘행복한 과일가게’를 오픈했다. 하지만 나르는돼지와 행복한 과일가게는 현재 폐업한 상태다. 실버밸리에는 전재국 씨의 장남 전우석 씨가 사내이사로, 장녀 전수현 씨가 감사로 재직 중이다.
전재국 씨는 추징금 납부에는 소극적인 모습을 보여 비판을 받고 있다. 고 전두환 씨가 미납한 추징금은 900억 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재국 씨는 2013년 9월 기자회견에서 “추징금 환수 문제와 관련해 그간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드린 데 대해 저희 가족 모두를 대표해서 머리 숙여 사죄드린다”며 “앞으로 저희 가족 모두는 추징금 완납 시까지 당국의 환수절차가 순조롭게 마무리될 수 있도록 최대한 협력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전재국 씨 개인이 보유한 구체적인 재산은 파악되지 않고 있다. 전 씨는 2013년 추징금 납부를 위해 북플러스 지분을 매각한 바 있다. 그러나 전 씨는 2019년 북플러스 유상증자에 참여해 2대주주로 올라섰다. 전 씨에게 북플러스 유상증자에 참여할 자금이 있었다는 뜻이다. 전 씨는 2019년 10월 북플러스 대표에 취임했지만 올해 1월 사임했다. 전두환 씨 손자 전우원 씨는 지난해 5월 MBC 라디오에 출연해 “저희 가족 구성원들이 하는 여러 사업체들을 보면 최소 몇 백억 원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다만 전재국 씨의 추징금 납부를 강제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현행법상 범죄행위자가 사망해 공소를 제기할 수 없는 경우에는 몰수나 추징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장경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9월 대표 발의한 ‘범죄수익은닉의 규제 및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전 씨의 추징금 납부 의무가 발생할 수 있다. 개정안의 주요 내용은 사망 또는 공소시효 만료로 공소를 제기하지 못할 경우에도 범죄 수익을 몰수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해당 개정안은 현재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심사 중이다.
장경태 의원은 “전우원 씨가 전두환 씨의 비자금을 폭로했음에도 몰수·추징을 위한 별다른 조치가 이뤄지지 않았다”며 “헌정질서 파괴범죄자의 범죄수익 등에 대해 범죄자가 사망하거나 공소시효 만료로 공소제기가 이루어지지 않은 경우에도 몰수·추징할 수 있도록 몰수재산의 범위를 확대하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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