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어떻게 사나” 대통령실·정부·경찰 ‘막막함’ 토로…경찰 내부망 ‘안병하 게시물’ 삭제 논란
계엄 가담자들과 평소 알고 지내온 이들 역시 당혹감을 드러내긴 마찬가지. 건진법사(본명 전성배) 측근으로서 윤 대통령을 취임 전부터 도왔던 한 인사의 경우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을 "국가관이 투철한 사람"으로 묘사하면서도 김 전 장관과 거리감은 유지했다.
#정부 인사는 '진로 고민'…'광장'만 바라본 국회
"저도 모르겠어요, 이 시간에 갑자기 호출돼서 다시 출근 중이에요. 나중에 다시 연락드릴게요."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가 뉴스 속보 등으로 한참 쏟아진 12월 3일 밤 11시 2분. 윤 대통령 최측근으로 꼽히는 대통령실 관계자 A 씨에게 기자가 "어떻게 된 일이냐" 묻자 돌아온 대답이다. 그는 "전혀 몰랐던 일"이라고 강조했다. 기자가 '야당에서 수개월 전부터 의혹 제기가 있었다'고 지적했음에도 돌아온 대답은 같았다.
계엄이 해제되고 나흘 지난 12월 7일. 그 사이 연락이 끊겼던 A 씨는 이날 새벽 1시 32분 전화를 받았다. 그는 "충격에 빠져 며칠 잠도 못 자고 있다"며 "당최 무슨 일인지 아직도 모르겠다"고 털어놓았다.
기자가 '정말 사전에 몰랐는지' 등을 캐물으니 "여사님도, 비서실장도 몰랐던 걸 제가 어떻게 알았겠느냐"면서 "앞으로 뭘 해야 할지, 저 개인적으로도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하다"고 토로했다. 물론 이 말의 사실 여부는 좀 더 지켜볼 일이다.
정부 부처에선 혼란과 자조의 반응이 뒤섞여 나왔다. 국회에서 윤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부결된 12월 7일 한 부처 장관의 보좌관은 "탄핵이야 어차피 시간문제"라면서도 "그보다는 제 진로가 큰 걱정"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더는 정치권은 물론 그 언저리에도 있지 않는 게 좋겠다는 환멸감이 든다"며 "일반 회사에 자리가 있는지 알아볼 계획"이라고 했다.
몇몇 부처 장관들은 '내란 방조' 등 혐의를 우려하며 이미 변호사 선임에 나선 듯하다. B 변호사는 한 장관과 직접 소통하고 있다. 이 변호사는 "해당 장관은 계엄 직전 국무회의에 나가긴 했지만, 실은 국무회의인 줄도 모르고 나갔다더라"며 "그냥 대통령실에서 부르기에 갔을 뿐인데 '내란 방조자'로 낙인이 찍혔다고 억울해 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가장 분주했던 곳은 단연 국회였다. 특히 1차 탄핵소추안 부결 후 불법 계엄 진상규명에다 탄핵 재추진 및 정국 수습책 마련 등 과제들이 쌓이며 혼란이 더해졌기 때문이다.
당시 여야 관계자들 시선은 일제히 촛불집회 '광장'으로 쏠렸다. 더불어민주당 한 관계자는 "이제 광장 열기가 매우 중요하다"며 "박근혜 국정농단 사태 때 촛불만큼의 파급력을 내는 게 관건"이라고 분석했다. 이 관계자는 또 "지난번 이재명 대표의 공직선거법 1심 실형 선고 직후엔 광장이 예상보단 덜 붐볐던 게 사실"이라며 "우리 사회, 시민들의 정치 혐오가 생각보다 심해진 건 아닐까 싶어 걱정되는 면도 솔직히 있다"고 고백했다.
국민의힘 한 당직자도 "현실적으로 탄핵을 막긴 힘들어 보인다"며 "우리로선 탄핵 트라우마만큼 심한 게 '촛불 트라우마'인데, 국회의원들은 이게 매우 불안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경찰 "똥 싼 X 따로, 처리하는 X 따로" 하소연
비상계엄 충격파는 정치권 바깥으로도 번졌다. 이 가운데서도 경찰은 조직적으로 내란에 가담했단 비판에 휩싸여 내부 동요가 유난히 심했다. 지휘부를 향한 일선 경찰들의 비판 글들이 내부 통신망을 뒤덮기도 했다.
배대희 충남경찰청장은 12월 6일 내부망 '폴넷'에 올린 글에서 "이상한 비상계엄에 경찰이 연루돼 '경찰이 국가 비상 상황을 획책했다는 의심'을 들게 한 상황이 기분 나쁘다"며 "위헌·위법에 대해 중립성을 이유로 아무런 말을 않는다면 그 자체로 중립성을 포기하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이 밖에도 경찰 내부망엔 "경찰관들이 비상계엄을 해제할 수 있는 국회의원들 출입 봉쇄는 큰 잘못" "내가 경찰청장이면 즉시 가용 경찰력 총동원해 국회 지키겠다" "지휘관은 경찰을 정권의 보호막으로 사용하면 안 된다" 등의 글이 잇따라 게재됐다.
이 과정에서 일부 글이 삭제돼 또 다른 갈등이 빚어지기도 했다. 현 정부의 '경찰국 신설' 등에 반대하다 제복을 벗은 류삼영 전 총경과 이지은 전 총경이 현직에 남은 후배를 통해 글을 올렸다가 삭제된 일이 있었다. 두 전직 총경은 이번 비상계엄의 위법성과 경찰의 엄정한 사건 처리, 정치적 중립성 등을 강조하는 글을 썼다. 그러나 두 사람 모두 민주당 당원인 까닭에 '특정 정당에 속한 사람의 주장'이란 이유 등으로 글이 삭제됐다.
문제는 고 안병하 치안감의 정신을 강조한 글도 삭제됐다는 점이다. 안병하 치안감은 1980년 5월 광주 시민을 보호하고자 발포 등 부당한 명령을 거부한 경찰관이다.
경찰청 한 직원은 12월 6일 안병하 치안감을 언급하며 윤 대통령 비상계엄령 선포의 위법성을 지적하고, '경찰은 시민에게 총을 겨눌 수 없다'고 적힌 사진을 올렸는데 삭제됐다. 그 뒤로 또 올리면 또 삭제되는 상황이 반복됐다. 이를 놓고 일부 경찰관이 항의하는 사태가 빚어졌다.
경찰청 관계자는 "글 내용에 정치인 발언을 인용하는 등 정치적이거나 과격한 표현 등이 들어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기자에게 "오해로 불거진 일인데 기사로 쓰실 생각이냐"며 평소보다 예민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이에 대해 해당 글쓴이는 "글의 핵심은 안병하 치안감 뜻을 우리 모두 기억하자는 일종의 당부였다"며 "이전부터 자주 올렸던 형식의 글인데, 이번만 삭제하는 조치는 이해할 수 없다"고 맞섰다.
경찰은 국가수사본부(국수본)에 특별수사팀을 꾸려 윤 대통령과 비상계엄 가담자들의 내란 등 혐의를 수사하고 있다. 와중에 내부에서도 이 같은 혼란이 가중되며 피로감과 부담을 호소하는 목소리는 작지 않다. 국수본 한 관계자는 기자와 만나 "똥 싼 X 따로, 치우는 X 따로냐"며 "미치겠다"고 하소연했다.
#김용현 국가관이 투철? 김건희 가족들 '침묵'
비상계엄 가담자 등과 평소 알고 지내온 이들은 입을 닫았다.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의 지인 노 아무개 씨(63)가 한 예다. 그는 윤 대통령 당선 후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기획조정분과에서 자문위원을 맡았다.
노 씨는 인수위 시절인 2022년 3월 15일 한 지인에 메시지를 잘못 보낸 일로 정치권 안에서도 극히 일부에만 존재가 드러난 인사다. 당시 노 씨는 다른 사람을 김 전 장관으로 착각하고는 '윤 대통령 경호처장에 김용현 임명' 기사를 공유했다. 그러면서 "장군님 잘 지내시죠. 군의 힘으로 승리한 것 같네요"라며 "21일에 뵐게요" 등의 메시지를 보냈다.
노 씨는 국민의힘 일부 국회의원들과도 친분이 있어 보인다. 그의 SNS(소셜미디어)에는 국민의힘 여러 의원이 노 씨에 먼저 안부를 물은 흔적이 많이 남아있다.
노 씨는 12월 5, 14, 17일 사흘에 걸쳐 기자와 통화와 메시지로 대화를 나눴다.
이를 종합하면 그는 "김 전 장관을 알고 지낸 건 사실"이라며 "우연히 한두 번 봤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김 전 장관이 평소 계엄령 발언을 했는지' 등 질문에는 "그런 건 없었다"면서도 "김 전 장군은 국가관이 투철한 사람"이라고 답했다.
노 씨는 '김 전 장관이나 여러 정치인과 어떻게 아는 사이가 됐는지' 물음엔 "인간관계 관련 질문은 곤란하다"며 대답하지 않았다.
정치권 일각에선 노 씨가 윤 대통령 대선캠프 하위조직 '네트워크본부'에서 활동했다는 증언도 나온다. 네트워크본부는 무속인 건진법사가 속한 곳으로 윤 대통령의 메시지와 일정, 인사 등에 관여했다고 알려진 조직이다. 캠프 시절 건진법사가 언론에 노출되자 부담을 느껴 노 씨에게 자리를 인계했다는 등의 주장이다.
노 씨는 건진법사와 가까운 사이라고 인정했다. 윤 대통령 인수위에 건진법사뿐 아니라 그 측근까지 포함됐단 사실이 확인된 셈이다.
다만 노 씨는 "고문님(건진법사)은 고향 선배로서 아는 사람을 통해 소개받았다"며 "(건진법사는) 이 정부와 진즉에 단절했고, 이제는 의미 없다"고 답을 대신했다. 이어 "인수위에서 저는 임명장만 받았고 역할은 없었다"며 "이제 자연인이니 연락 말라"고 했다.
건진법사는 윤 대통령 부부와 친하다고 알려진 무속인으로 본명은 전성배 씨(64)다. 2014년부터 김 여사가 이끄는 '코바나컨텐츠 고문' 명함을 들고 다녔다. 대선 때는 윤석열 당시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와 행사에 함께 참석하기도 했다. 무속인으로서 윤 대통령 부부에 여러 조언을 줬다는 의혹이 꾸준했다.
건진법사는 12월 17일 서울남부지검 가상자산범죄합동수사단에 긴급체포됐다. 2018년 지방선거 지원을 명목으로 정치인들로부터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등의 혐의다.
한편 김 여사의 모친 최은순 씨(78)와 오빠 김진우 씨(54)는 계엄 이후 전화 연결은 됐으나 대화는 이어갈 수 없었다. 기자가 신분을 밝히고 '비상계엄 사태와 윤 대통령 탄핵에 대한 견해' 등을 질문하자 곧바로 통화를 끊었다.
주현웅 기자 chescol2@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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