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만에 펼쳐진 ‘심바 아빠’의 아무도 몰랐던 이야기…‘라이온 킹’ 시리즈 오마주 찾는 재미도 쏠쏠
‘무파사: 라이온 킹’은 디즈니 애니메이션 ‘라이온 킹’(1994) 탄생 30주년을 맞아 제작된 기념작으로 전작처럼 애니메이션 '라이온 킹'과 캐릭터는 동일하되 별개의 세계관을 기반으로 한다. 이제껏 ‘라이온 킹’ 시리즈에서 중점적으로 다뤄진 적 없었던 사자 심바의 아버지, 무파사(애런 피에르 분)의 과거를 원숭이 라피키(존 카니 분)가 심바의 어린 딸 키아라(블루 아이비 카터 분)에게 동화처럼 이야기해주는 방식으로 그려냈다.
홍수로 인한 사고 탓에 부모와 헤어져 광활한 야생을 떠돌던 아기 사자 무파사는 우연히 왕의 혈통이자 예정된 후계자인 타카(훗날의 스카, 켈빈 해리스 주니어 분)의 도움으로 목숨을 구하게 된다. 타카의 아버지인 오바시가 다스리는 왕국에서 무파사는 철저한 이방인 취급을 받으며 배척되지만, 자신을 소중한 형제로 여겨주는 타카와 친자식 이상으로 돌봐주는 타카의 어머니 에셰의 보호 아래 무사히 성장기를 보낸다.
왕국을 물려 받을 유일한 후계자인 타카와 떠돌이에 불과한 무파사는 청소년기에 접어들면서 무리 내에서 완전히 구분되기 시작한다. 오바시의 후계자 교육이라는 핑계로 수컷들 사이에서 무료하게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었던 타카와 달리 무파사는 에셰가 이끄는 암컷 무리와 함께 생존을 위한 사냥법과 싸우는 법을 배운다. 해가 떠 있는 동안 늘어지게 낮잠을 자는 것을 '왕이 하는 일'이라고 말하는 아버지에게 실망만 거듭하는 타카와 양어머니와의 훈련을 통해 '특별한 능력'을 개화시킨 무파사, 두 '형제'의 운명은 이때를 기점으로 조금씩 어긋나게 된다.
삐걱거리면서도 균형을 지키고 있던 형제의 왕국은 어느날 소문의 '아웃사이더', 하얀 사자 키로스(매즈 미켈슨 분)의 무리에 의해 무너진다. 자신의 아들을 죽인 무파사에게 복수하고자 하는 키로스는 타카의 일족을 모두 살해한 뒤 겨우 살아남아 도망친 두 형제의 뒤를 쫓는다. 바로 여기서 등장하는 키로스의 솔로곡 'Bye Bye'는 전작인 '라이온 킹'(2019)에서 스카의 대표곡 'Be prepared'가 원곡에 비해 카리스마가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았던 것과 달리 교활한 지혜와 강력한 힘을 모두 갖춘 새로운 빌런의 이미지를 완성시켰다는 호평을 받았다. 이 곡은 키로스의 성우를 맡은 배우 매즈 미켈슨이 직접 부른 것으로 알려져 작품 공개 전 먼저 눈길을 끌기도 했다.
키로스 무리의 추적을 피해 무파사는 언젠가 친어머니가 말해준 천국처럼 영원한 땅, '멜레레'를 향해 타카와 함께 운명의 여정을 떠나게 된다. 그러나 망국의 왕자와 떠돌이로 이뤄진 형제의 여행길은 순탄치 않다. 왕자에서 한순간에 떠돌이와 똑같은 처지에 놓인 타카의 마음 속에는 자신보다 강한 무파사를 향한 애정과 동경, 질투와 열등감이 한데 뒤섞여 소용돌이친다.
함께 죽을 고비를 수차례 넘기고, 서로가 도움을 주고 받는 동안 간신히 눌러담고 있던 타카의 이 같은 어두운 감정은 결국 믿었던 형제로부터 '기만' 당하면서 폭발하고 만다. 형제를 향한 애증이 복수를 위한 배신으로 치달으며 타카가 변모하는 과정에는 그가 왜 영원히 무파사의 그늘 아래 있을 수밖에 없는지, 훗날 그의 이름인 '스카'의 기원이 된 상처는 결국 누구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인지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캐릭터 가운데서도 가장 위대한 왕이자 완벽한 아버지로 손꼽히는 무파사의 과거 이야기지만, 서사를 따라가다 보면 앞서 나가는 무파사보단 뒤에 남은 타카에게 시선이 멈추게 되는 이유도 여기서 찾을 수 있다. 원작에서는 압도적으로 뛰어난 형 무파사에게 깊은 열등감을 가져 비열한 술책을 동원하면서까지 형을 죽음으로 내몬 '갱생의 여지가 없는 악당'으로 존재했던 반면, 이번 신작에서 타카에게는 모든 것을 잃은 데다 믿었던 형제에게마저 배신을 당했다는 오해가 뒤섞인 서사가 주어진 것이다.
더욱이 그 오해가 진실로 느껴질 만한 장치들이 장면마다 기능하면서 관객들의 마음 속에도 자연스럽게 타카를 이해할 수 있는 틈이 생긴다. 악당을 이해하는 데 한발짝 다가서게 되면 주인공의 '정의'로부터도 그만큼 멀어진다는 점에서 볼 때 '무파사: 라이온 킹'은 무파사라는 완벽한 캐릭터의 작고도 유일한 흠결이 될 수도 있는 셈이다.
다만 서사에는 호불호가 갈릴 수 있어도, 발전된 CG를 통해 훨씬 자연스러워진 '무파사: 라이온 킹' 속 동물들의 표정과 움직임을 향한 호평엔 이견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리얼리티에 너무 집중한 나머지 모든 동물 캐릭터들이 표정 하나 없이 '소시오패스'처럼 대화하고 노래하던 전작과 달리 '무파사: 라이온 킹'은 다큐멘터리 같은 광활한 사바나 초원을 배경으로도 애니메이션 이상의 웃음과 감동을 선사할 수 있음을 입증해 냈다. 사랑과 배신, 분노, 슬픔, 그리고 공포와 같은 원초적인 인간의 감정을 자연 속 동물의 얼굴과 눈빛을 통해서 완벽하게 읽어내고 또 전달함으로써 '무파사: 라이온 킹'은 이전의 명작들이 그랬듯, '디즈니의 마법'을 다시 한 번 펼쳐내 보이는 데 성공했다.
수많은 디즈니 팬들이 기대하고 있는 OST 역시 너무 많은 힘이 들어갔던 전작보다 훨씬 가벼워졌다. 비욘세의 소울풀한 목소리를 비롯해 지나치게 기교로 가득했던 전작의 노래들은 스크린 속 무표정한 사자들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았었다. 반면 '무파사: 라이온 킹'에선 동물들의 파라다이스를 그리는 노래 'Milele'와 사이 좋은 두 어린 사자가 함께 부르는 즐겁고 흥겨운 리듬의 듀엣송 'I Always Wanted A Brother', 형제의 즐거웠던 여정의 한때를 보여주는 'We Go Together'처럼 과도한 힘을 덜어내면서도 디즈니 르네상스(1989~1999) 시절이 떠오를 만큼 아름다운 명곡들로 관객의 흥을 돋운다.
이와 함께 곳곳에 숨은 '라이온 킹' 시리즈의 오마주를 찾아보는 것도 관람의 또 다른 재미가 될 수 있다. 예컨대 전작의 '절벽 신'에서 사용됐던 무파사의 테마곡이 신의 중간중간 등장하며 긴장감을 높이기도 하고, 애니메이션 '라이온 킹'과 '라이온 킹2'의 명곡들이 '무파사: 라이온 킹'의 신곡과 대칭적으로 맞물리며 옛 추억과의 새로운 조화를 자아내기도 한다.
또 어린 타카의 모습에선 예상 외로 심바의 어린 시절을, 어린 무파사에게선 '라이온 킹2'에 등장하는 스카의 아들 코부의 어린 시절을 비춰 볼 수 있다는 것도 흥미로운 지점이다. '라이온 킹' 시리즈의 오랜 팬이라면 구석구석 추억을 되새기게 만드는 포인트들이 있으니 하나씩 찾아보며 지나간 동심에 젖어보도록 하자. 분량은 적지만 존재감은 확실한 '티몬과 품바'의 케미, 그리고 귀여워서 몸둘 바 모르게 만드는 아기 사자들의 재롱도 놓칠 수 없는 볼거리다. 118분, 전체 관람가.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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