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획 철회 후 ‘모빌리티이노베이션’과 ‘테스나’에 힘 싣기…두산 “사업 포트폴리오 강화 차원”
#"예상하지 못했던 외부 환경 변화"
두산그룹은 2024년 7월 지배구조 개편을 발표했다. 주요 내용은 두산에너빌리티 자회사인 두산밥캣을 두산로보틱스 자회사로 이전하는 것이었다. 구체적으로는 두산에너빌리티를 사업회사와 두산밥캣을 자회사로 둔 신설법인으로 인적분할한 후 신설법인과 두산로보틱스를 합병시키는 방식이었다.
두산밥캣 소액주주들은 합병비율이 두산밥캣에 불리하게 산정됐다고 주장했다. 션 브라운 테톤캐피탈 이사는 “두산밥캣과 두산로보틱스 합병은 날강도 짓”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금융감독원도 두산로보틱스에 합병 관련 공시의 정정신고서를 요청했다. 금감원은 정정신고서 요청 이유에 대해 “의사결정 과정 및 내용, 분할 신설 부문의 수익가치 산정 근거 등 금감원의 요구사항에 대한 보완이 미흡한 부분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이에 두산그룹은 합병 비율을 재조정하는 등 소액주주 달래기에 나섰다. 금감원도 2024년 11월 두산로보틱스 정정신고서를 수리했다. 국민연금공단도 두산그룹 지배구조 개편에 찬성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두산그룹 지배구조 개편도 큰 문제 없이 진행될 것으로 예상됐다.
그런데 이후 뜻하지 않은 변수가 발생했다. 비상계엄 사태 영향으로 두산그룹 주요 계열사의 주가가 추락한 것이다. 두산그룹은 지배구조 개편을 발표하면서 주가가 일정 수준 이하로 떨어지면 약속된 가격에 주식을 매입하는 주식매수청구권을 약속했다. 하지만 주가가 주식매수청구권 행사 가격 이하로 하락하자 다수의 소액주주가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두산에너빌리티는 주식매수청구권 한도로 6000억 원을 설정했다. 하지만 당시 분위기에서는 6000억 원이 넘어갈 가능성이 높았다.
결국 두산그룹은 2024년 12월 10일 지배구조 개편 계획을 철회한다고 밝혔다. 두산그룹이 당초 약속한 주식매수청구권 행사 가격은 △두산에너빌리티 2만 890원 △두산밥캣 5만 459원 △두산로보틱스 8만 472원이었다. 그런데 2024년 12월 10일 기준 각 회사의 종가는 △두산에너빌리티 1만 7180원 △두산밥캣 4만 3200원 △두산로보틱스 5만 2200원이었다.
두산에너빌리티는 공시를 통해 “예상하지 못했던 외부 환경 변화로 회사들의 주가가 단기간 내 급격히 하락해 주가와 주식매수청구가격 간의 괴리가 크게 확대됐다”며 “불투명한 상황에서 계속 불확실성을 남겨두는 것보다 빠르게 의사결정 해서 회사의 방향성을 알려드리는 편이 더 바람직하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두산에너빌리티는 주주서한을 통해서도 “당장 대안을 말하기는 어렵지만 신중한 검토를 통해 다양한 방안을 모색할 것”이라고 밝혔다.
#다시 지배구조 개편 나서나
두산그룹은 두산에너빌리티 분할 무산 이후에도 지배구조 개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주)두산 자회사인 두산모빌리티이노베이션은 2024년 12월 20일 (주)두산 두산퓨얼셀파워BU(비즈니스유닛)의 건물용 수소 연료전지 사업을 인수한다고 밝혔다. 같은 날 두산테스나는 자회사 엔지온을 흡수합병한다고 밝혔다. 엔지온은 반도체 및 평면패널디스플레이(FPD) 제조장비를 제조·판매하는 업체다. 두산테스나는 “완전자회사 합병을 통한 사업효율성 증대가 기대된다”고 밝혔다.
이를 놓고 재계 일각에서는 두산그룹이 두산모빌리티이노베이션의 수소 사업과 두산테스나의 반도체 사업을 중심으로 다시 지배구조 개편에 나서는 것으로 해석한다. 특히 (주)두산은 두산모빌리티이노베이션에 유상증자 형태로 1340억 원을 투입할 예정이다. 두산그룹 차원에서 두산모빌리티이노베이션을 밀어주는 모양새다.
이와 관련, 두산그룹 관계자는 “수소, 반도체로의 재편이라기보다는 무탄소 에너지 관련 사업을 위한 포트폴리오 강화로 보면 좋을 것”이라며 “반도체와 전자소재는 지배구조 개편과 무관하게 3대 사업 축으로 육성하고 있다”고 밝혔다.
두산그룹은 이전부터 수소 사업에 관심을 보였다. 두산그룹이 2024년 7월 지배구조 개편을 발표할 때도 “클린에너지, 스마트머신, 첨단소재 3대 축으로 사업구조를 재편하겠다”고 밝혔다. 이 중 클린에너지 부문에는 수소에너지, 원전, 소형모듈원전(SMR) 등의 사업이 포함돼 있다.
두산그룹의 클린에너지 사업은 그간 두산에너빌리티와 두산퓨얼셀이 주도했다. 하지만 두산모빌리티이노베이션의 향후 역할도 확대될 전망이다. 이미 (주)두산은 2020년 향후 신사업을 이끌 두산모빌리티이노베이션, 두산에너빌리티, 두산로지스틱스솔루션 3개 계열사를 지원하는 조직을 만들기도 했다.
수소 사업에 대한 긍정적인 전망도 나오고 있다. 조기 대선이 현실화되면 더불어민주당의 집권 가능성이 높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수소 사업에 관심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재명 대표는 20대 대선 당시에도 “수소경제로의 전환과 이를 포함하는 재생에너지 산업체제로의 전환은 대한민국 경제가 다시 회복하고 성장하기 위한 피할 수 없는 과제”라고 발언하기도 했다.
수소와 달리 반도체 사업 전망은 긍정적이지만은 않다. 반도체 제조는 전공정과 후공정으로 나뉘고, 후공정은 범프, 테스트, 패키징 등의 작업을 거친다. 두산테스나는 이 중 후공정 테스트 전문 업체다. 두산테스나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협력사로 비교적 안정적인 매출처를 확보하고 있다.
관건은 반도체 업황이다. 남궁현 신한투자증권 선임연구원은 두산테스나에 대해 “전방 시장의 불확실성 확대로 차량용 시스템온칩(SoC) 외주 물량 예상치가 감소했다”며 “2025년 1분기 출시되는 주요 고객사의 신제품향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 효과도 하락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박준영 현대차증권 연구원은 “2025년도 고객사의 고성능 AP칩 탑재가 예상보다는 적을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기대했던 AP향 성장도 예상 대비 부진할 것”이라며 “이익률 회복에는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고 전망했다.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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