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그레망까지 받았지만 임명 절차 중단…“외교적 결례” vs “중국도 달갑지 않은 인사”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0월 김대기 전 실장을 주중대사로 내정했지만 탄핵 정국에 접어들면서 김 전 실장의 주중대사 임명은 중단됐다. 중국 정부의 아그레망(외교사절에 대한 사전 동의)은 받았지만 윤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이 가결되면서 신임장을 받지 못하게 된 것.
신임 대사는 국가원수에게 신임장을 받고 주재국 국가원수에게 이를 전달해야 외교 활동을 진행할 수 있다. 대통령 권한을 위임받은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이 외교사절 접수권 등을 행사할 수 있다. 이와 관련, 국무조정실 관계자는 ‘일요신문i’에 “김 전 실장의 신임장 수여는 미정”이라고 말했다.
김대기 전 실장이 아그레망을 받았음에도 주중대사로 부임하지 않는 건 외교적 결례라는 목소리가 있다. 아그레망을 마쳤다는 건 임명 절차가 대부분 마무리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 외교가 관계자는 “아그레망이 나온 주재국 대사의 부임이 늦어지는 건 중대한 결례”라며 “더 이상 늦춰져선 안 된다”고 언급했다.
한덕수 권한대행이 김 전 실장의 임명을 진행하기에는 정치적 부담이 클 것이란 시각이 있다. 앞서 정진석 대통령실 비서실장은 김 전 실장의 주중대사 내정 이유에 대해 “폭넓은 국정 경험을 갖춘 정통 경제 관료 출신으로 한중 자유무역협정(FTA)과 무역 갈등 해소 등 중국과 경제 협력 사업을 추진한 정책 경험이 풍부하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김 전 실장에 대해선 ‘비외교관 출신의 윤 대통령 측근 인사’라는 곱지 않은 시선이 있다.
더구나 윤 대통령의 발언으로 개선 분위기로 전환되던 한중관계가 최근 얼어붙으면서 ‘대통령 측근’을 신임 주중대사로 앉혀선 안 된다는 의견도 많다. 다이빙 주유엔 중국 부대표를 신임 주한 중국대사에 앉힌 중국 측 속사정에 김 전 실장이 걸맞은 인물인지에 대한 의문도 제기된다.
중국은 지난 11월 한국 국민에 대해 무비자 정책을 시행한 데 이어 같은 달 윤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이 정상회담을 통해 협력적 동반자 관계를 약속했다. 신임 주한 중국대사에는 그간 한국대사에 임명된 인사들 중 최고위급 인물인 다이빙 주유엔 중국 부대표를 앉혔다.
윤 대통령은 지난 12일 대국민담화에서 “40대 중국인이 드론으로 국정원을 촬영하다 붙잡혔다” “중국인 3명이 드론을 띄워 부산에 정박 중이던 미국 항공모함을 촬영했다”라며 간첩죄 조항 설명 중 중국인들을 예로 들었다. 중국 외교부는 같은 날 브리핑을 통해 “한국 쪽(윤 대통령) 언급에 깊은 놀라움과 불만을 느낀다”며 “중국 관련 요인과 연관 지어 이른바 ‘중국 간첩’이라는 누명을 꾸며내고, 정상적인 경제·무역 협력을 먹칠하는 것에 단호히 반대한다”고 비판했다.
정치권 관계자는 “윤 대통령이 중국을 직접 겨냥해 한중관계에 찬바람이 불었던 건 사실”이라면서도 “한 권한대행이 김 전 실장 부임을 밀어붙일 것”이라고 귀띔했다. 외교부 관계자는 “부임 여부에 대해 확인하기 어렵다”고 선을 그었다.
비록 김 전 실장이 주중대사로 임명된다 해도 주중대사로서 활동하기 어려울 것이란 평가도 나온다. 윤 대통령의 조기 퇴진이 유력해 중국에서도 차기 정부에서 파견한 인물을 선호할 것이라는 이유다. 박진수 덕성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정권이 바뀔 가능성이 커 김 전 실장이 임명된다고 해도 실권이 없고 ‘끈 떨어진 갓’ 같은 신세일 것”이라며 “중국 입장에서 반길 리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내년 경주에서 열리는 APEC을 앞두고 시진핑 주석의 방한이 예상돼 주중대사 부임이 시급하다는 의견이 많다. 전문가들은 한중관계 회복에 집중할 인사를 앉혀야 한다고 말한다. 윤종빈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신임 주중대사는 탄핵으로 하락한 대한민국의 국가신인도 제고를 위해 정치·경제적으로 원활한 한중관계를 구축해야 한다”며 “북핵문제로 인한 미중 갈등에서 주도적인 균형자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고위급 핫채널을 구축하고 한미관계만큼 한중관계가 중요하다는 인식 확산을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치권 다른 관계자는 “주중대사관 국정감사 이후 ‘정 주중대사가 한중관계를 악화시켰다’는 평가가 많았다”며 “중국에 있는 국내 기업들 피해도 컸다. 다음 신임 대사는 끊어진 한중관계를 복원시킬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중국 견제 신안보 동맹’을 내세운 만큼 주중대사가 독자적으로 중국과 협력하는 자세를 취해선 안 된다는 의견도 나온다. 송태은 국립외교원 국제안보통일연구부 교수는 “(신임 주중대사가) 트럼프 당선인의 중국 견제 신안보 동맹에 거리를 두는 행보를 보여선 안 된다”며 “한국의 신안보는 미국과 가장 잘 조율하며 조심스럽게 움직여야 할 아주 예민한 분야여서 주중대사가 독자적으로 중국과 협력 자세를 취하는 건 조심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정소영 기자 upjsy@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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