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용 비리’ ‘북한 해킹’ 논란, 검·경·감사원·국정원 등 조사…선관위 “부정선거 주장은 윤석열 자기부정”
#선관위 점령한 ‘롯데리아 계엄군’
2024년 12월 3일 오후 10시 24분.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9분 뒤 계엄군 10여 명이 중앙선관위 청사에 진입했다. 국회 투입보다 약 1시간 더 빨랐다. 박안수 계엄사령관이 오후 11시에 비상계엄 포고문을 발표하기도 전이었다. 오후 11시 9분경엔 경찰 4명이 선관위 정문에 배치됐다.
이날 과천 청사, 경기도 수원 연수원, 서울 관악구 여론조사심의위원회 등 선관위에 진입한 계엄군은 모두 297명이었다. 투입된 부대는 1·3공수특전여단 소속인 것으로 알려졌다. 계엄군은 새벽 1시 58분 철수했다. 김용빈 중앙선관위 사무총장은 12월 5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긴급현안질의에서 계엄군 배치 이유를 묻는 야당 의원 질문에 “그 부분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고 답했다.
선관위 장악 계획을 주도한 사람은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인 것으로 전해졌다. 민간인 신분인 노 전 사령관은 12월 1일 1차 ‘롯데리아 회동’에서 문상호 정보사령관에게 선관위 장악 지시를 내린 것으로 파악됐다. 계엄 선포 당일인 3일에는 2차 회동이 열렸다. 노 전 사령관은 1·2차 회동에서 현역 군인들과 계엄 별동대 격인 ‘수사2단’ 구성을 논의했다.
노 전 사령관은 경찰 조사에서 “비상계엄이 계획대로 당일 오후 10시에 선포됐다면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서버를 확보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취지로 진술했다고 보도했다. 계엄군 수뇌부들이 선관위 서버를 확보해 부정선거 의혹 규명에 집중하고 있었다는 것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노 전 사령관은 내란실행 및 직권남용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구속 송치됐다.
노태악 선관위원장 등 선관위 직원 체포 계획도 치밀하게 세운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계엄 수뇌부가 노 위원장과 선관위 직원을 케이블 타이로 묶고 두건을 씌우는 방안을 논의했다는 진술을 확보했다. 문상호 정보사령관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조사에서 정보사 요원을 투입, 선관위를 장악하고 서버를 탈취하려는 시도를 했다고 자백했다. 북파공작부대를 동원해 노 위원장 등 선관위 직원들의 신병을 확보하려 했다는 혐의도 인정했다.
KBS에 따르면 22대 총선 한 달 뒤 대통령 관저에서 술자리 형식의 회동이 열렸다. 이 자리에는 윤 대통령, 신원식 당시 국방부 장관, 김용현 당시 경호처장, 조태용 국가정보원장, 여인형 방첩사령관 등이 참석했다. 한 참석자는 이날 윤 대통령이 총선 패배의 원인이 부정선거라며, 의혹을 밝히기 위해 계엄이 필요하다고 강도 높게 주장했다고 검찰에 진술했다.
12월 12일 윤 대통령은 담화에서 “(김용현 장관에게) 선관위 전산시스템을 점검하도록 지시한 것”이라고 밝혔다. 윤 대통령은 국정원 점검 결과 선관위 전산시스템 보안에 심각한 하자가 발견됐다고 했다. 데이터 조작이 가능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지난 4월 22대 총선을 앞두고 이 부분을 개선하라고 요구했지만, 선관위가 협조하지 않았다고 도 했다. 이러한 발언은 일부 극우 유튜버들이 부정선거 의혹을 얘기할 때 드는 논거 중 하나다.
#선관위 수난사
윤 대통령과 선관위 갈등은 ‘소쿠리 투표 사건’에서 시작됐다. 2022년 3월 감사원은 윤 대통령 인수위원회 업무보고에서 선관위가 대선 사전투표를 부실하게 관리했다고 보고했다. 코로나 확진·격리자의 투표용지를 내부가 보이는 비닐봉지나 소쿠리 등에 보관했다는 것이다. 직접·비밀투표 원칙에 위배된다는 지적이 나왔다. 나중에는 사전투표가 부정선거에 이용됐다는 음모론의 근거가 됐다.
이때 감사원과 선관위가 맞붙었다. 선관위는 대통령 직속 기관인 감사원이 헌법기관인 선관위를 감찰하는 것은 위헌이라고 맞섰다. 근거는 감사원의 감사 범위는 ‘행정기관 및 그 공무원의 직무’로 정한 헌법 제97조다. 반면 감사원은 감사원법 24조 3항에 직무감찰 제외 대상에 선관위는 없다는 점을 들어 감사가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갈등 끝에 선관위가 자체 점검하는 선으로 협의가 나왔다.
윤 대통령은 선거 관련 요직에 측근을 임명했다. 충암고 후배인 이상민 씨를 행정안전부 장관에 앉혔다. 행안부 장관은 선거 지원 사무를 맡는다. 윤석열 캠프에 있었던 금태섭 전 의원은 이상민 전 장관이 대선 전부터 부정선거론을 언급했다고 전했다. 2023년 7월에는 윤 대통령 서울대 법대 동기인 김용빈 사법연수원장이 선관위 사무총장에 임명됐다.
‘선관위 채용 비리 의혹’도 제기됐다. 선관위 고위공직자들이 채용담당자에게 위법·편법적인 방법을 사용해 친인척을 채용했다는 의혹이다. 이 의혹을 규명하기 위해 감사원, 검찰, 국민권익위원회 등이 투입됐다. 국민권익위원회는 전담조사반을 꾸려 채용 과정 전수조사에 착수했다. 당시 정승윤 부위원장이 전면에 나섰다. 정 부위원장은 윤석열 캠프 출신이다.
감사원은 2024년 4월 30일 2013년부터 선관위가 실시한 총 291차례 경력 채용에서 1200여 건의 규정 위반과 비리가 있었다고 밝혔다. 2019년 9월 지방공무원 등을 대상으로 하는 경력경쟁채용에서 김세환 전 중앙선관위 사무총장의 아들이 합격된 게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선관위 내부에서 김 전 사무총장의 아들을 ‘세자’로 불렀던 사실도 공개됐다.
북한 해킹 의혹까지 불거졌다. 2023년 5월경 북한이 선관위를 해킹 공격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행안부와 국정원이 선관위 보안점검을 추진했지만, 선관위는 이를 거부했다.
선관위는 북한 해킹 가능성을 일축했다. 2021~2023년 선관위 해킹 시도는 8건이었다. 모두 해킹용 이메일 발송을 통한 시도였다. 선관위는 이메일로는 내부망을 쓰는 업무용 PC를 해킹할 수 없다고 했다. 2021년 4월 지역 선관위에서 이메일 악성코드 감염으로 대외비 문서가 유출됐지만, 중앙선관위 투개표시스템과는 연관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럼에도 선관위가 부정선거에 연루된 것 아니냐는 음모론은 자취를 감추지 않았다. 선관위는 국정원과 한국인터넷진흥원의 공동 보안점검을 받기로 했다. 점검은 2023년 7월 17일~9월 22일 동안 이뤄졌다. 부정선거 음모론 단골 메뉴인 시스템 해킹과 투·개표 결과 조작 문제에 대한 보안컨설팅이 이뤄졌다.
하지만 국정원은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하루 전날인 2023년 10월 10일 선거인명부 해킹이나 투·개표 결과 조작이 가능하다는 취지의 발표를 내놨다. 선관위가 전체 전산 장비 중 95%는 점검을 거부했다고도 했다. 이 발표를 근거로 극우 유튜브 채널에서는 선관위가 선거 조작 사실을 은폐하고 있다는 주장이 확산됐다.
부정선거 음모론은 22대 총선 이후에도 거론됐다. 일부 보수 인사들은 22대 총선에서 전산 조작이 있었다며 중앙선관위 관계자를 공직선거법 위반, 직무유기 등으로 검찰에 고발했다. 검찰로부터 사건을 받아 수사에 착수한 경찰은 혐의가 없다고 판단하고 불송치했다. 그러나 윤 대통령은 12·12 담화에서 선관위의 전산시스템이 엉터리라고 주장했다.
윤 대통령 담화에 대해 선관위는 12월 12일 “선거 과정에서 여러 차례 제기된 부정선거 주장은 사법기관의 판결을 통해 모두 근거가 없다고 밝혀졌다”며 “부정선거에 대한 강한 의심으로 인한 의혹 제기는 자신이 대통령으로 당선된 선거관리 시스템에 대한 자기부정과 다름없다”고 했다. 내란 혐의를 받고 있지만, 현직 대통령의 말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입장문을 낸 것은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윤 대통령과 선관위의 악화된 관계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사용하지 않는 12대 장비를 제외한 모든 장비에 대한 점검 권한도 부여했다는 입장이다. 국정원이 점검한 5%의 장비는 선거인명부 작성과 투·개표에 사용되는 주요 전산 장비다. 해킹이나 투·개표 결과 조작이 가능하다는 발표에 대해서는 선관위가 보안 수준을 일부 낮춘 상황에서 모의 해킹 실험을 한 결과일 뿐이라고 강조했다.
이강원 기자 2000won@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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