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선택? 기량 떨어지기 전 결단 내린 것”…재능 기부와 선수협회 부회장 역할로 바쁜 나날 이어져
팬들과의 마지막 인사 이후 수 일이 지난 시점, 강가애를 만났다. 합동 은퇴식 당시 눈물을 보였다. 그는 "소속팀에서도 은퇴식을 마련해주셨고 개인적으로도 은퇴 파티를 몇 번이나 했는지 모르겠다(웃음). 그동안 한 번도 울지 않았는데 그날은 눈물이 났다. 이번이 정말 마지막이라는 생각, 그리고 쌍둥이 동생의 영상 때문이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학생 시절부터 20년 넘게 착용하던 골키퍼 장갑을 벗은 강가애는 본가가 있는 충남 당진에서 지내고 있다. 선수생활을 끝낸 그는 최근 '베이비시터'로 지내고 있다고 말한다. 그는 "태어난 지 6개월 된 조카가 있다. 동생이 일을 준비하고 있어서 바쁘다 보니 매일 동생네 집으로 출근해서 아기를 봐준다"며 "그 외 시간에는 지인들 만나러 놀러 다니고 관리 차원에서 운동을 한다. 은퇴를 했다지만 아직은 휴가 기간을 보내는 느낌이다"고 설명했다.
팬들 사이에선 갑작스런 은퇴로 느껴졌다. 이제 겨우 34세가 된 시점이다. 소속팀에서도 여전히 주전으로 뛰고 있었다. 여전히 리그와 국가대표에서 또래 선수들은 활약을 이어가고 있다.
"은퇴에 대한 고민을 한 지는 오래됐다. 나는 몸 상태가 괜찮을 때 그만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내 성향상 기량이 떨어지면서 은퇴를 하는 것은 자존심이 허락을 못할 것 같았다. 지금 시점에 더 기량이 좋아질 수는 없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조금씩 하향세를 그려 갈 텐데, 본격적인 상황이 오기 전에 결단을 내렸다."
이미 2년 전에 국가대표에서도 스스로 물러났다. 여전히 그의 선배, 또는 또래 선수들이 국가대표 주축을 이루고 있었기에 당시 선택도 의문을 자아냈다. 그는 "부상 문제가 컸다"며 "2020년에 발목을 다쳤다. 2년 동안 제대로 치료를 못 하면서 상태가 심해졌다. 발목 인대가 완파가 됐는데 오진으로 인식을 못하고 있었다. 회복을 위해선 대표팀을 내려놔야 된다고 판단했다. 일단 소속팀에 집중하고 2년 뒤에는 은퇴를 한다는 계획을 그때부터 세웠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어린 선수들을 가르치는 보람 또한 은퇴의 배경이 되기도 했다. 그는 학교 축구부를 찾아 엘리트 선수들을 가르쳐 주는 '원데이 클리닉'에 적극 나선다. 혼자서 현장을 찾는 경우도 많다고 말한다.
"'드림어시스트'라고 한국프로축구연맹에서 하는 재능기부 프로젝트가 있는데 3년 동안 참가했다. 도움을 주는 일인데 내가 너무 즐거웠다. 그래서 동료 선수들과 함께 이곳저곳을 찾아다니고 혼자서도 다녔다. 그런데 특히 골키퍼 코칭은 선수에게 킥을 강하게 차줘야 한다. 앞으로도 선수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고 싶은데 선수생활을 더 끌고 가면 몸이 상할 수 있지 않나 생각도 들어서 은퇴를 결심했다."
지난 14일 시상식은 강가애가 더욱 홀가분하게 그라운드를 떠날 수 있게 만들어 줬다. 그는 2024 WK리그 시상식에서 베스트11 골키퍼 부문에서 수상자로 뽑혔다. 선수들이 직접 투표를 통해 진행한 시상식이었다. 그는 "이번 시즌 전부터 은퇴를 생각하고 있었기에 정말 잘하고 싶다는 생각이 가득했다"면서 "그러다 보니 부담도 있었던 건지 경기력이 만족할 만한 수준은 아니었다. 시즌을 마치면서 찜찜한 구석이 있었는데 그 상을 받았다. 선수들이 인정해줬다는 생각이 들면서 좀 편안한 마음으로 은퇴를 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긴 선수생활을 돌아보며 "후회도 없고 결과 면에서 아쉬움은 없다"고 말한다. 도리어 선수로 뛰면서 환경면에서 아쉬웠던 부분을 채우려 하고 있다. 최근 골키퍼 지도자 강습회를 다녀왔고 멘털코칭 자격증도 따냈다.
"선수시절을 돌아봤을 때 멘털적으로 어려움이 많았다. 조금만 단단했다면 내가 더 발전해서 원하는 것을 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그래서 멘털 분야에 관심이 많아지게 됐다."
은퇴 이후 생활도 후배들은 그런 어려움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 같은 활동을 이어갈 전망이다. 그는 "모교에서 강연을 하고 골키퍼 클리닉을 했는데 선수들 반응이 굉장히 좋았다. 멘털 코칭과 골키퍼 코칭 활동을 계속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재능 기부 활동은 부회장을 맡고 있는 선수협회의 도움을 받을 계획이다. 그는 "선수협을 통해서 다른 선수들과도 함께하려고 한다. 아무래도 학교팀에 가면 내가 도와줄 수 있는 부분은 골키퍼 포지션밖에 없다. 그러다 보면 필드 선수들이 부러운 눈길을 보낸다"며 "부회장을 맡고 있었는데 이제는 시간적 여유가 생겼으니까 더 적극적으로 활동을 하려고 한다"고 설명했다.
강가애도 처음부터 선수협 활동에 적극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여자 선수협이 만들어지던 당시, 지소연 회장으로부터 연락을 받은 것이 계기다.
"지소연 회장이 '도와 달라'고 부탁을 하더라. 처음엔 '일반 회원으로 열심히 하겠다'고 답했다. 어린 선수들 후원하고 그런 일은 개인적으로도 이미 하고 있었다. 내가 나서는 성격도 아니고 뒤에서 나름대로 하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런데도 지 회장이 간곡하게 부탁을 했다. 어쩔 수 없이 이사 직함을 달고 시작했는데 이제는 부회장까지 됐다. 지소연 회장이 해외에서 선수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에 내가 국내에서 할 일이 많다."
선수협은 지난여름 큰 주목을 받았다. 매년 여름 열리는 전국여자축구선수권대회의 열악한 환경이 알려지면서다. 초중고부터 성인팀까지 국내 대부분의 여자축구팀이 참가하는 대회이지만 탈의실이나 라커룸 시설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 질타를 받았다.
강가애는 대회에 대해 "개최 시기부터 어려움이 많다. 한여름에 대회가 열려 잔디 상태도 좋지 않다. 천연잔디와 인조잔디 구장을 오가면서 경기를 하다 부상도 많이 발생한다. 또 여자 선수들 수백 명이 한 번에 모이다 보니 화장실 이용도 정말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가림막조차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환경에서 옷을 갈아입어야 한다. 정말 자괴감이 들 정도였다. 이런 부분들이 알려지면서 올해는 팬들도 관심을 가져주셨다. 앞으로 개선돼야 할 부분들이다"라고 덧붙였다.
이어진 선수협 활동 덕에 지난 11월에는 국제축구선수협회(FIFPRO)로부터 상을 받기도 했다. 그가 받은 '메리트 어워드'는 축구계 자선 활동, 사회적 문제 해결 노력 등 사회에 기여한 축구 선수들에게 주는 상이다. 적극적 기부 활동으로 2022년 수상한 기성용 이후 한국 선수가 이 상을 받은 것은 강가애가 두 번째였다. 그는 "선수협 임원이라면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을 하다 보니 상을 받게 됐다. 그 전까지는 이런 상이 있는지도 몰랐다"면서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건 내가 받은 상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내가 혼자 떠든다고 누가 알아주겠나. 그래서 나는 그낭 우리 선수협회가 같이 받은 상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선수협회 부회장으로서 바쁜 나날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WK리그는 그 어느 종목 못지않은 열악한 환경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주 2회, 월요일과 목요일에 경기가 반복되는 경우가 많다. 퍼포먼스적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라이트 시설이 없어서 여름에도 오후 4시에 뛰어야 하는 경기장도 있다. 선수들의 반발로 바뀌긴 했으나 올해 8월에는 오후 2시 경기가 잡히기도 했다. 선수들도 힘들지만 팬들도 경기를 보기가 어렵지 않나"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운동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만 갖춰져도 좋을 것 같다. 최소한의 것들은 선수들이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했다.
WK리그는 연봉제도 역시 화두다. 15년 가까이 선수들의 연봉에 상한선이 바뀌지 않았다. 현재 WK리그 연봉 상한선은 5000만 원이다. 강가애는 "최근에는 팀들이 선수들의 연봉을 적극 인상해준다. 기량이 좋은 선수들은 3~4년이면 연봉 5000만 원이 된다. 그 이후부터는 더 이상 올라가지 않는 것이다"라며 "문제는 최저 연봉도 너무 낮다는 것이다. 드래프트 3순위로 팀에 입단하면 연봉 2400만 원을 받는다. 최저 시급에도 미치지 못한다. 현실에 맞춰 줄 필요는 있다. 운동을 잘하는 여학생들이 축구를 선뜻 선택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선수생활을 마치고 제2의 인생으로 돌입하는 시점, 그에게 앞으로의 계획을 물었다. 그는 "평생 축구만 하다가 이제 막 다른 길을 걷는 것이다. 당장 눈앞에 일도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면서 "지금은 누군가를 돕고, 그 누군가의 성장을 지켜보는 일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다. 커다란 도화지에 스케치를 하는 느낌이다. 이제 앞으로 점점 색을 칠하고 그림을 완성해야 할 것 같다"고 답했다.
언젠가 이루고 싶은 목표로는 WK리그의 '프로화'를 꼽았다. 현재 WK리그는 실업 리그로 분류된다. 강가애는 "선수들이 바라는 것이기도 하고 나 또한 그렇게 됐으면 좋겠다.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든 하려고 한다"며 "축구가 인기가 없는 종목은 아니지 않나. 최근에는 생활체육 쪽으로도 바람이 불고 있다. 그런데 엘리트 스포츠는 하락세를 그리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동료들이 많이 힘을 모아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남길 은퇴 소감을 물었다. 그는 거듭해서 '감사'를 강조했다. 그는 선수로 뛰는 마지막 1년 동안 감사함을 표현하기 위해 주변 인물 약 60여 명에게 손편지를 전했다고도 말했다.
"정말 받은 게 많고 감사한 일들이 많았던 선수생활이었던 것 같다. 내가 받은 좋은 영향을 앞으로 나누면서 살고 싶다. 좋은 어른들을 많이 만났다고 생각한다. 나도 누군가가 좋은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게 하는 일을 하고 싶다."
충남 당진=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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