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 찬성 리스트’ 고발 관련 가짜뉴스와 총선 부정선거론 기승…“페널티 없어 허위·조작 정보 심각”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그 동안 정치적 입장을 내비치길 주저했던 많은 연예인들이 탄핵 시위를 직간접적으로 지원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극우 유튜버들은 이를 놓치지 않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12월 18일 유튜브 채널 ‘천조국 파랭이’는 “아이유를 CIA에 신고했다”고 주장했다. 아이유는 지난 13일 공식 팬카페 ‘유애나’를 통해 집회 참여자들을 위해 빵과 밥, 음료 등을 선결제해 큰 관심을 받았다. ‘천조국 파랭이’는 한국에서 활동하는 미국인 극우 유튜버로 한국인 남성과 혼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보수 온라인 커뮤니티와 극우 유튜버 구독자들 사이에서 윤 대통령 탄핵 시위에 관여된 연예인들을 CIA에 신고하고 이를 인증한 글이 다수 올라오고 있다. 이들은 온라인 커뮤니티에 퍼진 아이유·뉴진스·소녀시대 유리 등 ‘탄핵 찬성리스트’ 등재된 수십 명의 연예인들을 CIA에 신고했다면서 “종북세력이자 반미주의자로 만들자”고 주장한다. CIA에 신고가 접수되면 미국 입국심사를 까다롭게 하거나 무비자 입국 프로그램인 ESTA(전자여행허가제) 발급을 저지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이는 명백한 가짜뉴스다. 8년 전인 2016년에도 일간베스트 등 극우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진보 진영 정치인들을 CIA에 반미주의자로 신고하면 ‘미국 입국 영구 금지, 자녀 유학 전면 금지’가 가능하다는 허위정보가 유행했지만, 미국 비자와 체류 업무는 CIA가 아닌 미국 국무부 담당이다. 국무부 영사사업부는 입국자의 건강 상태, 범죄 전력, 테러 안보, 불법 입국, 생활수급 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하는데, 정치 성향은 아예 검토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CIA 고발 관련 가짜뉴스는 현재진행형이다. 지난 23일 엑스(X)에는 “CIA 넘어섰다. 오피셜임”이라는 내용의 글이 올라와 247만 회의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다. 해당글 작성자는 CIA에서 받은 메일이라며 사진을 첨부하면서 “CIA 앙망문(탄원서)이 떴다. 인터넷 초강국 애국자들의 화력이 대단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평균 2만~3만 명은 신고해서 (연예인들의) ESTA 발급이 막혔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주장과 달리 사진에 나온 원문은 ‘CIA로부터 메일 수신 거부됐다’는 내용이며 실제로 CIA에는 신고조차 접수되지 않았다.
외교부 역시 CIA 고발과 관련된 정보가 허위라고 못박았다. 조태열 외교부 장관은 24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현안질의에 참석해 “탄핵 (찬성) 집회에 갔다고 ESTA 발급이 안 나오느냐”는 장경태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질문에 “그건 아예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답했다. 이어 장 의원은 “탄핵에 찬성한 연예인을 미국 CIA나 영국 MI6, 일본 공안조사청 등 정보기관에 신고하면 해당국 입국을 할 수 없게 만든다는 이야기도 퍼지고 있다”고 되묻자 조 장관은 “그게 가능하겠느냐. 해당국의 주권 사항”이라고 답했다.
이어 장 의원은 “여러 가짜뉴스가 확산돼 국민들이 (관련 내용으로) 불안해 하고 있다”면서 “외교부에서 ESTA와 교환학생 비자(J1) 등은 집회 참석 여부와 관계없이 CIA에 신고한다고 해서 입국이 불허되지 않는다는 점을 안내 공지라도 해달라”라고 말했다. 이에 조 장관은 “검토해 보겠다”고 답했다.
유현재 서강대 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국내 연예인을 미국 기관에 신고하는 이유는 ‘태극기 집회’에서 태극기와 함께 성조기를 같이 드는 맥락과 비슷하다고 본다. 결국 미국이 자신들의 입장에 동조한다고 보이게 하려는 것”이라면서 “CIA 신고하는 행위와 이를 독려하는 행위를 통해 아이유 같은 가수가 잘못한 것처럼 프레이밍할 수 있다. 진짜로 나쁜지는 중요하지 않으며 나쁘게 보이게 하는 게 (극우 유튜버의) 목적”이라고 분석했다.
12·3 비상계엄 사태와 윤석열 대통령 탄핵 가결 이후 극우 유튜브는 ‘대목’을 맞아 열정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이들은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령 선포를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옹호하면서, 지난 4·10 총선 등이 부정선거였다는 내용의 영상을 지속적으로 올리고 있다. 또 12월 3일 밤 당시 계엄군이 선관위 시설을 투입된 것을 근거로 부정선거가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원인”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총선 결과가 조작됐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부정선거론’은 극우 유튜버의 단골 소재다. 지난 18일 구독자 93만 명을 보유한 이봉규TV는 ‘이래도 부정선거 아니라고 우길래?’라는 제목의 영상에서 “그간 윤 대통령이 왜 부정선거 관련 보고를 받고도 외면하는지 섭섭했는데, 알고 보니 대통령은 부정선거 관련 증거를 잡고 있었다”면서 “조중동 등 언론이 부정선거 내용을 다루지 않는 이유는 중국으로부터 금전 등 직간접적인 영향을 받고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극우 유튜버들이 확실한 근거가 있다고 주장하는 바와 달리 현재까지 부정선거 음모론이 법적으로 인정받은 사례는 없다. 대법원은 2020년 21대 총선 당시 제기된 선거 무효소송 126건을 전부 ‘근거 없음’으로 기각 또는 각하했다. 올해 치러진 4·10 총선 당시 선관위 직원이 부정선거 개입 혐의로 고발당한 사건 역시 무혐의로 종결됐다.
지난 21일 농민들이 주도한 ‘남태령 트랙터 시위’와 관련해서도 23일 고성국TV는 “종북 주사파가 윤 대통령을 끌어내리고 정권을 탈취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를 예고편처럼 보여줬다”면서 “남태령 시위는 민주노총과 더불어민주당 등 종북 좌파 세력이 불법 시위꾼에게 사주한 것”이라고 확인되지 않은 주장을 펼쳤다.
극우 유튜버들의 이러한 행태와 관련해 유현재 교수는 “지금과 같은 혼란스러운 정국은 극우 유튜버들에게는 한마디로 ‘장이 선’ 상황이다. 조금의 사실에 많은 허위 정보를 조작해 퍼뜨리면서 큰 수익을 창출하는 비즈니스 모델을 갖췄기 때문”이라면서 “이들 상당수가 변호사, 언론인 출신이기 때문에 자신들의 행동이 부도덕하다는 것을 알지만, 살짝 눈만 감으면 수억 원의 수익이 창출되는 데 포기하겠느냐”고 말했다.
유 교수는 “허위 조작 정보를 만든 사람들에게 페널티를 주지 않으면 이들은 계속해서 이러한 비즈니스 모델을 활용할 것”이라면서 “이들을 방송법으로도 규제하기 어렵고, 정보통신망법으로도 규제하기도 애매하다. 유튜브에 알려도 조치받기 어려우니 그걸 잘 아는 유튜버들이 니치마켓(틈새시장)을 만들어 정교하게 조작된 정보를 구독자들에게 흘려 어그로를 끄는 심각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번엔 CIA에 그치지만 다음에는 FBI라고 주장할지도 모른다. 징벌적 배상을 도입하든지 해서 조작 정보를 퍼뜨린 채널의 수익 중지부터 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손우현 기자 woohyeon1996@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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