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등급 하주석·이용찬 상대적 불리…서건창 ‘4수생’임에도 운신의 폭 좁아
이제 FA 시장에 남은 미계약자는 총 5명이다. KIA 소속이던 내야수 서건창, 한화 이글스 출신 내야수 하주석, NC 다이노스에서 FA가 된 투수 이용찬과 외야수 김성욱, 키움 히어로즈에서 뛰던 투수 문성현 등이다. 이 가운데 하주석·김성욱·문성현은 신규 FA, 서건창은 자격유지 FA, 이용찬은 두 번째 FA다. 또 하주석·이용찬은 B등급, 서건창·김성욱·문성현은 C등급으로 각각 분류됐다.
계약서에 사인할 수 있는 시간은 아직 남아 있다. 2024년 FA 시장은 지난해 11월 19일부터 올해 1월 26일까지 두 달 넘게 이어졌고, 19명 모두 스프링캠프 출발 전 계약에 성공해 미계약자 없이 끝났다. 그 직전 FA인 2023년에는 권희동(NC)과 이명기(한화)가 2월, 정찬헌(키움)이 3월에 각각 계약해 기사회생했다. 다만 롯데 자이언츠에서 나온 투수 강리호는 유일하게 팀을 찾지 못해 은퇴해야 했다.
#하주석과 이용찬은 어디로?
FA 시장은 늘 희비가 엇갈리게 마련이다. 올해 미계약자들도 다르지 않다. 원소속팀과 잔류 협상을 진행하는 선수가 있는가 하면, 내부에서도 외면 당해 마음을 졸이는 선수도 있다. B등급의 하주석과 이용찬은 상대적으로 이적이 불리하다. B등급 FA를 외부에서 영입한 구단은 보호 선수 25인 외의 보상 선수 1명과 직전 시즌 연봉의 100%에 해당하는 보상금을 원 소속팀에 지급해야 한다. 보상 선수 없이 직전 시즌 연봉의 200%를 보상금으로 주는 방법도 있지만, 원소속팀은 대부분 보상 선수를 받는 쪽을 택한다.
한화에서 주장까지 맡았던 유격수 하주석은 올해 부상과 부진에 시달리다 64경기에 출전하는 데 그쳤다. 성적은 타율 0.292, OPS(출루율+장타율) 0.743이다. 원소속구단 한화는 FA 시장이 열리자마자 발 빠르게 KT 위즈 출신 유격수 심우준을 4년 최대 50억 원에 영입했다. 수비와 주력을 갖춘 심우준이 가세하면서 내년 시즌 하주석이 설 자리가 더 좁아진 상황이다.
하주석은 2012년 한화가 신인드래프트 1라운드에서 전체 1순위로 지명한 특급 유망주였지만, 프로 입단 후 성장이 더뎌 잠재력을 터트리지 못했다. 하주석이 한화와 계약한다면, FA 계약서에 사인한 뒤 다른 팀의 필요한 선수와 맞바꾸는 '사인 앤드 트레이드' 형태가 될 가능성이 크다. 한화 관계자는 "시장 상황을 지켜보며 여유를 갖고 논의하는 중"이라고 했다.
이용찬은 FA 제도와 '운때'가 맞지 않는 편이다. 그는 올 시즌을 NC의 마무리 투수로 시작했지만, 부침을 거듭하다 불펜 추격조로 강등됐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리그에서 손에 꼽는 수준급 소방수 중 한 명이었는데, 하필 FA를 앞둔 올해 57경기에 등판해 3승 9패 16세이브 2홀드, 평균자책점 6.13을 기록하는 데 그쳤다. 나이가 30대 중반인 점도 걸림돌이다. 다른 팀이 원했던 사인 앤드 트레이드 이적은 이미 불발됐고, NC에 남는다면 이호준 신임 감독의 뜻에 따라 선발로 보직을 바꿀 가능성이 있다.
이용찬은 첫 FA 때도 불운했다. 데뷔 후 줄곧 두산 베어스에서 뛰다 2020년 말 처음으로 FA 시장에 나왔지만, 하필 그해 6월 팔꿈치 인대접합수술을 받은 탓에 계약에 어려움을 겪었다. 원소속팀 두산과의 잔류 협상이 결렬된 뒤 소속팀 없이 새 시즌을 맞았고, 독립야구단에서 개인 훈련을 하다 2021시즌 개막 후인 5월에야 NC와 계약했다. 당시 계약 조건은 3+1년 최대 27억 원이었는데, 옵션 비중이 총액의 절반에 가까운 13억 원에 달했다. 그 후 4년이 흘러 이용찬은 다시 FA가 됐지만, 이번에도 원소속구단과 시장의 상황은 그에게 녹록지 않은 듯하다.
#C등급 서건창은 KIA에 남을까
C등급은 상대적으로 발걸음이 가볍다. 영입 구단이 원소속팀에 보상 선수를 내주지 않아도 직전 연봉의 150%에 해당하는 보상금만 지급하면 이적할 수 있다. 그런데도 미계약자로 남아 있는 3인의 C등급 선수에게는 올해 겨울이 춥기만 하다.
이들 중 가장 베테랑인 서건창은 FA '4수생'이다. 2021시즌이 끝난 뒤 처음으로 FA 자격 요건을 채웠지만, 세 차례 신청을 미루다 비로소 이번 시장에 나와 FA 권리를 행사했다. 처음 FA 자격을 얻었을 때는 A등급이었는데, 올해 35세가 되면서 자동으로 C등급이 됐다.
서건창은 넥센(현 키움) 소속이던 2014년 한 시즌 133경기 체제에서 KBO리그 역대 최초로 200안타를 돌파(201개)한 리그 정상급 타자였다. 그러나 그 후 성적 그래프가 뚜렷한 하향곡선을 그렸다. 올해는 94경기에서 타율 0.310, OPS 0.820을 기록해 KIA의 통합 우승에 힘을 보탰지만, 좋은 계약을 해내기엔 나이·타격·수비 포지션이 모두 걸림돌이다. 원소속팀 KIA가 새 외국인 타자로 메이저리그 3시즌(2021~2023년) 연속 20홈런을 친 거포 1루수 패트릭 위즈덤을 영입했기에 더 그렇다. KIA는 서건창을 잔류시킬 의지는 있지만, 선수가 만족할 만한 금액을 투자하기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12월 14일 결혼한 서건창이 신혼여행을 떠나면서 협상도 일시 중단됐다. 올해 안에 합의점을 찾기는 어려워 보인다.
미계약자 중 유일한 외야수인 김성욱은 올 시즌 129경기에 출전해 데뷔 후 가장 많은 홈런 17개를 치고 60타점을 올렸지만, 타율이 0.204로 너무 낮았다. 문성현은 원소속구단 키움에 2010년부터 몸담았던 '원클럽맨'인데도 협상에 애를 먹고 있다. 그는 올해 42경기에서 평균자책점 6.57로 난조를 보였고, 9월 이후엔 1군 마운드에 오르지 못했다.
#FA 미아, 노장진과 이도형
그래도 이들은 아직 계약할 시간과 가능성이 남아있다는 점에서 상황이 절망적이지는 않다. 과거엔 야심차게 FA 시장에 나왔다가 끝내 행선지를 찾지 못한 채 결국 '미아'가 되고 만 선수들도 종종 나왔다. 첫 번째 사례가 2006년 말 FA를 선언한 롯데 투수 노장진이었다.
그의 원소속구단이었던 롯데는 트레이드를 전제로 잔류 계약을 준비했지만, FA 계약 마감일이었던 2007년 1월 15일까지 다른 구단의 연락을 받지 못하자 노장진과 계약하지 않기로 했다. 지금은 FA 제도가 개선돼 2021년의 이용찬처럼 시즌 중에라도 언제든 계약이 가능하지만, 2011년까지만 해도 '1월 15일까지 계약을 완료하지 못하면 1년간 KBO리그에서 선수로 뛸 수 없다'는 규정이 존재했다. 실력보다 사생활 문제에 발목이 잡힌 노장진은 결국 무적 상태가 돼 사상 첫 'FA 미아'로 기록됐고, 사실상 강제 은퇴했다. 노장진과 같은 시기에 FA가 된 투수 차명주는 원 소속구단 한화와의 협상이 결렬된 뒤 타 구단의 러브콜도 오지 않자 마감일 전에 스스로 은퇴를 선택한 케이스다.
그 후 4년 뒤인 2011년엔 포수 이도형이 FA 선언을 했다가 직장을 잃었다. 당시 30대 중반이었던 데다 2010년 성적도 썩 좋지 않아 상황이 불리했던 그는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선수로서 FA라는 내 권리를 한 번쯤 꼭 행사하고 싶었다"며 시장에 나왔다. 그러나 소위 '미운털'이 박혀 협상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고, 한화는 그에게 선수로서의 계약 조건 대신 은퇴 후 원정기록원 자리를 제안했다.
결국 그렇게 유니폼을 벗게 된 그는 한 달 뒤 "은퇴할 때 하더라도 억울한 점은 바로잡고 싶다"며 KBO와 법정 싸움을 시작했다.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야구 규약 제161조 6항과 제164조 1항에 관한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바로 앞서 언급한 'FA 미계약 시 1년 선수 활동 금지' 조항을 바로잡기 위해서였다. 결국 법원이 이도형의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였고, KBO는 2012년부터 이 조항을 폐지했다. 이어 2017년엔 아예 1월 15일로 정해져 있던 FA 계약 마감 기한까지 없앴다. 당시만 해도 야구계의 놀림거리가 됐던 이도형의 당당한 FA 선언과 대처가 훗날 '값진 투쟁'으로 평가 받은 이유다.
그해 이도형과 함께 한화에서 FA로 나왔던 투수 최영필 역시 계약에 실패해 미아가 됐지만, 1년간 일본 독립리그에서 뛰면서 현역 생활을 연장했다. 이어 이듬해인 2012년 원소속구단 한화가 FA 보상 권리를 포기하면서 SK 와이번스(현 SSG 랜더스)에 입단하는 기회를 잡았다.
'이도형 사태' 이후 6년 뒤인 2017년에는 포수 용덕한이 FA를 신청했다가 소속팀을 찾지 못하고 은퇴해야 했다. NC에서 뛰던 용덕한은 데뷔 13년 만에 처음으로 얻은 FA 권리를 행사하기로 마음 먹었지만, "대박이 아니라 1년 계약도 괜찮다. FA 계약을 해보고 싶었다"는 간절한 바람은 이뤄지지 않았다. NC는 용덕한에게 선수가 아닌 코치 자리를 제의했고, 팀에 남고 싶었던 그는 구단의 뜻을 받아들여 퓨처스(2군) 배터리 코치로 지도자 계약을 했다. 다만 1군 배터리 코치를 맡았던 2022년 5월 동료 코치와 술자리 폭행 사건에 휘말려 징계를 받은 뒤 더는 재계약하지 못했다.
이듬해인 2018년엔 롯데 출신 FA 외야수 이우민이 끝내 미아로 남았다. 이우민은 타격 성적은 떨어지지만 수비 능력만큼은 리그 정상급으로 손꼽히던 외야수였다. 당시 롯데 구단은 내부 FA로 나온 최준석과 이우민이 모두 미계약자로 남을 가능성이 커지자 이례적으로 "두 선수가 다른 팀으로 이적할 경우 보상선수를 받지 않기로 했다. FA 보상선수 규약에 따라 타 구단 이적이 자유롭지 않은 두 선수의 미래를 위한 결정"이라는 입장을 공식 발표하기도 했다. 실제로 최준석은 그 후 롯데와 1년 5500만 원에 사인한 뒤 NC와 무상 트레이드하는 방식으로 새 소속팀을 찾았다. 그러나 이우민에게는 이런 행운이 따르지 않았다. 그는 결국 현역 생활을 마감하고 지도자로 새 출발했다.
#미아 되기 전 은퇴 택한 손승락
KBO리그 대표 마무리 투수 중 하나였던 손승락은 2007년의 차명주처럼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직접 은퇴를 결심한 사례다. 넥센에서 데뷔한 손승락은 2015시즌 종료 후 첫 번째 FA 자격을 얻어 롯데로 이적했고, 2017년 롯데 구단 한 시즌 최다 기록인 37세이브를 올리는 등 4년간 94세이브를 기록하며 활약했다. 그는 2019시즌이 끝나고 두 번째 FA 신청을 한 뒤 롯데와 네 차례 협상 테이블을 차렸지만, 2020년 1월이 지나가고 2월 1일 스프링캠프가 시작할 때까지 계약 기간과 총액 모두 좀처럼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협상이 예상보다 훨씬 길어지자 고심하던 손승락은 결국 '후배들에게 길을 열어주고, 정상에 있을 때 내려오고 싶었다"며 롯데 구단을 통해 은퇴를 선언했다. 손승락은 마지막 시즌인 2019년 전반기에 부진해 잠시 소방수 자리를 내려놓기도 했지만, 후반기엔 1승 5세이브 평균자책점 1.88로 여전히 경쟁력 있는 모습을 보여줬다. 또 평소 주변에 "21세이브만 더하면 통산 300세이브를 채운다. 도전해보고 싶다"는 의지를 밝히기도 했다. 그런 이유로 그의 은퇴 결정과 시점은 야구계에 놀라움을 안겼다. 손승락의 갑작스러운 은퇴 발표 후 롯데 스프링캠프엔 '새 마무리 투수 발굴'이라는 숙제가 떨어졌고, 현재 롯데의 마무리투수를 맡고 있는 김원중이 치열한 경쟁에서 승리해 소방수의 배턴을 이어받았다.
마지막 FA 미아는 2년 전 소속팀을 찾지 못하고 FA 도전을 마감해야 했던 투수 강리호다. 개명 전 강윤구라는 이름으로 더 유명했던 그는 2009년 넥센의 1차 지명을 받고 프로 무대에 뛰어든 강속구 유망주였다. 힘 있는 직구와 날카로운 슬라이더를 앞세워 리그를 대표하는 왼손 에이스 감으로 기대를 모았지만, 고질적인 제구력 문제에 끊임없이 발목을 잡혔다. 2017년 NC로 이적했다가 2021년 다시 롯데로 팀을 옮겼던 그는 2022시즌이 끝난 뒤 FA 자격을 얻어 처음으로 시장에 나왔다. 이어 그해 12월 '윤구'라는 이름을 '리호'로 바꾸면서 인생의 새로운 출발도 예고했다. 그러나 원소속구단 롯데를 포함해 그의 영입을 원하는 구단은 나타나지 않았다.
결국 지난해 독립야구단 가평 웨일스에서 선수 생활을 이어가는 한편 야구 예능프로그램 '최강야구' 트라이아웃에 참가했다가 탈락하는 등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7월 자신의 소셜미디어(SNS)로 현역 은퇴를 발표했다. 이 때문에 '강리호'라는 이름은 KBO리그 공식 기록에 남아 있지 않다.
배영은 중앙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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