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영화계 한파 속에도 ‘어쩔수가없다’ ‘야당’ ‘전지적 독자시점’ ‘폭설’ ‘얼굴’ 기대감 높여
200억 원대의 블록버스터 ‘탈출:프로젝트 사일런스’와 최동훈 감독이 연출하고 김태리와 류준열이 주연한 ‘외계+인’ 2부가 대표적이다. 코로나 팬데믹을 거치면서 위축된 한국영화 투자 시장의 한기는 회복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새해에도 계속될 것으로 예측된다. 이미 2023년부터 꽁꽁 얼어붙은 투자사들의 움직임은 2024년을 거쳐 올해도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한국영화에 켜진 빨간불은 각 투자배급사들이 내놓은 2025년 영화 라인업에서도 확인된다. 오랜 기간 투자배급사 점유율 1위를 유지한 CJ ENM이 내년에 내놓는 한국영화는 단 두 편에 불과하다. 5대 투자배급사들의 상황은 비슷하다. 롯데엔터테인먼트가 7편으로 가장 많지만 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6편, 쇼박스 4편, NEW 2편 등 5개사를 통틀어 고작 21편에 불과하다.
물론 향후 추가 투자배급 및 개봉 계획이 수립될 수도 있지만, 연초 공개하는 각 투배사들의 라인업 발표는 그해 장사를 어떻게 하겠다는 강력한 출사표라는 점에서 올해 한국영화의 전망을 어둡게 한다. 물론 편수가 적다고 기대작까지 적은 건 아니다. 올해 한국영화의 경쟁력을 이어가면서 관객을 사로잡을 준비를 마친 5편을 엄선해 꼽았다.
#박찬욱 감독과 이병헌의 재회…‘어쩔수가없다’
최근 촬영을 마친 ‘어쩔수가없다’(제작 모호필름)는 CJ ENM이 올해 주력해 내놓는 영화다. 박찬욱 감독이 ‘헤어질 결심’ 이후 3년 만에 공개하는 작품으로 화려한 주연 캐스팅으로 화제를 모았다. 이병헌과 손예진을 중심으로 박희순, 이성민, 염혜란, 차승원, 유연석이 뭉쳤다. 특히 이병헌은 영화에서 존재감을 각인시킨 첫 작품인 2000년 ‘공동경비구역 JSA’와 2004년 ‘쓰리, 몬스터’에 이후 20여 년 만에 박찬욱 감독과 재회했다.
‘어쩔수가없다’는 삶이 만족스러웠던 회사원 유만수가 직장에서 덜컥 해고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렸다. 느닷없는 실직에 아내와 두 자녀를 보호하고, 어렵게 장만한 집을 지키기 위해 재취업의 전쟁에 뛰어든 유만수의 이야기다. 손예진이 이병헌의 아내 역이다.
박찬욱 감독의 연출작이라는 점에서 올해 5월 칸 국제영화제 혹은 8월 열리는 베니스국제영화제 출품 가능성이 유력하게 점쳐진다. 그동안 박 감독은 칸 영화제의 특별한 사랑을 받으면서 ‘올드보이’부터 ‘아가씨’ ‘헤어질 결심’으로 잇단 수상 성과를 거뒀다. 특히 한국영화는 최근 몇 년 동안 칸 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입성하지 못한 만큼 박 감독의 신작을 통해 다시 기회를 노린다.
#마약 세계를 뒤흔든 내부자…유해진의 ‘야당’
2월 개봉을 확정한 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의 투자배급작 ‘야당’(제작 하이브미디어코프)은 마약 범죄에 깊이 연루됐지만, 수시기관에 붙어 마약의 은밀한 세계를 고발하는 내부자에 관한 이야기다. 한마디로 ‘마약판 내부자들’이라고 할 수 있다.
범죄 액션 ‘특수본’ 등을 연출한 황병국 감독이 10여 년 만에 내놓는 신작이자, 지난해 1300만 관객을 동원한 ‘서울의 봄’으로 돌풍을 일으킨 제작사의 작품이다. 영화의 제목인 야당은 마약 범죄를 고발하는 내부자를 뜻하는 은어다. 배우 강하늘이 야당으로, 유해진이 세상을 뒤흔드는 검사로 극을 이끈다.
‘야당’은 ‘서울의 봄’뿐 아니라 ‘하얼빈’까지 최근 웰메이드 프로덕션으로 한국영화의 완성도를 높이는 제작사의 역량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작품이다. 촬영은 ‘서울의 봄’과 ‘헌트’ ‘군함도’ 등으로 실력을 보인 이모개 촬영감독이 맡아 잔혹한 마약판과 그 보다 더 무자비한한 수사 기관의 대립을 담아낸다.
#여름 빅시즌 겨냥…이민호·안효섭의 ‘전지적 독자시점’
국내를 넘어 해외 팬들을 사로잡는 두 명의 스타가 스크린에 출격한다. 올해 여름 출사표를 던진 영화 ‘전지적 독자시점’(제작 리얼라이즈픽쳐스)과 그 주인공 이민호와 안효섭이다. 일찌감치 여름 개봉을 확정하면서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동명의 인기 웹소설이 원작인 영화는 10년 동안 연재된 한 소설의 내용과 똑같이 현실의 세상이 멸망하자, 유일하게 소설의 결말을 아는 김독자와 소설 속 주인공인 유중혁이 함께 세상을 구하기 위해 대장정에 나서는 이야기다. 이민호가 죽어도 끊임없이 다시 살아나는 능력을 가진 유중혁 역으로, 안효섭이 아무도 읽지 않는 연재소설를 유일하게 완독한 김독자 역으로 만난다. 컴퓨터그래픽 등 시각효과를 통해 멸망한 세계와 그 세계를 구하려는 판타지를 경쟁력으로 내세운 작품이다.
롯데엔터테인먼트가 배급하는 ‘전지적 독자시점’은 한국영화 시리즈로는 처음 쌍천만 흥행 기록을 달성한 ‘신과함께’의 제작사의 차기작으로도 주목받는다. ‘신과함께’ 역시 동명의 웹툰이 원작이다. 인정받은 스토리를 기반으로 판타지의 세계를 스크린에 구현한 제작사의 노하우가 이번 ‘전지적 독자시점’에 녹어들었다. ‘더 테러 라이브’와 ‘PMC 더 벙커’의 김병우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김윤석과 구교환의 심리 스릴러…‘폭설’
배우들의 만남만으로 호기심을 자극하는 영화 ‘폭설’(제작 루이수픽쳐스)은 폭설로 뒤덮인 외딴 기차역에서 벌어지는 두 인물의 심리 스릴러다. 2021년 영화 ‘모가디슈’에서 한 차례 호흡을 맞춘 김윤석과 구교환이 재회해 기묘한 상황에서 맞붙는다. 올해 쇼박스가 주력해 내놓는 작품이다.
구교환은 지난해 영화 ‘탈주’의 흥행을 이끌면서 현재 한국영화에서 가장 활발히 활약하는 배우. 올해에도 ‘먼 훗날 우리’ ‘왕을 찾아서’ ‘부활남’ 등 영화를 줄줄이 내놓는다. 미묘한 심리극에서 늘 발군의 실력을 보인 김윤석과 만나 시너지를 낼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연출은 신인 박선우 감독이 했다. 그동안 ‘해무’를 시작으로 ‘옥자’ ‘인랑’ ‘소리도 없이’를 비롯해 최근 ‘잠’까지 아이디어가 빛나는 작품들을 꾸준히 선보여 성과를 낸 제작사가 ‘잠’에 이어 다시 한 번 신인 감독과 손잡고 도전하는 새로운 프로젝트다. 현재 촬영이 진행 중인 만큼 내년 하반기 관객을 찾을 것으로 예상된다.
#제작비 2억 원의 승부수…연상호 감독의 ‘얼굴’
한국영화의 투자 유치가 크게 위축된 상황에서 100억~200억 원대의 제작비가 투입되는 블록버스터의 기획은 당분간 어려울 수 있다는 전망이다. 중소 규모의 한국영화 제작이 더 활기를 띨 수 있다는 예측 속에 연상호 감독이 단 2억 원으로 만든 영화 ‘얼굴’(제작 와우포인트)의 결과가 주목받고 있다. 연상호 감독은 연출 초기 공개한 애니메이션 ‘돼지의 왕’ 등을 제외하고 그동안 100억 원대 이상을 투입한 상업영화에 주력해왔다. 이번 ‘얼굴’은 초저예산의 첫 시도다. 투자가 경직된 환경에서 규모에 연연하지 않고 다양한 시도를 하겠다는 감독의 의지가 읽힌다.
‘얼굴’은 살아있는 기적이라고 불리는 시각장애인 전각 장인인 임영규와 그의 아들 임동환이 40년 전 실종된 줄 알았던 어머니의 백골 시신을 발견하고 그 죽임의 진실을 파헤치는 이야기다. 배우 박정민이 임영규와 임동환까지 1인 2역을 소화한다. 그동안 연상호 감독과 꾸준히 작업한 권해효 신현빈 등 배우들은 물론 약 20여 명의 스태프가 모여 3주 동안 촬영을 진행했다. 독립영화에서는 흔한 작업 방식이지만 이미 상업영화에서 흥행을 이룬 감독과 배우들 그리고 유력 스태프들이 뭉친 프로젝트로는 처음이다. 배급은 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가 맡는다. 만약 성과를 거둔다면 저예산으로 이루는 다양한 실험이 영화계에 새로운 흐름을 만들 가능성도 있다.
이호연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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