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승객 대부분 사망, 조류 충돌 따른 랜딩기어 고장 추정…‘대대행 체제’ 우려 속 정부·여야 사고 수습 총력
12월 29일 오전 9시 5분쯤 전남 무안국제공항에서 항공기가 활주로를 이탈해 폭발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해당 여객기는 태국 방콕에서 출발해 무안으로 입국하던 제주항공 7C2216편. 여객기에는 승객 175명과 승무원 6명 등 총 181명이 탑승한 것으로 파악됐다. 제주항공의 무안-방콕 국제선은 지난 8일부터 정기편 운항에 들어간, 취항한 지 한 달도 되지 않은 노선이었다.
이번 사고는 여객기의 랜딩기어에 문제가 생겨 발생한 것으로 전해진다. 당초 여객기는 29일 오전 8시 30분 무안공항에 착륙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무안공항 1번 활주로에 1차 착륙을 시도하다 정상 착륙이 불가능해 복행(고 어라운드)해, 2차로 동체 착륙을 시도했다. 항공기는 활주로 끝단에 이를 때까지 속도를 줄이지 못하고 활주로를 이탈, 공항 외벽과 충돌 후 폭발 화재가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소방당국은 사고 발생 직후 대원 80명을 투입, 43분 만에 항공기 화재 초기 진화가 이뤄졌다. 그럼에도 항공기 기체는 꼬리칸을 제외하면 형체가 남지 않을 정도로 불에 탔다.
기체 후미부터 구조작업이 진행돼 승무원 2명이 구조됐다. 두 사람은 후미 비상구 부분에 있었는데, 충돌 과정에 후미 꼬리 부분이 떨어져 나가면서 생명을 건진 것으로 전해진다. 소방당국이 빠르게 구조작업에 나섰지만, 추가적인 구조인원은 발견되지 않고 있다. 29일 오후 5시 기준 사망자는 132명인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전남 소방본부는 브리핑을 열고 “담장과 충돌한 이후 기체 밖으로 승객들이 쏟아졌다. 생존 가능성이 거의 없다”며 “사망자들도 신원 확인이 어려운 상태다. 유해 위치를 확인해 수습하고 있어서 시간이 소요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관계부처와 소방당국은 정확한 사고 원인을 파악 중이다. 현재까지는 ‘조류 충돌(버드스트라이크)’에 따른 랜딩기어 고장 때문이라는 추정이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당시 사고를 목격한 정 아무개 씨는 사고 여객기가 활주로에 착륙하려고 하강하던 중 반대편에서 날아온 새 무리와 정면으로 충돌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일부 새가 엔진에 빨려 들어간 듯 2~3차례 ‘펑’하는 소리와 함께 오른쪽 엔진에서 불길이 보였다고 전했다.
사고 여객기 탑승객이 오전 9시쯤 가족에 보낸 메시지도 언론을 통해 공개됐다. 탑승객은 “새가 날개에 껴서 착륙을 못하는 중”이라고 설명했고, ‘언제부터 그랬냐’는 물음에 “방금”이라고 답한 뒤 연락이 끊겼다. 전남 소방본부는 사고현장 브리핑에서 “사고 원인은 버드스트라이크 등으로 추정된다”면서도 “정확한 원인은 관계기관 합동조사 후 발표하겠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무안공항 활주로가 짧아 외벽과 충돌 후 폭발하는 바람에 대형사고로 이어졌다는 해석도 나왔다. 실제 무안공항은 활주로 길이가 상대적으로 짧은 공항 중 하나로 꼽혔다. 무한공항 활주로 길이는 약 2800m로, 인천국제공항(3700m)과 김포국제공항(3600m)보다 짧다. 이번 사고처럼 랜딩기어가 내려오지 않는 등 비상상황에서 활주로가 착륙에 충분하지 않을 수 있다는 의미다. 이에 무안공항은 현재 활주로를 360m 연장하는 사업을 진행 중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활주로의 길이가 사고의 원인으로 지목되기는 어렵다는 반박도 있다. 다른 지역거점 공항 대구국제공항(2744~2755m)이나 청주국제공항(2744m)도 무안공항과 함께 활주로가 상대적으로 짧다. 이번 사고 항공기 기종(보잉737-800)의 경우 적재량이나 착륙상황 등 변수를 고려해도 활주로 길이가 1800m만 되면 착륙이 가능하다고 전해진다.
국토교통부 관계자도 중앙사고수습본부 브리핑을 통해 “무안공항 활주로 길이는 2800m”라며 “활주로 길이에 의해 사고가 발생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반박했다.
정부는 곧바로 사고 수습에 나섰다. 현재 정부는 12·3 비상계엄 사태에 따른 윤석열 대통령과 한덕수 국무총리의 연이은 탄핵으로 국정공백이 생긴 상태다.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은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오전 정부서울청사 중앙재난관리소에 도착해 “행정안전부 장관 직무대행, 국토교통부 장관, 소방청장, 경찰청장 등 관계기관은 가용한 모든 장비와 인력을 동원해 인명구조에 총력을 다 하고 인명구조 과정에서 소방대원 등 안전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각별히 유의해달라”고 긴급 지시사항을 하달했다.
이어 최상목 대행은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를 가동, 현장을 직접 찾아 무안군청에서 2차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며 “현장에 설치된 통합지원본부를 통해 피해 수습과 지원에 모든 역량을 집중하겠다”고 강조했다. 또한 참사가 발생한 전남 무안을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했다.
국토교통부는 정부세종청사에 중앙사고수습대책본부를 설치하고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 조사관 7명과 항공기술과장, 감독관 등을 사고 현장에 급파했다. 경찰청도 가용경력을 총동원해 긴급 구조 지원에 나섰고 국방부도 긴급조치반을 소집해 육군 지역부대와 특전사 신속대응부대 등 180여 명과 군 소방차 및 구급차 등을 사고 현장에 투입했다.
정치권도 여야 정쟁을 멈추고 참사 수습에 적극 동참할 것으로 보인다. 우원식 국회의장은 입장문을 통해 “지금은 인명구조가 가장 우선”이라며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과 관련 모든 부처는 최선을 다해달라. 국회도 최대한 지원하겠다”고 강조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사고 수습을 위한 ‘항공 사고 대책위원회’를 구성했다. 대책위는 상황본부와 사고수습지원단, 유족지원단 등 3개 기구가 설치됐다. 이재명 대표는 “상황이 엄중한 만큼 정부와 당국이 가용 가능한 모든 자원을 총동원해서 최대한 신속하게 수습하고 지원해주길 바란다”며 “당 입장에서도 대책위를 구성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지원과 협력을 아끼지 않겠다”고 말했다.
이어 이 대표는 참사 대응을 위해 즉각 전남 무안으로 향했다. 민주당 지도부는 사고 현장에 직접 가는 것이 불필요한 혼란을 초래할 수 있어 자제하고 무안에 소재한 민주당 전남도당 사무실에 설치한 상황본부에서 대응에 나설 방침이다.
국민의힘은 권성동 당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과 여당 소속 행정안전위·국토교통위 위원들이 긴급회의를 연 뒤 ‘무안공항 여객기 사고 수습 태스크포스(FT)’를 구성했다고 밝혔다. 권성동 대행은 “이러한 국가적 비상사태 속에서 주요 부처 장관의 공백 상황이 대단히 안타깝다”며 “여야가 정쟁을 멈추고 사태 수습에 전력을 다할 것을 요청한다”고 말했다.
이날 오후 권 대행과 TF 위원들은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를 방문해 사고 수습 방안을 논의하고, 30일 무안 사고 현장을 방문해 사고 수습 및 재발 방지 대책에 대한 의견을 듣고 유가족을 위로할 예정이다. 사고 당일 현장을 방문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권 대행은 “사고 수습을 자칫 방해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이번 사고는 대한민국 영토 내에서 발생한 최악의 항공사고로 기록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앞서 최악의 사고는 2002년 4월 김해국제공항에 착륙을 시도하던 중국국제항공 CCA129편이 추락해 탑승객 166명 중 129명이 사망했다. 국내 항공기 사고 중 피해자가 가장 많았던 사례는 1983년 옛 소련의 사할린섬 근처에서 대한항공 보잉747기가 소련의 전투기에 피격돼 추락한 일로 당시 탑승객 269명 전원이 사망했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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