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탄핵되자 임명 서둘러…75일 만에 ‘8인 재판관 체제’로 정당성 확보
2024년 12월 27일 국회는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은 한덕수 국무총리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야당 주도로 통과시켰다. 민주당은 한 총리가 “여야가 합의해 안을 제출할 때까지 헌법재판관 임명을 보류하겠다”고 밝히자 곧바로 탄핵을 추진했다. 그동안 국민의힘은 권한대행 체제에서 헌법재판관 임명할 수 없다 주장했다. 민주당은 3명 모두 즉시 임명해야 한다고 맞섰다.
민주당은 국회 추천 몫 헌법재판관 3인의 임명이 관철될 때까지 후임 권한대행에 대한 탄핵도 불사하겠다고 예고했다.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 검사 등의 탄핵 때 헌법재판관 임명을 서두르지 않던 민주당이 윤 대통령 탄핵 국면 되자 태도를 바꾼 셈이다. 재판관이 임명돼야 윤 대통령 탄핵심판에 대한 정당성을 확보하고, 탄핵심판 심리 속도가 빨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헌재법 23조에는 ‘재판관 7명 이상 출석으로 사건을 심리한다’고 명시돼 있다. 헌재도 사건 처리를 위해 공석인 재판관 3명의 신속한 임명을 촉구해 왔다.
2024년 12월 28일 전병헌 새미래민주당 대표는 “이종석 전 헌재소장을 비롯한 3인의 임기 만료로 헌재의 사실상 기능 마비 상태를 예고하고 있었으나 국민의힘이나 이재명당(민주당)이나 방치하고 있었다”며 “이재명당이 마구잡이 탄핵을 남발하는 동시에 헌재의 탄핵심판 기능을 마비시켜 국정을 마비시킨 후 정권을 조기에 만들어 보려는 야욕을 경고해 왔다. 한덕수 권한대행을 29번째로 탄핵하고, 곧 30번째 탄핵을 앞두게 된 헌법재판관 임명 문제는 이재명당이 파놓은 함정에 스스로 빠진 꼴”이라고 비판했다.
민주당은 헌재를 ‘6인 체제’로 만들어 마비시켜왔다는 비판에서 자유롭기 힘들다는 지적이다. 헌법재판관 추천을 두고 시급한 이슈가 아니라며 차일피일 미뤄왔다. 또 10월 14일 헌재가 헌재법 23조에 대한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인용하며 스스로 기능 마비 사태를 막은 것에 대해서 민주당은 “헌재 스스로 입법행위에 준하는 결정을 했다”고 비판한 바 있다. 당시 헌재가 가처분을 인용하지 않았다면, 현재 윤 대통령 탄핵 심판 관련 절차는 진행될 수 없었다.
2024년 12월 23일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 겸 당 대표 권한대행은 “민주당은 헌법재판관 임명을 지연해왔다. 헌재 9인 체제가 복원되면 (감사원장, 방통위원장, 검사 등) 탄핵이 기각될 게 뻔하니 직무정지를 장기화시키겠다는 속셈이었던 것”이라며 “민주당이 자신들의 당리당략을 위해 6인 체제를 고수한 것인데, 이제 와서 헌법재판관을 임명해 대통령 탄핵부터 처리하자는 것은 그 새까만 속내가 빤히 보이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그동안 국민의힘은 민주당이 의도적으로 헌재 기능 마비를 초래해 탄핵심판 등 정치적 사건의 심리를 늦춰 국정 공백을 장기화하려고 했다는 의구심을 제기했다. 민주당은 22대 국회 개원 이후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 △최재해 감사원장 △이창수 조상원 최재훈 검사 등을 줄줄이 탄핵했다. 국회가 탄핵소추안을 가결하는 동시에 피청구인(당사자)의 직무가 정지되는 만큼 국정 공백을 초래하게 된다.
국민의힘은 2023년 7월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탄핵 심판 재판에서 “파면할 만한 중대한 법 위반이 없다”며 재판관 전원일치로 탄핵 소추를 기각한 만큼, 다른 탄핵 사건도 크게 다르지 않은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런데 2024년 10월 17일 이종석 헌재소장과 이영진 김기영 재판관 등 3명이 퇴임한 뒤 ‘6인 체제’에선 심리를 할 수 없어 국정 공백이 장기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이런 점을 민주당에서 노리고 헌법재판관 임명을 서두르지 않은 것 아니냐는 것이다.
2024년 9월 27일 당시 송영훈 국민의힘 대변인은 KBS ‘사사건건’에서 “헌법재판관은 3명이 공석이 돼서 6명이 되면 헌재가 아무 사건도 심리를 못 한다. 7명 이상이어야지 심리를 진행할 수 있다”며 “그렇게 해서 헌재를 마비시킨 다음에 이미 진행 중인 이진숙 방통위원장 탄핵소추안이라든가 탄핵심판이라든가 또는 새로운 어떤 탄핵 심판들을 헌재에서 더 이상 심리를 하지 못하게 해서 장기화시키기 위한 그런 빌드업이 아니냐라는 의구심이 지금 정가에 있다”고 말했다.
학계에서도 헌법재판관 임명되지 않아 헌재 기능 마비 초래된 것에 대한 비판이 나왔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헌재 기능이 멈추면 삼권분립에 따른 상호견제도 마비된다”며 “국회가 헌재 인원 부족하게 해서 견제 못하게 만드는 꼴이다. 마치 박정희 정권 당시 유신 헌법이 선언돼 국회를 해산하고 정당·정치 활동 못하게 했던 것처럼 비칠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관련기사 헌재 ‘마비’ 스스로 막았지만…계속되는 ‘이진숙 탄핵 심판’ 갑론을박).
2024년 12월 29일 김윤덕 민주당 사무총장은 국회에서 연 기자간담회에서 “저희가 임명을 미뤘다는 것에 대해선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여야 간 재판관 추천 인원) 숫자 문제로 이견이 있었다”며 “재판관 후보 3인은 최종적인 여야 합의로 추천한 것이다. 국회 청문 절차가 더욱 중요하다. 저희가 헌법재판관 임명을 미룬 적은 전혀 없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민주당 내부에서조차 헌법재판관 임명을 다루지 않고, 탄핵에만 집중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법사위 소속 민주당 한 관계자는 “계엄 이전엔 헌법재판관 임명 관련 얘기는 잘 안 나왔다. 그냥 언급만 하는 정도였다”며 “이진숙 방통위원장, 최재해 감사원장, 검사 탄핵을 우선시하는 분위기였다”고 귀띔했다.
허일권 기자 onebook@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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