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보다 이익 중시” 관리 소홀, 대형사고 이어져…반면 에어버스 수주량 사상 최대 판도 변화
2024년 1월 5일 알래스카항공 소속 보잉 737 맥스9 여객기가 상공을 비행하던 중 도어플러그(비상구 덮개)가 뜯겨나가 비상착륙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보잉은 신뢰도 하락 위기를 겪었다. 여기에 12월 29일 벌어진 제주항공 참사로 보잉은 또 한 번 타격을 입게 됐다.
아직 참사의 원인이 명확하게 규명되지 않았지만, 보잉 737-800의 기체 결함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데다, 과거 여러 차례 안전성 논란이 불거졌던 터라 보잉의 주가가 급락하고 있다. 미국 AP통신은 “2024년은 이미 보잉에게 실망스러운 한 해였으나 한국에서 발생한 여객기 추락 사고로 특히 불행한 연말을 맞게 됐다”고 전했다.
보잉의 안전성 논란은 2018년 10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일어난 추락 사고로 본격화됐다. 현지 항공사 라이온에어 소속 보잉 737 맥스가 이륙 직후 바다에 추락해 탑승자 189명이 전원 숨진 것. 2019년 3월에도 에티오피아항공 소속 보잉 737 맥스가 이륙 6분 만에 추락해 157명 전원이 사망했다. 조사 결과 소프트웨어 오작동이 원인으로 밝혀졌다. 보잉은 자사의 법적 책임과 기체 결함을 인정했다.
당시 “안전보다 이익을 중시한 보잉의 경영 자세가 사고를 초래했다”라는 비난이 쏟아졌고, 세계 1위 항공기 제작사로 승승장구하던 보잉은 결국 2019년 창사 이래 역대 최대 손실을 냈다. 이후 코로나19 사태가 겹치면서 2023년까지 보잉은 5년 연속 적자를 기록했다. 2024년 3분기도 61억 7400만 달러(약 9조 868억 원)의 순손실을 기록해 6년 연속 최종 적자가 될 공산이 크다.
경영난에 허덕이는 가운데, 설상가상 항공기 생산 중단이라는 초유의 사태까지 맞았다. 2024년 9월 보잉 노동자들은 임금 동결에 반발해 파업에 돌입했다. 파업은 두 달 만에 간신히 수습됐지만, 항공기 제작 및 인도에 차질을 빚었다.
보잉은 항공기만이 아니라 우주 사업에서도 고전하고 있다. 2024년 6월 보잉이 개발한 유인우주선 ‘스타라이너’는 두 명의 우주비행사를 태우고 국제우주정거장(ISS)으로 시험비행을 떠났으나, ISS 도킹 이후 기기 결함이 발견돼 이들을 다시 탑승시키지 못한 채 홀로 귀환했다.
이처럼 보잉이 휘청이는 가장 큰 이유로는 “비용 절감에 치중하다 안전관리를 간소화했기 때문”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미국 항공컨설팅사 아담 필라스키 분석가는 “원래 보잉은 기술 제일주의를 추구하는 회사였지만, 초대형 회사가 되면서 수익과 주주 이익을 중시하는 문화로 바뀌었다”고 꼬집었다.
뉴욕타임스는 ‘보잉이 안고 있는 문제’를 폭로하기도 했다. 보잉의 전직 직원은 “촉박한 일정에 직원들의 압박이 심했다”며 “엔지니어들이 평소보다 두 배 빠른 속도로 기술 도면과 설계를 제출해야 했다”고 뉴욕타임스에 털어놨다.
보잉은 라이벌인 유럽연합의 ‘에어버스’가 연비 좋은 신형기 A320-NEO로 대히트를 치자, 추격을 따돌리기 위해 737 맥스를 도입했다. 전직 직원은 “문제의 징후를 느낀 시기는 2017년 말”이라며 “당시 보잉은 737 맥스의 월간 생산량을 47대에서 52대로 늘리던 상황이었다”고 회고했다. “생산량을 무리하게 늘리면서 직원들이 어려움을 겪었다”는 것이다.
그러다 2019년 에티오피아에서 두 번째 737 맥스 추락 사고가 발생하면서 생산량은 뚝 떨어졌다. 이 기종을 보유하고 있는 세계 모든 항공사들이 문제가 시정될 때까지 비행을 중단 조치했기 때문이다. 2020년 후반 운항이 재개되자 보잉은 에어버스에 더 뒤처지지 않기 위해 다시 증산으로 돌아섰다.
일부 보잉 간부들은 지난날의 과오를 인정하고 있다. 브라이언 웨스트 보잉 최고재무책임자(CFO)는 2024년 투자설명회에서 “우리는 오랫동안 생산 공정에서 제대로 일을 하는 것보다 빨리 비행기를 생산하는 것을 우선시해 왔다”며 “문제를 바로잡기 위해 의도적으로 속도를 늦출 예정”이라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베테랑 직원이 대량 퇴직한 것도 품질 관리 문제로 이어지고 있다”라는 지적도 나온다. 2020년 초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이 세계를 덮쳤을 때 항공 수요는 급감했고, 많은 항공사 간부들은 “여행 수요가 정상으로 돌아오려면 몇 년이 걸릴 것”으로 내다봤다. 보잉은 인력 감축에 나서며 직원들에게 조기 퇴직을 촉구했다. 최종적으로는 수십 년의 경험이 풍부한 베테랑 직원을 포함해 약 1만 9000명이 퇴직한 것으로 전해진다.
레이 고포스 보잉 노조 전무이사는 “우리는 보잉에게 방대한 전문적 지식을 잃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며 몇 가지 해결책을 제안했지만, 회사는 이를 무시했다”고 말했다. 그는 “보잉이 베테랑 직원들을 ‘저임금 초급 엔지니어와 기술근로자’로 대체해 비용을 절감할 기회로 삼은 것”이라고 비판했다. 현재 보잉의 전체 직원 수는 17만 1000명으로, 이는 2020년 말 대비 약 20% 증가한 숫자다. 그러나 현직 및 전직 직원들은 “상당수의 신규 근로자들이 퇴직한 직원들보다 경험이 매우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지나친 부품 외주와 이로 인한 관리 소홀도 결함 원인으로 거론된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보잉은 2000년 이후 부품 제조 공정에서 외주 비중을 2배 이상 높였다”고 한다. 항공 전문가들은 “보잉이 일련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다”며 “새 항공기를 찾는 항공사들이 보잉 대신 에어버스의 항공기를 늘릴 가능성이 있다”고 예측했다.
실제로 일본 항공업계에서는 에어버스의 공세가 눈에 띈다. 2024년 7월 영국에서 열린 ‘판버러 국제에어쇼’에서 에어버스는 31대의 수주 소식을 알렸는데, 그 발주처는 일본항공(JAL)이었다. 세계 항공기 시장은 ‘고참’ 보잉과 ‘후발주자’ 에어버스가 불꽃을 튀기며 2000년경부터 수주 점유율 호각세를 이어왔다. 하지만 몇 년 사이 판도는 일변했다. 2023년 에어버스 항공기 수주량은 2319대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한 반면, 초심을 잃은 보잉은 1314대에 그쳤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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