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무혈입성 막자” 보수층 결집 영향…“중도층 등 돌리면 국힘에 독 될 것” 전망도
#형소법 둘러싼 공방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소환 조사는 물론, 체포영장 발부에도 응하지 않은 윤석열 대통령은 1월 1일 지지자들을 향해 “저는 여러분과 함께 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 끝까지 싸울 것”이라는 메시지를 냈다.
윤 대통령은 이날 서울 용산구 한남동 관저 앞에 모인 탄핵 반대 집회 참석자들에게 전달한 메시지에서 “나라 안팎의 주권 침탈 세력과 반국가세력의 준동으로 지금 대한민국이 위험하다”며 이같이 밝혔다고 윤 대통령 측 석동현 변호사가 전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직접 서명한 A4용지 한 장 분량의 글을 관계자 편으로 집회 현장에 전달했다.
윤 대통령이 ‘끝까지 싸우자’ 메시지를 내자 지지자들의 결집세는 더욱 빨라지는 형국이다. 주말마다 서울 광화문에 모여든 탄핵 반대 집회와 함께 대통령 관저 주변에서도 윤 대통령 체포를 저지하려는 집회가 밤늦게까지 이어졌다. 윤 대통령은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가 발생하자 자신의 소셜미디어를 통해 애도와 위로의 마음을 전하는 등 국가적 현안에 대해 메시지를 내는 데도 주저함이 없다.
지지층을 향한 여론전과는 별개로 윤 대통령의 전공이자 최대 무기인 ‘법적 방어선’ 구축에도 공을 들이는 모습이다. 우선, 공수처가 발부받은 윤 대통령 수색영장에 ‘형사소송법 제110조·111조 적용을 예외로 한다’고 적시된 것과 관련해 윤 대통령 변호인단은 “불법 무효”라며 권한쟁의심판을 헌법재판소에 청구하기로 했다.
윤갑근 변호사는 1월 1일 “서부지법 영장 담당 판사가 영장에 형소법 110조·111조 적용을 예외로 한다고 기재했다고 하는데, 형소법 어디에도 판사에게 그런 권한을 부여하지 않고 있다”고 반발했다.
윤 대통령 측은 이에 앞선 2024년 12월 31일엔 공수처의 체포영장 자체가 대통령 권한을 침해하는 것이라면서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심판과 체포영장 효력정지 가처분을 신청했다. 내란죄를 수사할 권한이 없는 공수처가 청구한 불법 체포영장인 만큼 집행에 응할 수 없는 것은 물론, 영장 자체가 원천 무효라는 입장이었다.
형소법 110조는 군사상 비밀을 요구하는 장소는 책임자의 승낙 없이는 압수·수색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111조는 공무원이 소지·보관하는 직무상 비밀에 관한 물건은 소속 공무소나 감독관공서의 승낙 없이 압수하지 못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110조와 111조의 2항엔 각각의 책임자와 감독관공서는 국가의 중대한 이익을 해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승낙을 거부하지 못한다고 돼 있다.
영장의 이러한 내용을 두고 정치권은 물론 법조계에서도 갑론을박이 오갔다. 성금석 부산지법 부장판사는 법원 내부망인 ‘코트넷’에 “형사소송법 제110조·111조의 적용 예외를 명기한 체포(수색) 영장이 발부된 것이 사실인지, 확인 및 진상 규명과 적법한 조치를 희망한다”면서 “판사는 법을 지켜야 하는 공직자일 뿐 재판을 하면서 법 위에 서거나 법률 위에 군림해서는 결단코 안 된다”고 했다.
법사위 국민의힘 간사인 유상범 의원도 1월 2일 기자회견을 통해 “사법부 권한 밖의 행위로 삼권 분립에 위배되니 원천 무효”라고 주장했다. 유 의원은 “판사에게 법률 조문의 적용을 예외로 할 수 있게 하는 어떤 권한도 없다”고 했다. 유 의원은 ‘영장 전담판사에 대한 징계가 필요하다고 보나’라는 질문에 “탄핵감이라고 생각한다. 지도부와 상의해 적극적으로 탄핵 여부를 검토할 예정”이라고 답했다.
더불어민주당 측은 국민의힘과 윤석열 대통령 측의 ‘근거 없는 일방적 주장’이라는 입장이다. 변호사 출신 이소영 의원은 “110조, 111조 취지는 압수수색 과정에서 공무상 비밀이 침해되어 안전상 위해를 대비하기 위한 규정이다. 윤 대통령 체포영장 집행에 있어서는 신병확보 외에 공무상 기밀이 침해될 위험이 전혀 없는데도, (윤 대통령 측이) 110조와 111조를 근거로 집행을 막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확인적이고 주지적 차원에서 기재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12·3 비상계엄’ 탄핵심판에서 윤석열 대통령 대리인으론 윤갑근(사법연수원 19기) 배진한(20기) 배보윤(20기) 변호사가 위임장을 제출했다. 김홍일(15기) 전 방송통신위원장은 형사소송 대응을 포함한 변호인단 대표를 맡는 것으로 알려졌고, 석동현(15기) 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사무처장은 외곽 지원 역할을 하고 있다.
겉으로 드러난 변호인단 외에 실무를 맡을 변호인들도 상당수 확보됐다고 윤 대통령 측은 전했다. 수십 명 규모의 변호인단이 포진했고, 본격적인 사실 관계 검토 및 법리 해석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윤 대통령 측이 체포영장 등 너무 빠른 수사 속도에 대해 강하게 반발하고 있는 것도 변호인단 내부에서 “방어권 확보를 위한 물리적 시간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강하게 제기된 때문으로 해석된다.
윤 대통령의 강공은 이미 점쳐져왔다. 그는 2024년 12월 7일 계엄에 대해 사과하는 담화를 내놨지만 불과 며칠 후인 12월 12일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면서 강공으로 급전환했다. 윤 대통령은 이 담화에서 계엄과 관련, “자유민주주의 헌정 질서의 붕괴를 막고, 국가 기능을 정상화하고자 했다”고 전제한 뒤 “대통령의 헌법적 결단이자 통치행위가 어떻게 내란이 될 수 있느냐”고도 했다.
윤 대통령은 이 담화에서 “야당은 비상계엄 선포가 내란죄에 해당한다며 광란의 칼춤을 추고 있다” “거대 야당이 지배하는 국회가 자유민주주의 헌정 질서를 파괴하는 괴물이 됐다” “반국가적 패악을 알려 멈추도록 경고하는 것” 등 자극적 언어를 사용했다. 또 “저는 마지막 순간까지 국민 여러분과 함께 싸우겠다. 뜨거운 충정을 믿어 달라”는 언사까지 하면서 강공 의지를 다지는 모습을 보였다.
#박근혜 때완 다르다
12·3 비상계엄 선포 및 해제 직후인 12월 7일 사과 담화 때까지만 해도 윤 대통령은 모든 것을 체념한 듯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이내 자세를 바꿔 강공 전략에 나선 것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때와는 확연히 다른 여론 지형을 확인했기 때문으로 받아들여진다. 우선 복수의 여론조사 등에서 보수 지지층이 분열하지 않고 단일대오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 나타나고 있다. 박 전 대통령 탄핵 당시 보수정당은 탄핵 찬반으로 갈려 반목하다 결국 분당되는 사태를 맞이했고, 곧이어 벌어진 대선에서 허무하게 정권을 잃은 바 있다.
실제 최근 여러 여론조사에서 여당의 지지율은 오르고 야당의 지지율은 하락하는 등 양당 간 격차가 다시 좁혀지는 경향도 일부 보이고 있다. 일부 조사에서는 국민의힘이 30%대 지지율을 회복했다는 결과까지 나오고 있다. 박 전 대통령 탄핵 당시 새누리당 지지율이 10%대로 폭락했던 것과는 다른 풍경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국민의힘은 대통령 탄핵소추안 국회 표결 과정에서 구성원 간 일부 갈등이 있었지만 과거처럼 대규모 탈당·신당 창당 등의 혼란은 겪지 않았다. 국민의힘 한 의원은 “비상계엄이 잘못됐다는 데에는 모두가 일치된 의견으로 공감한다”며 “하지만 당의 분열은 곧 사법 리스크에 휩싸여 있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무혈입성이라는 결과로 이어지는 만큼 이를 막아야 한다는 여론이 강해 이 지지세를 등에 업고 여당이 예상 밖으로 힘을 차리고 있다”고 말했다.
이 의원 언급처럼 탄핵 국면에서 제1야당의 유력 대권 주자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라는 점은 박근혜 대통령 때와 다른 차이를 발생시키는 요인으로 꼽힌다. 탄핵 직후 정권을 획득한 문재인 전 대통령과 비교할 때 이재명 대표에 대해서는 보수층의 비호감도가 워낙 높아 정권을 내줘서는 안 된다는 심리가 상당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정치판 구조’를 읽은 윤 대통령이 전략을 강공으로 바꿨다는 해석이 힘을 얻고 있다. 박 전 대통령 탄핵 때처럼 헌법재판소나 사법 기관의 수사에 무기력하게 끌려 다니던 모습과는 정반대의 행보를 보이는 배경이다. 야당의 거친 대응도 보수의 결집 분위기를 다져 윤 대통령 강공을 뒷받침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야당이 대통령 권한대행인 한덕수 국무총리까지 탄핵한 것에 대해 “이건 너무 심한 것 아니냐”는 보수층의 강한 반격을 불러왔다는 것이다.
국민의힘 한 전직 의원은 “보수지지층은 박근혜 탄핵 때 너무 쉽게 보수가 무너졌고 온갖 실정으로 얼룩졌던 문재인 정부를 탄생시킨 원죄를 안고 있다는 생각이 강하다”며 “때문에 윤석열 대통령 탄핵 정국에서 쉽게 물러서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수지지층이 다지고 있고 이를 읽은 윤 대통령도 강한 저지선과 방어선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말 아끼는 여당
국민의힘 내부에서는 윤 대통령 강공 전략에 대해 말을 아끼는 모양새다. 윤 대통령 행보에 대한 해석과 평가는 윤 대통령 변호인단에 일단 맡기고, 당 차원의 언급은 최대한 내놓지 않고 있다. 친윤이 여전히 당내 주류인 만큼 윤 대통령 강공에 대해 “할 말을 하는 것”이라는 인식이 강하기는 하다.
국민의힘은 법원의 윤 대통령 체포영장 발부 과정에서 윤 대통령 측이 제기한 문제 등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의 영장 집행 방침에 대해 1월 2일 강하게 반발하기도 했다. 당 소속 법사위원들은 이날 기자회견을 갖고 “편법과 꼼수로 대통령에 대한 불법적 영장 발부를 자행했다”며 “법원과 공수처는 지금이라도 민주당의 무도한 인민재판식 여론몰이에 동조하는 행태를 즉시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당 일각에서는 “너무 세게 나가면 결국 중도 표심을 잃어 조기 대선이 열린다면 참패할 것”이라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윤 대통령을 옹호하는 장외 집회에서 국민의힘 현역 의원들 모습을 찾을 수 없는 것도 중도 표심 상실에 대한 경계 심리와 연결돼있다는 분석이다.
국민의힘 한 중진 의원은 “윤 대통령은 방어권을 행사하는 것이지만 국민들이 보기에 ‘법꾸라지’ 인상을 줄 수도 있다”며 “박근혜 대통령 탄핵 때도 여론 관리에 실패해 하염없이 무너졌는데 이번에도 우리 지지층은 물론, 중도 여론의 추이를 잘 읽고 이에 잘 대응해야 8년 전의 보수 대붕괴라는 처참한 상황을 재연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
최경철 매일신문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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