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주요 증권사들의 올해 코스피 전망치 평균 밴드는 2344~2872다. 가장 낮은 곳은 DB금융투자의 2100~2800, 가장 높은 곳은 SK증권의 2416~3206이다. 지지부진하든지 15% 이상 오를 것이란 뜻이다. 글로벌 IB의 S&P500 예상치는 연말 기준 JP모건, 골드만삭스, 모건스탠리, UBS가 6500, 뱅크오브아메리카(BoA) 6666, 도이치방크 7000 등이다. S&P500이 현재보다 10%가량 하락할 수 있다는 관측도 있지만 대체로 10~14%가량 상승할 것이라는 것이 중론이다. 상단만 보면 코스피가 나을 수도 있는 셈이다.
국내 증권사들이 상단을 현재보다 15% 이상 높이 잡은 이유는 ‘트럼프노믹스’에 따른 수출 부진에도 불구하고 내수를 중심으로 2%대 성장이 가능하리란 관측 때문이다. 하지만 2.2%였던 정부의 성장률 전망치는 지난 1월 2일 발표된 ‘2025년 경제정책방향’에서 1.8%로 낮아졌다. 환율 상승에도 불구하고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이 2.2%에서 1.8%로 낮아진 것은 내수 위축을 반영한 결과로 풀이된다.
국내 증권사들이 하단을 현재와 비슷하게 잡은 이유는 가격 수준이 이미 바닥에 근접했다는 판단에서다. 밸류에이션은 역사적 저점에 가깝고 이익 전망도 이미 보수적이어서 지수가 더 떨어질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논리다. 변수는 환율이다. 정치적 불안과 수출 부진으로 원화 가치가 흔들리면 외국인 입장에서는 한국 주식을 더 팔 수도 있다. 내국인 투자자들도 해외자산 비중을 높이는 것이 유리하다. 코스피 바닥이 더 낮아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하단으로 2300선 이하를 제시한 증권사들이 적지 않은 이유다.
한국 증시 전망이 ‘많이 떨어졌으니 더 떨어지기 어렵다’로 요약된다면 미국은 그 반대다. 줄이면 ‘많이 올랐지만 더 오를 수 있다’이다. 미국은 올해 경제성장률과 소비자물가상승률은 모두 2%대가 예상된다. 경기 연착륙 가능성이 커지면서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기준금리 인하는 완만해질 것이란 관측이 많다. 적중한다면 달러 강세다. 글로벌 자금의 흐름은 가치가 높아지는 통화로 몰리기 마련이다.
미국 증시가 10%가량 하락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는 22배에 달하는 주가수익비율(PER) 부담 때문이다. 최근 10년 평균인 18.5배를 훌쩍 뛰어넘는다. 하지만 거품 수준이 아닌 가격 부담만으로 미국 증시가 조정을 받거나 크게 하락한 적은 거의 없다.
2024년 S&P500은 무려 57회나 최고치를 경신하며 24% 상승했다. 2023년(24.2%)까지 합하면 2년간 53.3%가 올랐다. 2년 연속 상승한 폭으로는 1997년~1998년(65.9%)에 이어 가장 높다. 1995년 이후 미국 증시는 4차례나 3년 연속 상승했다. 인터넷 혁명이 이뤄졌던 1995년~1999년(5년간 220%), 중국의 글로벌 경제 동참이 본격화된 2003년~2007년(5년간 67%), 모바일 혁명이 일어난 2012년~2014년(3년간 63%),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으로 현금이 살포된 2019년~2021년(3년간 92%)이다. 상승랠리가 2년에 그친 때는 2009~2010년(39%), 2016~2017년(31.18%)인데 그나마 3년차 때 낙폭은 -0.73%, -6.24%에 불과했다.
S&P500은 30년 동안 24번 오르고 6번 내렸다. 상승 랠리 진행폭은 평균 80%, 하락 국면 낙폭은 평균 40%였다. 하락률이 두 자릿수를 기록했던 때는 인터넷 버블 붕괴(2000년~2002년), 글로벌 금융위기(2008년), 긴축 쇼크(2022년) 세 차례다. 심각한 거품이나 부실이 드러나거나, 거시경제 정책의 대전환이 이뤄진 때가 아니면 큰 폭으로 하락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반대로 기술 혁신이 이뤄질 때마다 장기 랠리가 이어졌다. 2022년 말 시작된 인공지능(AI) 랠리 역시 기술 혁신이 동력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평가다.
팩트세트(Factset) 자료를 보면 새해 S&P500 기업들의 이익증가율은 15%로 2024년(9.5%)을 웃돌 것으로 예상됐다. 2024년 S&P500 시가총액 상승 분의 53%를 차지한 ‘매그니피센트7(Magnificent7, 알파벳·아마존·애플·메타·마이크로소프트·엔비디아·테슬라)’은 높은 영업이익률을 자랑할 뿐 아니라 올해 이익성장 전망도 시장 평균을 웃돈다.
물론 미국 증시에 복병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미국 증시를 지탱하는 3가지 축은 혁신, 금리인하, 재정지출이다. 특히 연준이 긴축을 할 때도 정부는 재정지출을 늘리며 시장에 유동성을 계속 공급했다. 유동성이 늘어나면 주가가 높아져도 가격 부담은 제한된다.
변수는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추진하는 정책이다. 고율의 관세가 물가를 자극해 소비를 위축시킬 것이란 우려가 가장 크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다시 120%에 근접한 정부 부채 부담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다만 다른 한편에서는 감세와 규제 완화 효과가 세입 감소나 관세 상승에 따른 소비여력 위축을 상쇄할 것이란 분석도 상당하다. 바이든 정부 때의 복지 지출이나 투자유치 세제 지원을 줄이면 정부 부채 증가세에도 제동이 걸릴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아직은 트럼프노믹스에 대해 우려보다는 기대가 큰 셈이다.
트럼프 효과, 가상자산 어디까지 끌어올릴까
가상자산(암호화폐)도 미국 증시만큼이나 트럼프 정책에 큰 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트럼프 당선인은 유세 때부터 가상자산을 적극 지지해왔다. 최근 비트코인 가격이 10만 달러를 넘어서며 사상 최대치를 경신한 것도 트럼프 효과라는 것이 정설이다.
특히 가상자산 업계는 지난 미국 대선과 상·하원 선거에 거액의 정치자금을 지원하며 적극적으로 공화당을 지지했다. 2024년 11월 하원선거에서 가상자산 업계가 당선을 축하한 의원 숫자는 294명이다. 가상자산에 반대하는 것으로 지목한 의원 숫자는 134명에 불과하다. 트럼프 2기 행정부와 공화당이 다수인 의회가 출범하면 규제완화 등 가상자산 업계의 청구서에 본격적으로 화답할 것이란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트럼프 당선인의 둘째 아들인 에릭 트럼프는 2024년 12월 아부다비에서 열린 ‘비트코인 미나 2024’ 행사에서 부친이 가상자산에 가장 친화적인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 공언했다. 이후 트럼프 당선자는 최근 주요 핵심기관 수장에 가상자산 지지자들을 대거 기용했다. 시장 규제기관인 증권거래위원회(SEC) 위원장과 상무장관 지명자인 폴 앳킨스와 하워드 루트닉은 가상자산 회사와 직접 인연을 맺은 인물이다.
재무장관에 오를 스코트 베센트도 가상자산을 공개적으로 지지해왔다. 정부효율위원회를 이끌 일론 머스크 역시 비트코인과 도지코인 투자자로 유명하다. 백악관 정책보좌관에 이름을 올린 벤처투자가 데이비드 삭스도 가상자산 초기 투자자 가운데 한 명이다.
가상자산 업계가 기대하는 규제완화는 거래 합법화와 연기금 등 기관투자자들의 투자 허용이다. 거래가 활발해지고 ‘큰손’들이 매수에 나서면 가격은 오를 수밖에 없다. 민주당 정부에서 가상자산 규제를 강화했던 SEC는 벌써부터 규제 완화를 위한 업계 목소리 청취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가상자산의 은행시스템 접근 가능성도 제기된다. 가상자산의 은행 접근이 이뤄지면 통화로서의 기능을 인정받을 수도 있다. 비트코인 가격 전망치도 높아지는 모습이다. 가상자산 전문기관들은 올해 최소 15만 달러 이상을, 스탠다드차타드(SC) 은행과 일부 벤처캐피털은 올 연말 20만 달러를 예상할 정도다. 가장 보수적 예측도 현재보다 20%가량 높은 11만 5200달러다.
최열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