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인체제’ 된 헌재 탄핵 심리 급물살, 국힘은 이재명 2심 거론하며 맞불…윤 지지층 결집 여론전
#최상목 대행의 절충안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 심리에 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2024년 12월 31일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국회 몫 헌법재판소 재판관 후보자 3명 중 정계선 조한창 후보자 2명을 전격 임명하면서다. 다만 마은혁 후보자에 대해선 추후 여야 합의가 확인되는 대로 임명하겠다며 보류했다. 그동안 국민의힘은 권한대행 체제에선 헌법재판관을 임명할 수 없다고 주장한 반면, 더불어민주당은 3명 모두 즉시 임명해야 한다고 맞섰다.
경제관료 출신인 최상목 권한대행이 주가 하락, 환율 급등 등의 경제적 혼란을 수습하고자 나름의 절충안 카드를 꺼낸 것이란 해석이 나왔다. 최 대행은 “계엄으로 촉발된 경제의 변동성은 헌법재판관 임명 보류와 권한대행 탄핵 소추 이후 급격히 확대됐다”며 “하루라도 빨리 정치적 불확실성과 사회 갈등을 종식시켜 경제와 민생 위기 가능성 차단이 필요하다는 절박함에 헌법재판관을 임명하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야당 주도로 국회를 통과한 이른바 ‘쌍특검법’(내란 특검법·김건희 여사 특검법)에 대해서는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했다. 최 대행은 김건희 특검법안에 대해선 위헌성이 해소되지 않은 채 또다시 정부로 이송됐다며 거부권 행사 배경을 설명했다. 내란 특검법의 경우 “형사소송법에서조차 군사 공무, 업무상 비밀의 보호를 주요한 가치로 여겨 이를 침해하지 않도록 압수수색 등의 제한을 두고 있다. 이번 특검 법안은 이러한 보호 장치를 배제하여 국방, 외교 등의 위험을 초래할 수 있으며 개인의 기본권이 침해될 우려 또한 높다”고 지적했다.
여야정은 모두 최상목 대행 결정에 반발했다.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 유상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김태규 방송통신위원장 직무대행 등 일부 국무위원은 비공개로 전환된 국무회의에서 최 대행의 헌법재판관 임명 결정에 거세게 반발하며 언성을 높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누구와 상의했느냐” “법리 검토를 받았느냐”고 따졌고, 최 대행은 “혼자서 고민을 많이 했고 몇 분에게 물어봤다”는 취지로 답한 것으로 전해졌다. 국무회의 종결 이후 최 대행은 일부 국무위원과 만난 자리에서 눈시울을 붉혔다고 한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탄핵소추인인 국회가 탄핵 판결의 주체인 헌법재판관을 임명하는 것이기 때문에, 최 대행의 결정은 야당의 탄핵 협박에 굴복해 헌법상 적법절차 원칙을 희생시킨 것”이라며 “헌법재판소가 탄핵 기각·인용 중 어떤 결정을 내린다고 해도 우리 사회는 극심한 대립과 혼란을 겪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박찬대 민주당 원내대표는 의원총회 뒤 기자들과 만나 “최 대행이 국회 추천 몫 3인의 헌법재판관을 선별해 임명하거나 거부하는 것 자체가 삼권분립에 대한 몰이해고 위헌적 발상”이라며 “대통령도 거부할 권한이 없는데 권한대행이 선별 거부하는 것은 옳지 않다. 국회 추천은 이미 의결로 완성된 것이다. 무슨 새로운 합의가 필요하겠나”라고 말했다.
우원식 국회의장은 세 명의 헌법재판관 임명은 여야 합의 사안이라고 강조하며 최 대행 결정에 대한 권한쟁의심판 청구를 검토하고 있다. 우 의장은 “국회가 선출한 3인의 헌법재판관 후보는 여야 합의에 따른 것이 맞다”며 “여당이 뒤늦게 입장을 바꾼 것인데, 여야 합의가 없었다는 것은 사실에 기초하지 않은 채 국회의 논의 과정을 왜곡한 것”이라고 말했다.
#‘4월 18일 vs 2월 15일’
민주당은 최상목 대행 탄핵을 유보하며 숨 고르기에 나선 모양새다. 최 대행 결정으로 헌법재판소(헌재)는 75일 만에 ‘6인 체제’에서 벗어나 ‘8인 재판관 체제’를 갖췄다. 심리정족수 7인을 넘기면서 윤 대통령 탄핵심판에 대한 정당성 논란도 해소됐다. 헌재법 23조에는 ‘재판관 7명 이상 출석으로 사건을 심리한다’고 명시돼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심판도 ‘8인 체제’에서 결론을 내린 바 있다. 신임 재판관들은 바로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에 투입돼 심리를 진행할 예정이다.
문형배 헌재소장 권한대행과 이미선 헌법재판관 임기 종료일인 오는 4월 18일까지 윤 대통령 탄핵심판에 대한 결론을 내릴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2024년 12월 27일 헌재는 첫 변론준비기일에서 국회가 제시한 5가지 탄핵 사유를 △12·3 비상계엄 선포 행위 △계엄포고령 1호 발표 행위 △군·경찰 동원 국회 방해 행위 △영장 없이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압수수색 등 4가지로 정리했다. 1월 3일 2회 변론준비기일을 열어 탄핵심판 관련 쟁점과 증거를 정리했다.
민주당은 최 대행의 거부권 행사로 국회에 돌아온 ‘쌍특검법’에 대한 재표결을 추진할 예정이다. 재의결 가결 정족수는 ‘재적 과반 출석에 출석 3분의 2(200명) 이상’이다. 야당 의원 192명에 국민의힘에서 최소 8명이 찬성해야 가결된다. 2024년 12월 12일 내란 특검법은 5명(김예지·김용태·김재섭·안철수·한지아), 김건희 특검법은 4명(권영진·김예지·김재섭·한지아)이 당론을 벗어나 찬성표를 던진 바 있다.
국민의힘은 쌍특검 수용 불가 기류가 지배적이다. 다만 수정안에 대한 논의 가능성은 열어두고 있다. 2024년 12월 31일 권영세 국민의힘 비상대위원장은 “당은 현재 특검을 반대하고 있지만, 위헌성 요소가 제거된 특검은 얼마든지 논의할 수 있다”며 “내란특검법이라는 데 개인적으로 동의하지 않는다. 내란 여부가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내란이라고 규정하는 것은 문제될 수 있다. (쌍특검법에) 헌법에 위배되는 요소가 많이 있다”고 말했다.
국가애도기간 중 정쟁을 내려놓자던 국민의힘은 이재명 민주당 대표를 향한 비판을 꺼냈다. 1월 2일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이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2심 판결은 반드시 2월 15일 안에 나와야 한다”고 촉구했다. 2024년 11월 15일 이 대표는 공직선거법 1심 재판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이라는, 중형을 선고받았다. 현행법에 따라 2025년 2월 15일 전 2심 재판에서 실형이 선고되면 대선 후보로 출마하기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다. 선거법은 1심 6개월, 2심 3개월, 3심 3개월 안에 재판이 마무리되도록 규정하고 있다.
#“애국시민 여러분과 함께 끝까지 싸우겠다”
헌정 사상 처음으로 현직 대통령 체포영장이 발부되며 윤석열 대통령을 겨눈 수사는 최고조로 치닫고 있다. 2024년 12월 31일 서울서부지법 이순형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와 경찰 등으로 구성된 공조수사본부(공조본)가 윤 대통령에게 청구한 체포영장을 발부했다.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에 대한 수색영장도 발부됐다.
윤석열 대통령은 탄핵 절차와 수사가 본격화되자 직접 여론전에 나섰다. 1월 1일 한남동 관저 앞 지지자들에게 편지를 보내며 지지층 결집을 호소했다. 편지에는 “애국시민 여러분, 주권침탈세력과 반국가세력의 준동에 대한민국이 위험하다. 저는 여러분과 함께 끝까지 싸우겠다”는 내용을 담았다.
그 결과, 1월 2일 한남동 관저 앞에선 신자유연대 등 보수 성향 단체를 중심으로 밤샘 집회가 열렸다. 공수처가 윤 대통령 체포영장을 집행하러 온다는 소문이 돌자, 지지자들과 경찰이 마찰을 빚기도 했다. 현장에선 욕설이 난무했다. 윤상현 김민전 국민의힘 의원은 집회에 참석해 지지자들을 독려하며 윤 대통령 엄호에 나섰다.
같은 날 윤 대통령 변호인단은 “경찰에 대한 수사지휘권이 없는 공수처가 경찰 기동대 지원을 받아 윤 대통령 체포·수색을 시도하려는 것은 법적 근거가 없는 위법 행위”라며 “기동대가 공수처를 대신해 영장 집행에 나설 경우 경호처는 물론 시민 누구에게나 체포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여당 내부에서도 윤 대통령의 여론전에 불만의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1월 3일 김상욱 의원은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서 윤 대통령 편지에 대해 “대통령이 마지막 품위를 저버리고 사회 갈등을 조장하고 그 뒤에 숨는 비겁한 모습”이라고 비판했다. 또 집회에 참여한 윤상현 김민전 의원을 향해선 “반헌법적 극우 행동에 동참한 이유가 당리당략 때문이라면 지금이라도 제자리로 돌아와야 한다”고 지적했다.
1월 2일 김용태 국민의힘 의원은 SBS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서 “국민 간의 충돌로 이어질까봐 우려스럽다”며 “보수·진보·중도층도 이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국민이다. 국민을 통합하는 것, 정치 진영 간의 대립이 국민 간의 극단적인 충돌과 소요로 확대하지 않게 하는 것이 대통령의 기본 자세”라고 말했다.
1월 3일 공수처는 경찰의 지원을 받아 윤 대통령 체포영장 집행을 시작했다. 이날 공수처 수사팀 30명과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비상계엄 특별수사단 120명 등 150명 정도가 체포영장 집행을 위해 투입됐다. 하지만 대통령경호처 등의 저지에 가로막혀 5시간 넘게 대치한 끝에 체포영장 집행을 중단해야만 했다. 1·2차 저지선을 뚫고 관저 200m 앞까지 접근했으나, 군인 200여 명이 막아서면서 발길을 돌렸다고 한다.
공수처는 “금일 체포영장 집행과 관련, 계속된 대치 상황으로 사실상 체포영장 집행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 집행 저지로 인한 현장 인원들 안전이 우려돼 오후 1시 30분께 집행을 중지했다”며 “향후 조치는 검토 후 결정할 예정이다. 법에 의한 절차에 응하지 않은 피의자의 태도에 심히 유감을 표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수처는 이날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 집행을 방해한 혐의로 박종준 경호처장 등을 입건했다고 밝혔다.
체포영장 유효기간이 1월 6일까지인 만큼 공수처는 추가 영장 집행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유효기간 내에 체포영장을 집행하지 못하면 영장을 다시 발부받아야 한다. 체포영장 없이, 바로 구속영장을 청구하는 방안도 거론된다. 윤 대통령은 위헌·위법인 12·3 비상계엄을 선포해 국헌문란을 목적으로 군경을 동원해 폭동을 일으킨 혐의(내란 우두머리·직권남용)를 받는다.
국민의힘은 공수처 체포영장 집행에 대해 윤 대통령 변호인단과 똑같은 논리로 적법하지 않다고 비판하며 현직 대통령 체포 시도 자제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반면 민주당은 “즉각 내란수괴 윤석열에 대한 체포에 다시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허일권 기자 onebook@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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