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안규백 주도 미래실용안보포럼 좌장 출신…충암고 후배 윤석열 대선 나오자 ‘우향우’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은 육사 38기에서 진급 선두주자라는 평가를 들었다. 장군이 된 뒤 1차 진급을 놓친 적 없는 김 전 장관은 박근혜 정부 말기인 2016년 9월 군 정기인사에서 대장 1차 진급에 실패했다. ‘이변의 희생양’이 된 것. 중장 3차 진급자였던 동기생이 한미연합사 부사령관으로 임명되면서 대장 계급장을 먼저 달았다.
그 이후 정치권엔 ‘퍼펙트 스톰’이 몰아쳤다. 국정농단 사태로 비롯된 탄핵 정국이었다. 탄핵정국이 끝나고 문재인 정부가 들어섰다. 문재인 정부는 파격 인사를 통해 군 그립감을 강화했다. 2017년 8월 단행된 대장 인사에서 육군 참모총장으로 육사 39기 김용우 전 참모총장을 전격 기용했다. 기수를 건너 뛴 인사에 육사 37~39기가 모두 군복을 벗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김 전 장관은 2017년 11월 30일 중장으로 예편하게 됐다. 군복을 벗은 뒤 김 전 장관은 활동 스펙트럼을 넓게 가져갔다. 김 전 장관은 2018년 4월 창립한 미래실용안보포럼 수석 부회장 직함을 달았다. 미래실용안보포럼은 현실적이며 실용적인 차원에서 북핵문제 등 안보 이슈 해법을 제시하는 것을 목적으로 창립됐다.
포럼 주축이 된 건 안규백 더불어민주당 의원이다. 포럼 창립 당시 안 의원은 민주당 최고위원이었고, 포럼 창립 이후엔 제21대 국회 후반기 국방위원장을 지냈다. 그는 민주당 내 대표적인 ‘국방통’으로 분류된다. 정치권 안팎에선 안 의원이 주축이 돼 창립된 미래실용안보포럼이 국방 분야 민주당 외곽 조직이라는 평가가 나오기도 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김 전 장관은 육사 38기 동기생 ‘절친’ 정재관 군인공제회 이사장과 함께 미래실용안보포럼에 참여했던 것으로 파악됐다(관련기사 육사 38기 업계 요직 ‘콕콕’…김용현 라인 ‘방산 소년단’ 주목). 김 전 장관은 포럼 수석부회장을 지내며 주요 행사 좌장으로 참여했다. 김 전 장관이 진보적 정치 성향을 가졌다는 분석이 잇따르기도 했다.
전직 군 관계자는 “(포럼 창립 후) 민주당 쪽에서 김 전 장관을 서포트했다는 이야기가 나왔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민주당 몇몇 인사들이 김 전 장관을 육군 참모총장으로 추천했다는 말도 나왔다”고 했다. 그러나 충암고 1년 후배이자 문재인 정부에서 검찰총장을 지냈던 윤석열 대통령의 대선 출마 시점과 맞물려 김 전 장관은 미래실용안보포럼을 떠난 것으로 전해진다.
이즈음부터 김 전 장관은 국민의힘 중앙선대위 직속 글로벌비전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윤석열 캠프’ 핵심 인력으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김 전 장관과 함께 미래실용안보포럼에서 활동하던 정재관 군인공제회 이사장도 윤석열 캠프에 둥지를 틀었다. 윤석열 캠프엔 각종 정책 자문단이 있었는데, 그중 외교안보통일 정책자문단에 김 전 장관이 있었다.
세부 분과인 국방정책자문단엔 총 8명의 인사가 있어서 ‘8인회’로도 불렸다. 8인회 명단 최상단엔 김 전 장관과 정 이사장 이름이 있었다. 8인회 중 다섯 번째 인물은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이다. 윤 대통령이 출마 선언한 뒤 국민의힘 안보 분야 핵심 인력으로 동원된 김 전 장관을 두고 정치권과 군 안팎에서 뒷말이 무성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윤 대통령과 김 전 장관이 충암고 1년 선후배인 점을 감안하더라도, 상당히 갑작스러웠던 노선 변경으로 회자된다”면서 “다만 김 전 장관 입장에서 보면 훨씬 더 핵심에서 활동할 수 있는 윤석열 대통령 쪽 줄을 잡는 것이 합리적인 판단이었을 수 있다”고 해석했다.
‘윤석열 캠프’로 들어간 김 전 장관은 ‘예비역 총사령관’이라는 별칭을 얻기도 했다. 윤 대통령이 당선된 뒤엔 대통령 경호처장으로 임명되면서 사실상 군 실세로 자리매김했다. 윤석열 정부가 역대 전례 없는 ‘3연속 중장 출신 국방장관 임명’을 강행한 이면에도 김 전 장관 입김이 적지 않았을 거란 말이 나온다.
전직 군 장성급 관계자는 “장군들이 예편을 하게 되면 크게 두 가지 부류가 있다”면서 “일을 마치고 휴식을 취하는 타입과 발 빠르게 새로운 일터를 찾아 떠나는 타입”이라고 했다. 이 관계자는 “김 전 장관은 후자의 길을 선택했는데, 구직형 예비역 장성으로는 최적화된 인물처럼 보인다”고 했다. 이어 “김 전 장관은 보수 정부에서 진급 불이익을 받은 뒤 중장으로 전역했는데, 본인 생각으론 ‘내가 대장보다 못한 게 없다’고 자부할 수 있다. 그런 자격지심이 윤석열 정부 군 관련 인사에 적지 않은 나비효과로 작용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김 전 장관은 중장 출신으로 예편한 뒤 ‘구직형 예비역’으로 활발하게 활동하다 윤석열 대통령과 의기투합했다. 대통령실 경호처장, 국방부 장관 등을 역임하며 군 실세 위상을 자랑했다. 그러나 12·3 비상계엄 사태로 그가 쌓아 온 모든 것이 무너질 위기에 처했다.
앞서의 전직 군 관계자는 “김 전 장관은 ‘하라면 한다’는 리더십으로도 유명했다”면서 “어찌 보면 윤석열 대통령과 비슷한 점이 많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김 전 장관이 전역 이후 갈지자 행보를 보인 것도, 비상계엄 키맨으로 떠오른 것도 그런 성향이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면서 “이념보다 일자리가 중요한 ‘예비역 정치군인’의 그림자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지적했다.
김 전 장관 전역 후 행적과 관련해 정치평론가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 교수는 “국방이라는 굉장히 중요한 분야 고위직 장성 출신이 공사를 구분하지 못하고 사익을 추구한 케이스로 볼 수 있다”면서 “퇴직을 했더라도 ‘생계형’처럼 움직인다는 것은 철학과 군인정신이 부재한 것”이라고 바라봤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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