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경주·광주공항도 콘크리트 위 로컬라이저 설치…“잘 부서지게” 공항공사 명시 불구 더 견고해져
문제는 콘크리트 둔덕이 국내 다른 공항에도 존재한다는 점이다. 여수공항, 포항경주공항, 광주공항에도 로컬라이저가 콘크리트 둔덕 위에 설치됐다. 공항시설 관리·감독 최종 주체인 국토교통부 책임론이 불거지는 이유다. 국토교통부는 콘크리트 둔덕 안전성 검토가 미흡했다는 점을 인정했다. 그러면서도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되풀이하고 있다.
국토부는 콘크리트 둔덕이 공항안전운영기준을 위반했다는 지적에 대해 “운영기준은 2010년부터 적용된 만큼 2007년 무안공항 건설 당시엔 문제가 없었다”고 해명했다. 국제민간항공기구(ICAO)는 활주로 끝에서 300m 이내에 설치하는 시설은 부러지게 쉽게 만들어야 한다고 권고하고 있다. 2010년 시행된 국토교통부 공항안전운영기준에도 같은 내용이 담겼다.
그럼에도 국토부 해명은 책임 회피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무안공항 콘크리트 둔덕은 2023년 보강공사로 더 견고해졌기 때문이다. 여수공항, 포항경주공항, 광주공항 콘크리트 둔덕도 2023년 계기착륙시설 현대화사업이 진행되면서 보강공사가 이뤄졌다. 계기착륙시설은 로컬라이저 등 항공기 착륙을 돕는 시설을 통칭하는 용어다.
여수공항과 포항경주공항은 무안공항과 마찬가지로 보강공사를 거쳐 콘크리트 둔덕이 더 단단해졌다. 보강공사 물량내역서에 따르면 참사 여객기가 착륙한 무안공항 19번 활주로 로컬라이저 기초 보강공사에선 기존 콘크리트 구조물 4.45㎥를 깬 뒤 철근 콘크리트 52.92㎥를 타설하는 작업이 계획됐다. 철근 콘크리트 52.92㎥는 약 127톤(t)이다.
여수공항 17번 활주로 로컬라이저 기초 보강공사에선 기존 콘크리트 구조물 27.92㎥를 깬 뒤 철근 콘크리트 61.33㎥를 타설하는 작업이 계획됐다. 여수공항 35번 활주로 로컬라이저 기초 보강공사에선 철근 콘트리트 59.77㎥ 타설 작업이 계획됐다. 무안공항보다 13~15% 많은 143~147t 콘크리트가 여수공항 로컬라이저 아래 자리한 셈이다. 포항경주공항 10번 활주로 로컬라이저 기초 보강공사에선 기존 콘크리트 구조물 13.96㎥를 깬 뒤 철근 콘크리트 53.85㎥를 타설하는 작업이 계획됐다.
광주공항은 유일하게 보강공사 이후 콘크리트 양이 줄도록 계획됐다. 하지만 보강된 콘크리트 양은 100t 이상으로 절대 적지 않았다. 보강공사 물량내역서에 따르면 광주공항 4번 활주로 로컬라이저 기초 보강공사에선 기존 콘크리트 구조물 65.8㎥를 깬 뒤 철근 콘크리트 43.48㎥를 타설하는 작업이 이뤄진다. 철근 콘크리트 43.48㎥는 약 104t이다. 광주공항 로컬라이저 보강공사는 2024년 시작돼 아직 완공되지 않았다.
국토부 산하 공기업 한국공항공사가 로컬라이저 보강공사 설계 용역업체를 선정한 과정에도 의문이 제기된다. A 사는 2021년 4월 포항경주공항과 광주공항 로컬라이저 설계 용역 입찰에서 1순위로 선정됐다. 2순위는 B 사였다. 그런데 A 사는 최종 낙찰에 실패했다. 적격심사 종합평점 기준에 미달했다.
한국공항공사는 2021년 5월 초 다시 입찰 공고를 냈다. 응찰한 업체가 없어서 유찰됐다. 그러자 한국공항공사는 공고를 다시 내는 대신 2021년 5월 말 A 사와 수의계약을 체결했다. 한 달 전 적격심사에서 떨어진 A 사와 수의계약을 맺은 셈이다.
앞서 A 사는 2019년 4월 여수공항 로컬라이저 개량 설계 용역 입찰에도 참여했다. 하지만 입찰가격이 하한선에 미달해 고배를 마셨다. 여수공항에선 B 사가 사업자로 선정됐다. B 사는 2020년 3월 무안공항 로컬라이저 설계 용역 입찰도 따냈다.
로컬라이저 보강공사 설계용역은 물론 본사업 용역 공고에선 “콘크리트 둔덕이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국토부 입장과 배치되는 대목이 여러 곳 포착됐다. 한국공항공사는 “계기착륙시설 설계는 국내법 및 국제법 등 최신의 설치 기준을 충분히 검토한 후 공항안전운영기준에 부합하도록 설계해야 한다”며 “장비 안테나 및 철탑, 기초대 등 계기착륙시설 설계 시 Frangibility(부서지기 쉬움)를 고려해 설계하여야 한다”고 무안, 여수, 포항경주, 광주 등 공항 로컬라이저 개량 설계 용역 과업내용서에 명시했다.
또 한국공항공사는 “(로컬라이저) 안테나 소자를 고정하기 위한 지지대는 항공기 충돌 시 쉽게 넘어가거나 부러지기 쉬운 타입으로 설계 및 제작돼야 한다”고 2021년 3월 무안공항과 여수공항 계기착륙시설 현대화사업 용역 제안요청서에 명시했다.
한국공항공사는 아울러 “안테나 지지물은 스스로 지탱해주는 철재 또는 알루미늄 타워로 돼야 하며 자체 지지 구조물로서 잘 부러지게 만들어져야 한다”고 제안요청서에 명시했다. 로컬라이저 안테나 지지대를 비바람에 흔들리지 않게 고정하려고 콘크리트 구조물에 설치했다는 국토부 해명에 의문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2022년 12월 공고된 포항경주공항과 광주공항 계기착륙시설 현대화사업 제안요청서에도 같은 내용이 담겼다.
여객기 참사 이후 국내외 전문가들은 콘크리트 둔덕이 여객기 참사를 키웠다는 분석을 내놨다. 영국의 항공 안전 전문가 데이비드 리어마운트는 무안공항 콘크리트 둔덕에 대해 “단단한 구조물이 있으면 안 되는 위치”라며 “범죄에 가깝다”고 영국 스카이뉴스 인터뷰에서 지적했다. 미국의 항공 전문가 리처드 레비는 “미국 공항에 로컬라이저가 콘크리트 둔덕에 설치된 것을 본 적이 없다”고 SBS 인터뷰에서 주장했다.
박상우 국토교통부 장관은 1월 7일 브리핑에서 “로컬라이저 구조물은 규정 준수 여부를 떠나 안전을 보다 고려하는 방향으로 신속히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국토부는 콘크리트 둔덕 철거 여부에 대해선 말을 아꼈다. 국토부 관계자는 1월 7일 브리핑에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할지는 전문가들과 논의해봐야 한다”며 “경사를 완만하게 하거나 재시공하는 등 여러 가능성을 열어놓겠다”고 설명했다.
이한경 행정안전부 재난안전관리본부장은 1월 9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 모두발언에서 “모든 항공사를 대상으로 둔덕 형태 로컬라이저가 설치된 공항에 대해 특별교육을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아울러 “13개 공항 항행안전시설 특별점검을 완료했다”며 “점검 결과를 면밀히 분석한 후 필요한 부분을 즉시 개선하겠다”고 덧붙였다.
남경식 기자 ngs@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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