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신문은 이들 중 무안공항 근방 전남 신안군에 세워질 '흑산공항' 건설 논의 과정을 들여다봤다. 정치 논리가 시민 편의성 및 안전 등보다 앞선 흔적이 뚜렷했다. 심지어 '주민들은 찬성한다'는 여론도 왜곡된 정황이 엿보였다. 다른 지방 신공항들 추진도 이와 비슷하게 전개됐을 가능성이 없지 않다.
#잇단 안전우려, 끝내 대책 못 찾아
서남권 청정해역인 신안군 소재 흑산도는 '다도해 해상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섬이다. 아름다운 생태 환경으로 '천혜의 자연' 지역으로 불린다. 정부는 이 섬에 흑산공항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애초 흑산공항은 2016년부터 환경부 국립공원위원회에서 사업타당성 등 심의를 받았다. 그러다 2018년 사실상 무산됐다. 하지만 2023년 2월 환경부가 돌연 흑산공항 부지만 국립공원에서 해제했다. 이로써 흑산공항은 심의 없이도 건설이 가능해졌다.
문제는 흑산공항이 안전성과 경제성 등을 담보할 수 있는지 여부다. 환경·시민단체들은 줄곧 부정적 시각을 드러내 왔다. 일요신문은 국립공원위원회의 옛 심의·회의록 등을 입수했다. 이에 따르면 흑산공항은 안전 우려가 매우 큰 데다, 사실상 이를 보완할 대책마저 거의 없다.
2018년 2월 환경부는 국토교통부 산하 서울지방항공청에 흑산공항 건설 관련 각종 사항들을 보완하라고 요구했다. 경제적 타당성, 조류충돌 가능성 및 공항입지 대안 검토 등을 거론하며 "각종 산정치의 정확성과 현실적이고 합리적이면서도 근거가 있는 검토를 실시해 그 결과를 제시해 달라"고 주문했다.
항공청은 700쪽 가까운 보완서를 제출했다. 항공청은 △국방부·해양수산부·문화체육관광부 등과는 이미 협의가 이뤄졌으며 △공항 건설로 흑산도 관광수익 증대가 예상되고 △공사에 따른 농업권 등의 손실은 없거나 적다는 전망을 내놓았다. 그러나 항공기와 인명 피해가 예상되는 '조류충돌' 우려만큼은 대안을 마련하지 못했다. 오히려 "분석 기법에 따라 조류충돌 심각성 결과는 다르다"면서도 "갈매기류·오리류·가마우지류 등은 공통되게 심각성이 높다고 조사됐다"고 했다.
이에 항공청은 철새 등의 '대체 서식지' 마련에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그렇지만 정작 '국내·외 조류 대체서식지 조성사례 분석결과'에서는 성공 사례를 한 곳도 제시하지 못했다. 을숙도(부산), 안산, 김포 등의 사례를 소개하면서도 '성공여부'란은 전부 '실패' 혹은 '불명확'으로 기재했다.
#조류, 날씨, 공항, 기체…총체적 문제
2018년 8월 이를 확인한 국립공원위원회는 대체로 부정적 판단을 내렸다. 환경·경제·안전 3개 부문 별도 심의를 열고 흑산공항의 더 많은 위험 요소들을 지적하기도 했다. 각 분야 전문가와 주관위원 및 사업자 측이 참석한 자리였다.
이들은 항공청이 밝힌 '조류충돌 보완계획'을 놓고 "흑산공항 부지 인근에서 이동하는 철새의 종류와 경로에 대한 조사와 분석부터 미흡했다"고 지적했다. 각각 △철새·멸종위기조류 현황·이동경로 파악 부족 △대체 서식지 조성해도 철새 이동경로 못 바꿔 조류충돌 위험 감소 기대 어려움 △대체서식지가 사업으로 훼손되는 지역 대비 4.3~23.5%에 불과해 규모도 불충분하다는 등의 의견이 나왔다.
국립공원위원회는 이 밖에 활주로와 항공기 등 또 다른 안전 우려도 드러냈다. 활주로에 '최대이륙중량'(MTOW)을 적용한 길이가 산정되지 않았다고 했다. 실제 흑산공항 활주로는 무안공항(2800m)보다도 무려 1600m 짧은 1200m로 설계됐다. 물론 흑산공항은 80인승 소형기 전용이지만, 이를 감안해도 너무 짧다는 분석이었다. 활주로 시뮬레이션 분석도 미진하다고 봤다. 엔진 꺼짐 등 안전사고 발생에 관한 조건 검토가 없었고, 입력 데이터와 시뮬레이션 조건 설정 등도 불명확하다는 것이었다.
또 흑산공항은 민간사업자가 '시계비행'으로 정기운송사업 면허를 취득해야 운항이 가능토록 지어진다. 시계비행은 조종사가 항공기 내부 계기가 아닌, 바깥 기상상태와 구조물 등을 육안으로 확인해 조종하는 형태다. 자동이 아닌 '수동 착륙'을 한다는 의미다.
국립공원위원회에서 항공 전문가들은 "시계비행을 해야 하는 흑산공항은 안개에 취약한 지역"이라며 "이를 고려한 운항 영향 예측과 대책 등이 미흡하다"고 판단했다. 특히 안개는 오전에 심한데, 이때 운항을 못하면 공항의 경제성도 장담할 수 없다.
#반대 주민에 '압박'…"찬반토론 의미없다"
국립공원위원회는 그 무렵 흑산공항 주민 의견청취 회의도 열었다. 여기에는 군의원 10명, 이장 12명, 주민 10명이 참여했다. 이들 중 흑산공항 건설 찬성은 22명, 반대는 10명으로 나타났다. 군의원·이장들이 찬성, 주민들이 반대했다고 전해졌다. 숫자만 보면 찬성이 반대의 두 배를 웃돌았으나 특이점이 있었다. 찬성 측이 반대 측을 압박한다는 의혹이었다. 회의록에는 아래 문구가 기재됐다.
※(진행 관련 참고)신안군 흑산공항추진단장과 이장 등 약 10여 명이 오전 10시 회의에 참석하는 반대 측 주민을 확인하겠다며 기자를 대동하고 조류연구센터 앞에서 대기, 참석자를 확인(촬영·야유 포함)하고 9:55에 퇴장하는 등 의견이 다른 주민에 심리적 압박 시도.회의록에 따르면 찬성 측은 주로 아래와 같은 의견을 피력했다. 관광 수익 기대감이 대부분이었다.
○주민도 주민이지만, 공항 주목적은 관광객 유치. 공항 생기면 중국보다 흑산도에 오는 관광객이 더 많아질 것.반대 측은 아래처럼 바라봤다. 공항 건립의 절차적 정당성은 물론 경제성 등에도 의문이 컸다.
○철새들은 흑산도가 아닌 장도로도 갈 수 있음. 흑산항 근처 갈매기들도 근래 다물도로 옮겨 가고 있어 조류충돌 위험은 과한 걱정에 불과.
○정기 항공 노선 있으면 아플 때 미리 육지에 나갈 수 있음. 닥터헬기는 야간운행이 안 됨.
○급할 때 이동권이 자유롭고, 주민들의 이동 방법 선택은 당연한 권리임.
○현재는 노년층 버스 관광이 많아 수익 한계. 원하는 시간에 오갈 수 있는 비행기로 관광 용이하게 해야 함.
○시계비행 안전성은 국토부에서 더 연구할 필요가 있다고 봄.
○주민 삶과 직결된 사업인데 소통·협의 없이 신안군과 몇몇 특정인 중심으로 진행. 항공청의 사업 설명도 들어 본 적 없음.일요신문이 만난 흑산도 주민들 가운데선 공항 설립에 반대하는 쪽이 많았다(관련기사 [르포] 버드스트라이크 말고도…전남 신안 흑산공항 안전비행 '안갯속').
○국립공원위원회는 법대로 심의해야 함. 숫자가 많은 쪽 의견에 좌우되는 찬반토론회는 의미 없다고 생각함.
○신안군 주민들이 공항건설에 찬성한다는 언론보도는 의문. 주민으로서 체감 못함.
○현재 5000원이면 (배 타고) 목포에 가는데, 고령자들이 고비용으로 비행기 타고 외지 오갈 수는 없는 일. 여객선을 현대화해야 함.
○지역에 항공수요만큼의 관광객도 없음. 훗날 공항 폐쇄하면 주민만 피해.
○대봉산(흑산공항 부지)은 지형적으로 태풍 등 자연재해 막아주는 역할. 없어지면 일대 마을 어업활동 망가질 수 있음.
#수년 논의했는데…한순간 '와르르'
2016년부터 흑산공항 관련 논의를 시작한 국립공원위원회는 이 같은 사정들을 종합해 약 2년이 지난 2018년 6월, 7월, 9월 연달아 흑산공항 관련 심의 보류를 결정했다. 사실상 추진 무산이었다.
이 과정에서 박천규 당시 환경부 차관이 감금되는 일도 벌어졌다. 2018년 9월 국립공원위원회 회의가 끝난 직후 박우량 신안군수가 박 차관과 따로 대화하겠다며 회의실로 다시 들어갔다. 그러자 신안군 관계자들이 집기로 출입문을 막았다. 환경부와 신안군 공무원들 사이 고성이 오가며 경찰이 출동했다. 이른바 '박 차관 감금사건'은 당시 여러 언론에 보도됐다. 그 피해는 애꿎은 신안군 주민들 몫이었다. 마치 주민들 탐욕으로 벌어진 사건처럼 곳곳에 묘사된 탓이었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2023년 1월. 국립공원위원회는 돌연 흑산도 내 흑산공항 부지만 다도해해상국립공원 공원구역에서 제외하기로 의결했다. 이제 국립공원위원회 심의 없이도 공항 건설이 가능해진 것이다. 이처럼 결정된 배경에 환경·안전성 등에 대한 고려는 없었다. 아래는 당시 국립공원위원회 회의록 일부다. 참고로 이때 심의안건은 흑산공항 관련 내용 외에도 여럿이었다.
○○위원 : 흑산공항은 공원시설로서 오래 논의해온 사안임. 이번 상정은 잘못임. 그간 논의해온 역사를 무시해선 안 됨. 흑산공항은 별도 안건으로 상정해야 함.정부와 전남·신안군 등 지자체는 2028년 흑산공항 개항을 목표로 하고 있다. 사업비는 애초 1835억 원에서 6700억 원으로 3배 이상 늘었다고 알려졌다. 50인승 항공기 전용으로 활용하려다 80인승으로 변경된 영향 등이 반영됐다고 전해졌다.
○○위원 : 과거와 이번은 경우가 다름.
○○위원 : 신안군이 이 부지를 (국립공원에서) 해제하려는 건 흑산공항 때문임. 따라서 신안군의 요청 수용은 흑산공항 설치 허가와 다름없음.
○○위원 : 흑산공항은 '국토안보' 측면에서도 건설 필요성이 있음.
○○위원 : 우리 위원회는 흑산공항 사업 여부를 결정할 권한이 없음.
○○위원 : 이대로 진행해선 끝나지 않음. 표결을 제안함.
※표결 결과 : '흑산공항 부지 국립공원 해제' 원안 가결.
광주·전남환경운동연합은 1월 6일 성명을 내고 흑산공항 건설 전면 재검토를 촉구했다. 이들은 "흑산공항의 조류충돌 확률은 통계상 무안공항과 비슷하거나 높다고 예상된다"며 "국립공원 일부를 해제하고 공항을 건설하는 행위는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사례로 상식적이지 않다"고 규탄했다.
주현웅 기자 chescol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