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지법 해남지원 형사1부(지원장 박현수)는 1월 6일 열린 재심 선고 공판에서 “김 씨에 대한 공소사실은 범죄의 증명이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2000년 3월 김 씨가 구속된 지 24년 10개월, 2015년 11월 재심 개시가 결정된 지는 9년 2개월 만이다.
#직접 증거 없이 확정된 유죄
사건은 2000년 3월 7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수사 기록에 따르면 사건 당일 김 씨 아버지는 자택에서 6km쯤 떨어져 있는 전남 완도의 한 버스 정류장 도로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외상 흔적은 없었으나 부검 결과 혈중알코올농도 0.303%와 수면유도제 성분(독실아민)이 검출됐다. 사실상 가장 역할을 한 김 씨는 남동생과 여동생이 있다. 이복동생들이지만 친형제처럼 잘 지냈던 것으로 알려졌다.
수사기관은 과거 아버지에게 성추행을 당한 김 씨가 앙심을 품고 아버지를 살해했다고 단정 지었다. 사건이 발생하기 2개월 전인 2000년 1월, 김 씨가 고모부로부터 이복동생이 아버지에게 성추행을 당했단 이야기를 들었고 어린 시절 자신도 아버지에게 그런 일을 당한 사실을 떠올린 김 씨가 아버지에게 수면제를 탄 술을 먹여 살인하기로 결심했다는 것이다. 김 씨가 사망한 아버지 명의로 8개의 상해보험을 가입한 사실도 유죄의 증거가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다음은 김 씨가 2000년 당시 국선변호사에게 쓴 편지의 일부다.
고모부에게 속았고, 일이 뭔가가 잘못 된 거라고 느꼈을 때 저는 혼자였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고 혹시 고모부 말이 사실이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전전긍긍하며 시간만 흘러갔습니다. ‘설마 정말 아무 짓도 안 한 사람을 유죄 판결 할까’ 하는 생각이 강했습니다.재판에 넘겨진 김 씨는 무죄를 호소했다. “‘남동생이 아버지를 죽인 것 같다’는 고모부의 말에 자신이 동생 대신 감옥에 가기 위해 감옥에 가겠다고 했을 뿐 아버지를 살해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김 씨를 처음 신고한 것도 그의 고모부였다.
당초 이 사건 유죄 인정의 유일한 증거는 사건 직후 김 씨가 한 자백뿐이었다. 김 씨가 아버지에게 수면제를 먹였다거나 살해 후 거리에 버렸다는 직접 증거는 없었다. 수사기관이 지목한 8개의 보험 중 3개는 이미 해지된 상태였다. 당시 미성년자였던 두 동생들이 아버지의 사망 보험금을 받기 위해선 수년 전 집을 떠난 새어머니와 연락이 닿아야만 했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1심 재판부는 김 씨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고 2000년 8월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사건 발생 5개월 만이었다. 이듬해 대법원도 같은 형을 확정했다. 그럼에도 김 씨는 흔들리지 않았다. 24년 10개월의 수감기간 동안 무죄를 주장하며 노역을 거부하고 독거실에서 지냈다.
언론과 시민단체, 법조인들이 사건에 대한 의문을 지속적으로 제기했다. 사건 발생 15년이 지난 2015년 11월, 대한변호사협회의 도움으로 재심 개시가 결정됐다. 법원은 경찰이 영장 없이 압수수색하고 현장검증을 한 점, 압수수색에 참여하지 않은 경찰관이 조서를 허위로 작성한 점 등을 강압 수사라고 판단해 청구를 인용했다. 다만 검찰의 불복으로 재심 재판은 2019년이 돼서야 시작할 수 있었다.
“나도 (아버지를) 지켜줘야죠. 의리는 있어야죠. 딸인데.”
김 씨가 박준영 변호사에게 한 말이다. 독거실에 있으면서도 꾸준히 무죄를 주장했던 이유는 아버지 때문이었다. 김 씨는 박 변호사에게 “안에서 목을 매달아 죽고 싶었지만 불쌍한 아버지의 억울함을 밝혀야 했다”고 말했다. 장애인으로서 불쌍하고 힘든 삶을 살아온 아버지가 죽어서까지 입게 된 불명예를 딸인 자신이 벗겨주고 싶었다는 것이다.
#“약 복용 흔적도, 성적 학대도 인정 어려워”
재판은 다시 시작됐다. 쟁점은 김 씨의 범행 동기와 수면제 투여 여부, 자백의 유죄 증거 능력과 강압·불법 수사 등이었다. 박준영 변호사는 “김 씨가 아버지를 살해했다는 직접 증거는 없고 나중에 스스로 번복한 자백과 관련자 진술뿐이다. 당시 수사 과정에서 확보된 증언과 진술은 새롭게 밝혀진 진실과는 거리가 멀다”고 했다.
그리고 지난 6일 법원은 사건 발생 25년 만에 김 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심 1심 재판부는 “부검 당시 피해자의 위장 내에는 가루든 알약이든 많은 약을 복용한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며 “사망 당시 피해자의 혈중알코올농도가 0.303%의 고도 명정상태(운동장애·혼수상태 가능)였던 점을 고려하면 그것이 독립적인 사망 원인이 될 수도 있다”고 판시했다.
사건 초기 김 씨의 자백에 대해선 법정에서 이를 부인했으므로 공판중심주의에 따라 유죄의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사건 당시 피고인의 남동생이 용의자로 의심받고 있었고 ‘가벼운 형을 받을 것’이란 친척의 말을 듣고 동생을 보호하기 위한 목적에 따른 것으로 볼 여지가 충분하다”고 했다. 김 씨의 초기 진술은 경찰의 강압적 수사에 의해 이뤄졌을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검찰이 범행 동기라고 추정한 아버지의 성추행 역시 법원은 “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김 씨 및 여동생에 대한 성적 학대가 있었다고 인정하기 부족하다”고 봤다.
‘김재훈의 딸 김신혜 무죄’
1월 6일 장흥교도소 앞에는 김신혜재심청원시민연합 회원들이 준비한 플래카드가 펼쳐졌다. 이날 오후 4시 20분쯤 출소한 김 씨는 플래카드를 보고 “잘못된 일을 바로 잡는 게 이렇게나 힘든 일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며 “아버지가 고생만 하다가 돌아가셨는데, 끝까지 못 지켜드려 죄송하다. 이런 일은 더 이상 반복되지 않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씨의 옆에는 ‘낙동강변 살인사건’으로 억울한 옥살이를 한 장동익 씨와 ‘화성연쇄살인사건’의 누명을 썼던 윤성여 씨가 자리했다. 두 사람 모두 출소 후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 받았다.
사건을 변호했던 박 변호사는 선고 직후 취재진을 만나 “24년 동안 일관되게 무죄를 주장해 온 그 당사자의 진실의 힘이 무죄의 가장 강력한 증거였다”며 “출소 후 몸과 마음의 상처 회복에 공동체가 함께 노력하길 바란다”고 했다. 박 변호사는 수차례 선임과 해임을 반복하면서도 김 씨를 변호해왔다.
수사 과정에서의 위법성이 명백하게 드러나면, 김 씨는 해당 수사관들에 대한 위자료 및 손해배상 청구를 할 수도 있다. 불법 체포나 직권남용 등 형사상 불법 행위는 공소시효가 만료돼 처벌이 어렵지만 민사상 소멸시효는 재심에서 승소하는 순간 부활하기 때문이다.
이번 재판은 김 씨에게 최초 무기징역이 선고된 1심에 대한 재심으로 검찰의 항소 여부에 따라 2심이 진행될 수도 있다.
최희주 기자 hjo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