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의 상황은) 마치 1952년 부산정치파동을 본 외국 언론이 ‘한국 사회에서 민주주의를 바라는 것은 쓰레기통에서 장미꽃이 피기를 바라는 것과 같다’라고 말한 것과 비슷하다.”
김종인 대한발전전략연구원 이사장(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사회·경제적 위기에 놓인 우리나라의 현 상황에 대해 이같이 진단했다.
정운찬 이사장이 이끄는 사단법인 동반성장연구소가 1월 8일 오후 4시 서울대 호암교수회관 마로니에홀에서 올해 첫 동반성장포럼을 개최했다. 이번 제115회 포럼은 최근 벌어지고 있는 국가 위기의 상황에서 국가 원로의 지혜를 듣기 위해 마련됐다. 연사로는 김종인 대한발전전략연구원 이사장이 ‘2025 : 세계와 한국’을 주제로 강연을 진행했다.
김종인 이사장은 독일 뮌스터대학교 경제학 박사를 취득하고 서강대 경제학 교수, 보건사회부 장관, 대통령비서실 경제수석을 역임했다. 5선 국회의원과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으로 활동했다. 현재 대한발전전략연구원 이사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연단에 선 김 이사장은 재선에 성공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이 집권할 미국과 이로 인한 세계경제 질서를 분석했다. 그는 “트럼프가 관세 정책으로 중국을 압박하겠다고 하는데 현실적으로 중국과 미국의 상호 의존 관계가 지난 30년 동안 너무나도 밀착이 돼 있다. 중국의 상품 없이는 미국도 생활하기 힘든 상황”이라며 “트럼프는 MAGA(Make America Great Again: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를 한다고 하는데, 단기적으론 미국 성장률이 높게 올라갈지 몰라도 중장기적으로 지속되기는 굉장히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만 트럼프 당선인이 유동적인 사람이므로 이를 유의할 필요가 있다는 점도 지적했다. 김 이사장은 “트럼프는 전형적인 비즈니스맨”이라며 “정치적 사고보다도 경제적으로 사업하는 역량이 뛰어나기 때문에 모든 것을 사업가적으로 판단하기 때문에 자신이 생각한 정책을 끌고 가다가도 상황이 바뀌면 얼마든지 바꿀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 따라서 우리나라와 같은 관계국은 순간적인 정책에 순응하기보다 냉철한 머리를 가질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또, 미국이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960년 39%에서 2024년 26%까지 내려간 점을 언급하며 “트럼프가 이런 국민적 불안감을 자극하여 대선에서 승리했지만 겸손했던 자세를 되찾지 않으면 MAGA는 실현되기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현재 우리나라 경제 상황에 대해선 “일본의 잃어버린 30년 초입에 있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김종인 이사장은 “현재 한국은 양극화, 저출산, 초고령 사회라는 문제에 직면했는데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라고 지적하며, “내가 보기엔 지금 한국은 꿈속에 살고 있는 나라 같다. 1980년대 일본이 최고라고 자랑스러워하던 일본처럼 K-팝 K-문화에 취해서 환상 속에서 살고 있는 것 같다”라고 우려했다. 현재 대한민국 모습이 저출산, 초고령화 사회가 시작되고 경기침체가 이어져도 경기 순환의 일환으로 안위하다 잃어버린 30년을 맞은 일본 모습과 비슷하다는 것이다.
결국엔 ‘정치권 문제’라고 지적한 김 이사장은 “세계 경제 변동 속에서 우리나라가 제대로 적응하려면 내부적으로 경제 기반을 단단하게 다져야 하는데 지금은 그렇게 되지 않고 있다”며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선포로 국제사회에서의 한국의 경제적, 정치적 위상이 떨어질 대로 떨어져 버렸다”고 비판했다.
이어 “대통령은 자신의 행동이 우리나라의 경제와 사회, 국제적인 상황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심사숙고해야 하는데 (윤 대통령의) 극단적인 결정이 한국 경제를 굉장히 또 후퇴시키고 이 때문에 새로운 조정을 해야 할 절체절명의 시기를 놓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고 말했다.
1987년 개헌 당시 국회 개헌특별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던 김 이사장은 이날 포럼에서 개헌에 대한 의견도 내비쳤다. 그는 “87년 헌법 개정을 할 때에는 사람들 관심이 직선제에만 있었다. 민주주의가 발전하기 위해서 헌법 체계가 어떻게 돼야 하는진 관심이 없었다”며 “현행 대통령제는 과거 박정희 대통령의 유신체제를 계승하여 대통령에게 너무나 막강한 권한을 부여하고 있다. 이를 분산할 수 있도록 정치 시스템으로 바꿔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87년 체제'란 1987년 6월 민주화운동으로 개정된 9차 개헌 이후 출범한 대한민국 정부 체제를 말한다. 1987년 전두환 대통령의 4·13 간선제 호헌 조치에 반대하며 직선제를 요구하는 움직임이 나타났다. 노태우 당시 민정당 대표가 6·29 선언에서 개헌을 약속하면서 현재의 5년 단임 대통령제가 도입됐다.
한편 동반성장연구소는 2012년 6월 정운찬 전 국무총리를 중심으로 ‘함께 성장하고 공정하게 나누어 같이 잘사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설립됐다. 2013년 5월부터 2025년 1월까지 총 115회 동반성장포럼을 개최하는 등 다양한 동반성장 활동을 추진하고 있다. 2024년 4월과 9월에는 젊은 세대를 대상으로 동반성장 청년포럼을 개최했고, 8월에는 전국 고등학생과 대학생을 대상으로 동반성장 논문대회를 개최했다.
김종인 “부정선거는 여당이 하는 것, 상식에 맞지 않다”
제115회 동반성장포럼에선 김종인 대한발전전략연구원 이사장의 현 국가 위기 상황에 대한 강연과 참석자들의 질문 및 토론도 1시간가량 진행됐다.
김종인 이사장은 중소기업이 처한 현실에 대한 해결 방법을 묻는 질문자에게 “지금의 양극화 문제를 해결하려면 일단 중소 제조업에 종사하는 근로자들 임금이 올라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이들의 생산성이 늘어야 하고 그래야 경쟁력이 올라가는데 대통령과 정치인들이 중소 제조업 경쟁력 향상에 전력을 다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이어 “대기업 재벌의 지배구조가 바뀌지 않으면 현재 우리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주문했다.
현재 정치권에서 벌어지는 갈등에 대한 분석도 이어졌다. 한 질문자가 야당의 2024년 4월 총선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하자 김 이사장은 “상식적이지 않다. 야당은 부정선거를 할 수 없다”고 답했다. 이어 “부정선거는 여당이 하는 것이다. 여당 관리 하에서 선거를 치러 놓고 부정선거라고 해선 안 된다”고 딱 잘라 말했다.
또, 윤석열 대통령을 지칭해 “기본적으로 정치력이 없는 사람이 정치를 하다 보니 이런 문제가 발생한 것”이라며 “윤 대통령 당선 당시 이미 여소야대 국회였다. 그러면 대통령이 다음 선거에선 여당이 과반수를 차지하도록 노력을 하든지, 정치적 리더십을 발휘해 야당과 소통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최희주 기자 hjo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