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시성 대형 병원서 일하는 청소부가 브로커…출생증명서 위조범·산부인과 의사 등 공범 속속 드러나
사건의 전모가 밝혀지게 된 건 우연이었다. 한 살인사건을 조사하던 경찰은 범인의 여자친구가 지난 2022년경 출산했는데, 그 아이의 행방이 묘연하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경찰은 생모가 아닌, 다른 부모 밑에서 아이가 자라고 있는 것을 확인했다. 이 부모는 병원에 돈을 주고 아이를 샀다고 실토했다.
부모가 지목한 병원은 산시성 따퉁에 위치한 제1인민병원이었다. 이곳은 산시성에서 최대 규모의 산부인과 시설을 갖춘 병원이다. 병원 홈페이지에 따르면 총 6개 병동이 있고, 연간 외래 환자는 21만 명 수준이다. 연간 평균 분만량은 1만 2700명으로 따퉁 전체 분만의 40%를 차지한다.
병원 내에서 은밀히 이뤄지는 일이다 보니 경찰은 극도의 보안 속에서 수사를 진행했다. 우선, 앞서의 살인범 여자친구 출산 건을 집중 수사했다. 여자친구가 출산을 했을 때의 나이는 불과 15세였다. 생모는 브로커를 통해 영아 거래를 제안 받았고, 그 대가로 4만 1000위안(812만 원)을 받았다. 아이를 산 부부가 브로커에게 건넨 돈은 6만 8000위안(1400만 원)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브로커가 2만 7000위안을 챙긴 셈이다.
브로커를 추적하던 경찰은 그 존재에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브로커 정체는 산부인과 4층을 담당하는 청소부 왕 아무개 씨였다. 왕 씨가 병원에서 일한 건 20년이 훌쩍 넘었다. 왕 씨에 따르면 원치 않는 출산을 한 사람들에게 접근, 그들에게 아이 구매자를 연결해주며 소개비를 벌었다고 한다.
왕 씨가 가장 최근에 했던 거래는 2024년 11월이었다. 당시 출산을 막 끝낸 생모에게 7만 5000위안(1480만 원)을 줬고, 아이는 구매자에게 건넸다. 왕 씨가 구매자로부터 받은 돈은 10만 5000위안(2080만 원)이었다. 경찰 측은 “아이 성별, 건강 상태 등에 따라 가격이 달랐던 것으로 파악됐다”고 전했다.
병원 안팎에서 왕 씨를 둘러싼 얘기는 공공연하게 나돌았다고 한다. 수많은 불임 부부 모임에서도 ‘브로커 왕 씨’의 존재는 어느 정도 알려져 있었다. 한 40대 여성은 “오랫동안 아이를 갖지 못해 고민하고 있었는데, 친한 의사로부터 ‘제1인민병원 산부인과 4층 왕 씨를 찾아가봐라’는 얘기를 들었다. 하지만 그렇게 큰 대형병원이 돈을 받고 아이를 판다는 사실을 믿기는 어려웠다”고 했다.
왕 씨는 고객들에게 “나는 장사꾼이 아니다. 좋은 일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왕 씨는 스스로를 ‘중매인’이라고 칭했다. 경찰 조사에서 왕 씨는 “결혼을 할 때 중매인은 성사가 될 경우 수수료를 받는다. 나도 중간에서 그런 역할을 했을 뿐”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하지만 경찰 조사에서 드러난 행각으로 보면 왕 씨는 전형적인 장사꾼의 모습이었다. 아이를 사람이 아닌 물건으로 취급했고, 최대한 이익을 많이 남기기 위해 흥정하는 일도 많았다. 경찰 관계자는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는데 미리 예약하는 등, 홈쇼핑에서 거래되는 상품처럼 아기를 다뤘다. 죄질이 나쁘다”라고 했다.
왕 씨를 만나 아이 거래를 상담했던 한 여성 A 씨 사례도 공개됐다. 2024년 11월 3일 A 씨는 지인을 통해 왕 씨를 소개받았다. A 씨 전화를 받은 왕 씨는 “8만 5000위안(약 1680만 원)을 주면 남자아이를 구할 수 있다”면서 먼저 계약금을 보내라고 했다. 계약금을 입금하면 직접 만나 자세한 얘기를 해주겠다고 했다.
간절히 아이를 원했던 A 씨는 계약금을 입금했고, 얼마 뒤 왕 씨로부터 태어날 아이의 초음파 검사 보고서와 산모 건강 상태 등이 적힌 종이를 받았다. 왕 씨는 이를 ‘제품 검사 보고서’라고 칭했다. 산모의 출산일이 11월 14일이었기 때문에 최대한 서둘러 계약을 진행해야 한다는 내용도 전달 받았다.
11월 8일 A 씨는 산부인과 근처에서 왕 씨를 만났다. 약속시간보다 30분 늦게 나타난 왕 씨는 수수한 옷차림에 머리는 백발로, 농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노인이었다. 왕 씨는 표준어를 쓰려고 했지만 말투에서는 지방 사투리가 배여 있었다고 한다. 왕 씨는 이날 A 씨에게 “원래 얘기됐던 남자아이를 다른 고객에게 팔아야 하는 사정이 생겼다”면서 양해를 구했다.
대신 왕 씨는 다른 아이를 소개해줄 수 있다고 했다. 형편이 좋지 않은 집의 부부가 셋째를 가졌는데, 경제적 부담으로 팔기를 원한다는 것이었다. A 씨는 왕 씨 제안을 거절했다. 그리고 계약금을 돌려받았다. A 씨는 “왕 씨가 아이를 마치 물건 파는 것처럼 말해서 기분이 좋지 않았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아이를 사지 않은 것은 잘한 결정”이라고 했다.
왕 씨의 특별한 ‘재주’는 또 있었다. 과거엔 출생증명서를 발급하는 일이 그렇게 복잡하지 않았다. 하지만 여러 부작용이 속출하자 2023년부턴 병원 기록, 산모 얼굴 확인 등 여러 절차를 거쳐야 한다. 돈으로 주고 산 아이의 출생증명서를 받기가 쉽지 않다는 의미다. 출생증명서를 받지 못하면 호적 등록, 복지 혜택, 학교 취학 등에서 어려움을 겪는다.
왕 씨는 아이를 중개해주고 수수료를 받는 것에 그치는 게 아니라 출생증명서에 필요한 작업을 해줄 브로커도 연결해줬다고 한다. 경찰은 “출생증명서 발급이 어려워지자 왕 씨의 수입도 크게 줄었다. 그러자 왕 씨는 출생증명서 발급을 해줄 브로커를 수소문해 찾았고, 이들과 아이 구매자들을 연결해주고 또 돈을 챙겼다”고 했다.
당국은 왕 씨의 범행을 도와준 공범 소탕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미 산부인과 소속의 한 의사가 경찰에 출석, 조사를 받았다. 그는 공문서 위조 혐의를 받는다. 또한 왕 씨를 도운 산부인과 직원들, 출생증명서 브로커 등도 체포할 계획이다.
중국=배경화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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