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탄핵 학습효과, 반이재명 기류 확산 지지층 결집…출구전략 없이 윤과 동조화 땐 동반 몰락 가능성
이러한 전략은 잠룡 후보군들의 보폭을 넓히고 스피커를 키워주는 역할뿐 아니라 ‘반윤’계의 선봉으로 꼽히는 한동훈 전 대표 등판 저지 효과까지 만들어내고 있다는 분석이다. 그러나 윤 대통령 탄핵 심판 및 내란 수사 과정에서 자칫 동반 몰락을 불러올 것이란 우려도 만만치 않다.
#홍준표·오세훈 주도
‘윤석열 지키기’는 홍준표 대구시장과 오세훈 서울시장이 주도하는 양상이다. 홍 시장은 페이스북 글을 통해 특유의 입심을 속사포처럼 쏟아내고 있고 평소 점잖은 오 시장조차 이에 뒤질세라 연일 메시지를 내는 중이다. 법조인 출신이기도 한 둘은 탄핵 국면에서도 의견을 보태고 있다.
홍 시장은 여러 쟁점 사안마다 의견을 내는 것은 물론, 무엇보다 윤 대통령에 대한 적극적인 옹호에 나섰다. 홍 시장은 1월 3일 페이스북 글에서 “대통령 비상 계엄권 남용에는 전 국민이 들고 일어서는데 이재명의 탄핵소추권 남용에는 왜들 침묵하고 있느냐”며 “비상 계엄권 남용으로 나라가 혼란해졌다면 탄핵소추권 남용으로 나라는 무정부상태로 가고 있지 않으냐”고 따져 물었다. 윤 대통령에게 일방적 책임을 물을 수 없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과오에 대해서도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는 의미였다.
그는 또 “(야당의) 대통령 탄핵소추 이외에 28건의 탄핵소추 남용에 이유가 있었느냐”면서 “적대적 공생관계로 나라를 이끈 지 2년 6개월이 되었는데 한쪽은 처벌되어야 한다고 난리고 한쪽은 권력을 잡겠다고 마지막 몸부림을 치고 있다. 이게 정상적인 나라인가”라고 쏘아붙였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중도 민심을 의식한 듯 윤 대통령에 대한 직접적 옹호보다는 이재명 대표를 사정없이 치는 전술을 사용하면서 우회적 지원사격을 하고 있다. 그는 1월 7일 민주당 주축의 탄핵소추단이 탄핵 사유에서 내란죄를 철회한 것과 관련, “이미 국회를 통과한 탄핵소추안을 자의적으로 고치는 것은 헌법을 정치 흥정의 도구로 전락시키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오 시장은 페이스북에 올린 ‘이재명 대선 욕심이 부른 헌정 농단’이라는 글에서 이같이 말한 뒤 “민주당이 내란죄 제외라는 흑수(黑手)를 둔 이유는 하나”라며 “범죄 피고인 이재명 대표의 대선 시기를 앞당기기 위해 어떠한 수단과 방법도 가리지 않겠다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탄핵 정국에서 숨죽여왔던 원희룡 전 국토교통부 장관도 새해가 열리자마자 등판했다. 그는 1월 8일 국민의힘 인천시당에서 열린 신년인사회를 정치 재개 무대로 삼아 이날부터 스피커를 가동하기 시작했다. 원 전 장관은 이날 “(이재명 대표가) 공권력을 갖게 되면 우리가 지금 꾸는 악몽 정도가 아니라 끔찍한 나라가 만들어질 것”이라면서 이 대표를 맹폭했다.
원 전 장관은 이날 “(박근혜 전 대통령) 그때는 탄핵당하면 기다리는 사람이 문재인이었는데 지금은 이재명, ‘아수라백작’이 기다리고 있다”며 이렇게 주장했다. 그는 이 대표를 겨냥해 “성남시장하면서 5조 원짜리 대장동 사업부터, 재판만 열 몇 개 받고 있는 사람, 온갖 국가기관에 거짓말하는 인물”이라고 하면서 “(이 대표가) 대한민국이라는 인사권, 정책, 이권 덩어리, 공권력을 갖게 되면 끔찍한 나라가 만들어질 것”이라고 했다.
국민의힘의 이러한 기류는 노동부 장관에 등용된 이후 윤 대통령 지킴이 역할을 해왔던 김문수 장관을 대선 잠룡에 포함시키는 기현상까지 낳고 있다. 김 장관은 겉으로는 “나는 잠룡이 아니다”라는 취지로 얘기하지만 최근 들어선 존재감을 한껏 과시하고 있다.
그는 1월 6일 정부세종청사 기자실에서 노동부 출입기자단과 만나 “(윤석열 대통령에 대해 이뤄지는 법적 공세가) 너무 가혹하고 심하다”며 “민심이 뒤집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지난 1월 6일의 윤 대통령 체포영장 강제집행 등과 관련해 “현직 대통령인 만큼 기본적인 예우는 갖춰야 하는데 너무 나가는 것 아니냐”며 “일반인에 대해서도 그렇게는 안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여권 주요 잠룡들의 이러한 스탠스는 한때 보수 진영에서 유일한 ‘이재명 대항마’로 여겨졌던 한동훈 전 대표를 밀어내는 결과로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한 전 대표 측근들에 따르면 한 전 대표는 비록 일선에서 물러났지만 복귀 의지가 강한 것으로 전해진다. 정치권에서도 한 전 대표의 대선 출마를 유력하게 점친다.
하지만 친윤계가 당을 장악한 데 이어, 주요 잠룡들마저 윤 대통령과의 동조화 현상을 보이자 한 전 대표가 당에 들어올 영역은 줄어들고 있다. 오히려 지지층 사이에선 한 전 대표의 배신자 이미지가 더욱 강화되는 중이다. 중도 민심을 등에 업고 재기를 꿈꾸며 최근 몸을 풀고 있는 유승민 전 의원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국민의힘 한 초선 의원은 “보수 진영에서 윤 대통령과 함께 가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며 이 때문에 정치 경험이 많은 노장 대선 잠룡들이 이에 편승하고 있다”고 했다. 또 다른 국민의힘 초선 의원도 “윤석열이 좋아서 그러겠느냐. 이재명 집권은 막아야 하는데, 이렇게 속수무책으로 탄핵을 당하면 그럴 수 없다는 절박감 때문일 것”이라고 했다.
#이재명 비토, 지지층 결집
국민의힘 소속 정치인들은 법조인과 고위공무원 출신이 주류를 이루는 만큼 민주당과는 다른 행동 양식을 보인다. 이들은 먼저 치고 나가기보다는 공직자들이 항상 서류를 끼고 있는 것처럼 어떤 종류라도 보고서를 읽고 움직이는 경향이 있다. 돌다리도 두드려 건넌다는 뜻이다. 계엄 정국 이후 숨죽이던 잠룡들이 일제히 윤 대통령과의 거리 좁히기에 나선 것도 여론 지형을 철저히 확인하면서 얻은 결론으로 읽힌다.
최근 여론조사를 보면 이상하리만큼 민주당 지지율은 지지부진하고 국민의힘 정당 지지도는 급상승하는 추세다. 엠브레인퍼블릭, 케이스탯리서치, 코리아리서치, 한국리서치가 지난 1월 6일부터 8일까지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전국지표조사(NBS·표본 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3.1%포인트)에 따르면 1월 둘째 주 국민의힘에 대한 지지도는 32%에 이르렀다. 더불어민주당 지지도는 36%였다.
이런 수치는 현직 대통령 탄핵 소추로 궁지에 몰린 정당의 지지율로는 믿기지 않는 수준이다. NBS 조사는 휴대전화 가상번호(100%)를 이용한 전화 면접으로 이뤄졌고, 응답률은 22.8%에 이르러 다른 여론조사보다 응답률이 매우 높았다. 국민의힘 지지도는 직전 조사인 2024년 12월 19일 집계 결과와 비교하면 3주 사이 6%포인트(p) 상승했다. 더불어민주당 지지도는 36%로, 직전 조사보다 3%p 오히려 내려갔다(자세한 내용은 여론조사기관 또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참조).
복수의 국민의힘 의원들은 계엄 사태 이후 추락했던 여당·대통령 지지율이 지지층 결집으로 인해 회복되고 있다고 안도한다. 윤 대통령 탄핵 밀어붙이기가 사법리스크에 휩싸인 이재명 대표 조기 대선을 위한 꼼수라는 분석이 퍼지면서 지지층이 모였다는 것이다.
탄핵소추 사유에서 민주당이 내란죄를 철회하자 이런 분위기는 더욱 확산됐다. 이 대표 재판이 끝나기 전에 대선을 치러야 한다는 노림수가 반영됐다고 상당수의 국민의힘 지지자들은 생각한다. 여기에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수사 난맥상까지 겹치면서 이탈했던 여권 지지층들이 돌아오고 있다는 게 국민의힘 의원들 판단이다.
국민의힘 미디어특위도 1월 8일 보도자료를 내고 “최근 여론조사들에서 보수와 진보 비율이 크게 벌어져 있지 않고 중도층도 회복세를 엿보이고 있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시간이 지나면서 계엄에 대한 분노가 조금씩 사그라지는 것으로 보이고 보수 결집 현상도 있는 게 분명해 보인다”면서 “조기 대선을 위해 무리수를 두는 ‘반이재명 심리’가 가장 클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이러한 흐름이 1차 체포영장 만료일인 지난 1월 6일 국민의힘 의원 40여 명을 서울 한남동 대통령 관저로 불러들이는 배경으로 작용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날 김기현 나경원 윤상현 조배숙 박대출 김정재 송언석 이철규 임이자 정점식 강민국 권영진 박성민 유상범 장동혁 조은희 김은혜 김장겸 이상휘 임종득 조지연 최수진 최은석 의원 등이 참석했다. 일부 의원들이 관저 부지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도 포착됐다.
신동욱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기자들과 만나 “지도부가 지침을 준 것은 없다”며 “자발적으로 갈 분은 갔다”고 밝혔다. 달라진 상황을 읽고 의원들이 움직였다는 취지다.
이날 관저에 갔던 국민의힘 한 의원은 “요즘은 직접 다니지 않아도 전화기로 지역 여론이 엄청난 양으로 수집되기에 금방 민심 파악이 가능하다”며 “민주당의 입법 폭주·탄핵 난사로 인해 윤석열 정부가 대항권한도 없이 그로기 상태로 몰렸다는 뒤늦은 판단이 국민들에게서 나오고 결국 판 뒤집기가 일어나면서 잠룡들도 여기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묘수일까 악수일까
국민의힘과 잠룡들의 이러한 스탠스가 맞느냐는 데 대해서는 일단 동그라미 의견을 내는 쪽이 당내에서는 훨씬 더 많아 보인다. 이재명 대표와 맞서기 위해서는 2022년 대선의 연장전으로 치러야 한다는 논리다. 당시 ‘정치 신인’ 윤 대통령은 대부분의 예상을 깨고 이 대표를 누르고 대권을 거머쥔 바 있다. 반 이재명 정서가 강한 보수 지지층 정서를 감안할 때 이 전략을 포기할 수 없다는 게 국민의힘 의원들의 한목소리다.
윤석열 대선 캠프에 있었던 한 전직 의원은 “검찰총장 출신 윤석열 후보는 줄곧 이재명의 전과, 대장동 의혹 등을 겨눴다. TV 토론 등에서 이재명 후보가 윤 후보를 압도했음에도 선과 악의 대결로 여겼던 많은 국민들이 윤석열에게 표를 던졌다”면서 “이재명이 다시 대권에 나온다면 국민의힘으로선 또 그렇게 접근할 수밖에 없다. 그런 측면에서 윤 대통령을 버릴 수 없는 것”이라고 했다.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이 대표가 자신에게 불리한 판결로 인해 차기 대선 후보군에서 탈락한다는 시나리오를 감안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긴 한다. 이렇게 되면 계엄 선포를 했던 윤 대통령과 함께 가는 카드는 자멸이 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뒤를 잇는다.
권영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1월 7일 원외 당협위원회 회장단과 오찬 회동을 열었는데 이 자리에서도 현역 의원들이 관저에 간 것 등에 대해 부정적 의견을 피력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런 행동이 중도 정서, 특히 수도권 표를 잠식시키면서 국민의힘이 강조해온 중수청(중도·수도권·청년)으로 나가기 어렵게 만든다는 이유였다.
국민의힘 한 전직 의원은 “윤 대통령과 함께 가는 전략은 지금 여론을 읽고 가는 것이어서 여론으로 먹고 사는 잠룡들로서는 적실성이 있다”면서도 “하지만 상황이 바뀔 것에 대비해 출구도 마련해 놔야 한다. 이를 세우지 못한 채 윤석열 대통령과의 동조화 전략을 몰고 나가면 지금 작전이 묘수가 아닌 악수가 될 것”이라고 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
최경철 매일신문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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