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억, 20억 그리고 50억…양 측 모두 한 번이라도 패소하면 ‘치명상’
1월 10일 오후 서울서부지법 제12민사부에서 빌리프랩과 쏘스뮤직이 민 전 대표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 첫 변론기일이 열렸다. 두 레이블은 각각 걸그룹 아일릿과 르세라핌의 소속사다. 이날 재판에는 양 측 모두 변호인단만이 참석했다.
앞서 빌리프랩은 2024년 5월, 쏘스뮤직은 같은해 7월 민 전 대표를 상대로 명예훼손, 업무방해 및 모욕으로 입은 피해에 대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쏘스뮤직은 지난 2024년 4월 25일 민 전 대표가 첫 번째 기자회견에서 폭로한 '하이브의 뉴진스 데뷔에 대한 훼방 공작'이 허위사실이라고 고소장에 적시했다. △뉴진스 멤버들을 본인이 직접 캐스팅했다고 주장한 것 △뉴진스를 하이브 최초 걸그룹으로 데뷔시킨다고 한 약속을 (하이브 측이) 일방적으로 어겼다고 주장한 것 △쏘스뮤직이 뉴진스 멤버들을 방치했다고 주장한 것 등이 허위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이날 재판에서 쏘스뮤직 측은 "전 국민이 시청할 수 있는 기자회견 중에 근거 없는 말과 모욕성 발언을 했다"며 "(뉴진스 멤버들의) 오디션은 민 전 대표가 캐스팅의 주체가 아니었고 하이브와 쏘스뮤직이 진행했다. 데뷔 과정에서도 민 전 대표의 업무는 브랜딩이었는데 정해진 기한 안에 해야 할 네이밍, 비주얼 콘셉트 등 업무를 차일피일 미뤘던 것"이라고 주장했다. 민 전 대표의 허위 발언으로 쏘스뮤직 소속 걸그룹 르세라핌 멤버들이 '뉴진스의 데뷔를 방해한 그룹'이라는 오명을 뒤집어 쓰면서 극심한 악플에 시달렸으며 광고 계약 등이 무산되는 등 피해를 입었다는 게 쏘스뮤직 측의 입장이다.
반면 민 전 대표 측은 "뉴진스란 그룹의 전체적인 콘셉트 등은 민 전 대표가 기획한 것이고 그의 선택에 따라 멤버가 결정된 것"이라며 "르세라핌을 먼저 데뷔시키면 (하이브 최초 걸그룹으로) 데뷔할 줄 알았던 뉴진스 멤버들과 부모님들은 어떤 심경이겠나. 쏘스뮤직에서 르세라핌이 데뷔한 후 뉴진스가 바로 데뷔하기 힘든 상황인 걸 알고 민 전 대표가 뉴진스 멤버들을 어도어에 데려와 데뷔시킨 것"이라고 맞섰다. 이러한 배경이 존재하는 만큼 기자회견에서의 발언이 허위나 모욕성 명예훼손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빌리프랩도 민 전 대표의 앞선 기자회견 발언을 문제 삼아 소를 제기했다. "빌리프랩이 아일릿을 기획하는 과정에서 뉴진스의 콘셉트, 안무 등을 표절했다"는 발언이다.
이날 소송에서 빌리프랩 측은 "데뷔한 지 얼마 안 된 아일릿에 대해 민 전 대표 측이 '좌표 찍기'(온라인 상에서 비판 여론을 형성하기 위해 특정인 또는 특정사건을 지목하는 것)를 했고, 사실여부를 떠난 발언을 해서 큰 상처를 줬다"라며 "태권도를 예로 들면 품새가 있는데 (형식이) 정해진 품새도 있지만 동작을 하는 사람에 따라 어디에 힘을 주느냐로 평가를 하기도 한다. 걸그룹 안무도 비슷한 동작이 당연히 반복될 수밖에 없고, 각자의 개성을 발휘하는 것이 중요한데 민 전 대표 측은 엉뚱하게 그 동작이 자기 것이라고 주장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민 전 대표의 허위발언으로 인해 아일릿의 소셜미디어(SNS) 팔로어 수가 줄었고, 앨범(음원) 발매 성적이 하락했으며, 광고 계약 등이 무산됐다고 주장했다. 이 같은 업무방해로 인해 20억 원에 이르는 손해액을 민 전 대표 측이 배상해야 한다는 취지다.
반면 민 전 대표 측의 변호인은 "뉴진스가 데뷔한 8개월 이후에 아일릿이 데뷔했는데 아일릿이 데뷔한 직후부터 대중으로부터 계속해서 표절 의혹이 제기됐다"며 부당한 '좌표 찍기'가 아닌 '객관적인 사실'임을 강조했다. 또 아일릿이 결성되기 빌리프랩 측이 뉴진스의 기획안을 제공 받으면서 두 기획안이 똑같았다는 하이브 내부 제보가 있었음을 지목하기도 했다. 민 전 대표 측의 기자회견은 이 문제를 공론화하기 위한 것이었으므로 공익성이 인정돼 명예훼손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을 바탕으로 민 전 대표 측은 앞선 2024년 11월 빌리프랩을 상대로 50억 원의 손해배상청구소송으로 맞불을 놓은 바 있다.
이번 소송은 사실상 '하이브 대 민희진'의 연장전인 만큼, 어느 한 쪽이 패소하더라도 그 결과는 2024년 4월부터 이어진 '하이브-민희진 사태' 전체에 영향을 끼친다. 하이브가 민 전 대표에 대해 업무상 배임을 주장하며 그를 어도어 대표에서 해임시키기까지 일련의 과정의 사실상 시발점이 '아일릿의 뉴진스 표절 논란'과 '하이브·쏘스뮤직의 뉴진스 훼방 의혹'이기 때문이다.
민 전 대표 측의 주장대로 아일릿의 표절과 하이브 및 쏘스뮤직이 뉴진스의 데뷔부터 활동까지 어깃장을 놓았다는 게 일부라도 사실로 인정될 경우 하이브의 업무상 배임 논리가 뒤집힌다. 앞서 하이브 측은 민 전 대표가 어도어와 뉴진스를 탈취하기 위해 터무니없는 표절과 활동 훼방 의혹 등을 앞세워 하이브와의 신뢰 파탄을 부각시켰고, 뒤로는 다른 투자자와 접촉하려 했다는 취지로 주장해 왔다. 애초에 탈취만을 목적으로 한 허위 발언이었다는 게 하이브 측의 일관된 주장이었는데, 소송에서 허위가 아니라고 판단된다면 반대로 민 전 대표가 대표로 있던 당시의 어도어와 뉴진스에 배임을 가한 것은 하이브가 된다.
반대로 재판부가 빌리프랩과 쏘스뮤직의 손을 들어줄 경우엔 민 전 대표가 코너에 몰리게 된다. 아직 하이브 측이 민 전 대표에 제기한 업무상 배임 고발 수사가 진행 중이기 때문에 이 재판의 결과가 수사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탓이다. 더욱이 표절과 활동 훼방 의혹은 민 전 대표가 그간 하이브를 상대로 '맞다이'를 벌여온 행보의 중심을 구축하는 '대들보'나 다름 없기 때문에 한 차례라도 패소할 경우 민 전 대표의 전체 주장이 무너져 내릴 가능성이 높다.
아울러 이번 소송의 결과가 단순히 회사끼리의 승패만으로 갈리는 게 아니라는 것이 또 다른 문제다. 각자에 소속돼 있는 걸그룹 뉴진스, 르세라핌, 아일릿도 회사들의 고래 싸움에 휘말리면서 모두 대외적인 이미지가 일정 부분 손상됐고 활동에도 제약이 걸렸다. 어떤 결과가 나오더라도 각 그룹들의 향후 활동에까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는 점에서 이번 재판은 양 측 회사 모두에게 '생사를 건 결전'인 셈이다.
한편 다음 변론 기일은 3월 7일(빌리프랩), 3월 14일(쏘스뮤직)이다. 원고와 피고 모두 PT(프레젠테이션) 방식으로 각자 주장을 입증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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