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일 발표된 2025년 1월 랭킹에서 신진서는 5년 1개월 연속 1위를 차지하며 최장 기간 1위 기록을 경신했다. 랭킹점수는 1만 370점으로 9967점을 기록한 박정환 9단을 큰 점수 차이로 앞질렀다. 한편 김은지는 5개월 만에 여자랭킹 1위에 다시 올랐다. 지난해 8월 랭킹에서 최정 9단을 제치고 1위에 올랐지만 ‘한 달 천하’로 끝났고, 이번에 다시 최정을 제치며 1위에 복귀했다.
일곱 살 차이가 나는 신진서와 김은지의 대결은 이번이 세 번째였다. 2022년 YK건기배 본선에서 처음 만나 신진서가 승리했고, 2023년 SG배 명인전 본선에서도 신진서가 불계승을 거뒀다.
바둑팬들의 큰 관심을 모은 이번 대국은 대국 시작 1시간 37분 만에 신진서 9단의 승리로 끝났다. 그러나 내용은 김은지가 나쁘지 않았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평가다. 앞선 두 대국과는 차원이 달랐다는 것이다. 중반 한때, 인공지능 그래프가 백을 든 김은지의 우세를 가리킬 정도로 시종 대등한 내용을 보여줬다.
이 바둑을 해설한 이희성 9단은 “전반적으로 신진서 9단이 주도한 바둑은 맞지만, 수순을 그르치면서 김은지 9단이 두터워진 장면도 있었다. 승부처였던 하변에서 김은지 9단이 정확한 수순을 밟았다면, 신진서 9단이 꽤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비록 김은지가 패배했지만 이 역시 그의 성장에 중요한 발판이 되었을 것이라는 평가가 많다. 객관적인 전력 차이에도 불구하고 신진서가 김은지를 완벽하게 압도하지 못했다는 점은, 김은지가 초일류 기사들과 대등하게 겨룰 수 있는 잠재력을 보여준 것으로 해석된다.
한 바둑 관계자는 “김은지 9단은 세계대회에서 이미 중국의 최정상 기사 구쯔하오 9단과 셰얼하오 9단을 꺾었고, 일류 기사의 척도라는 KB바둑리그에서 주전선수로 활약하고 있어 기량은 이미 검증됐다”며 “3년 후면 세계대회 최일선에서 활약하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과연 김은지가 최정 9단의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 준우승 이상의 성적을 거둘 수 있을지, 바둑팬들의 기대가 모이고 있다.
[승부처 돋보기] 제26기 맥심커피배 입신최강전 32강전
흑 신진서 9단 백 김은지 9단 201수 끝, 흑 불계승
[장면도] 하변의 수단은?
신진서 9단을 상대로 백을 쥔 김은지 9단이 대등하게 버티고 있는 국면. 우상쪽 흑의 실리가 단단해서 이 시점, AI는 흑의 3집반 우세를 가리키고 있었다.
여기서 신진서가 흑1로 바짝 다가선 장면. 하변 백을 적당히 공략하면서 국면을 마무리 짓겠다는 구상인데 사실 흑1은 실수였다. 흑은 A와 백B의 교환을 마친 다음 다가서야 했던 것. 흑3에 김은지의 눈이 일순 빛을 발한다. 자, 하변엔 어떤 수단이 숨어 있었을까.
[실전진행] 김은지, 통한의 패착
김은지 9단이 “뭔가를 본 것 같다”는 바둑TV 해설의 이희성 9단. 하지만 잠시 후 김은지는 백1로 내려서 흑2와 교환을 했는데 이것이 통한의 패착이었다. 김은지는 백1 다음 3·5로 끼워 이었는데 방향은 맞았지만 수순이 틀렸던 것. 백은 애초에 그냥 3·5로 두는 것이 정답이었다.
[참고도1] 귀수(鬼手)
대국이 끝나자마자 김은지의 손길이 하변으로 향한다. 그러고서는 백돌 2개를 손에 들더니 백1·3을 두어놓고 신진서를 바라본다. “이렇게 두면?”이라는 무언의 의미. 신진서가 흑4로 단점을 보강하자 김은지는 백5로 붙여간다. 그리고 이 수가 신진서도 보지 못했던 귀수(鬼手)였다.
[참고도2] 흑, 망한 꼴
계속해서 흑1로 연결을 시도하면 이하 백10으로 끊어 흑 전체가 잡힌다. 이 그림은 흑이 망한 꼴이다.
[참고도3] 치명적인 자충수
실전진행 백1은 치명적인 자충수였다. 백1과 흑2가 교환돼 있으면 백1 이하 11이어도 흑12로 나가면 오히려 백이 잡혀버린다. 김은지가 제일 먼저 후회한 이유였다.
유경춘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