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골단 등장하자 여야 비판 봇물, 기자회견 주선한 김민전 제명촉구 결의안 제출…강경대 부친 “윤석열 빨리 하야 또는 체포돼야”
#김민전 주선 ‘백골단’ 기자회견
1월 9일 반공청년단이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반공청년단은 “민주노총의 불법적인 대통령 체포 시도를 막기 위해 조직됐다”며 “경찰특공대의 무리한 윤석열 대통령 체포 시도를 즉각 중단해야 한다. 반공청년단은 오늘 대한민국 헌정질서를 위협하고 국론 분열을 초래할 수 있는 졸속 탄핵 절차에 대해 깊은 우려를 표한다”고 밝혔다.
김정현 반공청년단장은 “‘백골단’은 반공청년단의 ‘예하 조직’”이라고 했다. 대통령 관저 주변에서 감시 활동을 하는 ‘자경단’으로 활동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앞서 이들은 한남동 대통령 관저 앞에서 1989년대 백골단의 상징인 흰색 헬멧을 쓰고 윤석열 대통령 체포 시도에 반대하는 집회를 열었다.
1983년생인 김 단장은 미국 복수국적자로 알려져 있다. 캔자스주립대를 나온 뒤 2013~2017년 월간조선과 주간조선에서 일했다. 22대 총선 때는 서울 용산에 국민의힘 후보로 출마를 선언했지만, 권영세 의원이 단수공천되면서 고배를 마셨다. 그는 이 결정에 불목해 무소속으로 출마했지만 낙선했다.
현재 그는 개인 유튜브 채널에서 부정선거 음모론을 주장하고 있다. 김 단장은 계엄 선포를 통한 선관위 압수수색은 부정선거 의혹을 해결하기 위한 불가피한 조처였다고 평가했다. 그는 “반공청년단은 국회가 권력을 남용하고, 사법부가 정치적 중립을 위반할 때, 대통령마저 직무 정지 상태로 본연의 책임을 다할 수 없다면 주권자인 국민이 국민 저항권을 발동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김민전 의원은 “헬멧을 쓰고 있어서 위협적으로 보일 수 있겠지만, 한남동 시위 영상에서 우리의 공권력인 경찰조차도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 던진 무전기에 의해서 머리를 다치고 뺨을 맞는 장면들을 봤다”며 “공권력도 위협받는 세상에서 평화적인 의사 표현을 하겠다는 일반 청년들의 안전을 어떻게 보장될 수 있겠냐”고 말했다.
백골단이 등장하자 야권은 물론 여권에서조차 쓴소리가 나왔다. 노종면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국민의힘이 하다 하다 백골단과도 손을 잡았다. 극우와 손잡는 것도 모자라 내전이라도 바라느냐고 묻지 않을 수 없다”고 비판했다. 이준석 개혁신당 의원은 “백골단이 대한민국에서 어떤 의미의 용어인지 정말 모르는가. 이건 분뇨차 이전에 분변을 못 가리는 정치”라고 꼬집었다.
같은 날 김민전 의원은 국회 본회의장에서 잠을 자는 모습이 포착, 비판을 받기도 했다. 한준호 민주당 의원은 1월 10일 “김민전 의원이 이런 대업(국회 백골단 기자회견)을 이루고 나서 퍽 고단했던지, 국회 본회의장에서 또 숙면을 취했다”며 “오죽하면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잠자는 국회 백골 공주’라는 별명까지 붙었겠냐”고 비꼬았다.
김민전 의원 측은 스마트폰 알림 확인하느라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는 취지의 해명을 내놨다. 기자회견 논란에 대해서는 “정확한 정보와 배경을 파악하지 못한 채 기자회견을 주선한 것을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사과했다.
국민의힘도 공식적으로 사과했다. 다만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김민전 의원이) 본인 실수를 인정하고 사과했기 때문에 징계 사유에 해당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민주당 등 야 6당은 김 의원의 의원직 제명 촉구 결의안을 1월 10일 국회에 제출했다. 1월 12일에는 시민단체 서민민생대책위원회가 명예훼손, 직권남용 등의 혐의로 김 의원을 서울남부지검에 고발했다.
#백골단의 역사
백골단은 이승만 전 대통령 때 처음 이름이 등장한다. 당시 이 전 대통령은 지금처럼 여소야대라는 불리한 정치적 환경 속에 있었다.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6·25전쟁 도중이던 1952년 대통령 직선제를 골자로 한 개헌을 시도했다. 개헌안은 국회에서 표류했다. 그러자 백골단 등 정치깡패 집단을 동원해 국회를 협박했다. 군과 경찰로 부산 피난 국회를 포위했다. 개헌 공고 절차를 생략하는 등 위헌적인 과정을 거쳐 개헌안을 통과시켰다. 헌정사상 첫 번째 친위 쿠데타였다.
반공청년단 이름도 등장한다. 대한반공청년단은 1960년 3·15 부정선거에 깊이 관여했다. 백골단 등 산하에 있는 정치깡패 조직을 부정선거에 동원했다. 상대 정치인들에 대한 테러도 자행했다.
백골단은 1985년 8월 1일 다시 전면에 등장한다. 이들은 서울시장 명의로 모집됐다. 무술 유단자와 특전사 출신 등으로 구성됐다. 중무장한 전경과 달리 흰색 헬멧, 청색 재킷, 단봉, 방패 등을 착용했다. 이들은 시위대로 돌진해 시위 대오를 흩트려놨고, 시위대를 추격해 체포했다. 시위가 격렬해지고, 정부 태도도 강경해지면서 백골단 수는 점점 더 증가했다. 1989년 이후 시위 현장에 백골단이 정복 경찰보다 더 많이 배치됐다. 백골단 단독으로 시위대 해산 작전을 수행하기도 했다.
#백골단 동력은 윤석열 편지
1월 13일 반공청년단 측은 백골단 이름을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김정현 단장은 이날 페이스북에 이승만 정부 시절 ‘정치깡패’로 활동한 백골단의 ‘백골 정신’을 이어받겠다고 강조했다. 1980년대 등장한 경찰 백골단과의 연관성은 없다고 했다. 이승만 전 대통령이 1952년에 선포한 비상계엄은 의원내각제 세력으로부터 대통령직선제를 수호하기 위한 결단이라고 했다. 그는 “(민주당이) 국회를 장악해 입법 폭거를 저지르고 있는 2025년 현재 상황과 매우 닮았다”고 주장했다.
김 단장은 일요신문 통화에서 “우파 시민들 사이에서 백골단이라는 이름에 대해 찬반 의견이 있어서 저희가 지금은 하얀 헬멧을 쓰지 않고 있다”며 “24시간 그쪽에서 활동은 하고 있다. 이름은 (백골단으로) 그대로 간다”고 전했다.
김 단장은 경호처와 경찰의 무력 충돌 가능성도 언급했다. 김 단장은 교전이 발생하면 경찰과 공수처의 명백한 국가 전복 행위라고 주장했다. 그는 “(충돌이 발생하면) 이게 국가 소요 사태로 확산할지 아무도 모르는 상황이다. 그 주변이 위험해질 수 있다고 보는 거다. 주변에 계시는 분들이 조심해야 한다. 안전에 위협이 있을 수 있다”고 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지자들에게 보낸 편지는 반공청년단과 백골단의 활동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파악됐다. 앞서 윤 대통령은 1월 1일 관저 앞 집회를 연 지지자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감사 인사와 함께 “끝까지 싸울 것”이라고 했다.
김 단장은 ‘윤 대통령의 편지가 백골단과 반공청년단을 움직이는 동력인지’ 묻자 “그렇다”고 답했다. 끝까지 싸우겠다는 편지 내용에 대해서는 “일종의 순교자의 자세라고 봤다. ‘나를 죽여서 국가를 살리겠다’ 이렇게 봤다”고 했다. 그는 “(지지자들이) 윤석열 대통령에게 요구한 것은 끝까지 싸우라는 거였다. 죽더라도 마지막에 탄핵당해서 정말 위험한 상황, 체포가 되는 상황이 오더라도 사전에 겁먹어서 받으면 안 되는 수사를 받는다거나 아니면 자진해서 하야한다거나 이런 부분을 가장 우려했다”고 말했다.
김 단장은 편지를 보고 안도감이 들었다고도 했다. 윤 대통령이 선관위 부정선거 의혹, 이재명 대표와 민주당의 불법 관련 수사, 문재인 전 대통령 비리에 대한 수사 등을 계속 진행하겠다는 의지를 읽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대치 국면이 이어지거나 윤 대통령이 체포되거나 내란에 준하는 무력 충돌이 발생해도 “끝까지 싸울 것”이라고 강조했다.
강경대 열사의 아버지 강민조 전국민주화운동유가족협의회 회장은 1월 10일 국회 기자회견에서 “윤석열 씨를 통해서 다시 백골단이 기생하게 되는 것 같다”며 “윤석열 씨가 빨리 하야하거나 체포돼야만 백골단이 이 땅에 설치지 않고 또다시 경대와 같은 희생이 뒤따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명지대생 강경대 씨는 1991년 4월 26일 백골단이 휘두른 쇠파이프에 맞아 숨졌다.
이강원 기자 2000won@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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