득표율 34%, ‘반 이기흥 표심’ 유승민으로 결집…국가대표 부정선발 의혹 등 개인적 과제 해결해야
지난 1월 14일 서울시 송파구 올림픽공원 내 올림픽홀에선 제42대 대한체육회장 선거가 열렸다. 이번 선거는 이기흥 대한체육회장을 비롯해 김용주 유승민 강태선 오주영 강신욱 후보 등이 출마, 6자 구도를 형성했다. 1월 13일 서울동부지방법원이 강신욱 후보가 제기한 선거 진행 금지 가처분신청을 기각하면서, 선거는 원래 일정대로 개최됐다. 투표 당일까지 혼란에 혼전을 거듭하는 선거전이 펼쳐졌다.
투표는 오후 2시 40분부터 5시 10분까지 총 2시간 30분에 걸쳐 진행됐다. 정오부터 올림픽홀 인근은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선거인단들로 붐볐다. 2244명 선거인단 중 투표에 참여한 선거인은 총 1209명이었다. 최종 투표율은 53.87%였다.
투표가 중반에 접어들면서 총 투표수가 1100~1300표 사이일 것이란 관측이 나왔다. 최종 투표수가 예상치 중간값에 수렴하면서 각 캠프는 발 빠르게 표 계산에 돌입했다. 당락을 가를 커트라인으로 400이라는 숫자가 거론됐다. 400표를 선점하는 쪽이 승기를 잡을 것이라는 분석이었다. 그리고 400표를 선점할 가장 유력한 후보로 3선에 도전하는 이기흥 대한체육회장이 거론됐다.
오후 5시 10분부터 개표가 본격적으로 진행됐다. 투표함이 열리자 전혀 다른 양상이 전개됐다. 개표 도중 이기흥 회장과 친분이 있는 광역지자체 체육회장 한 명이 굳은 표정으로 투표 현장을 떠났다. 현장에선 이 장면을 이 회장 3선 연임이 사실상 불발됐다는 시그널로 해석했다.
오후 6시가 넘은 시점 투표 결과가 발표됐다. 이기흥 대한체육회장은 379표(득표율 31.34%)를 얻었다. 당락 커트라인으로 거론됐던 400표에 못 미치는 수치였다. 곧이어 유승민 당선인이 417표(득표율 34.49%)를 얻었다는 발표가 나왔고, 참관인석에선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400표를 기준으로 1위와 2위 후보간 승패가 결정됐다.
3위는 강태선 서울시체육회장이었다. 강 회장은 216표(득표율 17.87%)를 얻었다. 4위를 차지한 강신욱 단국대 명예교수는 120표(득표율 9.93%)를 얻었다. 다크호스로 분류됐던 오주영 김용주 후보는 각각 59표와 15표를 얻었다. 무효표는 3표였다.
강태선 강신욱 오주영 김용주 후보가 얻은 표는 총 410표였다. 유승민 당선인이 얻은 417표보다 적었다. 선거인 중 817명(67.57%)가 ‘반 이기흥 진영’에 표를 던졌다.
선거일이 가까워지면서 체육계 안팎에선 이기흥 대한체육회장에 대한 지지세가 우하향 추세에 접어들었다는 분석이 나온 바 있다. 기존 35~40% 수준으로 예측되던 이 회장 지지세가 20% 후반대에서 30% 초반대로 떨어졌다는 내용이었다.
선거일까지 체육계 시선은 이 회장이 30% 득표율을 사수할지 여부에 관심이 쏠렸다. ‘반 이기흥’ 진영에서 치열한 각축전이 펼쳐진다면 이 회장이 어부지리로 당선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었다. 선거 직전까지 유승민 강태선 강신욱 등 ‘반 이기흥 BIG3’의 경쟁은 치열했고, 이기흥 회장 측에선 표심이 분산될 것이란 기대감이 역력했다.
반전은 다른 곳에서 일어났다. 이기흥 회장은 득표율 31.34%를 기록하며 ‘30% 방어선’을 사수하는 데 성공했다. 그런데 유승민 당선인이 그의 득표율을 넘어서는 성과를 냈다. ‘반 이기흥 표심’이 유승민 당선인 쪽으로 결집했다. ‘반 이기흥 후보’들은 단일화에 실패했지만, 유권자인 선거인단 표심이 단일화 양상을 보인 셈이다.
현장에서 만난 한 선거인은 “선거에 참여하는 유권자들 사이에서 이기흥 회장의 3선은 절대 안 된다는 기류가 굉장히 강했다”면서도 “후보가 난립하면서 이 회장 3선 저지 가능성이 희미해졌다는 이야기가 나왔던 것도 사실”이라고 했다.
또 다른 선거인은 “이 회장 3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선거인들 사이에서 나름 교통정리가 이뤄지며, ‘표심 단일화’가 이뤄진 것처럼 보인다”면서 “몇몇 후보들 사이에서 고민을 이어가던 ‘반 이기흥’ 표심이 순식간에 ‘유승민 대세론’으로 쏠리며 판세가 완전히 뒤집어졌다”고 했다.
그는 “유승민 당선인이 2004년 아테네 올림픽 탁구 남자 단식에서 세계 최강 왕하오를 상대로 이변을 일으킨 상황이 오버랩된다”면서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로서 인지도와 그동안 국내외에서 쌓아 온 체육행정 경험 등 요소에 선거인단이 힘을 실어준 것”이라고 바라봤다.
2024년 초부터 정부와 대립각을 세우며 3선 연임을 도전했던 이기흥 대한체육회장은 고배를 마시게 됐다. ‘체육 대통령’ 자리를 내려놓게 된 이 회장은 야인 신분으로 각종 사법 리스크에 직면할 전망이다.
치열한 승부 끝에 이 회장에게 승리한 유승민 당선인은 “많은 책임감을 느낀다”면서 “한국 체육에 많은 현안이 있는데, 체육인이 함께 힘을 모아 이 현안을 해결하는 데 앞장서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유 당선인은 2014년 현역에서 은퇴한 뒤 국가대표팀 코치로 인생 제2막을 열었다. 2016년엔 IOC(국제올림픽위원회) 선수위원으로 선출되며 스포츠 행정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선수촌장을 지냈고 2019년 대한탁구협회장 보궐선거에 출마해 종목단체장 경험을 쌓았다. 2024년 파리 올림픽을 끝으로 IOC 선수위원 임기가 만료된 그는 대한체육회장 선거에서 승리하면서 43세 나이로 한국 체육 행정 정점에 올라섰다.
다만 유 당선인이 개인적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도 있다. 대한체육회장 선거를 앞두고 강태선 서울시체육회장과 강신욱 단국대 명예교수는 “유승민 후보가 국가대표 선발과정 부정의혹, 회계부정 의혹 등 6건과 관련해 스포츠윤리센터 직권 조사 대상이 됐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해 유 당선인은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바탕으로 한 네거티브 공세”라고 선을 그은 바 있다.
한 체육계 관계자는 “유승민 당선인이 체육인들의 기대를 한몸에 받고 신임 대한체육회장으로 선출된 만큼, 개인적인 의혹을 털어내고 체육계 현안을 하나씩 풀어나갔으면 한다”는 바람을 전했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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