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 에틸렌 공장 중국발 공급과잉 여파 고스란히…미국 제철소 건립 관련, 현대차그룹 “확정된 사안 없어”
제철소 건립의 배경으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환심을 사려 하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하지만 이와 관련한 실패 사례도 있다. 롯데케미칼은 2015년 12월, 30억 달러를 투자해 연산 100만 톤의 에틸렌과 70만 톤의 에틸렌글리콜(EG)을 생산하는 공장을 미국 루이지애나에 건설하기로 했다. 투자가 결정된 시기는 트럼프 대통령 취임 전이지만, 2019년 상반기 준공식을 열 때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처음으로 백악관 단독 면담을 가지면서 다른 재벌 총수들의 부러움을 샀다.
하지만 롯데케미칼의 루이지애나 공장 투자 건은 실패로 돌아갔다. 투자를 결정할 당시만 해도 에탄분해설비(ECC)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는 기대가 높았다. 하지만 중국발 공급 과잉의 여파를 고스란히 받았다. 롯데케미칼은 롯데케미칼 미국법인(LC USA)을 통해 루이지애나 법인(LC LA)을 지배하고 있는데, LC USA는 2021년 이후 흑자를 내지 못하고 있다.
롯데그룹이 유동성 위기에 휘말렸다는 ‘지라시’가 돌았던 지난해 10월, 한 증권사는 롯데케미칼이 미국법인 지분을 팔아야 한다고 분석했다. 키움증권에서 화학 및 정유업종을 담당하는 정경희 연구원은 보고서에서 “언론 보도를 보면 롯데케미칼이 재무 구조 개선을 위해 국내 나프타분해설비(NCC)를 매각한다고 하는데, NCC는 매물이 너무 많이 쌓여 있어 매각이 지연되거나 할인을 많이 해야 할 수 있다”면서 “미국 ECC를 유동화하는 것이 빠른 재무구조 개선을 위해 나은 선택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미국 ECC는 그래도 경쟁력이 있고, 이 프로젝트에 4조 7000억 원의 케이펙스(CAPEX, 생산활동을 위해 투자하는 자본 지출)를 집행한 만큼 매각 시 순차입금 감소 효과도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정 연구원의 조언은 일부 현실로 이어졌다. 롯데케미칼은 10월 말께 루이지애나 법인인 LCLA 지분 40%를 활용해 메리츠증권으로부터 6600억 원을 조달했다고 밝혔다. 금리 또한 메리츠증권치고는 낮은 연 5%대였다.
다만 문제는 지분 40%의 가치가 6600억 원에 불과했다는 점이다. 메리츠증권에 넘긴 주식 가격을 감안하면, LCLA 지분 60%의 가치는 1조 원에 불과하다. 롯데케미칼이 LC USA를 통해 LCLA에 투자했기 때문에 정확한 투자 규모는 파악할 수 없지만, 회사 측 발표에 따르면 LCLA에 대한 투자금은 31억 달러(당시 환율 기준 3조 6000억 원)가 넘는다.
공시를 통해 확인되는 LC USA에 대한 투자도 2조 원에 육박한다. 메리츠증권으로부터 인정받은 회사 가치가 롯데그룹의 기대 수준보다는 낮을 것으로 예상되는 이유다. 화학업계 한 관계자는 “롯데케미칼이 화학 업계에서 유일하게 미국 진출을 이뤄냈다는 점에서 분명 의미는 있는 시도였다”면서도 “투자 대비 성과가 미진해 성공적인 투자였다고 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대제철의 상황도 비슷하다. 철강업 또한 중국발 공급 과잉의 영향권 아래 놓여 있다. 국내 증권사 연구원들은 이구동성으로 국내 건설 업황 회복과 중국의 철강 감산정책이 필요하다고 분석한다. 여기에 중국 정부의 부동산 부양책이 나와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중국 부동산이 회복해야만 중국산 철강이 중국 내에서 소화되기 때문이다.
한국철강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에서 수입한 철강재는 877만 톤(t)으로, 전년(827만t)을 넘어섰다. 수요 둔화로 전체 철강재 수입이 1469만t으로 전년(1554만t)보다 5.4% 감소한 상황에서 중국산만 늘어난 셈이다. 이 때문에 현대제철은 지난해 11월 포항2공장 가동 중단 지침을 내리기도 했다. 다만 당시엔 노동조합의 반발 때문에 일부는 가동키로 했다.
이런 상황에서 현대제철이 미국 진출을 타진한다고 하자 노동조합은 다시 한번 들끓고 있다. 가뜩이나 양측은 임금단체협약(임단협)을 확정하지 못한 상황이다. 지난 1월 9일 임단협 협상에서 사측은 임금 인상 10만 원과 2024~2025년 단체교섭 성과급을 2025년 단체교섭에서 논의하자는 안을 제시했지만, 노조 측이 거절했다. 노조는 기본금 15만 9800원 인상, 차량 지원금 할인 개선 등을 요구하고 있다. 노조는 향후 임단협 협상에서 미국 공장 건설 등과 관련해서도 논의하겠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증권가의 반응도 사실 우려하는 쪽에 가깝다. 재무 부담이 큰 데다, 현대제철이 해외에서 공장을 운용해 본 경험도 없기 때문이다. 이유진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미국 내 제철소 투자는 미국이라는 성장하는 시장에서 관세를 피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성장하는 전략일 수 있다”면서도 “하지만 현대제철은 2000년대 초반 고로 투자로 인한 차입금 부담을 아직까지 겪고 있다”고 지적했다.
현대제철은 별도 기준 순차입금이 7조 원인데, 2004년 한보철강 인수 및 정상화 과정에 2조 원가량을 집행한 이후 재무 부담에서 완전히 자유로웠던 적이 없다. 현대제철은 지난해 9월 말 기준 부채비율 75.8%, 차입금의존도 31.4%를 기록하고 있다. 이 연구원은 “실적 컨퍼런스에서 시황상 밸류업 정책도 어렵다고 언급한 바 있다”면서 “대규모 투자에 대한 회사의 자본 배치 전략을 투자자들에게 공유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재혁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구체적인 생산 설비 투자 규모와 생산능력, 그리고 제철소 투자를 위한 자금조달 방법을 확인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기존에도 미국은 관세와 수입 쿼터를 통해 자국 내 생산설비를 보유한 철강업체들을 보호해 왔다”면서 “트럼프 보편 관세와 멕시코, 캐나다산 철강 25% 관세가 현실화될 경우 현대제철은 미국 내 공장을 통해 가격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긍정적인 의견도 제시했다.
현대차그룹 입장에서는 트럼프 행정부에 손을 내미는 것이 절실하다. 자동차 보조금과 관세 등 새로운 정부의 영향력이 절대적이기 때문이다. 현대차그룹은 트럼프 대통령 취임식에 100만 달러(약 14억 7000만 원)를 기부하기도 했다. 그동안 현대차그룹은 전기차에 친화적인 민주당과 주로 접촉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차그룹 측은 제철소 건립과 관련된 시장의 우려에 대해 “현재 미국 투자가 결정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현 시점에서 따로 답변하는 것은 적절치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민영훈 언론인
박호민 기자 donkyi@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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