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초, <한겨레21>에서 보도한 효선 씨의 관양동 땅 증여 소식은 정치권의 화젯거리였다. 1989년 제5공화국 청문회 당시 전두환 전 대통령의 부인인 이순자 여사의 차명부동산 의혹을 받았던 경기도 안양시 관양동 산127-2번지 일대 임야 2만 6876㎡가 28년 만에 이들 부부의 딸 효선 씨에게 증여된 사실이 뒤늦게 밝혀진 것이다. 이 땅은 1978년 2월 이순자 씨의 동생 이창석 씨가 매매한 뒤 줄곧 보유하고 있다가 지난 2006년 12월 효선 씨에게 증여됐다.
그러나 당시 언론이 주목하지 않은 또 하나의 사실이 있었다. 효선 씨는 토지를 증여받은 뒤 6년 후인 지난 1월, 토지 위에 지어져 있던 건물을 3700만 원에 정 아무개 씨로부터 사들였다. 그런데 정 씨는 이 건물을 효선 씨의 딸인 윤 아무개 씨(26)로부터 2010년에 3000만 원에 사들인 바 있었다. 다시 말해 관양동 부지 건물은 효선 씨의 딸이 19세 때 이미 샀던 것을 정 씨에게 팔았고 이를 다시 효선 씨가 사들인 것이다. 윤 씨는 효선 씨와 전남편인 새누리당 윤상현 의원 사이에서 태어난 차녀다.
한 부동산업자는 이에 대해 “윤 씨는 3000만 원에 산 건물을 3년 뒤인 2010년 정 씨에게 한 푼도 올리지 않고 팔았는데 부동산 거래에 따른 세금을 고려하면 손해를 본 것이 된다”라며 “관양동 부동산처럼 값이 오를 것이 예상되는 부동산을 손절매하는 것은 정상적인 거래로 보이지 않는다. 아마도 효선 씨가 차명부동산 의혹이 있는 토지를 증여받은 후 남아있는 건물을 딸로부터 직접 구매한다는 기록을 남기기가 부담스럽지 않았겠느냐”라고 전했다.
취재 과정에서 접촉한 한 사정당국 관계자는 “관양동 건물이 효선 씨에게 넘어가기까지 5년여 동안 소유하고 있던 정 아무개 씨 주소지는 방배동 소재 L 아파트다. 공교롭게도 이 아파트 같은 동에는 전재국의 처남인 정 아무개 씨가 함께 살고 있는 것으로 보고된 적이 있었다”라고 밝혔다.
그런가 하면 현재 효선 씨가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연희동 소재 L 빌라 역시 차명부동산 의혹이 제기됐다. 재미교포 언론인 안치용 씨는 최근 자신의 블로그 <시크릿 오브 코리아>를 통해 “효선 씨가 거주 중인 L 빌라의 원소유주는 이순자 여사의 동생인 이창석 씨(60) 아들 이 아무개 씨(32)였다. 이 씨는 해당 빌라를 지난 2007년 7억 4000만 원에 매매해 3년 뒤 효선 씨에게 팔았다”는 사실을 폭로했다. 결국 효선 씨는 외삼촌인 이창석 씨에게 관양동 땅을 물려받은 이후 사촌동생인 이 씨에게 빌라까지 넘겨받은 셈이다.
L 빌라의 이전 주인인 이 씨와 효선 씨는 사촌지간이기에 부동산거래 시 ‘특수관계인’으로 설정된다. 이 때문인지 효선 씨는 2010년 12월 해당 건물을 살 때 2007년에 이 씨가 매입한 가격(7억 4000만 원) 그대로 빌라를 매입했다. 앞서의 부동산 업자는 “이 일대 부동산이 크게 오른 것은 아니지만 연희동 63평형 빌라를 7억여 원에 팔았다는 것은 매도인 기준에서는 손해를 본 것임이 분명해 보인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법무법인 열린 관계자는 “특수관계인 사이의 부동산 거래는 통상 추가 징수되는 세금을 피하기 위해 가격을 맞추는 경우가 흔하다. 이는 합법적인 절세를 위한 것이기에 크게 문제 삼을 만한 부분은 아니다”라는 입장이었다.
그럼에도 두 사람의 부동산 거래가 곱게 보이지 않는 이유는 이창석 씨가 전두환 전 대통령의 ‘비자금 관리인’으로 끊임없이 입길에 오른 인물이기 때문이다. 지난 2004년 검찰은 5공 비자금 수사 과정에서 전 전 대통령의 은닉자금으로 추정되는 ‘뭉칫돈’ 수십억 원을 창석 씨 계좌에서 발견해 추징금 대납형식으로 몰수한 바 있다. 또 창석 씨는 지난 2003년 전 전 대통령의 추징금 미납으로 경매에 부쳐진 연희동 자택 별채를 감정가의 2배가 넘는 16억 4800만 원에 낙찰 받아 전두환 부부가 그대로 쓸 수 있도록 배려하는 등 전 전 대통령의 비자금 문제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기자는 지난 6일 부동산 의혹에 관한 효선 씨의 입장을 직접 들어보기 위해 연희동 L 빌라를 찾았다. 이 일대에서도 고급빌라로 소문난 이곳은 인근 건물들과 비교해 크고 화려했지만 골목 끝에 위치해 있어 찾아가기가 녹록지 않았다. 인터폰을 두드려 인터뷰를 요청했지만 효선 씨는 “기자랑 이야기 안 해요”라는 짧은 한마디만을 남긴 채 묵묵부답이었다. 인근에서 만난 주민들은 한결같이 “길 건너 전두환 전 대통령 연희동 자택을 알지만 L 빌라에 딸이 살고 있다는 사실은 알지 못했다”라고 밝혔다.
▲ 전두환 장녀 효선 씨가 살고 있는 연희동 L 빌라 전경. 이 부동산은 전두환의 차명재산 의혹을 받고 있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앞서의 안치용 씨는 “전두환 전 대통령의 숨겨진 재산 찾기는 계속되어야 한다. 한 가지 재미난 사실은 전두환 전 대통령 차명부동산 보유가 의심됐던 친인척들이 대부분 압구정 H 아파트나 서빙고동 S 아파트에 주소를 두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는 것이다”라고 전했다.
현재까지 전두환 전 대통령의 남은 추징금은 1673억 원, 납부 시한은 2013년 10월 13일까지다. 이는 지난 2010년 300만 원을 추가로 납부하면서 추징금 소멸시효가 3년 연장된 까닭이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전두환 일가가 소멸시효가 다가오면 관계당국에서 재산에 대한 강도 높은 조사가 이뤄질 것을 우려하고 이를 피하기 위해 꼼수를 부리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임수 기자 imsu@ilyo.co.kr
이전 주인 전 씨, 정체가 궁금해
전두환 전 대통령 장녀 효선 씨는 L 빌라에 거주하기 이전 서울시 서초동 신반포아파트에 살았다. 그런데 이 부동산 역시 이상한 점이 포착됐다. 신반포아파트 등기부를 살펴본 결과 효선 씨는 2000년 3월 해당 아파트를 별다른 채권채무 없이 사들인 이후, 2010년 9월 21억 2000만 원에 팔았다. 겉으로 보면 별다를 게 없는 정상적 거래다.
문제는 효선 씨에게 이 아파트를 판 원소유주 전 아무개 씨가 리브로의 이사였다는 사실이다. 전 씨는 1993년 신반포아파트를 산 이듬해인 94년 리브로 이사로 등기됐고 이후 3년간 재직했다 퇴임한 것으로 밝혀졌다. 당시 리브로의 최대주주는 전 전 대통령의 장남이자 효선 씨의 오빠인 재국 씨였다.
이뿐만 아니라 원소유주인 전 씨는 아파트를 사면서 빌린 채권채무액 2억 4000만 원을 재국 씨의 또 다른 회사인 시공사에게 넘기기도 했다. 효선 씨에게 아파트를 팔았던 전 씨와 효선 씨 오빠인 재국 씨가 단순한 이사와 대표이사와 사이가 아니었음을 엿볼 수 있다.
전 씨가 근무했던 리브로 측은 “90년대는 리브로가 대교로 인수되기 이전이기 때문에 전 씨 관련 기록이 남아있지 않다”라고 밝혔고, 시공사 측은 “전 씨는 회사 직원 명단에 없는 분”이라고 전했다.
결국 효선 씨가 보유하거나 했던 것으로 드러난 광양동 땅, L 빌라, 신반포아파트 등이 모두 아버지의 친인척들이나 특수관계인들로부터 사들인 셈이 된다.
법무법인 열린의 한 관계자는 “등기 상으로만 보면 효선 씨 재산이 아버지 재산으로 밝혀져 법적으로 당장 문제가 될 소지는 없을 것 같다”면서도 “다만 부동산 취득 과정에서 사해행위를 당한 이들이 뒤늦게 폭로하거나 문제를 제기해 온다면 상황은 달라질 수 있다”라고 전했다.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