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리점들과 맺은 계약 들여다보니…
일요신문 취재에 따르면 주 7일 배송 시행 전인 2024년 12월 20일경에 CJ대한통운이 신규 전자 계약서를 발송하면서 대리점들과 일괄 계약을 맺은 것으로 확인됐다.
계약서에 별첨된 부속합의서에 따르면 제12조(업무일 및 휴업) 1항에 ‘영업점은 주 7일 본 계약 업무를 수행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는 내용이 신설됐다. CJ대한통운이 ‘주 7일 배송’ 시행을 발표하면서 추가된 내용이다. 주 7일 배송이 계약상의 의무로 부과된 셈이다. 제16조(계약의 해지) 2항에 따르면 택배사업자나 영업점이 계약사항을 위반한 경우, 일정한 절차를 거쳐서 해지할 수 있다는 조항도 마련돼 있다. 대리점이 주 7일 배송을 제대로 수행하지 않을 경우 계약 위반으로 계약이 해지될 수도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복수의 대리점 소장들의 증언에 따르면 CJ대한통운의 각 지역 담당 지사장들이 진행한 지난 2024년 12월 라운드 테이블에서 주 7일 배송을 준수하지 않으면 계약이 해지될 수 있다는 언급이 있었다. A 소장은 “주 7일 배송을 성실하게 이행하지 않으면 본사에서 계약 해지 사유라는 내용증명을 보낼 수 있다고 얘기했고, 그럼 재계약이 안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라고 전했다.
B 소장은 “실제로 재계약이 어려울 것이라고 지사장이 말했고 모두가 직접 들었다. 계약서도 전체적인 내용을 잘 읽어보면 결국 주 7일 배송을 지키지 못했을 때 불이익을 받게 된다는 내용”라고 말했다. C 소장은 “주 7일 배송은 사전에 논의된 내용이 아니다. 언론 발표 후 일방적으로 전자계약서를 받았고 계약을 이어나가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서명을 했다”라고 말했다.
일부 지역에서는 일선 소장들이 주 7일 배송을 유지하느라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본사에서 택배 1건당 50~60원가량의 분류비를 책정해 소장에게 지급하는데 아직까지 일요일 물량이 평일의 30%가량밖에 안 되는 것으로 파악된다. 본사에서 지급하는 분류비만으로는 택배 분류 업무를 담당할 분류직원을 구할 수 없는 경우도 있다. 결국 소장이 사비를 들여서 분류직원을 구하고 있는 형편이다.
원영부 통합운송노동조합 위원장은 “분류 작업도 일꾼을 구하기 어려운 상황에서는 소장과 친한 기사들이 ‘까대기(화물차로 온 짐을 내리고 구역별로 분류하는 작업)’를 해주기도 한다”라며 “수행률이나 배송률 갖고 대리점의 재계약 여부를 따지기 때문에 일부 기사들이 주말에 출근하며 맞춰주고 있다”라고 말했다.
#신규 계약서를 둘러싼 법적인 쟁점
신규 계약이 대리점법을 위반했을 소지가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대리점법 제9조(불이익 제공행위의 금지)에 따르면 본사가 거래상의 지위를 부당하게 이용해 대리점에게 불이익이 되도록 거래조건을 설정 또는 변경하거나 그 이행 과정에서 불이익을 주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고 명시돼 있기 때문이다.
법조계 한 관계자는 “대리점법 제10조(경영활동 간섭 금지) 제1항 시행령 제7조 제3호도 문제가 될 수 있다. 해당 조항에 따르면 본사는 대리점의 거래처, 영업시간 등을 일방적으로 정해 이행을 요구해서는 안 되는데 주말근무를 요구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하도급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하도급법) 위반으로 볼 여지도 있다. 물건 판매 위탁을 받는 일반 대리점과 달리 택배 대리점은 용역 위탁을 받기 때문이다. 제3조의4(부당한 특약의 금지) 1항에 따르면 ‘원사업자는 수급사업자의 이익을 부당하게 침해하거나 제한하는 계약조건(이하 “부당한 특약”이라 한다)을 설정하여서는 아니 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와 관련, 이주한 법무법인 위민 변호사는 “계약 기간 도중에 대리점에 일방적으로 불이익이 되도록 거래 조건을 변경했고 일선 영업점 소장들에게 비용이 발생한 상황이므로 법 위반 소지가 있다고 볼 수 있다”라고 말했다.
반면 명백한 불이익이 확인되지 않은 상황에서는 법 위반 여부 판단은 신중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참여연대 실행위원 김재희 변호사는 “공정거래법 제45조 1항 6호에 거래 상 지위 남용 행위 관련해서도 다퉈볼 수 있다. 대기업들도 법률 자문 받고 외관상으로는 최대한 법 위반 소지 없이 정리하기 때문에 구체적인 건 판단을 받아봐야 한다”라며 “다만 본사가 실제로 계약을 해지했거나 내용증명을 발송했다거나 하는 명백한 불이익이 없다면 공정거래위원회도 불이익으로 보지 않을 수는 있다”라고 밝혔다.
김주호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팀장은 “계약서를 피상적으로 보고 판단하긴 어렵고 실제로 어느 정도 부당한 건지는 공정위 판단을 봐야 한다. 명백하게 달성 불가능한 목표인 경우는 부당하다는 판단을 받기 쉽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는 사회적인 해결 쪽으로 가는 경우가 많다”라고 말했다.
대리점주들이 주 7일 배송과 관련해 동의를 했느냐 여부도 관건이다. CJ대한통운은 일방적으로 계약을 맺은 것이 아니라 대리점연합회 측과 협의를 통해 주 7일 배송을 진행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대리점연합회는 지난 8월 19일 CJ대한통운과 함께 ‘택배서비스 혁신을 위한 공동선언’을 발표하고 ‘매일 오네’의 성공적 도입을 위해 적극 협력하기로 약속했다. 그러나 대리점연합회가 각 대리점들의 권한을 모두 위임받은 것은 아니기 때문에 대표성과 관련해서는 논란이 있다. 전국 CJ택배대리점 1800여 개 중 대리점연합회에 가입한 곳은 800여 곳뿐이다.
김재희 변호사는 “본사가 대리점연합회와 소통했다고 해도 연합회가 계약을 대신 체결할 권한이 있는 것은 아니다. 대리점연합회가 위임을 확실히 받은 게 아닌 이상 실제로 용역을 수행할 각각의 대리점주들과 계약 전에 충분한 협의가 됐어야 한다”라며 “날인이 있으면 계약에 동의했다고 보는 민사와 달리 공정거래위원회는 갑을 관계를 살펴보기 때문에 앞뒤 정황을 엄격하게 볼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CJ대한통운 관계자는 “당사는 집배점에 주 7일 배송에 참여하도록 설득하고 독려하였을 뿐, 이 과정에서 불이익을 주거나 강제한 사실이 없고 참여 여부는 집배점의 자율적 의사에 따라 결정됐다. 시행 방안 역시 각 집배점을 대표하는 집배점연합회와 충분한 논의와 소통을 거쳐 결정됐다”라고 말했다.
이어 “또한 주 7일 배송 전환 과정에서 계약이 중도에 해지되거나 불리한 내용으로 변경된 사례도 전혀 없다. 주 7일 배송으로 인해 변경된 계약의 내용도 업무일이 주 6일에서 주 7일로 변경된 외에는 아무 변화가 없고 어떠한 판매목표의 강제나 불이익 제공 혹은 부당한 특약 설정도 없었기에 법 위반이라고 볼 수 없다”라고 밝혔다.
CJ대한통운, 주 7일 배송으로 쿠팡과 ‘승부’ 가능할까
CJ대한통운이 주 7일 배송 도입 배경으로는 ‘로켓배송’을 앞세운 쿠팡의 약진이 꼽힌다. 불과 2020년까지만 해도 택배 시장 과반의 점유율(50.1%)을 확보하고 있었던 CJ대한통운은 지난 2024년 처음으로 쿠팡에 점유율 추월을 허용했다. 메리츠증권 리서치센터에 따르면 지난해 2분기 기준 택배시장 점유율은 쿠팡이 36.3%, CJ대한통운이 28.3%로 쿠팡이 크게 앞서는 것으로 파악됐다.
CJ대한통운이 물동량 감소를 방어하기 위해 주7일 배송을 도입했지만 쿠팡과 시스템이 달라 안착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로켓배송의 핵심은 풀필먼트센터 시스템과 이를 기반으로 한 무료배송·무료반품 정책이다. 쿠팡은 잘 팔리는 물건을 직접 구매해 전국 곳곳에 지어놓은 풀필먼트센터에 쌓아놓고 상품을 무료로 배송하고 있다. 그런데 CJ대한통운은 물류기업이기 때문에 유통 고객사의 배송·반품 정책에 따라 가격 책정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유통업계 한 관계자는 “고객사들 입장에서도 풀필먼트센터에서 관리해주는 쿠팡과 달리 주말에 상품을 보내려면 직원들이 출근을 해야 하고 비용이 든다”라며 “CJ가 어떻게 화주사들을 영업해 물동량을 채울지는 모르겠으나 이 시스템으로는 쿠팡의 점유율을 가져오기보다는 다른 택배사들의 점유율을 일부 흡수하는 데 그칠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CJ대한통운 관계자는 “초반이라 아직 시행착오가 있을 수는 있지만 현재 홈쇼핑, 식품업체 등 다양한 고객군에서 ‘매일 오네’ 도입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거나, IT시스템 최적화 등을 거쳐 조만간 시행할 계획으로 파악하고 있다”라며 “이에 따라 조만간 물량 증가 효과가 본격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당사 역시 ‘매일 오네’ 활성화를 위해 이커머스 셀러와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다양한 이벤트와 프로모션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김정민 기자 hurrymi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