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큰 문제는 이번 산불이 쉽게 진화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는 데 있다. 무엇보다 극도로 건조한 기후가 이어지고 있는 데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강한 돌풍까지 불어 사태는 더욱 악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런 가운데 최근 몇몇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또 다른 우려도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대형 산불과 같은 자연재해로 인한 차세대 팬데믹(대유행) 즉, 곰팡이로 인한 감염병이 유행할 수 있다는 염려다.
#‘더 라스트 오브 어스’ 실재한다면…
비디오 게임이 원작인 HBO의 ‘더 라스트 오브 어스’는 정체불명의 곰팡이로 인해 멸종 위기에 처한 인류의 생존 투쟁을 그린 포스트 아포칼립스 드라마다. 치명적인 곰팡이에 감염돼 좀비로 변한 감염자들과 생존자들 간의 치열한 전투를 다뤘으며, 해외에서는 이미 높은 평점을 받고 흥행하면서 화제몰이를 했다.
하지만 이런 흥행을 기분 좋게 바라볼 수만은 없다. 비록 드라마 속 설정이긴 하지만 만일 이런 치명적인 곰팡이가 현실에 존재한다고 생각하면 오싹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HBO가 시즌2 제작을 공식 확정했다는 소식에 몇몇 과학자들이 ‘이 드라마의 공포스런 시나리오가 현실이 될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고 경고하고 나선 배경에도 이런 우려가 있었다. 실제 전염병의 공포를 다룬 2011년 작품인 ‘컨테이젼’이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창궐하자 뒤늦게 화제가 된 사례도 있었다.
물론 인간을 좀비로 만드는 곰팡이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그럼에도 치명적인 곰팡이가 차세대 팬데믹을 촉발할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고 경고한다. 특히 이번 LA 산불과 같은 자연재해가 이러한 위험을 더욱 증가시킬 수 있다고 주장하는 전문가들은 “대규모 산불과 같은 환경적 요인에 의해 곰팡이 감염병과 같은 새로운 전염병이 더 빨리, 더 널리 확산될 수 있다”고 말한다. 요컨대 극단적인 기후 변화로 인해 산불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짐에 따라 치명적인 곰팡이 포자가 연기 속에 섞여 전국으로 퍼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오스트리아 그라츠 의과대학의 곰팡이 병원균 전문가인 마틴 회니글 박사는 ‘메일온라인’ 인터뷰에서 “일반적으로 볼 때 곰팡이가 팬데믹을 일으킬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고 경고하면서 “자연재해는 단기적 혹은 장기적으로 곰팡이 병원균을 확산시키는 촉매 역할을 할 수 있다. 특히 바람이나 산불 연기를 통해 곰팡이 병원균이 퍼질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곰팡이는 일반적으로 곰팡이 포자를 흡입하거나, ‘더 라스트 오브 어스’의 등장인물들이 좀비에게 물려서 감염되는 것처럼 피부의 상처 부위를 통해 체내로 들어와 감염을 일으킨다. 다시 말해 사람 간의 직접 감염보다는 환경을 통해 전파된다. 하지만 문제는 산불이 발생하면 공중에 거대한 연기 기둥이 형성되고, 이를 통해 곰팡이 포자가 대기 중으로 퍼지면서 인구 밀집 지역으로 확산될 위험이 커진다는 점이다. 이렇게 공중에 퍼진 포자를 연기 속에 갇힌 사람들이 흡입하게 되면 폐를 통해 감염을 일으킬 가능성이 높아진다.
#‘밸리열’ ‘검은 곰팡이’의 놀라운 감염 속도
실제 사례도 있었다. 2014~2018년, 캘리포니아 일대 병원 통계에 따르면 산불 발생 이후 ‘밸리열(콕시디오이데스 진균증)’ 감염으로 인한 입원율이 20% 증가했다. 당시 전문가들은 산불 연기에 포함된 곰팡이 포자를 사람들이 흡입했기 때문으로 추측했다.
산불로 인해 곰팡이 포자가 평소에는 이동할 수 없는 먼 거리까지 이동할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실제 2023년에는 캐나다 산불로 발생한 연기가 미 동부 해안을 따라 뉴욕까지 도달한 바 있으며, 이로 인해 뉴욕 일대에 흐릿한 스모그가 형성되었다. 만약 이 연기 속에 곰팡이 감염병 포자가 포함되어 있었다면 뉴욕에서도 갑작스럽게 감염병이 확산될 수 있었다는 이야기다.
곰팡이에 의한 감염은 새로운 질병은 아니다. 백선이나 무좀이 대표적인 예다. 하지만 지금까지 곰팡이 감염은 박테리아나 바이러스로 인한 감염에 비해 치명적이지 않을 뿐더러 매우 드물게 일어났다. 과학자들이 연구한 수백만 종의 곰팡이 가운데 인간을 감염시킬 수 있는 곰팡이는 약 300종에 불과한 것으로 추정된다.
문제는 근래 들어 전 세계적으로 전혀 새로운 유형의 곰팡이 감염 사례가 놀라운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캘리포니아에서는 ‘밸리열’ 진단 사례가 2000년에서 2018년 사이 18년 만에 무려 800% 증가했는가 하면, 인도에서는 감염자의 기도와 얼굴조직을 파괴하는 ‘검은 곰팡이’ 감염자 수가 수천 명 발생하기도 했다.
이처럼 곰팡이 감염이 증가하고 있는 주된 원인으로는 기후 변화가 꼽힌다. 다시 말해 지구 온난화로 인해 곰팡이들이 점점 더 높은 온도에 적응하면서 내열성을 키우고 있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곰팡이는 서늘한 환경을 선호하지만, 지구가 따뜻해질수록 점점 더 높은 온도를 견딜 수 있도록 진화하고 있다.
이는 인간의 면역 체계가 더 이상 효과적인 방어막 역할을 하지 못할 가능성이 커진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지금까지는 곰팡이가 생존하기에 인체 내부의 온도가 너무 높아서 곰팡이 감염 사례가 비교적 적었지만, 높은 온도에 적응한 곰팡이의 생존 능력이 향상될 경우 감염병이 확산될 위험은 높아질 수밖에 없다. 이럴 경우 체내에 침투한 곰팡이는 결국 혈액, 폐, 뇌에서도 생존할 가능성이 커지게 된다. 이와 관련, 회니글 박사는 “곰팡이가 환경 변화에 적응하면서 점점 더 높은 온도에서도 생존할 수 있게 되면 결국 인간의 체온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게 된다. 이는 곧 인간에게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있다”라고 경고했다.
#곰팡이 병원균이 특히 더 위험한 이유
기후 변화로 인해 곰팡이 병원균의 서식 범위가 점점 더 확장되고 있다는 점도 문제다. 2019년에 발표된 한 연구에 따르면, 가뭄과 홍수가 번갈아가며 발생하는 기후 패턴으로 인한 밸리열 확산 범위는 2100년까지 두 배 이상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또한 연구진은 밸리열이 미국 내 17개 주에서 퍼질 것으로 예측하고 있으며, 이로 인한 감염 사례 역시 50% 이상 증가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아울러 극한 환경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곰팡이의 생존 능력과 돌연변이 발생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있다는 점도 문제다. 이는 항진균제에 대한 내성이 생기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기후 변화로 인해 인간을 감염시킬 수 있는 곰팡이 수가 증가할 뿐만 아니라, 기존의 치료법을 적용하기 어려운 더욱 치명적인 곰팡이가 등장할 위험이 커지고 있다는 의미다.
어떤 병원균이든 빠르게 확산되면 위험하지만, 곰팡이 병원균이 특히 더 위험한 이유에 대해 버밍엄대 곰팡이 면역학자인 레베카 드러먼드 박사는 “일부 곰팡이들은 인간의 면역 체계로부터 숨는 데 특히 능숙하다. 때문에 면역 세포가 곰팡이를 발견했을 때는 이미 너무 늦어버리는 경우가 많다”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건강한 면역 체계를 가진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곰팡이를 빠르게 제거할 수 있지만, 면역 체계가 손상된 사람들은 감염이 쉽게 확산되거나, 오랜 시간 감염 상태가 지속될 수 있다”라고 경고했다.
몸 안으로 들어온 곰팡이 병원균이 퍼지면서 신체를 손상시키는 방식은 다음과 같다. 일단 곰팡이는 우리 몸 안에 들어오면 혈액, 폐, 신장, 심지어 뇌까지 포함해 신체 어느 부위로든 퍼질 수 있다. 이 가운데 일부 곰팡이는 독소를 분비해 주변 조직을 손상시키며, 어떤 곰팡이는 단순히 살을 뚫고 들어가 손상을 일으키기도 한다. ‘더 라스트 오브 어스’의 감염자들처럼 곰팡이에 감염되면 균사체라는 필라멘트(가는 실 같은 형태)가 몸 안을 가득 채울 수도 있다. 드러먼드 박사는 “특히 거대한 곰팡이 덩어리가 폐에 형성되면 심각한 출혈이 일어나고, 결국 폐기능이 멈추게 된다”라고 설명했다.
곰팡이 감염이 위험한 또 한 가지 이유는 치료가 어렵다는 데 있다. 세균과 바이러스는 인간과 생물학적으로 매우 상이하기 때문에 비교적 쉽게 표적 치료가 가능한 반면, 곰팡이는 인간과 유전적으로 더 가까운 생물(동물)과 친척 관계에 있기 때문에 곰팡이를 사멸시키는 약은 결국 인간 세포에도 피해를 줄 가능성이 크다. 우리 몸의 세포를 손상시키지 않으면서 곰팡이만 손상시킬 수 있는 약물을 개발하기란 매우 어렵다.
그나마 현존하는 소수의 항진균제가 이미 농작물을 보호하기 위해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기 때문에 곰팡이의 내성이 빠르게 강해지고 있다는 점도 문제다. 드러먼드 박사는 “이것은 매우 심각한 문제다. 이미 치료제에 강한 내성을 가진 감염 환자가 발생하면 우리가 쓸 수 있는 카드는 거의 남아있지 않게 된다”라고 우려했다.
#2년 만에 세계로 퍼진 '칸디다 아우리스'
기후 변화로 인해 지금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곰팡이가 출현할 가능성도 높아지고 있다. 일례로 2009년, 일본 의사들은 귀 감염 치료를 받던 한 여성에게서 새로운 종의 곰팡이를 발견했다. ‘칸디다 아우리스’라고 명명된 이 균류는 기후 변화로 인해 인간에게 감염되기 시작한 첫 번째 균류일 가능성이 제기됐다. 일본 의료진들은 본래 야생에서 살았을 가능성이 높았던 균류가 지구 온난화로 인해 인간에게 전염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된 것으로 추측했다.
이런 우려는 곧 전 세계적으로 확산됐다. 2년 후, 이 곰팡이가 베네수엘라, 남아프리카, 인도에서 독립적으로 출현했기 때문이다. 2019년까지 세계 곳곳으로 확산됐던 ‘칸디다 아우리스’에 대해 세계보건기구(WHO)는 ‘공중 보건에 대한 긴급한 위협’으로 지정했다.
‘칸디다 아우리스’가 위험한 이유는 첫째, 사람 간 전염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물체 표면에 붙어 있다가 사람에게 전염될 수 있으며, 특히 병원에서 의료진과 환자 사이에서 확산될 가능성이 높아 특히 위험하다. 둘째, 강한 내성이다. 기존의 항진균제와 소독제에 강한 내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특히 제거하기가 어려운 것으로 알려졌다. 셋째, 면역력이 약한 사람에게는 목숨을 잃을 수 있을 만큼 치명적이라는 점도 위험 요소로 꼽힌다.
면역력 측면에서 볼 때 의학의 발달도 곰팡이 감염이 증가하는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의료 기술이 발전하면서 인간의 기대 수명이 높아졌고, 이에 따라 암 환자, 장기 이식 환자, HIV 환자 등 면역력이 저하된 환자들의 수도 증가했다. 다시 말해 수명은 늘었지만 동시에 감염에 취약한 인구는 계속 늘어나고 있다는 의미다. 실제 2013년부터 2024년까지 면역력이 저하된 사람들의 수는 두 배 이상 증가했다. 또한 다른 연구에 따르면 독감이나 코로나19와 같은 바이러스 감염도 장기적으로는 면역 체계를 약화시킬 수 있다.
따라서 ‘칸디다 아우리스’가 아니더라도 곰팡이 감염의 위험이 커지는 건 시간문제일 수 있다고 회니글 박사는 말했다. 그는 “현재 새로운 곰팡이 병원균이 놀라운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이제 인간뿐만 아니라 농업 분야에서도 곰팡이 병원균이 작물과 식량 공급을 위협하는 주된 요인이 되고 있다”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그는 “곰팡이는 매우 정교하고, 적응에 능숙하다. 사실 이들은 포유류보다 훨씬 이전부터 지구상에 존재해 왔으며, 아마도 인간이 멸종한 후에도 살아남을 것이다. 지구온난화와 같은 새로운 환경 변화에 적응하는 법을 배우면 곰팡이들은 독성을 높이면서 면역 체계를 피하는 능력을 키울 수 있다”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회니글 박사는 “현재 나타나고 있는 모든 증거들을 볼 때 곰팡이 감염은 앞으로 계속 증가할 수 있으며, 그렇게 되면 수십 년 안에 더 큰 위협으로 다가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개미·늑대 지배한 ‘좀비 곰팡이’ 사람까지 건드릴까
미국 드라마 ‘더 라스트 오브 어스’에서 곰팡이에 감염된 사람들이 좀비로 변한다는 설정은 열대우림에서 개미를 감염시키는 동충하초의 일종인 ‘오피오코디셉스’에서 영감을 받았다. 이 곰팡이는 개미의 몸을 통해 퍼지며, 개미의 뇌와 신경계에 파고들어 개미의 행동을 통제하기 때문에 일명 ‘좀비 개미’를 만드는 곰팡이로도 알려져 있다.
감염된 개미는 곰팡이의 요구에 따라 더 습한 기후를 찾아 기존의 서식지를 떠나게 되고, 곰팡이가 퍼지기에 적당한 환경에 도달한 후에는 높은 곳으로 올라가 곰팡이가 자신의 몸을 뚫고 나와 그 아래에 있는 다른 개미들에게 퍼질 때까지 가만히 기다린다. 이렇게 새로운 개미가 감염되면 그 개미는 다시 이 과정을 반복한다. 말 그대로 곰팡이의 필요에 따라 움직이는 ‘좀비 개미’들이 되는 것이다.
놀라운 점은 이와 같은 곰팡이의 통제 능력이 곤충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2022년, 연구진은 옐로스톤 국립공원에서 ‘톡소플라스마 곤디이’라는 곰팡이에 감염된 늑대들이 자기 무리를 떠나거나, 무리의 리더가 되는 경향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럼 혹시 인간에게도 이런 일이 가능할까. 이에 대해 드러먼드 박사는 “우리가 드라마에서 보는 것처럼 곰팡이가 인간의 몸을 차지할 가능성은 지극히 낮다”고 주장했다. 곰팡이가 인간의 몸을 통제하는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는 의미다. 그는 또한 “물론 곰팡이가 인간의 뇌 화학물질을 변화시킬 수는 있다. 가령 환각 성분이 함유된 마법 버섯처럼 말이다. 하지만 이는 병원성 곰팡이 감염과는 다르다”라고 설명했다. 특히 ‘오피오코디셉스’ 같은 곰팡이는 숙주가 곤충일 경우에만 적응할 뿐 인간의 몸 안에서는 큰 변화가 일어날 가능성이 없다고 덧붙였다.
김민주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