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 보니 영화를 만들기 위해 참여하는 각각의 전문가들에게 영화를 총괄하는 제작자로서 꼭 부탁, 당부하는 것이 있다. 특히 신인배우들에게는 너무 자신을 드러내려 하지 말라고 강조한다.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것에 대한 강박을 신인배우들이 떨치기에는 너무 어렵다. 그래도 배우들에게 이렇게 당부한다.
“연기는 앙상블이다. 연기는 상대 배역과 감정을 나누는 작업이다. 그렇기 때문에 상대 배우와의 호흡, 감정, 정서를 공유해야지, 자신만 돋보이려고 연기하면 그건 전체를 망치는 길일 수도 있다. 신인들은 연기하면서 자신이 없는 것처럼 느껴질까 봐, 또는 관객이 나를 못 느끼면 어쩌나 하고 걱정되겠지만 연기가 다 끝나면 오히려 나를 비운 게 훨씬 더 관객에겐 의미 있게 기억된다.”
자신을 드러내면 드러낼수록 사실 관객은 그 배우를 배역에 걸맞은 사람으로 기억하기보다는 뭔가 튀는, 뭔가 부자연스러운 캐릭터로 오해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또한 영화를 촬영한 뒤에 작업이 시작되는 음악감독이나, 음향감독, 시각효과책임자들에게도 아주 신신당부하는 것이 있다.
“관객이 영화 안에 음악이 있는지도 잘 못 느끼는데, 제발 그 음악이 영화의 색깔을 잘 표현해 줬으면 좋겠다. 시각효과도 마치 어떤 효과도 하지 않은 것처럼 관객이 느꼈으면 좋겠다.”
예전에는 감정을 막 강요하고 선도하는 음악이 좋은 줄 알았다. 컴퓨터그래픽, 즉 시각효과도 ‘우리가 이런 기술로 이런 멋진 장면을 만들었네’라면서 전시하는 게 좋은 줄 알았다. 그런데 막상 음악이나 시각효과를 더 드러내고 더 전시할수록 관객이 서사와 감정을 느끼는 데 방해를 받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무리 음악이 뛰어나고 아무리 시각효과가 새로워도 관객은 서사(이야기)와 인물(캐릭터)에 집중하고 싶어하고, 그 인물과 이야기에 공감하기를 원한다. 결국 영화는 만들면서 관객이 시나브로 자연스럽게 느끼게 해주는 게 최선이지 우리 영화의 주제는 무엇이고 우리 영화가 주장하는 메시지는 이런 것이고, 우리는 이런저런 기술로 엄청난 제작비를 투여한 블록버스터라고 아무리 떠들어봐야 관객은 반응하지 않는다는 점을 영화관계자들은 엄청난 수업료를 지불한 뒤에 뼈저리게 알게 된다.
12월 3일 비상계엄령이 선포되고 국회에 의해 비상계엄령이 해제된 이후 전 국민은 자신의 생업이나 미래보다는 한국의 정치가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지에 더 큰 관심을 갖고 있다. 새벽에 체포영장이 발부되는 뉴스를 동시접속자 수십만 명이 시청하고 있다. 회사에 출근하거나 생업을 영위하면서도 모든 국민이 실시간으로 전해지는 뉴스에 눈과 귀를 쫑긋하며 사태를 지켜보게 됐다.
국민들이 자신들의 생업과 미래보다는 국가를 걱정하고, 게다가 각 진영에 따라서 서로를 반목하고 비난하고 있다. 정말 하루하루가 드라마틱한 사건들의 연속이니 온 국민이 자신들의 생업이 무엇인지를 생각조차 못한 채 불안하고 암울한 시간들을 보내고 있다.
올바른 정치는 국민 모두가 우리에게 정치가 있는지조차 못 느끼게 해주는 것이다. 국민이 정치인들을 믿고 그들이 알아서 국민들에게 최선의 가치와, 국민들의 행복과 안전한 미래를 위해서 서로를 설득해서 최선의 방안을 만든다는 믿음을 준다면 아마도 국민은 정치를 의식하지 않을 것이다. 자신의 생업에 전념하면서 행복할 수 있을 것이다.
2025년 대한민국 국민은 너무나 깊게 정치에 관여해 있다. 그러나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제발 국민이 정치가 우리 주위에 없는 것처럼, 느끼지 못 하는 것처럼 국민의 행복이란 최선의 가치를 위해 노력해 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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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동연 영화제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