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즌2 또 다른 주역 ‘박정배’로 피날레 장식…“마지막 장면, 제게 있어선 극의 ‘하이라이트’”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오징어 게임2’의 또 다른 주역을 꼽으라면 바로 이 캐릭터를 가장 먼저 떠올리지 않을까. 주인공의 절친이면서, 주인공이 잊고 있었던 과거의 모습을 다시금 떠올리게 만드는 그는 이 작품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존재로 자리매김했다. 마지막까지 주인공의 ‘정의’와 함께한 의리의 남자, 박정배를 보내며 배우 이서환(52)은 “이제야 뒷이야기를 다 말할 수 있게 됐다”며 웃음부터 터뜨렸다.
“사실 시즌 1때는 저를 알아보시는 분들이 많이 없었어요. 시즌 2가 제작된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그 다음에 또 박정배란 인물이 다시 나온다고 하니까 많은 분들 사이에서 ‘이 사람이 시즌 1에 나왔다고?’라는 반응이 있더라고요. 아무래도 정배는 시즌 1에선 게임에 참가하지 않았으니까요(웃음).”
시리즈의 주인공, 참가번호 456번 성기훈(이정재 분)의 절친인 정배는 ‘오징어 게임’ 시즌 1에서 기훈과 함께 경마 도박을 즐기는 소시민으로 그려진다. 한탕을 노리는 밑바닥 인생이라기 보다는 하루하루 충실히 살아도 고된 현실을 맞닥뜨릴 수밖에 없는 가장의 그림자가 더 짙은 인물이다. 호프집을 운영하지만 버는 돈보다 빚이 더 많은 상황에서 절친한 친구의 어머니 병원비조차 마음 놓고 빌려주지 못하는 처지를 씁쓸해 하던 것이 시즌 1 속 정배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그런 그가 ‘오징어 게임2’에 이르러 이 지독한 ‘살인 서바이벌 게임’의 참가자가 됐다니, 지난 시즌에서 먼저 게임을 경험해 본 기훈은 물론이고 시청자들 역시 놀랄 수밖에 없었다.
“장사도 어렵고, 대출 때문에 생계를 위협받는 지경에 몰려 있는데 그간 맘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었던 내 분신 같은 친구까지 갑자기 사라진 거예요. 와이프와도 많이 싸우면서 갈등이 생기고, 아이는 무능한 아빠보단 열심히 일하는 엄마와 살게 됐겠죠. 이런 상황 속 정배는 가정도, 친구도 없이 고립돼 있다가 인생을 바꿀 수 있는 기회를 거머쥐게 됐어요. 그 게임장에 가지 않으면 내일도, 모레도, 똑같은 이 지옥 속에서 살아야 하는데 거길 가면 돈을 벌 수 있다고 하잖아요? 그래서 간 거예요. 하지만 정말로 사람을 죽일 줄은 전혀 몰랐겠죠.”
이서환은 ‘오징어 게임2’ 속 정배의 모든 선택엔 물론 자신이 처해있는 현실도 영향을 끼쳤지만, 무엇보다 기훈을 위한 마음이 기저에 깔려 있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병원비를 빌려주지 못했던 친구의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뒤늦게 접한데다 친구마저 사라진 상태에서 수년 간 미안함과 죄책감에 사로잡혀 있었을 것이란 게 그의 이야기다. 그랬기에 정배는 기훈의 ‘반란’에 고민 없이 곧바로 함께 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정배랑 기훈이 둘이서만 컨트롤 룸으로 가기 전에 정배가 ‘(오)영일 씨랑 가지, 왜 나한테 가자 그래?’라고 기훈이에게 투덜거리는데, 이건 원래 없던 대사였어요. 황동혁 감독님이 즉석에서 넣은 거죠. 사실 저도 대사가 있기 전엔 ‘얘가 갑자기 목숨까지 건다는 게 설명이 안 되는데’하고 마음에 좀 걸렸는데, 이 대사 후에 기훈이가 ‘그래도 네가 내 친구잖아’라고 말하는 걸 듣는 순간 다 해결되더라고요. 나는 아직도 기훈이에게 미안함이 있는데 기훈인 여전히 나를 자기 등을 맡길 수 있는 친구로 여긴다는 게 정배의 마음을 크게 울렸던 거예요. 하지만 이 상황에서 ‘그래, 내가 네 등을 맡을게!’하면 오글거리니까 ‘이새X는 급할 때만 친구래’하고 툭 치고 가는 거죠(웃음).”
마지막까지 절친에 대한 의리를 지킨 정배의 죽음은 시청자들에게도 큰 충격을 준 결말이었다. 시즌 1의 어머니에 이어 시즌 2의 정배까지, 자신을 둘러싼 소중한 사람들이 하나씩 사라지는 상황에서 과연 기훈이 다시 일어설 수 있을지는 오는 상반기 공개될 시즌 3의 주요 관전 포인트이기도 하다. 자신의 죽음이 시청자들에게 불러일으킨 반향이 놀랍다면서도 이서환은 촬영 전부터 모든 것을 알고 작품에 들어갔던 만큼 홀가분하다고 웃어보였다.
“정배는 기훈이가 자신을 불렀을 때부터 이미 죽음을 예상했을 거예요. 하지만 총에 맞고 나서도 기훈을 보면서 정배가 생각한 건 ‘너 때문에 죽었어’가 아니라 ‘끝까지 같이 있어주지 못해서 미안해’예요. 저 역시도 그런 미안함을 담은 눈빛으로 기훈을 바라보고 있었고요. 촬영 때 제게 있어선 이 신이 극의 하이라이트였기 때문에 ‘죽기까지 어떤 시선으로 친구를 바라봐야 하나’를 많이 고민했던 기억이 나요. 하지만 단언컨대 저는 죽고 싶지 않았고요(웃음), 시즌 3에 다시 등장할 수 있다면 좋긴 할 텐데…. 그래도 그 마름모 사진(참가자들이 게임 전에 찍은 증명사진)에서 불이 꺼지면 끝난 거니까 기대하지 마세요(웃음).”
기훈 외에도 정배는 ‘오징어 게임2’에서 또 다른 인물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 ‘해병대’라는 연으로 이어진 참가번호 388번 강대호(강하늘 분)다. 각각 746기와 1140기로 해병대 선후배 관계인 이들은 두 번째 게임부터 최후의 반란까지 서로를 믿고 의지하지만, 시즌 2의 결말에 이르렀을 때는 양 쪽 모두 상대방의 상황을 모른 채 막이 내려졌다. 시즌 3에서 정배의 뒤를 이어 받을 인물로 대호가 꼽히는 만큼, 후배를 향한 선배(?)의 한 마디를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정배는 해병대라는 사실만으로 죽을 때까지 대호를 믿었어요. 만일 대호가 탄창을 안 가져왔다면 그건 ‘안 가져온’ 게 아니라 적의 총에 맞았거나, 나쁜 일을 당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을 거예요. 절대로 그런 식으로 안 가져온 거라고 믿지 않았을 거고요. 대호는 해병대니까, 총을 맞을지언정 자기 임무를 절대 저버리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했겠죠. 저는 이미 죽었으니까 시즌 3에 누가 어떻게 되든 관심 없긴 한데요(웃음), 대호만큼은 해병대의 위엄을 가지고 멋지게 갔으면 좋겠네요.”
국내외 시청자들에겐 이처럼 ‘오징어 게임의 박정배’로 깊이 각인됐지만, 이서환은 사실 무대 위가 더 익숙한 배우다. 다소 늦은 나이인 31세에 뮤지컬 ‘노틀담의 꼽추’(2004)로 처음 ‘무대 맛’을 본 그는 다양한 연극‧뮤지컬 작품을 거친 뒤 2016년부터 드라마와 영화로 영역을 넓혀 나갔다.
무대에서 매체로 옮기는 배우들이 대부분 그렇듯 그 역시 조역과 단역을 오가며 몇 번이나 경제적 어려움에 부딪쳐야 했다. 그럼에도 한순간도 연기를 놓지 않은 데엔 끝까지 자신을 믿고 응원해 준 아내의 덕이 컸다는 게 이서환의 이야기다. “요즘은 아내가 친구들한테 전화 받을 때 당당하게 받는다”며 웃어 보인 이서환은 이처럼 ‘버팀’ 끝에 온 행복을 조용히 만끽하고 있었다.
“저는 이전까진 사실 변곡점이랄 게 없었어요. 정말 꾸준하게 계속 올라오다가, 또 그런 가운데서도 많이 힘들었다가, 이제 이 ‘오징어 게임’이 변곡점이 된 거죠. 저를 움직이게 만드는 동력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다’는 것 그 자체인 것 같아요. 원래 해야 되는 일과 하고 싶은 일은 분명히 나뉘기 마련인데, 저는 지금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잘 하고 있으니까요. 이 어려운 일을 해내고 있는데 그만큼 행복한 게 또 어디 있겠어요? 그런 마음을 가지고 지금 이때까지 잘 버텨온 것 같아요.”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
-
아이유 업고 안전한 길 선택…변우석 ‘21세기 대군 부인’ 차기작 결정 이유
온라인 기사 ( 2024.12.18 16:34 )
-
박성훈·이서환·조유리 누가 가장 뜰까…'오징어 게임2' 모두가 주목한 얼굴
온라인 기사 ( 2025.01.03 17:06 )
-
[리뷰] 3년의 기다림, '오징어 게임2'엔 당연히 그럴 가치가 있었다
온라인 기사 ( 2024.12.26 17: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