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글로리’ 이후 다양한 장르에 눈길…구마 신 찍는 내 모습 어떨지 나 또한 궁금했었다”
데뷔 28주년을 맞이한 ‘대선배’의, 무려 11년 만의 귀환이다. 강동원과 호흡을 맞췄던 영화 ‘두근두근 내 인생’(2014)을 마지막으로 극장 아닌 안방극장 위주로 활약을 펼쳐 왔던 배우 송혜교(44)가 영화 ‘검은 수녀들’을 들고 스크린으로 돌아왔다. 멜로나 로맨스로 대중들에게 친숙했던 그가 데뷔 이래 선택한 첫 오컬트 장르라는 점에서 많은 대중들을 놀라게 한 작품이다. 송혜교는 “장르 연기에 점점 재미를 붙이고 있는 것 같다”며 웃어 보였다.
“‘더 글로리’ 이후로 다양한 장르에 눈길이 많이 가기 시작했는데, 그러다 마침 만나게 된 작품이 ‘검은 수녀들’이었어요. 오컬트 영화라곤 하지만 드라마가 강한 게 무엇보다 끌리더라고요. 신념이 달랐던 두 여성이 같은 신념을 가지게 되고, 한 아이를 구하기 위해 움직이는 연대가 참 좋았어요. 또 한편으론 제가 살면서 구마 같은 걸 연기해 본 적이 없으니까요(웃음). ‘구마 신을 찍을 때 내 모습이나 표정이 어떨까’라는 기대와 궁금증도 선택에 한몫했죠.”
‘K-오컬트 장인’으로 불리는 장재현 감독의 영화 ‘검은 사제들’(2015)의 스핀오프작인 ‘검은 수녀들’은 어린 소년의 몸에 숨어든 악령을 구마하기 위한 두 수녀의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은 ‘위험한 의식’을 그린다. 극 중 송혜교는 ‘서품을 받지 못한 수녀는 구마를 할 수 없다’는 금기를 깨고 소년을 구하기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벌일 수 있는 수녀 유니아를 연기했다.
“유니아는 굉장히 거침없는 인물이에요. 가족도 아닌, 나와 전혀 상관없는 아이를 위해 뛰어들 용기가 있죠. 작품에서 전사가 드러나진 않지만 아마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영화에서 여러분들이 보신 유니아의 모습과 그가 가진 신념이 쭉 이어졌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처음에 접했을 땐 좀 당황했어요. 유니아는 담배를 피는데 저는 비흡연자다 보니 ‘이거 어떻게 하나’ 싶었죠(웃음). 하지만 담배 피는 신을 다 빼버리기에는 그건 유니아의 성격을 알려주는, 너무나 필요하고 또 중요한 부분이었거든요. 그래서 저도 마음먹고 담배 피는 법을 연습했어요(웃음).”
‘검은 수녀들’ 속 유니아는 말 그대로 ‘깨져버린 금기의 파편’ 같은 존재다. 수녀 신분으로 익숙하게 담배를 입에 무는가 하면 자신을 무시하는 사제들과 저주를 쏟아내는 악령을 향해 거침없이 막말과 욕설을 내뱉기도 하고, 무속의 길을 걷게 된 동료 수녀와 함께 동서양이 뒤섞인 ‘퓨전 구마’를 벌이기도 한다. 이처럼 목적을 향해 오로지 직진만을 택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송혜교의 전작인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더 글로리’ 속 문동은이 자연스럽게 떠오르지만, 배우는 그 둘을 철저히 구분해 표현하려 했다고 강조했다.
“강단 있고, 마음먹은 걸 꼭 이루려고 하는 것은 비슷하지만 ‘검은 수녀들’을 찍으면서 문동은을 떠올리진 않았어요. 두 캐릭터는 확실히 다르다고 생각했으니까요. 유니아 수녀는 아이를 살리기 위한 목적을 향해 갈 땐 단단한 모습을 보이지만 실제론 자유로운 영혼이거든요. 그래서 담배도 피고 욕설처럼 거침없는 말도 내뱉죠. 이렇게 하지 말란 것들을 반대를 무릅쓰고 하는 바람에 일찌감치 교단에 찍힌 인물이기도 해요(웃음). 하지만 신념 하나는 굳건하기 때문에 ‘내가 이렇게 자유롭고 너희 말을 안 듣지만, 그래도 난 아이를 살리고 생명을 중요하게 생각해’라고 내세울 수 있는 거죠.”
전작의 구마 의식을 이끈 김범신 베드로 신부(김윤석 분)를 스승으로 두고 이처럼 ‘막무가내일지라도 목적을 달성하는 법’을 배운 유니아 수녀와 달리, 그와 반대편에 서 있던 미카엘라 수녀(전여빈 분)는 스승으로부터 ‘스스로를 억누르는 법’을 배웠다. 어렸을 때부터 영을 느낄 수 있어 고통 받아온 그는 구마가 아닌 의학으로 이를 다스려야 한다는 스승 바오로 신부(이진욱 분)의 말을 전적으로 믿고 따른다.
이런 믿음에 정면으로 반하는 존재인 유니아에게 반발심을 느끼지만, 그가 자신과 비슷한 아픔을 지녔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미카엘라는 결국 유니아와 함께 위험한 구마 의식을 치른다. 송혜교는 이처럼 처음엔 달랐어도 종국엔 같은 신념을 향해 나아가는 두 여성의 연대와 이를 토대로 한 ‘드라마적 서사’가 ‘검은 수녀들’ 출연을 최종적으로 결정하게 된 이유 가운데 하나였다고 설명했다. 또 미카엘라를 연기한 전여빈에 대한 개인적인 호감도 그 뒤를 이은 이유였다고.
“가장 힘없고 여린 두 여성이 한 생명을 살리겠다는 목적 하나만으로 나아가는 모습이 정말 너무 멋있었어요. 주변은 계속해서 반대하고 있어도 이들은 하지 말아야 할 것까지 다 해가면서 행동하죠(웃음). 장르는 오컬트지만 두 여성의 드라마에 집중해서 촬영했고, 저 역시도 이 둘의 이야기가 좋아서 작품을 선택하게 된 것도 있어요. 또 (전)여빈 씨 같은 경우는 제가 이번 작품에서 만나기 전부터 호감을 가지고 있었거든요. 현장에서 보자마자 옛날에 알던 친구처럼 반가워하고 수다도 엄청 많이 떨었어요. 실제로 보면 정말 순수한 사람이에요. 볼 때마다 ‘어떻게 아직도 저렇게 순수할 수 있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웃음).”
모두들 입을 모아 ‘연기하기에 가장 힘들었을 것’이라고 지목한 배우 문우진에 대해서도 송혜교는 “현장에서 함께 하는 내내 짜릿했다”고 칭찬을 이어나갔다. 강력한 악령에 사로잡힌 부마자 소년 희준을 연기한 문우진은 구마 의식이 이뤄지는 ‘검은 수녀들’의 후반부 내내 두 여성들과 함께 ‘장르적 특성’의 중심을 잡는 주역으로 열연을 펼쳤다. 전작의 박소담이 그랬듯 평소의 말갛고 무해한 얼굴에선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강렬한 연기에는 그만의 애드리브도 많이 담겨 있었다는 게 송혜교의 이야기다.
“문우진 배우의 첫인상은 모범생, 반듯한 청년 느낌이었어요. 얼굴만 봤을 때 ‘저런 얼굴로 저런 연기를 한다고? 진짜 어렵겠다’ 이렇게 생각했는데, 대본 리딩을 딱 시작하니까 대사를 읽기만 해도 정말 새로운 느낌을 주더라고요. ‘보통 아니네’ 그랬죠(웃음). 대사도 대사지만 중간중간에 악령이 씐 걸 표현하는 표정들이 있거든요. 그걸 감독님이 ‘컷’할 때까지 계속 애드리브로 연기하는데 보면서 정말 놀랐어요. 촬영이 끝나고 나면 그냥 자연스럽게 칭찬이 나오더라고요. ‘너무 멋있더라’ 하면서(웃음).”
‘더 글로리’에 이어 ‘검은 수녀들’까지 연이어 선보인 송혜교는 그의 주력 장르였던 멜로에서 한 발짝씩 물러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노희경 작가와 함께하는 그의 차기작이자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천천히 강렬하게’도 시대극, 성장물이라는 장르 이름표를 달았다. 새로운 도전엔 당연히 기대감이 모이지만, 한편으론 ‘송혜교의 영역’으로 익숙했던 곳에서 조금씩 멀어지는 데에 팬들의 아쉬움이 따를 터다. 이에 “저도 이제 마흔이 넘지 않았나”라며 농담을 던지며 웃어 보이면서도 송혜교는 아직 멜로 작품에 완전히 미련이 없어진 것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제가 장르물에 재미를 붙이고 있고, 그런 작품들을 계속 선택한다고 해서 멜로 작품을 싫어하게 된 것은 아니에요. 멜로를 좋아했기 때문에 많은 작품들을 해 왔지만 한편으로는 너무 비슷한 것들을 연달아 하다 보니 대중들이 보시기에도, 또 제가 느끼기에도 재미가 없었던 거죠. 앞으로도 멜로 작품을 할 수는 있겠지만 동화 같은 사랑 이야기는 이제 못 하지 않을까 싶어요. 대중 분들이 제게 그런 사랑을 기대하지도 않으실 거고요(웃음). 사랑 이야기를 하더라도 현실적인 이야기를 하게 될 것이고, 다음 작품을 선택할 때도 그 기준으로 보게 될 것 같아요. 동화 같은 이야기는 이제 후배들이 해야 하니까(웃음).”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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