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저녁 도쿄 시부야역 앞. 중년의 남성이 ‘당신을 엄청 칭찬합니다’라고 쓴 손글씨 팻말을 들고 진지한 얼굴로 서 있다. 행인 대부분은 눈길도 주지 않고 지나친다. 1시간 뒤 여고생이 걸음을 멈췄다. 남성은 환한 얼굴로 “밝고 건강해 보인다. 마음이 넓고 리액션을 잘 해주는 걸 보니 착하다. 사람을 끌어들이는 능력이 있다”고 칭찬을 이어갔다. 그러자 여학생은 “나를 이렇게 칭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며 웃었고, 남성의 발밑에 있는 상자에 팁 150엔(약 1400원)을 넣고 떠났다.
남성은 현지에서 이른바 ‘칭찬하는 아저씨’로 통한다. 지난 3년간 도심 거리에서 행인을 칭찬하며 생계를 이어오고 있다. 팻말 앞에 걸음을 멈춰선 이들을 칭찬하고, 그 대가로 팁을 받는다.
아사히신문에 의하면, 칭찬하는 아저씨가 거리로 나서게 된 사연은 파란만장하다. 원래 그는 도치기현 출신으로 파친코와 경마에 빠져 거액의 빚을 지게 됐다고 한다. 판매원을 시작으로 건설업 등 여러 직업에 종사했지만, 월급 대부분은 빚을 갚는 데 쓰였다. 한탕주의 유혹을 견디지 못하고 또다시 도박에 손을 대는 악순환이 이어졌다.
설상가상 그의 아버지가 뇌졸중으로 쓰러져 주택담보대출금마저 감당할 수 없게 됐다. 정신을 차려보니 한순간에 집을 잃고 노숙 생활을 하고 있었다. 주머니에는 단돈 600엔(약 5500원)뿐. 궁지에 몰린 그는 어린 시절 꿈이었던 ‘거리 공연자’가 되기 위해 2021년 12월 거리로 나섰다. 다만, 노래나 마술 등에는 큰 재능이 없었기 때문에 칭찬하는 아이디어를 생각해냈다. ‘칭찬받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라는 믿음에서다.
아무나 할 수 있는 일 같지만, 사실 초면에 진심 어린 칭찬을 건네기란 쉽지 않다. 그는 “처음 만나자마자 누군가의 내면을 칭찬하는 것은 거짓말이 되므로 종종 외모부터 칭찬하곤 한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이야기하는 도중에 ‘칭찬 포인트’를 찾아간다. 요령은 너무 과하지 않게 칭찬하는 것이다.
팻말을 들고 몇 시간씩 서 있는 동안 단 한 명도 관심을 주지 않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러나 이 독특한 ‘직업’을 3년가량 해오면서 단골손님도 생겨났다. 지금은 일본 전역 47개현 중 31개현을 돌며 생면부지의 사람들을 칭찬하고 있다. 그는 “상대방이 기뻐하면 나도 행복하다. 덕분에 지난 3년간 이 일을 해올 수 있었다”고 밝혔다.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젊은이부터 경쟁에 찌든 회사원, 정기적으로 찾아오는 단골손님까지, 왜 이들은 칭찬하는 아저씨를 찾아올까. 두 달마다 그를 찾는다는 20대 청년은 “칭찬하는 아저씨가 없었다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 것”이라며 “그가 자신의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줬다”고 전했다. 이 청년은 “어린 시절의 집단 괴롭힘과 말더듬증 탓에 자존감이 낮아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하지만 2년 전 입사를 앞두고 걱정이 컸던 어느 날이었다. 칭찬하는 아저씨가 진지하게 자신의 눈을 들여다보며 “당신은 잘할 것”이라고 말했고, 그 말에 왠지 모를 자신감을 얻었다고 한다. 이후 두 달에 한 번씩 아저씨를 찾아가 칭찬을 듣고 100엔을 지불하는 관계가 이어졌다. 청년은 “부모님께도 말할 수 없는 괴로움을 아저씨에게는 말할 수 있다”며 “오랜 꿈인 방송작가가 되기 위해 양성소에 다니고 있다는 사실도 아저씨에게만은 털어놨다”고 했다. 그때 들려준 말이 아직도 생생하다. “하고 싶은 게 아직 있다는 건 정말 멋진 일이야”라는 칭찬이었다.
칭찬하는 아저씨는 상황에 따라 맞춤 칭찬을 제공하기도 한다. 예컨대 이별이나 실직으로 슬픔을 겪고 있는 이들에게는 오랜 시간 동안 친절한 말을 건넨다. 때로는 인생 상담으로 발전하는 경우도 있다. 가만히 그의 말을 듣던 사람들은 종종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그가 칭찬 활동으로 얻는 수입도 궁금하다. 칭찬하는 아저씨는 “그날그날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평균적으로 하루 1만 엔 정도”라고 밝혔다. 얼마 전에는 당일 수입으로는 최고액인 4만 3000엔을 벌기도 했다. 가게를 운영하는 사장이 “종업원들에게 항상 신세를 지고 있으니 한 사람 한 사람 칭찬해달라”고 부탁해와 가게로 직접 가서 종업원들을 칭찬하고 3만 엔을 받았다고 한다.
다른 사람을 칭찬하려면 긍정적인 에너지가 필요하다. 칭찬하는 아저씨는 “집이 없어 PC방이나 저가의 숙박업소를 전전하고 있지만, 이렇게 된 것도 자업자득이라고 생각한다”며 “과거보다 지금을 소중히 여기고 싶기 때문에 후회하지 않는다”고 했다. 앞으로의 포부도 드러냈다. 현재까지 도쿄를 비롯해 31개현을 방문했는데, 추후 칭찬 활동을 일본 전역 47개현으로 확대하고 싶다는 것이다. 그는 “여러 사람을 만날 수 있고, 어디든 갈 수 있다.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어 매일매일 최선을 다하고 즐겁게 보내고 있다”며 웃어 보였다.
일본 젊은이 62% “남들 앞에서의 칭찬은 불편해”
일본 젊은이들의 과반수가 “여러 사람 앞에서 하는 칭찬을 불편하게 여기는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해 1월, 마케팅업체가 15~24세의 일본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62.7%가 “개별로 칭찬받고 싶다”고 답해 “많은 사람 앞에서 칭찬받고 싶다(37.3%)”를 크게 웃돌았다. “칭찬받는 것은 좋지만, 남들 앞에서 두드러져 보이고 싶지 않다”라는 것이 이유다.
22세 직장인 여성은 “모두 앞에서 칭찬받으면 지나친 기대를 받게 된다”며 “실망시키게 될까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20세 대학생도 “앞으로 잘해야 한다는 부담이 생긴다. 필요 이상으로 애쓰고 싶지 않다”며 “가능하면 개별로 칭찬받는 편이 좋다”고 했다.
반면 기성세대는 “세대의 벽을 느낀다” “결과가 놀랍다”는 반응이다. 한 대학교 교수는 “경쟁을 싫어하는 요즘 젊은이들의 특성이라고 생각한다”며 “실제로 남들 앞에서 칭찬하지 말아 달라는 학생의 부탁이 있었다”고 밝혔다. 이후 그는 “강의 중에는 익명으로 리포트 가운데 이런 내용이 있어 매우 좋았다는 식으로 칭찬하고 있다”고 한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