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클린턴(왼쪽)과 르윈스키(오른쪽)의 부적절한 관계가 르윈스키의 친구에 의해 세상에 공개되면서 클린턴은 탄핵위기에 몰리기도 했다. |
대학을 졸업한 모니카 르윈스키는 친척 어른의 ‘빽’으로 백악관에서 일하게 된다. 사회 경험을 쌓기 위한 무급 인턴이었고 대통령의 수석 보좌관이었던 레온 파네타의 사무실이 첫 일터였다. 이후 르윈스키는 1995년 12월에 유급 직원이 되어 백악관의 입법 관련 부서로 옮겼다. 클린턴과의 관계는 이즈음부터 시작되었지만 영원히 묻힐 수도 있었다. 이후 자신의 과거를 팔아먹는 처지가 되긴 했지만 그녀는 대통령과의 은밀한 관계를 드러낼 생각이 전혀 없었다. 약삭빠른 친구 린다 트립만 없었다면 말이다.
계기가 된 사건은 폴라 존스의 재판이었다. 주지사 시절의 클린턴이 자신을 성추행했다고 주장하며 존스는 법정에 섰고, 이때 르윈스키는 증인 중 한 명으로 채택된다. 당시 르윈스키는 클린턴과 함께하는 시간이 많아 상관에 의해 펜타곤으로 전출을 당할 정도였는데, 법정은 그녀도 혹시 성추행을 당했는지 그 여부를 물으며, 당했다면 추행의 패턴이 어떤 것이었는지 확인하려 했다. 르윈스키는 전혀 그런 일이 없었다는 진술서를 제출했다. 하지만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이야기처럼, 그녀도 누군가에게 진실을 털어놓고 싶었고 동료인 린다 트립에게 전화로 종종 털어놓곤 했다.
린다 트립은 저작권 전문가인 루시앤 골드버그를 만나 상의했고 몰래 통화 내용을 녹음하라는 조언을 받는다. 어떤 식으로든 돈이 될 거라는 계산이었다. 그리고 트립은 르윈스키에게, 클린턴에게서 받은 푸른색 드레스를 절대로 세탁하지 말라고 했다. 르윈스키는 그 드레스를 입은 상태에서 클린턴과 관계를 맺었고 그 옷엔 클린턴의 정액이 묻게 된 것. 트립은 그 옷이 뭔가 결정적인 역할을 할 거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이후 르윈스키가 자신과 클린턴의 관계를 부인하자 트립은 녹음 테이프를 당시 특별검사였던 케네스 스타에게 전달했다. 당시 스타 검사는 클린턴의 금융 및 부동산 관련 사건이었던 화이트워터를 조사 중이었는데, 트립에게서 테이프를 받은 뒤 조사 범위를 확장했고 클린턴과 르윈스키를 위증죄로 고발했다. 1998년 1월, 결국 그들의 관계는 터져 버렸다.
▲ 사건 공개 후 르윈스키는 유명인사가 되었다. |
푸른색 드레스의 DNA 검사까지 이뤄지면서 궁지에 몰린 클린턴은 결국 르윈스키와의 관계를 시인했다. 이후 미국 하원의회에서 클린턴에 대한 탄핵이 발의되었고 투표 결과 가결되었다. 클린턴과 르윈스키의 관계를 사적인 행동이 아닌, 대통령으로서의 중범죄로 판단한 것이다. 총 11개의 탄핵 혐의가 제기되었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위증을 통해 사법 과정을 방해했다는 것이다. 공화당의 강력한 정치 공세였다. 하지만 1998년 11월 의회 중간 선거에서 클린턴을 몰아붙이던 공화당은 참패했고 이후 탄핵안은 상원의회에서 부결되었다.
탄핵을 면하긴 했지만 클린턴의 섹스 스캔들은 미국 사회에 묵직한 영향을 끼쳤다. 최고 통치권자인 ‘대통령’이라는 자리는 스캔들 기간에 지독할 정도로 조롱의 대상이 되었다. 스타 검사와 공화당의 공세를 통해 클린턴의 사생활은 정치적 의도 속에서 까발려졌는데, 이 부분에 대해 성인 남녀의 합의하에 이뤄진 사적인 성행위에 대해, 대통령이라는 이유로 사회적 압력을 가하는 건 마녀사냥과 다름없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았다. 래리 플린트 같은 사람은 “사람은 언제나 성에 대해 거짓말한다. 클린턴의 위증은 누구에게나 가능한 일”이라며 클린턴을 옹호하였다.
르윈스키는 사건 이후 완전히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다. 그녀는 대중문화의 아이콘으로 떠올랐고, 토크쇼의 특급 게스트가 되었으며 <모니카 스토리>라는 책을 발간해 엄청난 돈을 벌었다.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SNL)>에 카메오로 출연하기도 했으며, 2000년엔 다이어트 전문 회사인 제니 크레이그의 CF 모델로 화제를 모았다. 6주 동안 20킬로그램 가까이 감량하는 프로그램이었다. 그는 사교계 인사가 되었고 방송계의 셀러브리티로 각광받았으며, 클린턴의 정액이 묻은 드레스는 경매에서 고가에 팔리기도 했다. 핸드백을 비롯 패션 사업에 뛰어들어 유명세를 톡톡히 이용해 돈을 벌었다. 하지만 점점 거세지는 주변의 시선을 견디지 못한 르윈스키는 2005년 런던으로 이주했고, 그곳의 한 대학에서 심리학을 전공했다. 한편 클린턴은 스캔들에도 불구하고 퇴임 때까지 높은 지지율을 유지했고 현재도 왕성한 활동을 벌이며 최근엔 오바마의 지지 연사로 대중 앞에 나서기도 했다.
김형석 영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