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고 치는’ 팀원들 압박에 피해 금액 눈덩이…허위 사이트 유지돼 추가 피해자 속출에 2차 사기 시도도
#‘소액에서 거액으로’ 팀미션 진행 과정
처음 부업 사기 피해를 입게 되는 경로는 주로 온라인 또는 SNS 광고나 개별 연락 등이다. 사기 범죄 일당은 재택근무로 쉽게 돈을 벌 수 있다며 간단한 업무를 제안하거나, 피해자들의 개인정보를 요구한다. 리뷰 달기, 유튜브 영상 보기 등으로 소액을 벌게 된 피해자들은 금방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다는 팀미션의 유혹에 빠지게 된다. 한번 팀미션을 시작하면 사전에 구성된 팀원들의 원성과 압박이 이어져 중도 하차가 어렵다. 정산 또한 불가능하다. 가짜 사이트에서 표시되는 가짜 돈이기 때문이다.
주부인 A 씨(50)는 2024년 12월 말 박 아무개 씨라는 이름의 남성으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어떻게 이름과 연락처를 알았냐고 묻자 박 씨는 “쿠팡에서 마케팅 동의한 사람들에게 전화 드리고 있다”고 답했다. 쿠팡이라는 말에 A 씨는 의심하지 않았고, 박 씨는 A 씨에게 부업으로 쿠팡 체험단을 해보지 않겠느냐고 권유했다. A 씨는 경기 불황 속 가계를 위해 용돈이라도 벌어보자는 생각에 부업을 하기로 결정했다.
박 씨는 A 씨에게 “쿠팡은 아직 입점 준비 중이니 ‘AK몰’에서 안내받은 주문 건을 대리 주문하고 후기만 작성해주면 포인트 형식으로 물품 대금과 수수료를 지급하겠다”고 했다. A 씨는 AK몰도 쿠팡만큼 유명하다는 생각에 제안을 수락한 뒤 박 씨의 말대로 후기를 쓰고 포인트를 받았다. 하지만 A 씨가 후기를 작성한 사이트는 AK몰을 사칭해 조작된 가짜 쇼핑몰 사이트였다. 이후 박 씨는 같은 방식으로 더 큰 돈을 벌 수 있다며 A 씨에게 팀 단위 미션을 제안했다.
A 씨는 텔레그램 단체 대화방에 초대됐고, A 씨를 포함해 총 7명의 팀원이 가짜 AK몰에서 가전을 주문하는 미션을 진행하게 됐다. 미션을 관리하는 정 아무개 팀장이 곧바로 초대됐는데, 그는 미션을 성공하면 10~20% 수준의 수익금이 지급된다고 설명했다. 단체방에서는 공지를 통해 ‘중도하차 불가’ ‘해당 미션건 비밀유지(외부유출 금지)’ 등을 안내했다. 하지만 팀장과 A 씨를 제외한 팀원들은 모두 A 씨를 속이기 위해 섭외된 인물들이었다.
처음 10만 원대에서 수백만 원대로 입금해야 할 금액이 늘어나자 A 씨는 “죄송하다. 이렇게 하는 건 줄 몰랐는데 여유 자금이 없다”며 팀 탈퇴 의사를 밝혔다. 팀원들은 “무슨 말씀이냐?” “안내 받고 들어온 거 아니냐”며 A 씨가 나가게 되면 남은 팀원 모두가 페널티(수익금 미지급)를 받게 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부모님 적금을 깼다’ ‘대출 2500만 원이나 받았다’며 A 씨를 설득했고, 결국 A 씨는 약 1억 200만 원을 가짜 쇼핑몰에서 결제했다.
다른 피해자들도 비슷한 수법에 당했다. 자영업을 하는 B 씨(46)는 “처음에 김 아무개 씨에게 전화가 한 통 걸려왔다. 김 씨는 어느 쇼핑몰을 통해서 알게 돼 연락드렸다고 말했다. 워낙 쇼핑몰 이곳저곳을 사용하니까 그런가보다 했다”고 말했다. 김 씨는 B 씨에게 ‘프리미어몰’이라는 쇼핑몰에 리뷰를 달아주면 상품권을 준다고 했고, B 씨는 리뷰를 작성해 2만 원어치 다이소 상품권을 받았다. 프리미어몰은 교묘하게 만든 가짜 쇼핑몰이다.
사흘 뒤 다시 연락해 온 김 씨는 “물품을 구매하는 것처럼 입금을 하면 10분 내로 10%의 수수료까지 붙여서 돈을 환급해주는 이벤트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벤트 보상은 ‘○○페이’의 포인트로 들어오는데 환급 신청을 하면 다시 계좌로 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B 씨는 “12만 원을 넣었더니 5분도 안 돼 13만 2000원이 (포인트로) 들어오더라”라고 말했다. ○○페이의 경우 B 씨가 인터넷에 검색했을 때 사기라는 말도 없고 ‘용돈 벌이 하고 있다’는 관련 블로그 글도 많아 의심을 하지 않았다.
문제는 다음 날부터 시작됐다. A 씨 사례와 마찬가지로 김 씨는 B 씨에게 ‘물품 구매 팀미션 아르바이트’를 본격적으로 제안하기 시작했다. B 씨는 팀미션을 시작하기 전 ‘외부 유출 금지’ ‘10~30% 수수료 지급’ 등이 명시된 계약서를 전자서명 앱을 통해 작성하기도 했다. B 씨가 초대된 단체채팅방에는 매니저와 팀원 4명이 있었고, 팀원 중에는 B 씨처럼 팀미션을 처음 해보는 사람도 있었다. 물론 모두 B 씨를 속이기 위해 설정된 인물들이다.
B 씨의 팀미션은 금액은 1인당 29만 원으로 시작했다가 어느새 천만 원 단위로 훌쩍 뛰었다. 목표했던 돈을 환급받기 위해 팀 활동에 몰두하게 된 B 씨는 카드론 등 대출을 받아 급전을 마련했다. B 씨는 발주를 끝내자 매니저는 B 씨가 주소를 잘못 입력했다며 재발주를 요구했다. 다른 팀원들도 B 씨가 주소를 제대로 입력하지 않았다고 지적하자 당황한 B 씨는 약 1300만 원가량의 재발주 금액을 끝내 입금했다. B 씨의 피해 금액은 총 9100만 원이다.
프리랜서로 일하는 C 씨(39)는 “인스타그램 부업 광고를 보고 링크를 클릭했더니 라인에 친구가 한 명 떴다. 그 사람은 문자 링크를 통해 ‘hitime’ 앱을 설치하라고 안내했고, 이후 담당자라는 사람이 ‘영상 보기’ 미션을 제안했다. 이들이 제공하는 링크를 통해 1000원부터 8000원까지 가격이 매겨진 유튜브 영상을 돈을 내고 시청한 뒤 소정의 수수료를 얻는 미션이다. 영상 내용은 돌고래나 강아지가 등장하는 등 특별할 게 없었다”고 말했다.
특히 12시와 15시, 18시에는 3만 원에서 1000만 원에 달하는 ‘고수익 미션’이 등장한다. 3만 원짜리 영상을 보면 보상으로 1만 5000원을 포함한 4만 5000원의 포인트를 얻는 개념이다. C 씨는 “100만 원을 넣었는데 130만 원을 환급해줬다. 100만 원 이상을 넣으면 단톡방이 만들어지고 초대되는데 똑같이 100만 원을 넣은 3명이 있었다”면서 “지금 생각해보면 그 3명이 모두 ‘짜고 치는 고스톱’을 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C 씨를 비롯한 4명은 팀으로 코인 가격 상승 미션을 부여받았다. 특정 코인 방에 들어가 100만 원짜리 가격 상승 버튼을 누르면 130만 원의 포인트가 입금되는 구조다. 물론 앱 자체가 가짜이기 때문에 실제 코인 가격과 무관하다. 처음 1회는 출금이 가능했다. 흥미를 느낀 C 씨는 500만 원을 넣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단톡방의 방장은 2000만 원부터 가능하다며 1대 1 채팅을 통해 “2000만 원이 어려우면 1000만 원을 만들어 오라”고 따로 안내했다고 한다. C 씨는 이때 추가 입금을 하지 않았다.
다음 미션은 하락 버튼과 상승 버튼을 연달아 누르는 것이었는데, 방장과 팀원들은 C 씨가 틀렸다며 팀 미션을 실패시킨 대가로 5배를 더 내라고 압박했다. C 씨는 분명 제대로 눌렀다고 생각했지만 “당신 때문에 우리도 못 하고 있다. 빨리 5배의 금액을 넣으라”고 재촉해 대출을 통해 1500만 원의 돈을 입금했다. C 씨는 친구도 함께 팀미션에 참여할 것을 권유했고, 다른 단체 채팅방에 있던 C 씨의 친구 역시 500만 원을 입금해 피해 입은 것으로 알려졌다.
#신고했는데 ‘가짜 쇼핑몰’은 그대로?
피해자들은 경찰에 피해 사실을 신고했지만 수사 중이라는 답변만 받고 있는 상태다. 경찰 관계자는 “해외 IP 주소로 불법 사이트를 만들면 추적이 어렵고 국제 공조 수사 없이는 검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피해자는 계속 늘어나고 있다. 부업 사기에 이용된 사이트와 앱 등이 제한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에 피해자들을 대상으로 2차 사기를 시도하는 일도 적지 않다.
A 씨는 지난 1월 13일 사기 피해를 당했다며 경찰에 신고했지만 현재까지 연락이 없는 상태다. 1월 19일 경찰에 진정서를 제출한 C 씨는 “경찰에 따르면 hitime 앱의 서버가 외국에 있고, 입금했던 계좌주들도 본인들이 피해자라고 주장하고 있어 대포통장을 제공했다는 점이 증명되지 않으면 돈을 돌려받을 가능성이 낮다고 한다”고 말했다.
피해자들이 진짜라고 믿었던 가짜 불법 사이트는 여전히 접속이 가능하다. 다만 A 씨의 경우 가짜 AK몰에 로그인할 경우 ‘회원님의 아이디는 접근이 금지됐다’는 안내 문구가 나오며 사용은 제한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B 씨가 이용했던 프리미어몰 역시 많은 피해자를 양산하고 있지만 여전히 접속 가능한 상태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지난해 9월부터 인터넷 사기 사이트 등 민생 침해 정보에 대해서는 심의 사례를 공개하고, 관계 법령을 적용해 신속한 심의로 적극 대응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허위 사이트 차단과 관련해 방심위 측은 “신고가 접수된 사이트를 차단 조치 중이지만, 사기 범죄 일당이 해외 IP 주소를 이용해 불법 사이트를 무한정 개설하는 것을 사전에 막는 것은 어렵다”는 입장이다.
피해자들은 답답함을 호소하고 있다. A 씨는 “사기당한 금액 모두 은행과 지인으로부터 대출받은 돈이고, 아이가 올해 대학에 입학해 등록금과 기숙사비를 납부해야 되는데 너무 막막하다”면서 “아직 신랑에게 말도 못 하고 한 달이 지났다. 개인회생과 파산을 알아보고 있다. 죽고 싶어 바닷가도 갔지만 용기가 안 나더라. 나와 같은 피해자가 나오지 않길 바란다”고 전했다.
사기 피해 카페에 사례를 공유하는 피해자들에게 ‘돈을 돌려받게 해주겠다’며 2차 사기를 시도하는 사례도 빈번하다. A 씨는 “피해자 환급을 도와주는 사람이 있다. 저도 도움 받았다”는 쪽지를 받았다. A 씨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안내 받은 텔레그램 아이디를 통해 하 대표라는 사람에게 연락했다. A 씨는 당시 가짜 AK몰이 조작된 사이트였다는 사실을 몰랐고, 하 대표는 “피해금 입금 내역을 보내주면 쇼핑몰 총괄을 통해 30분이면 환급을 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A 씨의 이름과 생년월일, 계좌번호, 전화번호 등을 요구한 하 대표는 수수료를 전혀 받지 않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세금이나 금융사고를 방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A 씨의 계좌에 990만 원을 채워 놓으라고 요구했다. “환급은 시간 싸움”이라며 A 씨를 재촉하기도 했다. 이어 A 씨에게 “환급 코드를 보냈다. 누르면 환급이 가능하다”고 했지만 이상함을 느낀 A 씨는 해당 코드를 누르지 않았다. A 씨는 “2차 사기를 치려는 사람이 많다”고 호소했다.
곽준호 법무법인 청 변호사는 “부업 사기의 경우 피해 금액을 온전히 돌려받기는 어렵지만, 반드시 형사 고소를 진행할 필요가 있다”면서 “대포통장 주인이 검거될 경우 피해 변제를 청구하거나 형사사건 엄벌 탄원서를 제출해 합의를 종용하는 등 보상받을 방법이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쉬운 일을 하는데 고수익을 보장한다는 부업은 조심해야 한다. 업체의 이력을 확인하고 최대한 대면으로 진행되는 아르바이트를 지원해야 안전하다”고 조언했다.
손우현 기자 woohyeon1996@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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