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땅거미가 지기 시작하는 저녁 무렵이 되면 베를린의 레스토랑과 바에는 옆구리에 한 뭉치의 신문을 낀 채 시를 읊으면서 돌아다니는 한 남성이 나타난다. 그의 이름은 홀거 블레크(39), 직업은 신문팔이다.
하지만 그는 여느 신문팔이들과는 다르다. ‘신문 읽어주는 시인’이라는 별명에서도 알 수 있듯이 단순히 신문만 파는 것이 아니라 시를 읊기도 하기 때문이다. 더욱 재미있는 것은 그가 낭독하는 시가 모두 신문 1면의 머리기사 제목을 엮어 만든 즉흥시라는 데 있다. 그것도 기가 막히게 운율을 맞춰서 읊기 때문에 더욱 놀랍기만 하다.
예를 들어 “미국에서는 어제 마지막 대선토론회가 열렸다네/승리를 확신하는 오바마가 미셸을 포옹했네/롬니의 국내정책이나 외교정책이 더 비난을 받았기 때문이라네”라고 말하는 식이다. 또한 그는 자신의 재치에 박수를 보내는 사람들에게 “박수는 됐어요/대신 신문을 사주세요”라고 익살을 부리기도 한다.
그의 이런 기막힌 신문판매 전략은 많은 사람들에게도 호응을 얻고 있다. 그에게서 신문을 산 한 레스토랑 손님은 “재미있으면서도 대단하다. 내가 낸 2유로(약 2800원)는 신문이 아니라 그의 말솜씨에 지불한 돈이다”라고 말했다.
한때 인쇄업자로 일했다가 일자리를 잃고 방황했던 그는 1997년부터 거리로 나가 신문을 팔기 시작했으며, 이제는 그날의 석간신문을 한 번만 훑어보고도 시를 줄줄 지어낼 정도로 베테랑이 되었다.
이런 솜씨 덕분에 현재 베를린의 유명인사가 된 그는 심지어 앙겔라 메르켈 총리까지 단골손님이 되었을 정도로 이름을 날리고 있다. 그가 이렇게 판매하는 신문 부수는 네 시간에 60~90부며, 그는 매일 저녁 열다섯 군데의 레스토랑과 바를 돌아다니면서 신문을 팔고 있다.
김미영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