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에도 “해안가에 콘도 지으라” 김정은 ‘갈마지구’ 공들여…마라라고 같은 ‘트럼프 타워’ 들어설 수도
지난 20일 취임 일성으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 말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런 언급은 취임식 당일 북한을 ‘핵보유국’(Nuclear Power)으로 처음 지칭했다거나 김정은과의 친분을 거론한 점에 다소 묻히는 듯한 분위기였다. 하지만 향후 북미 관계의 급진전이나 대북투자에 관심을 갖고 있는 ‘촉이 빠른’ 그룹의 사람들은 크게 반색할 일이다.
명사십리(鳴沙十里)는 북한 강원도 원산시 갈마반도에 있는 모래해안이다. 한자 뜻 그대로 밟으면 소리가 날 정도의 곱고 부드러운 모래사장이 약 3.9km(10리는 약 4km)에 걸쳐 펼쳐지고 바로 옆에 소나무숲이 우거진 빼어난 경치를 자랑한다. 조선시대뿐 아니라 일제강점기에도 휴양지로 이름 높았지만 분단 이후 북한 정권이 들어서면서 제대로 활용되지 못했다.
한때 금강산 관광이 본격화하면서 원산 지역과의 연계관광 문제가 거론됐지만 진척은 없었다. 바로 인접한 지역이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고향인 통천군이란 점에서 현대 측도 공을 들였다는 후문이다.
김일성·김정일 집권 시기에 이곳을 관광지로 활용하려 시도했지만 열악한 인프라와 평양에서 원산까지 이르는 교통망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 불발에 그쳤다. 이 때문에 재일 조총련이나 극소수 고위층의 휴양시설로 활용되는 데 머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김정은이 최고권력자에 오르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여름철 휴양 등을 위해 원산을 자주 찾았고 인근 갈마비행장을 수억 달러를 들여 현대적으로 리모델링하는 건 물론이고 근처 해발 700m 마식령에는 스키장을 짓기도 했다.
언뜻 보기에는 무모한 과시성 건설공사로 보일 수도 있지만 금강산과 원산 지역을 잇는 동해안 관광벨트를 염두에 둔 것이란 진단도 전문가들 사이에서 나온다. 특히 김정은의 생모 고용희(2004년 사망)가 재일 북송교포 출신으로, 북일 간을 운항한 만경봉호를 타고 처음 북한 땅을 밟은 곳이 원산이란 점에서 각별한 애착을 해석하는 시각도 있다. 고용희가 한때 평양 권력층 사이에서 ‘원산댁’으로 불렸다는 얘기도 같은 맥락이다.
대북정보 관계자는 “김정은이 여름 휴가철이나 주말에 원산의 전용별장인 특각에 머물면서 여동생 김여정 등을 불러 정책노선이나 통치전략을 짜는 동향이 한미 정보 당국의 감시망에 포착되고 있다”고 귀띔했다. 초호화 요트와 전용 계류장은 물론 김정은 전용기가 이용하는 활주로까지 건설됐다는 것이다.
트럼프의 “콘도” 언급이 뜬금없이 나온 건 아니라는 관측도 있다. 그가 과거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2018년 6월 싱가포르에서 열린 첫 북미 정상회담 때 김정은에게 해안가에 콘도를 지으라는 권유를 했다고 주장한 때문이다. 트럼프가 수차례 북한의 부동산 입지가 훌륭하다는 취지의 언급을 한 적도 있다.
흥미로운 건 김정은이 이에 앞서 원산 명사십리에 대규모 콘도시설을 짓는 구상을 밝혔다는 점이다. 북한은 2016년 7월 갈마지구를 세계적인 관광지구로 조성하겠다면서 호텔과 해양체육, 문화·오락 시설을 건설하겠다고 공언했고 김정은도 군부대 건설 병력까지 투입해 조속히 완공할 것을 지시하기도 했다.
하지만 핵과 장거리탄도미사일(ICBM) 도발로 자초한 대북제재는 북한 경제의 숨통을 조였고, 김정은이 직접 첫 삽을 뜬 건설공사까지 제때 완공되지 못하거나 좌초되는 상황에 처하면서 상황은 녹록지 않게 돌아갔다. 갈마해안관광지구 공사도 진척이 없어 일부 콘크리트 골조만 세운 채 방치되고 녹슬고 있는 정황이 첩보위성을 통해 파악되기도 했다.
그런데 지난 12월 29일 김정은이 현장을 방문해 완공된 호텔과 봉사망(서비스 시스템)을 돌아봤다는 북한 관영 선전매체의 보도가 나왔다. 조선중앙통신은 “김정은 동지께서 갈마해안관광지구가 우리 인민과 세계 여러 나라의 벗들이 즐겨 찾는 조선의 명승, 세계적인 명소로서 매력적인 명성을 떨치게 되리라는 확신을 표명했다”고 전했다. 이 자리에 김정은은 자신의 후계자로 지목되고 있는 딸 주애를 데리고 나왔다.
김정은도 이 자리에서 “갈마해안관광지구는 볼수록 장관이다. 정말 아름답고 장쾌한 풍경”이라고 만족감을 표시한 것으로 북한 매체들은 보도했다. 마무리 공사를 마치고 오는 6월 개장한다는 게 북한 측 설명이다.
이런 시점에 맞물려 트럼프가 북한 해안 지역의 콘도를 언급했다는 점에서 원산 일대에 ‘트럼프 타워’가 들어서는 것 아니냐는 전망도 나온다. 향후 김정은과 트럼프가 정상회담 테이블에서 마주한다면 최고 현안인 북핵을 두고 군축회담 성격의 논의를 하게 될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지만, 대북제재 해제 등 북미 관계를 정상화하는 과정에서 첫 번째 카드로 트럼프 타워가 등장할 수 있다는 얘기다.
트럼프 소유의 호화 리조트인 ‘마라라고(Mar-a-Lago)’도 플로리다주 팜비치의 해안에 자리하고 있다. ‘바다에서 호수까지’라는 의미를 가진 마라라고의 북한판 리조트가 지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북한 국가설계지도국은 ‘원산-금강산 관광지구 개발 총계획’을 통해 총 78억 달러(약 11조 2070억 원)를 투입해 국제관광지구로 조성하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물론 이런 김정은의 구상이 실행에 옮겨지려면 북한 핵과 미사일 문제는 물론 북한이 1만 명 넘는 병력을 파견해 러시아를 돕고 있는 우크라이나전 종전 같은 이슈가 선결돼야 한다.
또 더욱 독해져서 돌아온 트럼프가 북핵이나 대북제재 문제에 호락호락하게 양보하지 않을 공산도 있다. 2019년 2월 2차 북미 정상회담 때 트럼프의 노련함에 밀려 굴욕을 맛본 김정은이 불에 덴 아이처럼 신중한 접근을 할 것이란 전망도 있다.
그렇지만 “그(김정은)는 내가 돌아온 것을 반길 것”이라고 분위기를 띄우는 트럼프와 마지막일지도 모를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는 김정은이 의기투합할 경우 파격적인 이벤트들이 쏟아질 것이란 견해도 만만치 않다. 명사십리에 트럼프 타워가 우뚝 솟아오르는 것도 그중 하나다.
이영종 뉴스핌 통일전문기자/북한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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