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도권 건설현장 사진으로 기사의 특정내용과 관련없음. | ||
물론 대다수 건설사들은 최근 수년간 쌓아온 수익을 내부유보하고 있어 자금사정에 문제가 없지만 일부 중견업체는 상당한 자금 압박을 받는 모습이 포착되고 있다. 게다가 주기적으로 떠돌다시피하는 연쇄부도설도 어느 때보다 구체화되고 있다. 참여정부들어 아홉 차례에 걸쳐 굵직한 부동산 정책이 쏟아지면서 한계에 다다른 기업들이 속출하고 있는 것.
여기에다 그동안 짭짤한 수익을 보장해주던 아파트 분양시장이 날이 갈수록 침체되고 있는 데다 오는 9월 분양가 상한제마저 시행되면 한계 기업은 더욱 늘어날 전망이어서 올 연말이 가까워오면 상당수 중소 건설업체들이 심각한 고통을 겪을 것이란 관측마저 나오고 있다.
M&A 전문가들에 따르면 현재 도급순위 100위 내에 속하는 1군 중견 건설업체로 시장에 알려진 매물은 5~6개에 이른다. 하지만 비밀리에 진행되는 M&A의 특성상 이런 건설업체는 더 많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최근 M&A시장에 매물로 나온 코스닥 상장업체 A 사. 명동 사채시장에 따르면 작년 기준 도급순위 60위권, 시공능력평가액 2000억원 수준인 이 건설사는 최근 언론에 자주 오르내릴 만큼 인지도가 높은 회사. 건설교통부와 대한주택공사, 그리고 부산광역시, 강원도 등으로부터 우수 건설업체로도 지정됐던 회사다. 하지만 명동 사채시장에서는 작년 말부터 이미 경영 악화설이 나돌았고, 최근 들어서는 이 회사의 자금 사정이 크게 악화됐다는 풍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미 올해 초부터 명동 사채시장에서 어음 할인율이 증가했고, 2월부터는 계열사 금융기관에서조차 할인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기 때문이다.
사채시장 한 관계자는 “A 건설사가 요즘 반복적으로 융통어음을 할인해 달라고 요청하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물론 융통어음 할인 자체를 회사의 재무 상태 악화로 연결시킬 수는 없지만 이런 현상이 계속해서 반복되면 부도로 이어지는 경우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특히 A 건설사는 연초에도 증자를 통해 200억 원에 달하는 자금을 조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사채시장 관계자는 “증자 후 4개월도 채 안돼 융통어음을 반복적으로 할인하는 것은 재무 상태가 극도로 악화됐다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풀이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A 사는 얼마 전 인수희망 업체가 가실사까지 벌였지만 우발채무가 자산규모를 넘는 것으로 파악되면서 인수가 불발됐던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인수합병을 주도하는 컨설팅 업체가 올해 초 시멘트레미콘 전문기업인 모 회사 등에 인수 의뢰를 타진했지만 우발채무가 문제가 돼 인수가 불발됐던 것.
사채시장 관계자들에 따르면 이 업체는 시행자가 은행서 받는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에 대한 보증에다, 자금 사정이 한계에 봉착한 다른 건설사와 섰던 맞보증, 여기에 분양이 무산되면서 생긴 채무 등 잠재적 채무가 1000억 원에 육박하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 때문에 이 회사는 매물로 나온 지 꽤 됐지만 마땅한 새 주인을 찾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사채시장 관계자는 “워낙 부채 규모가 커서 인수자들이 소극적이다. 인수합병이 성사될지조차 미지수”라고 전했다
이밖에 다른 중견 건설업체인 C 사도 건설업 진출을 적극적으로 시도하는 모 기업과 주택부문 매각이 막바지 단계라는 소문에 휩싸인 바 있다. 하지만 C 사 관계자는 “작년 말에 이 같은 소문이 나돌았지만 회사 내부에서 추진된 것은 없다”며 극구부인했다.
영남권에서 대규모 분양을 진행 중인 D 사는 이번 여름을 고비로 자금난을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매물로 나올 것이란 괴담에 시달리고 있다. 심지어 E 건설사는 지방에 있는 골프장을 함께 끼워 파는 조건을 내세웠지만 역시 새 주인을 찾지 못한 상황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이들 중에는 헛소문도 있지만 일부는 경영 사정이 어려운 것이 사실이어서 실제 매각이 이뤄질 가능성도 있다”고 전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M&A 전문가는 “매물로 나와 있는 업체 중엔 상장까지 한 건설업체도 있다”면서 “대부분 명목상 본사를 서울에 두고 있지만 실제로는 지방 관급공사에 ‘올인’하면서 근근이 유지하고 있는 업체들이 많다”고 전했다
건설업계에 드리워 있는 그늘은 금융권으로까지 뻗치고 있다. 모 시중은행의 경우 부산에서 대규모 분양사업을 벌인 한 건설업체에 대출을 해준 후 분양실적이 저조하자 아예 사업권을 떠안고 사태 수습을 고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또 최근 중견 건설사인 F 사가 1차부도를 맞아 관련 은행들이 촉각을 곤두세우기도 했다. 이 업체는 올 초 주주 및 관계사의 도움으로 연초 상당액의 증자를 단행했기 때문에 명동시장에서는 당분간 큰 문제가 없을 것으로 봤지만 사업 확장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단기 유동성 위기에 직면한 것이다.
다행히 1차부도는 넘어갔지만 앞으로 만기가 돌아올 채무규모가 적지 않아 은행권도 긴장하고 있다. 한 거래은행은 무담보로 100억 원 이상의 신용대출을 해준 것으로 알려져 있어 명동시장뿐 아니라 건설업계 동향까지 실시간으로 체크하고 있는 상태다. 물론 이 건설사의 경우를 전체 업황과 직결시키는 것이 무리일 수는 있지만 명동이 시장을 바라보는 시각은 다르다.
최근 부동산 금융이 꽉 막힌 상태에서 건설사 자금난 소문이 돌고, 실제 한두 곳이라도 부도를 맞게 된다면 연쇄효과가 본격 시작된다는 것을 경험상 알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재벌 계열 대형 건설사들은 최근 주택건설 사업보다는 플랜트 분야 등 부동산 경기 흐름을 타지 않는 분야의 비중을 늘리는 등 부동산 혹한기에 대비한 몸만들기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즉 부동산 불황의 일차적 타깃이 주택사업 위주의 중견 건설사들이 될 것이란 얘기다.
명동시장 한 관계자는 “최근 중견 건설사 연쇄 부도설로 은행뿐 아니라 기업금융 시장에서도 혹시 여파가 미치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는 곳들이 많다”며 “소문이 사실로 입증되는 경우 후폭풍이 시작되고, 결과적으로 우량한 업체까지 흑자도산하지 않을까 우려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영복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