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 사업 부진 속 대규모 투자 그룹 내 부담 가중시켜…롯데그룹 “힘든 시기는 맞지만 위기 극복 노력 지속 중”
신동빈 회장은 지난 1월 9일 그룹사 대표 등 80명이 참석하는 VCM(Value Creation Meeting·옛 사장단 회의)을 주재하고 현재의 상황을 점검했다. 신 회장은 현재의 상황을 ‘위기’로 인식했다.
이 자리에서 신 회장은 “지난해는 그룹 역사상 가장 힘들었던 한 해”라면서 “빠른 시간 내 시장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유형자산 매각, 자산 재평가 등 다양한 방안을 시행하고 있지만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서는 사업의 본원적 경쟁력 강화로 수익성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신동빈 회장은 “지금 쇄신하고 혁신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을 것”이라며 “과거 그룹의 성장을 이끈 헤리티지가 있는 사업일지라도 새로운 시각에서 사업모델을 재정의하고 사업조정을 시도해 달라”고 주문했다.
신동빈 회장의 절박함이 통할지 주목된다. 신 회장은 2017년 뉴롯데를 선언하면서 고강도 체질 변화에 나섰다. 본원 사업인 유통·호텔 등의 사업 중심에서 롯데화학과 신사업 투자로 수익 다변화에 나선 것이다. 현재 상황을 보면, ‘악수’가 됐다. 본원 사업은 부진했고, 야심차게 추진했던 비유통 부문 사업은 위기에 빠졌다.
신동빈 회장의 롯데그룹은 롯데케미칼을 중심으로 수익 다변화에 나섰다. 2022년 롯데케미칼을 통해 동박 생산업체 일진머티리얼즈(현재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를 인수한 것도 수익 다변화의 일환이다. 2022년 그의 장남 신유열 부사장을 롯데케미칼로 보낸 것도 신 회장의 의중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됐다.
문제는 롯데케미칼이 역사상 가장 혹독한 시련의 시기를 보내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롯데케미칼을 중심으로 한 회사들의 부진이 그룹 전체를 흔드는 모양새다.
롯데케미칼은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 지분 53%를 인수하는 데 2조 7000억 원을 투입했다. 주당 10만 9852원으로 매매가격이 책정됐다. 하지만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는 롯데그룹으로 편입된 후 실적 부진을 겪으면서 주가가 곤두박질쳤다. 지난 1월 23일 종가 기준 2만 3150원 수준이다.
롯데케미칼 역시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를 인수한 이후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롯데케미칼은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 인수와 총 5조 원 투자규모의 인도네시아 NCC 건설에 큰 자금을 투입하면서 급격히 재무구조가 악화됐다. 2021년 말 연결 기준 3000억 원 수준이던 순차입금 규모는 2024년 9월 말 7조 3000억 원까지 불었다.
업황악화로 현금 흐름이 위축된 것도 부담이다. 롯데케미칼은 2022년 7626억 원의 영업손실로 적자를 기록한 이후 2023년 3477억 원, 2024년 3분기 누적 6600억 원으로 부진한 실적을 이어가고 있다.
문제는 이 같은 상황이 단기간에 해결되긴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는 점이다. 오윤재 한국신용평가 수석애널리스트는 “2025년 이후에도 중국과 중동을 중심으로 석유화학 생산능력 확대 기조가 이어질 것으로 보여, 공급과잉이 단기간 내에 완화되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라며 “신사업인 동박 부문도 전기차 수요 위축, 중국과의 경쟁 심화로 인해 실적 개선폭은 제한적인 수준일 것으로 판단된다”고 설명했다.
롯데케미칼은 부진한 실적과 악화된 재무구조로 기한이익상실 사유에 따른 채무 조정까지 해야 했다. 이 과정에서 롯데물산 소유의 롯데월드타워를 담보로 내세웠다.
본원 사업으로 평가받던 유통부문도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실적 반전을 기대했지만 기대에 미치지 못한 모습이다. 최근 5년 실적을 보면 2023년을 제외하고 모두 대규모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했다. 세부적으로 보면 2020년 마이너스(-) 6865억 원, 2021년 -2729억 원, 2022년 -3186억 원을 기록했다. 2023년 1691억 원으로 당기순이익으로 전환했지만 2024년 3분기까지 누적 순이익이 220억 원으로 감소하며, 전년보다 90.6% 감소했다.
위기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롯데그룹은 자산 유동화 작업에 착수하고 있다. 롯데렌탈 지분을 어피니티에쿼티파트너스에 매각해 1조 5729억 원의 자금을 확보할 계획이다. 롯데웰푸드의 제과 부분은 매각을 검토하고 있는 가운데 롯데칠성의 주류 사업 부문 매각 가능성도 시장에서 거론된다.
재무구조 개선을 위한 자산재평가도 진행 중이다. 2009년 이후 15년 만에 진행하는 자산재평가다. 대상 자산은 7조 6000억 원 규모의 토지다. 15년간 부동산 자산은 꾸준히 상승했던 터라 자산재평가를 마치고 상당 금액이 차익으로 잡히면 재무건전성이 개선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최근 롯데그룹의 전반적인 위기 상황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신동빈 회장의 책임론이 불거질 가능성도 있다. 이 경우, 호텔롯데 상장 등 그룹의 당면 과제 해결 동력도 약화가 불가피하다. 롯데그룹 관계자는 “현재 롯데그룹이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 것은 맞지만 이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호민 기자 donkyi@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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