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진아’ 이은 ‘구덕아’로 안방극장 재점령…“추영우, 이렇게 잘될 줄 다 예상했죠”
“저는 아직 ‘구덕이’를 보내주지 못했거든요(웃음). 정말 너무나도 사랑했던 캐릭터라서 그런 것인지…. 저도 작품을 촬영하는 내내 구덕이의 모든 것을 응원하고, 또 닮고 싶어 했기에 더 이 아이를 놓고 싶지 않은가 봐요. 저희 ‘옥씨부인전’ 식구들이 종방연을 겸해서 마지막 회를 다 같이 보기로 했는데 벌써 어떻게 봐야 할지 걱정돼요(웃음). 원래 이 정도까지 작품이나 캐릭터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편이 아니었는데 유독 구덕이에게만은 애정이 깊네요.”
‘옥씨부인전’은 이름도, 신분도, 남편도, 모든 것이 가짜였던 외지부(조선시대의 변호사) 옥태영과 그를 지키기 위해 목숨까지 걸었던 예인 천승휘의 치열한 생존 사기극을 그린 퓨전 사극 로맨스 드라마다. 임지연이 연기한 구덕이는 짐승만도 못한 취급을 받던 천한 노비 신분이었으나 ‘생의 은인’인 태영 아씨(손나은 분)를 만난 뒤 화적 떼의 손에 숨진 아씨의 꿈을 이루기 위해 ‘가짜 옥태영’이 되어 제2의 삶을 살게 된다.
주인에게 맞아 죽거나, 병에 걸려 쫓겨나 객사하지 않고 그저 ‘곱게 늙어 죽기’만을 바라던 구덕이가 외지부 옥태영으로서 두 명 분의 삶을 사는 이야기인 만큼, 정반대인 두 캐릭터를 하나의 배우가 연기해야 한다는 어려움과 두려움, 그리고 부담감이 먼저 와닿을 수밖에 없었다.
“정말 부담감이 엄청났죠(웃음)! 저는 심지어 이제까지 타이틀롤 경험도 없었으니까 자신감도 좀 떨어진 상태였거든요. 그래도 제 안의 ‘태영 아씨’가 자연스럽게 나올 수 있도록 현장에서도 그렇게 태도를 유지하려고 노력했어요. 옥태영이란 다른 사람의 삶을 살면서 아씨가 되고, 또 마님이 되지만 노비였던 구덕이의 본질은 잊지 않으려고도 했고요. 저는 연기할 때 항상 ‘구덕이의 마음은 어땠을까’를 첫 번째로 생각했던 것 같아요. 태영이가 되고 나서도 구덕이의 모습이 조금씩 나타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연기했죠. 다른 인물이면서도 항상 같은 인물이란 본질 자체를 잃지 않으려고 했어요.”
임지연이 구덕이와 옥태영의 모습을 오가는 동안 그의 상대역인 추영우 역시 전기수(조선시대에 소설을 직업적으로 낭독하는 사람) 천승휘와 태영 아씨의 신랑 성윤겸을 맡아 1인 2역을 선보였다. 남녀 주연이 모두 두 명의 캐릭터를 한 번에 연기한다는 점에서도 많은 주목을 받았던 ‘옥씨부인전’인 만큼, 열연을 펼친 두 배우들의 이야기를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아무래도 태영이가 두 남자를 왔다갔다하면서 교차로 만나는 게 아니다 보니 구분 짓는 게 어렵진 않았어요(웃음). 하지만 초반엔 그 중심을 잡느라 각각 캐릭터를 연기하는 분이 다른 배우라고 생각하려고 했던 것 같아요. 그래도 워낙 (추)영우 씨가 알아서 잘하는 배우다 보니 제가 도움을 많이 받았죠. 사실 1인 2역이라는 게 정말 쉽지 않은 연기잖아요. 굉장히 어려웠을 텐데도 과하지 않게 미묘한 차이를 두며 연기한 걸 정말 칭찬해주고 싶어요. 제가 처음에 대본 리딩할 때도 영우 씨한테 그랬거든요. ‘이거 진짜 잘하면 (작품 흥행이) 정말 잘될 것이고, 못 하면 망할 것이다’(웃음)!”
농담을 이어가면서도 임지연은 추영우의 ‘배우’로서의 면모를 설명할 때면 진지하게 말을 골랐다. 임지연은 2011년 데뷔, 추영우는 2021년 데뷔했으니 까마득한 후배인 데다, 나이로도 열 살 가까이 차이 나는 이 ‘라이징스타’엔 자연스럽게 의지하게 되는 힘이 있었다는 게 그의 이야기다. “오래오래 응원해주고 싶은 제 파트너가 또 한 명 늘어난 것 같아요”라며 진심을 담아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다.
“영우 씨는 이미 배우로서 많은 것들을 가지고 있거든요. 굉장히 능청스럽게, 자기가 맡은 인물을 ‘자기화’하는 걸 정말 잘해요. 저는 연습 많이 하고 대본을 많이 파고 들어도 될까 말까인데(웃음)! 영우 씨는 현장에서 집중하고, 즉흥적으로 떠올리는 아이디어나 감각적인 부분이 많이 열려 있는 배우예요. 그분이 이렇게 잘될 줄 알았냐고요? 당연히 미리 예상했죠(웃음)! 사실 지금 잘됐다기보단 이미 잘돼있던 배우라고도 생각해요.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요. 저도 영우 씨가 나오는 작품은 이제 다 챙겨보려고요(웃음).”
이 커플의 로맨스를 잠시 잊을 정도로 등골을 오싹하게 만드는, 구덕이의 영원한 ‘숙적’ 소혜 아씨도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주요 인물이었다. 노비 시절 구덕이가 아씨로 모시던 소혜는 구덕이의 도주로 자신의 삶이 모두 망가졌다고 여기며 복수심으로 끝까지 그를 추노한다. 등장할 때마다 장르를 순식간에 ‘호러’로 바꾸며 시청자들의 심장을 조여들게 만든 이 소혜 아씨는 임지연이 연기해야 할 구덕이의 후반부 모습을 만들어가는 데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사랑스러운 배우 하율리의 ‘악독한’ 모습을 다시 맞닥뜨렸을 때 구덕이의 마음을 상상하며 그 둘의 재회를 준비했다는 게 임지연의 이야기다.
“(하)율리 씨가 현장에선 진짜 사랑스러운 사람인데(웃음)! 사실 소혜 아씨가 다시 등장하고 나서부터 구덕이와 둘이 마주치는 신이 자주 있지 않다 보니 율리 씨가 어떻게 연기했을지 궁금했어요. 그렇게 악독하게 잘해냈다는 건 방송을 보고 나서야 알았죠. 역시나 공포스럽더라고요(웃음). 아무래도 저희 이야기에서 중요한 건 구덕이가 소혜 아씨를 다시 마주치는 장면이었을 테니까요. 아마 그동안 구덕이는 그때를 두려워하면서도 한편으론 기대도 하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만나면 당황하면서도, 티를 안 내려 했겠죠.”
자신이 연기한 캐릭터에 오래도록 헤어나오지 못할 만큼 깊은 애정을 쏟아부었지만, 사실 대본을 받아본 그 순간부터 ‘옥씨부인전’과 ‘구덕이’를 마냥 사랑하게 됐던 것은 아니었다. 첫 타이틀롤이라는 부담감에 앞서 사극을 제대로 해내지 못하리라는 불안감이 먼저 다가왔다는 게 그의 이야기다. 첫 사극 도전작이었던 영화 ‘간신’(2015)에서 경험했던 두려움의 파편들이 마음속 어딘가에 남아있었고, 이를 완전히 떨쳐내는 것이 ‘옥씨부인전’을 앞둔 임지연의 숙제이기도 했다. 이제는 그 숙제의 마지막 장에 당당히 ‘동그라미 마크’를 받아낸 만큼, 앞으로 임지연이 그려낼 또 다른 사극 속 자신감 넘치는 그의 새로운 모습에 기대가 모인다.
“‘간신’ 때는 어린 나이에 신인으로 도전하는 사극이었는데 저 스스로 부족한 점이 너무 많았다고 깨달았어요. 그러다 보니 ‘난 사극이 안 어울리는 배우인가 봐’라는 생각으로 이런 장르를 계속 멀리하려 했던 거죠. 그러다 ‘옥씨부인전’ 대본을 보고 아차 싶었어요. 이제까지 지레 겁먹고, 도전은 하지 않고 잘할 수 있는 것만 골라 하려 했던 제 자신이 너무 창피하더라고요. 그러니 ‘이왕 할 거, 제대로 보여주자’라면서 트라우마 아닌 트라우마를 이겨내게 된 거죠. 사극도 제가 너무 사랑하는 장르이기 때문에 앞으로도 계속 도전해 보고 싶어요. 언젠간 궁에 들어간 왕비 이야기 같은 정통 사극도 해보고 싶은데, 제가 지금 ‘원경’에 나오는 (차)주영이만큼 왕비의 카리스마를 보여줄 수 있을지가 문제예요(웃음).”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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