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4일 대선 첫 TV 토론 직전 손을 맞잡은 이정희 문재인 박근혜 후보. 이날 이 후보의 묻지마 네거티브 공세가 논란이 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이번 TV 토론은 한마디로 ‘이정희의, 이정희에 의한, 이정희를 위한 토론회’였다. 이 후보는 작심한 듯, 자신의 모든 발언을 ‘박근혜 죽이기’에 올인했다. 하지만 딱 그뿐이었다. 독설을 남발한 이 후보의 시선 끌기는 성공했지만 정작 토론에서 유권자가 판단할 ‘내용’은 전무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이정희의 막말 공세가 TV 토론을 완전히 망쳐 놨다”는 말까지 나온다. 이번 TV 토론으로 ‘공공의 적’이 됐다는 평가까지 받고 있는 이정희 후보에 대해 조명해봤다.
이번 대선 TV 토론 직전까지 통합진보당 이정희 후보의 지지율은 1%가 채 안 됐다. 명색이 ‘제3정당’ 후보지만 존재감은 다른 무소속 군소후보들과 다를 바 없었다. 하지만 이번 대선 TV토론에서의 존재감은 1%의 지지율을 훌쩍 넘어서는 것이었다. 이를 두고 ‘주연 이정희, 조연 박근혜, 카메오 문재인’이라는 말까지 나올 지경이다.
이 후보는 토론 내내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를 거칠게 몰아붙였다. 심지어 “야권 단일화를 하겠다고 하는데, 중간에 후보 사퇴하면서 선거 국고 보조금을 받게 되는 건 도덕적 해이 문제가 있는 거 아니냐”는 박 후보의 질문에 “이것만 알아라. 나는 박근혜 후보를 떨어뜨리기 위해서 나온 거다. 반드시 박 후보를 떨어뜨릴 것이다”며 자신의 대선 출마 목적을 본인 당선이 아닌 ‘박근혜 낙선’이라고 단언하기까지 했다. 토론 말미에는 아예 박정희 전 대통령을 두고 “충성 혈서까지 써서 일본군 장교가 된 다카키 마사오, 누군지 알 것이다”며 박 후보를 향한 네거티브 공세의 대미를 장식했다.
▲ 이정희 후보가 지난달 16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투표시간 연장을 촉구하는 서명운동을 했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이보다 더 큰 문제는 이 후보 본인의 ‘오버액션’ 때문에 정작 박 후보와 직접 맞서야 할 문재인 후보가 큰 피해를 입었다는 것이다. 이 후보의 막무가내식 맹공 덕에 박 후보에 대한 문 후보의 ‘대립각’은 무딜 수밖에 없었고 존재감도 부각되지 못했다. 문 후보는 낄 자리가 전혀 없었고 그저 ‘카메오’ 수준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던 것.
이 후보의 생각지 못한 역습에 당한 새누리당은 토론이 끝나고 ‘군소 후보 TV 토론 자격제한 법안’(여론조사 결과 평균 지지율이 15% 이상인 후보자만 토론 참석자격 확보)까지 발의해가며 이 후보와 토론 룰에 대해 거센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여기에 민주당 역시 이 후보의 낯 뜨거운 ‘주연 행각’에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민주당 캠프 진성준 대변인은 12월 5일 오전 공식 논평을 끝내고 기자단에게 “이 후보가 적극적이었지만 지나친 후보 간(이정희-박근혜) 대립각 때문에 문 후보의 비전과 정책이 가려진 데 대해 많이 아쉽다. 이 후보가 지적한 박 후보의 표리부동한 태도에 대해서는 우리도 공감하지만 이 후보의 토론 태도에 대해서는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진 대변인의 논평 직후 캠프 현장에서 만난 민주당 관계자 역시 “우리는 이번 대선판의 분수령으로 TV 토론을 꼽곤 했다. 가장 큰 피해자는 우리다. 박 후보는 오히려 동정표만 가져가게 생겼다. 따지고 보면 새누리당은 손해 본 거 없다. (이 후보가) 너무 설치는 바람에 문 후보는 완전히 묻혔다. 박 후보와 싸워야 할 당사자는 문 후보다. 이 후보는 포지션을 잘못 잡았다. 문 후보를 대립각에 보조하는 역할을 충실히 했어야 했다. 본인이 나서면 나설수록 오히려 박 후보에게 유리하다는 것을 왜 모를까 싶다”며 안타까워했다.
이번에 보여준 이 후보의 ‘의도적 오버’에 대해 좀 더 깊게 생각해 보자면 이 후보는 왜 무리를 하면서까지 대선 판에 나왔는지를 따져볼 필요가 있다. 이 후보가 대선 출마를 선언했을 때 “이미 바닥을 친 이 후보가 대선 출마를 통해 얻을 것이 많으면 많았지, 잃을 것은 전혀 없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 통합진보당 비례대표후보 부정투표 파문과 관련 입장을 표명하는 모습. |
이렇게 따지면 이 후보의 대선 출마 목적은 거의 다 이룬 셈이다. 첫째와 둘째 목표는 현재 자연스럽게 이루어졌고 셋째 목표 역시 이번 TV토론을 통해 긍정적이건 부정적이건 사람들의 이목 끌기에는 성공했으므로 충분히 목표를 달성했다고 볼 수 있다. 박 후보만을 겨냥한 그의 막무가내식 ‘네거티브 공세’는 어쩌면 박 후보가 말한 대로 작정한 듯 준비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마지막 넷째 목표인 ‘단일화를 통한 캐스팅 보트’ 역할에 대해서는 대체로 부정적인 반응이다. 정치칼럼니스트 박성호 씨는 “통합진보당과 이 후보의 지지율이 지속해서 1% 이하로 떨어진 상태다. 아마도 이 후보는 대선을 앞두고 내심 마지노선인 3%는 나올 것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마음이 급했을 것이다. 이번 토론에서의 무리수는 그래서 나온 거다. 이미 토론 전부터 이 후보가 ‘다카키 마사오’ 발언을 준비했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떨어진 지지도를 만회하기 위해 일종의 ‘노이즈 마케팅’을 노렸겠지만 도리어 이 후보의 막말로 인해 당 전체가 무례하고 격이 없는 집단으로 비쳤다. 분명한 실패다”라며 “내심 민주당으로부터 특정한 ‘대가’를 받고 단일화하고 싶은 속내가 있겠지만, 민주당은 절대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다. 민주당 스스로 이 후보와의 단일화가 도리어 화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다. 이번 토론회로 마음이 더 굳어졌을 것이다. 현재로서 이 후보는 자신의 지지율이 3% 마지노선에 근접하지 못하면 처참히 전사하느니, 명목상의 이유를 들어 스스로 물러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
‘진보의 꽃’서 당권파의 ‘꼭두각시’로…
정치입문은 2007년 민주노동당 입당 이후 18대 총선에서 비례대표로 당선 되면서부터다. 한때 우수한 의정활동을 바탕으로 ‘진보의 꽃’으로 불렸다. 2010년에는 초선의원으로서 민주노동당 당대표직에 오르면서 진보진영의 대표 정치인으로 거듭났다.
이 후보에 대한 평가가 급락하기 시작한 것은 올해 19대 총선 전후에 불거진 일련의 통합진보당 사태 당시부터다. 지난해 11월 노회찬, 심상정 등 PD 계열의 구 진보신당 인사들과 유시민 등 국민참여당이 대통합하면서 통합진보당을 출범했지만, 총선을 전후해 당내경선 파동과 폭력사태, 그로 인한 분당사태까지 ‘진보 대분열’이라는 큰 홍역을 치렀다.
그 논란의 중심에 바로 ‘경기동부연합’과 끝까지 자리를 지킨 이 후보가 있었다. 이석기, 김재연 의원 등이 지목된 보이지 않은 손 ‘경기동부연합’이 사실상 당의 모든 결정을 좌지우지하고 당권파를 형성하며 큰 영향력을 과시하고 있고 당내 경선 파동과 일련의 분열사태와 무관하지 않다는 의혹이었다. 여기에 대중적 인지도가 높은 이 후보는 그들이 전략적으로 앞세운 ‘꼭두각시’, ‘허수아비’에 불과하다는 의혹도 있었다.
분열사태 이후 이 후보는 일련의 분당사태로 와해된 조직을 재정비하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했다. 외부에서 쏟아지는 이석기, 김재연 후보 제명과 분당에 대한 책임 요구를 번번이 묵살하면서까지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되레 분당의 책임을 탈당한 비당권파에게 돌리며 자신과 당의 색깔만 분명히 해나갔다. 외부에서는 “한때 두 자릿수 지지율을 기록하며 국내 진보정당이 새로운 전기를 마련할 수도 있었지만, 이제는 완전히 그들만의 리그로 전락했다”는 비난이 쏟아졌지만 이 후보는 이에 개의치 않고 내부결속에 올인해왔다. 이러한 외길 행보 때문에 그는 최근까지 ‘고집불통’ ‘골수분자’라는 악평을 듣고 있다.
정치인 이정희에 대한 평가는 무척 엇갈린다.
하태경 의원은 최근 이 후보에게 보낸 공개편지를 통해 “지난 TV 토론 당시 이정희 후보의 모습에 크게 실망하지 않을 수 없다. 이 후보와 통합진보당이 스스로 자숙과 반성의 시간을 가져야 할 때다. 누군가를 공격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있을 때가 아니다. 통진당이 진심으로 국민 앞에 반성한다면 최소한 이석기, 김재연 의원은 출당시키고 무조건 후보직을 사퇴해야 한다”며 맹공을 퍼부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이 후보의 상식과 이성마저 근본적으로 불신하지는 않는다. 한때 똑똑했고 아까운 친구”라며 일부 이 후보의 능력에 대해서는 후한 평가를 하기도 했다.
대선 이후 이 후보의 향후 행보에 대해서도 주목받고 있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이번 대선의 결과에 따라 이 후보가 용도 폐기되는 것 아니냐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해 앞서의 정치칼럼니스트 박성호 씨는 “통합진보당으로서 대선의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이 후보 카드를 버리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실세 이석기 의원이 있다지만 대중적 지지도와 인지도를 갖춘 인물은 여전히 이 후보밖에 없다. 최근에는 이 후보가 당권파 내부에서도 나름 자기의 목소리를 내고 있기 때문에 향후에도 ‘이정희호’는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 다만 이 후보는 내년에 본격적으로 부정경선 혐의로 기소된 당내 인사들의 재판이 시작되기 때문에 이 난관을 헤쳐 나가야 하는 부담이 남아 있다”고 설명했다. [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