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 도용” vs “혁신” 논란 확산…최첨단 AI 산업 판도 흔들? 막대한 자본 필요하다는 전제 깨져
불과 558만 달러(약 74억 원)로 오픈AI의 GPT와 맞먹는 성능을 구현했다는 딥시크의 발표는 AI 업계에 충격을 안겼다. IT 전문매체 ‘디인포메이션’에 따르면 오픈AI는 연간 AI 훈련에만 70억 달러, 인건비로 15억 달러를 지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앤트로픽(Anthropic)의 클로드(Claude) 개발에도 10억 달러 이상이 투입된 것으로 추정된다. 딥씨크는 거의 100분의 1 이하의 비용으로 R1 모델을 만든 것이다.
많은 전문가들이 이번 사태를 ‘스푸트니크 모멘트’에 비유한다. 과거 1957년 스푸트니크 1호로 소련 우주 개발이 미국을 놀라게 했듯이, 이번 딥시크의 혁신은 AI 기술에서 중국이 미국과의 격차를 예상보다 빨리 좁힐 수 있다는 경각심을 불러왔다.
충격은 즉각 주식시장으로 이어졌다. 27일(현지시각) 뉴욕증시에서 나스닥은 3.1% 급락했고, AI 반도체 강자 엔비디아의 주가는 하루 만에 17% 폭락하며 시가총액 850조 원이 증발했다. S&P500 지수도 1.5% 하락하며 1664조 원 규모의 시장 가치가 사라졌다.
AI 개발에는 고성능 칩과 막대한 자본이 필수라는 업계의 ‘상식’이 흔들린 탓이다. 특히 메타가 최신 AI 모델 ‘라마3’ 개발에 엔비디아의 최신형 H100 칩을 1만 6000개나 사용한 것과 달리, 딥시크는 H100보다 저사양인 H800 칩 2048개로도 충분했다고 밝혀 파장이 컸다. 엔비디아가 가장 큰 폭락을 맞은 것도 상대적으로 낮은 사양의 칩과 적은 돈으로 AI 모델 개발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주식 시장이 반응한 것이다.
딥시크의 효율적 개발은 창업자 량원펑의 독특한 접근법에서 비롯됐다. AI 기반 헤지펀드 하이플라이어(High-Flyer)를 설립한 량원펑은 AGI 개발이라는 야심찬 비전을 품고 딥시크를 창업했다. 사업이 안정화되던 2021년, 그는 갑작스럽게 엔비디아 GPU를 대량으로 매입하기 시작했다. 주변인들은 이를 단순히 부자의 색다른 취미 정도로 치부했다.
딥씨크는 기존 AI들이 ‘지도학습’과 '피드백 기반 ‘강화학습’을 병행한 것과 달리, 인간의 개입을 최소화한 ‘순수 강화학습’ 방식을 택했다고 한다. 이는 마치 어린아이가 수없이 넘어지면서 자전거 타기를 배우듯, AI가 스스로 시행착오를 겪으며 최적의 해답을 찾아가는 방식이다.
여기에 ‘fp8 훈련’, ‘혼합 전문가 시스템(MoE)’, ‘Dual Pipe’ 등 혁신적 기술을 더했다. 기존 AI처럼 모든 정보를 상시 보유하는 대신, 필요한 지식만 선택적으로 활용하는 방식을 도입한 것이다. 이를 통해 GPU 사용 시간을 메타의 3084만 시간에서 278만 시간으로 대폭 줄이는 데 성공했다.
딥시크의 인재 운영 방식도 파격적이다. 150명의 소규모 팀으로 3500명이 넘는 오픈AI와 경쟁하고 있다고 알려졌다. 량원펑은 “경험보다는 열정과 능력을 가진 인재가 새로운 아이디어로 혁신을 이끌 수 있다”며 “1~2년 차 이하의 젊은 인재들을 주로 채용한다”고 밝혔다. 8년 이상 경력자는 거의 채용하지 않는다는 게 회사의 원칙이다.
그러나 딥시크를 둘러싼 우려도 커지고 있다. 하정우 네이버퓨처 AI센터장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딥시크가 사용자의 장비 정보부터 키보드 입력 패턴, IP 정보, 장치 ID, 쿠키까지 광범위한 데이터를 수집해 중국 서버에 저장한다”며 보안 위험을 지적했다. 이러한 우려로 이탈리아는 이미 딥시크 앱의 신규 다운로드를 차단한 상태다.
검열 논란도 일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딥시크가 천안문 사태 등 중국의 민감한 이슈에 대한 질문을 회피한다”며 “중국 정부의 검열이 AI 모델에도 적용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유동원 유안타증권 글로벌 인베스트먼트 본부장은 “중국 체제하의 AI 서비스 사용에는 근본적인 위험이 따른다”며 “알리바바 마윈의 사례에서 보듯 중국 정부의 개입 가능성을 경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기술 도용 의혹도 제기됐다. 오픈AI와 마이크로소프트는 딥시크가 ‘증류(Distillation)’ 기술로 자사의 모델을 복제했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조사에 착수했다. 이는 기존 AI 모델의 답변을 활용해 새로운 모델을 학습시키는 방식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집권 2기 행정부의 백악관 ‘인공지능(AI)·가상화폐 차르’로 임명된 데이비드 삭스 전 페이팔 최고운영책임자는 “딥시크가 오픈AI 모델에서 지식을 추출했다는 상당한 증거가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28일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딥시크가 오픈 AI 모델에서 지식을 증류했다는 증거가 있다”고 말했다.
실제 개발 비용을 둘러싼 논란도 있다. 딥시크가 공개한 558만 달러는 메타의 최신 AI 모델 개발 비용의 100분의 1 수준으로, 업계에서는 이 비용이 최종 성공 모델의 순수 훈련 비용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인건비와 전기요금, 시행착오 비용 등을 포함한 실제 총비용은 이보다 훨씬 클 것이라는 분석이다. 다만 이는 여전히 빅테크 기업들의 투자 규모와 비교하면 획기적으로 낮은 수준이라는 평가다.
개발비용이 터무니없이 낮다 보니 일종의 음모론도 나오고 있다. CNBC와의 최근 인터뷰에서 알렉산더 왕 스케일AI 대표는 “딥시크가 보유한 엔비디아 H100이 5만 개에 달하지만, 미국의 수출 제재로 인해 이를 공식적으로 확인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언급했다. 이 게시물을 두고 일론 머스크도 X(트위터)에서 ‘분명히(Obviously)’라고 댓글을 달아 동의 뜻을 표했다.
딥시크와 H100 칩 사용에 대한 의혹이 시장에서 확산되고 있지만, 이에 대해 성륜수 어웨어랩 대표는 다른 시각을 제시한다. 그는 이 같은 음모론 대신 딥시크가 H100 대신 저사양 H800을 사용했다는 주장에 무게를 싣는다. 그 근거로 딥시크 연구진이 H800 클러스터의 병목현상을 극복하기 위해 ‘fp8 훈련’, ‘load-balancing MoE’, ‘DualPipe’ 등 다양한 최적화 기법을 적용했다는 점을 든다. 이러한 정교한 최적화 작업은 H100을 사용했다면 굳이 필요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성륜수 대표는 오히려 현재 논란의 핵심인 557만 달러라는 비용에 대한 잘못된 해석에 있다고 지적한다. 딥시크가 공개한 557만 달러는 최종 성공적인 훈련에 들어간 비용일 뿐, 여기에 이르기까지 투입된 우수 인력의 선행 연구와 수차례의 모델 훈련 시도 비용은 포함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성 대표는 “누구나 550만 달러만 있으면 GPT o1에 비견하는 모델을 두 달 만에 만들어낼 수 있다”는 식의 해석은 현실과 동떨어진 것이라고 그는 강조한다.
AI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가 AI 산업의 판도를 바꿀 것으로 전망한다. 케빈 루즈 뉴욕타임스 기술 칼럼니스트는 “최첨단 AI 개발에 막대한 자본이 필요하다는 전제가 깨졌다”고 평가했다. 린드로 폰 베라 허깅페이스 연구 책임자는 “빅테크 기업들이 자신들의 가치를 유지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AI 개발의 난이도와 비용을 과대 포장했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흥미로운 점은 미국의 대중국 기술 제재가 오히려 역효과를 낳았다는 분석이다. 이온 스토이카 UC 버클리 교수는 “오픈소스 커뮤니티의 중심이 중국으로 옮겨가고 있다”며 “이것은 미국에 큰 위험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조지 사라벨로스 도이체방크의 외환 전략 책임자는 “중국의 AI 혁신은 궁극적으로 달러 가치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2000년대 닷컴 버블처럼 미국 기술 평가와 자본 지출이 대규모로 붕괴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존 빌라세너 UCLA 교수는 “AI 수출 규제가 오히려 중국의 기술 혁신을 촉진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딥시크는 미국의 제재로 최신 칩을 확보하지 못하자, 저사양 칩으로도 고성능을 구현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AI 업계의 전문가들은 딥시크의 등장이 세계 AI 산업의 지형도를 크게 변화시킬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특히 딥시크가 오픈 소스로 공개됐다는 점에서 우려도 나온다. 얀 르쿤 뉴욕대 교수는 “이는 중국과 미국의 경쟁이 아닌, 오픈소스와 폐쇄형 모델의 대결”이라며 새로운 해석을 제시했다. 뉴욕타임스도 “미국이 오픈소스 기술을 억제하면 중국이 상당한 우위를 차지하게 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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