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 국회의원 모임인 대한민국헌정회 정대철 회장은 개헌 촉구에 누구보다 앞장서고 있다. 정 회장은 1977년 국회에 입성해 5선을 지냈다. 이후 새천년민주당 대표, 더불어민주당 상임고문 등을 역임했다. 정 회장 집안은 정치 명문가로 유명하다. 정 회장 아버지 정일형 전 외무부 장관은 독립운동가 출신으로 8선 국회의원을 지냈다. 정 전 장관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정치적 스승으로 알려졌다. 정 회장 어머니인 이태영 박사는 대한민국 최초 여성 변호사이자 여성운동가였다.
일요신문은 지난 3월 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 있는 헌정회에서 정 회장을 만났다. 정 회장은 1시간가량 진행된 인터뷰에서 “정치 실종 상태를 해결하기 위해 개헌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민주당 출신인 정 회장은 이재명 대표를 강하게 비판했다. 20년 넘게 친분을 이어온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비판도 아끼지 않았다. 다음은 정 회장과의 일문일답.

“12·3 계엄 사태가 남긴 교훈 때문이다. 멀쩡한 대통령도 하루아침에 제왕적 대통령으로 변할 수 있다. 제왕적 대통령제의 대통령 권한을 분산, 제한시켜야 한다. 국가 백년대계를 위해서, 이 나라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서 개헌이 필요하다. 가장 크고 절박한 정치개혁이 개헌이다.”
―12·3 비상계엄 사태는 어떻게 지켜봤나.
“아내가 내 방에 들어와서 계엄이 선포됐다길래 농담인 줄 알았다. 나보고 술 좀 덜 먹으라고 계엄을 선포한다는 건가 했다. 아내가 텔레비전을 틀어주고 나서야 깜짝 놀랐다. 우원식 국회의장에게 전화했다. 우 의장이 전화를 받더니 국회 담장을 넘어가고 있다고 하더라. 좀 있다 쿵 소리가 났다. 우 의장이 담장을 넘어 국회 안에 들어왔다고 했다. 그때는 우 의장이 체포될 줄 알았다. 우 의장한테 체포되더라도 당당하게 나가라고 했다. 무슨 일인지 알아보려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정 실장은 자기도 잘 모른다면서 저녁때 (계엄을) 알았다고 하더라. 어떻게 비서실장이 저녁때 알게 하나.”
―비상계엄을 평가하자면.
“윤석열 대통령이 헛것에 사로잡혔던 것 같다. 윤 대통령 심정이 이해는 갔다. 민주당이 입법 독주, 탄핵 독주를 했다. 그래도 그걸 힘으로 제치면 안 된다.”
―윤석열 대통령이 정치계에 발을 들이기 전부터 20년 넘게 친분을 이어왔다고 알려졌다.
“윤 대통령과 막걸리 먹은 횟수만 100번은 될 거다. 대통령이 될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다. 대통령이 되고 나서 자신감이 생겼더라. 아주 헛자신감이었다. 검찰 사고방식으로 마음에 안 들면 자르는 식이었다. 타협해서 같이 간다는 생각이 없었다. 대통령이 된 후에는 한두 번 봤다. 윤 대통령에게 정치 지도자는 검찰 지도자와 다르다고 조언했다. 정치 경험이 있는 사람을 옆에 많이 두고, 의견이 달라도 끌어안아야 한다고 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꼴 보기 싫어도 상대를 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니까 윤 대통령은 한숨을 쉬더라. 그다음에 이재명 대표를 딱 한 번 만났다. 그때도 서로 자기 이야기만 했다고 하더라.”
―선(先) 개헌, 후(後) 대선을 촉구하고 있다. 왜 대선 전에 개헌해야 하나.
“1987년 이후 38년이 지났다.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 윤석열 8명의 대통령 모두 개헌을 공약하거나 개헌에 동의했다. 하지만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 꿩 구워 먹은 자리가 됐다. 대통령 권력을 분산시키면 현직 대통령에게 이롭지 않아서 개헌 의지가 발동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번에도 대권주자가 개헌을 약속해도 대통령이 되면 개헌을 안 할 가능성이 높다. 경험법칙상 대선 전에 반드시 개헌을 해야 한다. 내년으로 미룬다면 다시 차일피일 미뤄져서 개헌이 된다는 보장이 없다.”

“시간은 모자라지 않다. 원 포인트로 권력 구조만 개헌한다면 35일~60일 내에 충분히 할 수 있다. 대선과 국민투표를 같이 해도 된다. 여야 합의만 된다면 개헌은 단시간에 할 수 있다. 이재명 대표만 합의하면 된다. 그런데 이 대표는 내란 종식과 국정 혼란 수습이 우선이라면서 개헌 이야기를 안 한다고 한다. 언어도단이다. 이 대표는 지금도 내란 사태가 계속되고 있다고 보는 건가. 개헌 논의가 윤 대통령 탄핵을 희석시킨다는 것도 핑계다.”
―이재명 대표와 개헌에 대해 직접 이야기를 나눠봤나.
“지난 1월경 20분간 전화했다. 이 대표에게 개헌의 필요성과 절박성을 설명했다. 이 대표가 앞장서서 개헌을 추진한다면 역사에 남을 훌륭한 일을 해내는 거라고 말했다. 이 대표는 연구해보겠다면서 나중에 전화하겠다고 했다. 그러고 두 달이 지났다. 전화는 아직 안 왔다. 연구가 안 끝난 모양이다.”
―이재명 대표는 지난 대선 때 대통령 4년 중임제 개헌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그런데 왜 지금은 개헌 논의에 소극적일까.
“자기가 대통령 다 됐다고 생각해서 그러는 거다. 대통령이 되기 전부터 약속을 위반하는 사람이라면 더욱 개헌을 안 할 것이다.”
―민주당 국회의원들도 개헌 논의에 소극적이다.
“민주당에서 개헌해야 한다고 국회의원 30명~40명은 일어날 줄 알았다. 그런데 조용하다. 이재명 대표 눈치를 보느라고 그렇다. 공천을 못 받을까봐 땅바닥으로 벌벌 기는 의원이 너무 많다. 한심하다. 용기 있게 덤벼들고 자기 주장하는 의원 숫자가 너무 적어졌다. 거의 없어진 것 같다.”
―여권과 비명계 대권 주자들은 개헌론을 들고나오고 있다. 진정성이 있다고 보나.
“진정성을 믿고 싶다. 대통령이 되고 나서 입장이 바뀔지는 모르지만. 전직 대통령들도 후보 시절엔 개헌에 진정성이 있었을 거다.”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는 조기 대선이 치러질 경우 당선된 대통령 임기를 3년으로 단축해 2028년 대선과 총선을 동시에 치르자는 개헌 구상을 밝혔다. 어떻게 평가하나.
“자기희생을 전제로 하는 현명한 아이디어라고 생각한다.”
―한 전 대표가 오늘(3월 7일) 오전 헌정회를 찾았다. 한 전 대표와 개인적인 인연이 있나.
“개인적으로 만난 적은 없었다. 한 전 대표가 오늘 이야기하기를 10년 전쯤 내가 윤 대통령과 막걸리를 먹을 때 자동차에서 기다렸다고 하더라. 그런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 했다. 윤 대통령이 나를 좋아한다고 그래서 자기도 예전부터 나를 상당히 좋아했다고 말하더라.”
―여야 합의가 없는 ‘정치 실종’ 시대라고 지적해왔다. 개헌이 정치 실종 해결책이 될 수 있을까.
“그렇다. 내각제적 요소가 가미된 분권형 대통령제가 실행되면 국회에서 만나고 대화하고 경청하고 타협하고 조정할 가능성이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양원제를 채택해서 상원을 신설하면 상하원이 서로 견제해서 국회의 일방 독주 가능성도 낮아질 것이다.”

“민주주의 기본 원칙은 서로 다를 수 있고 달라야 한다는 다양성의 원칙을 인정하는 거다. 그런데 정치인들이나 국민들이나 다양성 원칙에 대한 이해와 인정이 부족하다. 다른 것은 잘못됐다고 하는 경향이 있다. 진보와 보수가 서로를 상호 대안 세력으로는 인정해야 한다. 다수결, 거부권 행사 등 힘의 논리가 너무 쉽게 행사되는 것도 문제다. 입법 폭주와 거부권 행사 악순환이 반복됐다. 우리나라가 다른 분야는 세계적인 수준에 올랐다. 원조를 받는 나라에서 원조를 주는 나라가 됐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독립한 국가 중에 산업화와 민주화를 한꺼번에 성공한 유일한 나라다. 그런데 정치는 매일 전쟁 상태다. 여당은 여당끼리 놀고, 야당은 야당끼리 논다. 서로 만나서 모순을 극복하고 대결을 최소화하는 게 정치인데 그걸 안 하고 있다.”
―정치 실종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나.
“궁극적으로 윤 대통령에게 책임이 있다. 대통령은 야당 대표, 국회의원, 시민단체 대표 등을 만나서 대화하고 설득하면서 상생과 협치를 이끌어야 할 책임이 있다. 그러지 않아서 문제가 생겼다. 윤 대통령은 이재명 대표를 2년 반 임기 중에 단 한 번 만났다. 야당 대표를 수십 번 만나서 서로 타협해야 제대로 된 정치다. 그런데 윤 대통령은 이 대표더러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라고 했다. 정치 경험이 있었다면 안 그랬을 거다. 윤 대통령은 국민의힘에서도 이준석 한동훈 나경원 안철수를 내쳤다. 의견이 달라도 포용해야 하는데 전부 내쳐버렸다. 정치 경험이 부족해서 그렇다.”
―여론 분열도 극심해진 모습이다.
“나라가 혼란 상태에 빠지지 않을까 걱정이다. 국민이 양쪽으로 나뉘었다. 정치 지도자들이 말려야 한다. 윤 대통령 탄핵 심판에서 어떤 결론이 나든 승복해야 한다. 그때도 서로 싸움질하면 그 나라는 아무것도 아니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 심판 결과는 어떻게 예상하나.
“처음에는 인용을 확신했다. 요새는 솔직히 모르겠다.”
―법원이 윤 대통령 구속 취소 결정을 내렸다. 일각에선 윤 대통령 탄핵 기각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주장이 나온다.
“윤 대통령 탄핵 심판에 직접적인 영향은 없을 것이다. 탄핵과 신변 문제는 구분된다. 그리고 윤 대통령 탄핵 사유에서 내란죄가 빠졌다. 헌법재판소에서 내란죄 판단은 없을 것이다.”
―윤 대통령은 대통령직에 복귀한다면 개헌에 집중하겠다고 탄핵 심판 과정에서 주장했다. 어떻게 생각하나.
“탄핵이 기각되더라도 대통령으로서 정상적인 업무를 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국민에게 죄송하다고 깊이 사과하고 하야하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 ‘모든 책임은 나에게 있다. 부하들은 가능한 놔 달라’는 자세로 지도자 모습을 보여야 한다. 개헌을 추진한다면 중립내각을 구성해서 해야 야당 동의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정 회장은 인터뷰를 마친 뒤 ‘정대철 사랑 모임’이 2003년 펴낸 책 ‘정대철, 유난히 큰 배꼽’을 건넸다. 22년 전 책이지만 최근 정치 상황이 겹쳐 보였다. 이 책 발문에서 정 회장은 “우리 정치사에는 유난히 부침이 많았고, 난세 또한 많아서 뜻하지 않았던 인물들이 역사의 정점에 부상하게 되고, 정치는 끝없는 파행을 거듭해 왔다”며 “국민이 선택을 잘못해서 리더십이나 정치적 경륜이 부족한 지도자를 선택했을 경우에도 회복할 수 없는 국가 경쟁력의 타격을 입게 될 것이다. 민족과 역사 앞에서 봉사하고자 하는 사람은 우직한 집념이나 ‘머리는 빌릴 수 있다’는 소박한 논리를 가지고 국민 앞에 나서서는 안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남경식 기자 ngs@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