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동복지시설을 운영하며 후원금을 빼돌려 카지노 출입과 주식투자 등으로 날린 혐의로 승려 정 아무개 씨가 불구속 기소됐다. 그가 운영하던 아동복지시설 건물(오른쪽). |
의정부지검 형사3부(임용규 부장검사)는 지난 13일 아동복지시설 후원금과 국가보조금 등 수억 원을 빼돌린 혐의(업무상 횡령)로 복지시설 원장 정 아무개 씨(56)와 탁 아무개 씨(여·40)를 불구속 기소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이미 지난 1월에 정 씨를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한 바 있다. 정 씨는 후원금과 국고 보조금 등을 빼돌려 카지노 출입과 주식 투자로 날린 혐의를 받고 있다.
경기 의정부시에 위치한 정 씨가 운영하는 복지시설은 2000년대 초부터 방송에 나오기 시작했다. 인근 절의 주지이면서 갈 곳 없는 아이들을 친자식같이 돌보는 모습은 방송 표현 그대로 ‘스님 아빠’였다. 그는 인자한 모습으로 아이들의 어려움을 호소했다. 들쭉날쭉한 후원금이 줄어들다 보니 아이들 먹이고 입히는 돈이 후원금을 넘은 지 오래인데다 빚 때문에 뿔뿔이 흩어질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방송이 나간 이후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방송을 본 기업과 시청자들이 내미는 도움의 손길이 끊이지 않았다. 다른 방송국에서도 취재가 이어졌다. 그렇게 그는 지역 내 ‘불우 아동의 대부’로 명성을 쌓아갔다.
그러던 지난해 9월경, 경찰서로 제보 한 통이 접수됐다. 제보 내용은 충격적이었다. 정 씨와 탁 씨가 짜고 후원 물품을 팔아치워 착복한다는 것이었다. 의정부경찰서 지능팀은 수사에 착수했다. 그런데 수사 과정에서 더 놀라운 사실이 드러났다. 비영리법인으로 운영되는 복지시설도 지원받은 내역과 사용처에 대한 증빙자료가 있어야 하지만 이를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던 것.
경찰은 곧 후원계좌 추적에 들어갔다. 2004년부터 2011년 10월까지 받은 후원금은 총 23억 3200만 원. 2007년부터 받은 국고보조금 6억 9500만 원을 합하면 30억 원에 달하는 돈이다. 더 큰 문제는 따로 있었다. 후원계좌에서 피의자들의 개인계좌로 수억 원이 빠져나갔고, 개인계좌를 통해 선물옵션에 투자한 사실이 추가로 밝혀졌다. 게다가 현재 잔고가 없는 점으로 미루어볼 때 옵션에 투자해 돈을 다 날린 것으로 보인다고 사건을 수사한 경찰 관계자는 전했다.
정 씨의 부적절한 행동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2009년부터는 자신이 주지로 있는 절의 여신도와 함께 정선카지노를 밥 먹듯이 드나들었다는 사실도 수사 결과 밝혀졌다. 경찰 조사에 따르면 정 씨가 111회, 여신도가 78회에 걸쳐 정선카지노에 출입한 기록이 남아 있다. 이에 대해 정 씨는 황당한 해명을 내놓았다. 그는 “같이 간 여신도가 암 선고를 받고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었다”며 “그래서 자기 재산을 쓰고 싶은 대로 써야겠다는 말을 해서 같이 간 것”이라고 경찰에 진술했다. 정 씨는 “도박 목적이 아니었고 카지노에서 쓴 돈도 모두 여신도의 돈”이라며 카지노에서 복지시설 운영비를 탕진하지 않았다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수억 원의 횡령사건이 터진 뒤 뒤숭숭한 복지시설을 직접 방문해 상황을 살펴봤다. 그곳에서 만난 복지시설 관계자로부터 불구속기소된 정 씨가 방문 당시 복지시설 내부에 있다는 사실은 알 수 있었지만 정 씨를 직접 만날 수는 없었다. 관계자는 “스님이 만나고 싶어 하지 않으실 것”이라며 “현재로서는 할 수 있는 말이 없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시설 입장에서는 지금 씌워진 혐의가 사실이 아니라고 알고 있다”며 “그러니까 이렇게 오랜 시간 동안 (사건을) 끌어오고 있는 것이 아니겠느냐”고 덧붙였다.
시설에 있는 아이들을 만나 현재 상황을 들어보고 싶었지만 이마저도 여의치 않았다. 이미 학교에 다닌 아이들은 등교를 한 상태였으며 어린 아이들도 어쩐 일인지 보이지 않았다. 복지원 관계자 역시 아이들에 대해 묻자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며 나가주길 바라는 눈치였다.
한편, 경찰 측은 혐의 자체를 입증하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사건을 담당했던 경찰관은 “혐의 자체는 명확하지만 정확한 액수 산정이 어렵다”고 수사가 길어진 이유를 설명했다. 카지노의 경우에도 방문 사실은 기록에 남지만 가서 얼마를 썼는지, 누구의 돈을 썼는지는 입증하기 어렵다는 이야기다. 결국 검·경은 확실히 횡령을 입증할 수 있는 10억여 원에 대해서만 기소한 상태다.
다른 복지시설에 근무하는 김 아무개 씨는 소식을 듣고 “그 돈이 어떤 돈인데 손댈 생각을 했을까”라며 “겨울이고, 운영비는 더 부족해지는데 이런 좋지 않은 소식들 때문에 아이들 겨울나기가 더 어려워질지 모르겠다”고 걱정하기도 했다. 현재 해당 복지시설은 운영 중이다. 경찰 관계자는 “당장 아이들이 있으니 운영은 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하지만 정 씨의 혐의가 사실로 입증되고, 복지시설이 어디였는지 밝혀질 경우 시설 운영에 타격이 있을 수도 있다. ‘스님 아빠’의 방종에 죄 없는 아이들만 힘겹다.
이우중 인턴기자 woojoong@ilyo.co.kr